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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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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211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10.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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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4.

DUMMY

“색 순서가 백색, 비색, ...”

“하아...”


점심을 먹으면서도 손가락을 짚어가며 외우는데 전념하고 있는 석오. 그런 그를 보며 랑이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쩌지? 쟤는 너무 멍청한데.”

“하하하...”


랑이의 직설적인 표현에 나는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해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석오가 다른 세 명의 공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중이였다. 한량은 머리는 좋은 모양인지, 가르쳐주면 곧잘 알아듣고 외웠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ㅋㅋㅋㅋㅋ, 평민들 주제에 공부라니.”

“뭐?”


그렇게 석오의 공부를 열심히 도와주면서 밥을 먹는 와중, 옆에서 누군가가 경시 어린 말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비아냥거림에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묘 조원들이었다. 연신 외우는데 집중하는 석오를 손가락질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뭐야, 패배자들이잖아?”

“뭐, 뭣?”

“왜, 또 맞아볼래?”

“읏...”


가소롭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는 석오, 상대방은 무술대회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살짝 주춤거렸다.


“아서라. 이번 시험에서 스스로의 주제를 알게 되겠지.”

“풉.”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묘 조원이 조소를 띠며 말하자, 랑이는 못 참겠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하긴, 너희들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네?”

“뭐?”

“이번 시험에서도 우리한테 진다면, 너희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평민들한테 두 번 연속 지는 거니까. 얼마나 추해 보이겠어?”

“뭐, 뭣?! 이 계집년이!”


쾅-


반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상대방. 하지만 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설을 이어나갔다.


“괜찮겠어? 여기서 또 소란을 피우면 퇴학 조치 받을 수도 있을 텐데?”

“형님, 참으세요!”


확실히 랑이 말대로, 무술 대회에서 비겁한 편법을 쓴 묘 조는 이제현 사부로부터 따끔한 경고를 받았었다. 만약 추후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그걸 잘 아는 묘 조원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있는 그를 옷깃을 잡으며 만류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일을 벌렸다간, 이제현 사부가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젠장!”

“흥.”


결국 제자리에 앉는 상대방, 한껏 고개를 치켜들며 조소를 띠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저 년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

“형님, 또 일을 벌이시면...”

“걱정 마. 내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묘안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ㅋㅋㅋㅋ, 두고 보라고.”


그는 살기 어린 표정을 한 채 랑이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




“괜찮아?”


나는 무영당으로 걸어가는 와중, 걱정스러운 마음에 랑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묘 조원들과 말다툼을 하면서 적잖은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랑이가 마음에 쓰였기 때문이다.


“응, 원래 저런 놈들이니까... 이젠 안쓰러워질 지경이야.”

“그건 그렇긴 해, ㅋㅋㅋ.”


하지만 랑이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쿡쿡 웃더니, 이내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사부와의 비밀 수업은 잘 진행돼 가는 거야?”

“그, 그걸 어떻게?”


깜짝 놀라 되묻는 내 반응이 가소롭다는 듯 랑이는 내 등을 팡 치곤,


“에이, 매일같이 해시쯤 기숙사에서 나가는 걸 어떻게 몰라.”


라고 털털하게 말했다.


“하하... 혹시 다른 애들도...?”

“아마도 눈치 채고 있을 걸?”

“... 미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덜컥 사과의 말을 던지자, 랑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난 좋게 생각해. 매일 밤마다 사부한테 받는 특훈이 얼마나 힘들겠어. 아마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일걸?”

“그, 그런가?”


랑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곤,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고.”


장난스러운 말투와 함께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




“사, 사부님?”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을 때는 일각의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평소대로처럼 정해진 시간에 무도장 뒤편으로 왔건만... 척사부의 모습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허공에 사부님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셨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부님에, 나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혹시 사부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기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쩌지?’


그렇게 손톱을 연신 입으로 뜯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뒤쪽에서 소름끼치는 신음소리가 귓속으로 흘려들어왔다.


끼이이이이-


“?!”


깜짝 놀라 뒤로 고개를 돌렸지만,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전나무들 말고는 내 시야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하나 잠시 고민하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숲 속 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사부님이 혹시 숲속에서 길을 잃었나? 아니면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서 싸우고 있나?


혹시,


숲속에서 도깨비를 만난 게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을 하며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던 쪽으로 다리를 내지르며 뛰어갔다.


'제발 별 일이 아니기를...'


그렇게 속으로 수백번 되뇌며 일다경 정도의 사간이 흘렀을까. 전나무들 사이로 서서히 정체불명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무엇인가가 있음을 깨달은 나는, 곧장 그 자리에서 멈추곤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반 정도 허리를 굽힌 다음, 최대한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그것’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끼이이이이이-


다시금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 며칠 전,




“도깨비에게도 등급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

“등급이요?”

“네,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자세히는...”


척사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랑이는 무엇인가 생각이 나는 듯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도깨비는 상상등부터 하하등까지 총 9단계로 등급이 나눠진다고 할 수 있지.”

“나눠지는 기준은 역시... 강한 순서인가요?”

“뭐,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맞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조원들은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척사부의 입을 바라봤고, 척사부는 그런 조원들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첫 음절의 상, 중, 하를 나누는 기준은 형태, 두 번째 음절의 상, 중, 하를 나누는 기준은 지능 이라고 할 수 있지.”

“형태? 지능?”


다소 알쏭달쏭한 답변에 조원들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듯 답하자, 척사부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형태란 도깨비가 어떤 모습을 하느냐에 따라 나눠지는데, 하부터 상까지 차례대로 동물, 인간, 신물을 말하지. 지능은 제대로 된 말도 못하는 것을 하,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중, 꾀를 쓸 수 있을 정도면 상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저번에 제가 숲 속에서 만난 그 곰은...”

“하하등 일게다.”

“오오...”


꽤나 구체적인 분류방법에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척사부는 박수를 치며


“자자, 뭐, 너희들은 중하등만 만나도 바로 도망쳐야 될 수준이니, 열심히 단련하도록.”


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




“괜찮으세요?!”


깜짝 놀라 전나무들 사이로 우둑하니 서 있는 한 사람에게 달려간 나는, 얼른 영멸원에서 배운대로 맥을 짚기 시작했다.


‘맥은... 짚이지 않는데?’


맥박이 뛰지 않음을 감지한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다시금 그 사람을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소 해괴망측할 정도로 뒤로 꺾여있는 오른팔, 절반 정도 꺾여 있는 머리, 두 눈의 동공은 풀려있고 뭔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설마... 도깨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그와 동시에 기괴한 신음소리가 다시금 그 사람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익-


“크윽...”


엄청난 굉음에 두 귀와 눈을 막아버린 나,


...-


어느덧 굉음이 멈추고,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내 두 눈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끄악!”

“ㅋㅋㅋㅋㅋ.”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그만 뒤로 넘어져버리고야 말았고, 그런 내가 웃긴 듯 저 멀리서 누군가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너, 너는!”

“역시 천한 것들은 놀라는 것도 재밌어.”


팔짱을 끼며 조소를 띠며 낄낄대고 있는 자는 바로,


‘진’조의 조원들이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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