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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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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239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11.01 17:20
조회
83
추천
2
글자
10쪽

19.

DUMMY

한량은 방학 기간 동안 대구에 있는 본가에 내려가서 편히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서 <심청전> 이라든지, <흥부전> 이라고 하는 소설책만 주구장창 읽었다고 한다.


랑이는 하루 종일 무술 연습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혜원전신첩 1장의 모든 무술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갈고닦은 모양이다.


“어디서 갈고닦았는데?”

“? 그거야 안채에서 하는 게 당연하잖아.”

“안, 안채? 너 혹시...”

“아, 말 안 했나?”


랑이의 말에 당황하는 한량, 랑이는 눈곱만큼의 표정 변화도 없이


“우리 집, 양반 가문이야. 왜, 안 어울려?”

“아니, 그게 아니.. 아니오라...”

“됐어, 여기선 다 똑같은 사람인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랑이의 신분에 깜짝 놀란 우리 세 명이 말을 더듬자, 랑이는 손사래 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반말해. 우린 같은 조원이잖아. 그치?”

“어? 응...”


돌연 내 옆구리를 쿡 찌르는 랑이.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의했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어?”

“소식이라니?”


돌연 화제를 바꾼 랑이는 우리 모두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번 8월 달에 영멸청에서 사람이 온데. 그것도 자색 옷을 입은 관리 분들이.”

“자색, 자색이면 분명히...”

“종4품부터 정3품의 영멸단원들이 입는 옷이었지 아마?”


랑이는 한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어나갔다.


“자색 옷을 입는 영멸단원은 전국에서도 단 30명뿐이야. 그런 높은 분들이 한양에 있는 이 영멸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거지!”

“그런 대단한 분들이 여긴 왜?”


천진난만한 내 질문에, 랑이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왜겠니, 눈에 띄는 생도들을 차출하기 위해서겠지.”

“정말?!”


나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랑이의 어깨를 잡으며 외쳤고, 랑이는 당황한 듯 살짝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럼! 그러니까 앞으로 품행에 신경 쓰라는 소리야... 크흠.”

“우리, 열심히 해보자!”


나는 랑이가 말한 사실이 우리 조가 영멸청에 곧바로 차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깨닫고 조원들을 고무시키기 위해 팔을 굳세게 흔들며 말했다.


랑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40점이라는 점수가 쌓이기 전에도 영멸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영멸단원이 되기 위해 매일 정진하고 있는 나로선 둘도 없는 기회임에 틀림이 없다.


“어.. 응!”


한량과 석오는 잔뜩 흥분한 내 분위기에 휩쓸려 나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




우리는 한 달 전에 지냈던 기숙사로 돌아 짐을 풀곤, 정해진 시간에 맞게 문영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영당의 방 안에는 언제나처럼 척사부가 교육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달 만에 우리를 보는 것이 은근히 반가웠는지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를 보곤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줬다.


“잘 쉬다 왔느냐.”

“네! 사부님은요?”

“나는 뭐...”


척사부는 머리를 연신 긁적이더니,


“무술 연습?”


이라는 무미건조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에이...”

“그나저나, 사부님!”

“?”


아무래도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까 랑이가 말했던 ‘그 이야기’를 척사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번 달 영멸청에서 높으신 분이 오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에요?”

“... 그걸 어디서?”


당황한 척사부는 말을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곤 잠시 고민하더니


“하아...”

한숨을 푹 쉬고는 말문을 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정말요?”

“그래, 내가 알기론 정4품의 관리 분이 오시는 걸로 알고 있지.”

“그럼, 그 관리 분께서 오시는 이유가...”

“물론, 너희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모두들 잔뜩 기대하는 것을 의식하듯, 척사부는 잠시 뜸을 들이곤


“괜찮은 생도들을 차출하기 위해서지.”


라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오!”

“정말이었구나!”


역시나 예상대로 잔뜩 신이 난 조원들. 나 역시 부푼 기대감을 안고 연이어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차출하는 기준 같은 건 있어요? 성적이라든가...”

“뭐?”


척 사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는,


“그거야 당사자 마음대로지.”


라는 허무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




8월 달이 돼서도 영멸원에서 배우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는데, 저번처럼 오전, 오후시간 동안 각각 문영당, 무영당에서 도깨비에 관한 것들과 무술 등을 배웠다.


나에게 있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틈틈이 서각에 올라가 무술이 적혀있는 책들을 골라 읽어본다는 점이다. 물론 한글로 쓰여 있는 것들만 골라 읽었지만, 글자를 아예 모르던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음에 틀림없다.


또 하나는, 바로 ‘차출’의 기회. 척 사부가 말했던 대로 영멸청에서 높으신 분이 오면 눈 밖에 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요즘 부단히 품행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말 그대로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물론 다른 생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8월 15일. 아침부터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듯 척사부는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우리 앞에 섰다.


“애들아, 드디어 오늘이다.”

“설마...”

“그래.”


그렇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멸청으로부터 관리 분이 행차하셨다.”


차출의 기회가 온 것이다.




***




정4품,


정1품부터 종9품까지 나뉘는 관리들의 관계중 상위권에 속하는 등급. 영멸청에 속한 관리들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급료는 물론 입는 도복의 색 역시 달라진다.


종9품부터 정9품은 황색, 종8품부터 정7품은 청색, 종6품부터 정5품은 자색, 종4품부터 정3품은 자색, 마지막으로 종2품부터 정1품까지는 백색의 도복을 입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행차하시는 관리 분께서 입는 옷의 색은, 알려지는 바에 따르면, 자색임에 틀림없다. 그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여기가, 축 조인 것이냐?”

“네, 그렇습니다.”


깍듯이 예를 다하는 척사부. 수업을 진행하는 와중, 갑작스럽게 문영당 내부로 그 관리 분이 오신 것이다. 다행이도 척사부가 미리 언질을 해줬던 후였기 때문에, 별다른 동요 없이 우리는 꼿꼿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행차하신 관리의 이름은 김성제. 불혹의 나이로 이제 막 정4품의 관직에 올랐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우리들 앞에 서 있었다.


관리가 입고 있던 도복은 말했다시피 자색 빛을 띠고 있었는데, 무늬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평범한 관복 같은 느낌이었지만 등에는 검은색의 滅(멸) 이라는 한자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뒷산에서 만났던 그 여인과 같은 한자임을 나는 이때 눈치 챌 수 있었는데, 이 관리를 보곤 문득 그 여인에 대해 질문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렁거렸다.


“혹시,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손을 든 나. 그는 희끗한 머리에 어울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무엇이든지 말해 보거라.”

“실은, 한 여인 분을 찾고 있습니다. 그 여인도 영멸청 소속인 것 같은데, 혹시 아시는지 해서 여쭤봅니다.”

“호오, 여인이라. 이름은 아느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름은... 모릅니다만, 입고 있던 도복의 색만은 알고 있습니다.”


생각을 되짚어보며 답했다.


“색이라... 혹시 무슨 색이였느냐?”

“백색이었습니다.”

“백, 백색?”

“제가 알기론 백색의 도복은 종2품부터 정1품까지의 관리 분들이 입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0명의 관리분들 중 한 명이라는 소린데... 혹시 짐작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흐음...”


여인의 정체가 종2품 이상의 고위 관료임에 적잖이 놀란 듯한 그는, 이어지는 내 질문에 정신을 차리곤 골똘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 알기론 백색의 도복을 입고 있는 여인은 단 2명이다만, 이 중 하나인 모양이구나.”

“혹시,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잔뜩 기대되는 눈망울을 한 채 쳐다보자, 그는 못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한 분은 종1품의 정련, 다른 한 분은 정2품의 박세연. 두 분 다 위여한 인물임은 틀림없다만... 혹시 어떤 연이라도 갖고 있는 게냐?”

“아, 실은...”


나는 두 분의 이름을 머릿속에 되뇌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 분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절 구해주셨을 때의 그 분의 검술을 보곤 그만 동경해버려서... 그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이렇게 영멸원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호오... 흥미롭구나.”


부끄러워 살짝 상기된 내 얼굴을 보며 그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답했다. 그는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그럼, 한 번 보여주겠느냐?”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내놓았다.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나는


“... 어떤 것을 말입니까?”


라고 답하자, 그는 우리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 영멸청에 들어올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를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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