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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의 서재입니다.

조선도깨비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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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바닐라
작품등록일 :
2022.09.10 16:20
최근연재일 :
2023.01.26 16:39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3,231
추천수 :
48
글자수 :
125,500

작성
22.11.07 17:10
조회
78
추천
2
글자
9쪽

21.

DUMMY

“짐 정리는 다 마쳤느냐.”

“네!”


일부로 격양된 목소리로 답하는 우리들. 사부와의 마지막 시간을 우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 사부님.”


차례대로 악수를 청하는 사부, 우리는 최대한 밝게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그와 마지막 악수를 하자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를 위해서, 따로 특훈까지 해주시고...”


마지막인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그에게 전했다.


“그래, 가서도 게을리 하지 말고.”

“...”


그가 내 어깨를 토닥이자, 무심코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시간 날 때 평안도지부 쪽으로 오거라. 나도 곧 그리로 갈 예정이니.”

“정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휘둥그레진 눈동자. 사부는 미소를 짓곤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곤 말문을 열었다.


“그래, 우수한 제자들 덕분에 나도 승진해 이 곳을 떠나게 됐다.”

“와... 축하드립니다!”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부여잡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리겠습니다!”


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고 사부는 인자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 저녁엔 본가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짧게나마 근황을 전했다. 나와 석오는 한양에 살기 때문에 직접 본가로 내려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경기우도 개성에 본가가 있는 랑이와 경상도 대구에 본가가 있는 한량의 경우에는 그러지 못해 서찰을 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본가에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에 잠은 물론 기숙사에서 자기로 했다.


짐은 관리 분의 말에 따라 최대한 경량화 시켰는데, 속고의와 속적삼 몇 벌, 그리고 영멸원에서 받은 문방사우만 보따리에 담아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꽤나 이른 시간에 영뭘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원래 예정된 시간은 진시 반각이었는데, 곧 영멸청 소속 단원이 된다는 사실에 들떠서인지 지정된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영멸원 앞에 있는 앙부일구가 진시 정각을 가리켰다.


‘너무 일찍 도착했나?’


가볍게 챙긴 보따리를 어깨춤에 묶은 나는, 영뭘원 정문에서 ‘다음에는 누가 올까’ 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나머지 조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벌써 왔네?”


처음으로 날 맞이한 조원은 한량과 랑이였다. 비몽사몽 상태인 듯 눈을 비비는 한량과 눈 밑이 잔뜩 어둑한 랑이. 나와 마찬가지로 이 둘 역시 제대로 잠을 잘 자진 못한 모양이다.


“잠은 잘 잤어?”

“...”


내 물음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시 반각이 되기 일보 직전에는 석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 영멸청으로 간다는 사실이 별로 개의치 않은 듯 상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영멸원 정문 앞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이야, 다들 빨리 왔네.”

“... 쟨 여러 의미로 단순한 것 같아.”

“하하...”


랑이는 그런 석오가 놀랍다는 듯 말하자 나는 쓴웃음만을 지었다.


“이걸로 다 모였으니까, 이제 그 사람만...”

“다 온 게냐?”


석오가 입을 떼기 무섭게 영멸원 뒤편에서 등장하는 김성제 관리. 아무래도 영멸원 기숙사인 서재에서 밤을 보낸 모양이다. 어제 왔을 때랑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변함없는 인지한 미소로 우리를 찬찬히 흩어보았다.


“네, 다 모였습니다!”

“그래, 그럼 출발해볼까?”

“저기...”


출발하려는 그를 멈춰 세우는 한량, 조심스럽게 그의 호칭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혹시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 아, 날 말이냐?”

“네, 칭호가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서.”

“흐음...”


그는 그 자리에서 서서 잠시 고민하더니,


“이제 너희들도 어엿한 단원이니, 나리라고 부르면 되겠구나.”


라며 우리가 자신을 부를 칭호를 정해주었다.




***




“자, 일단 출발하기 전에...”


출발하기에 앞서, 나리는 옷 안을 뒤적거리더니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하나씩 받거라.”

“이, 이것은?”


나리가 우리에게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마패였다. 구리로 만들어져 있는 마패의 모양새는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아담하고 둥글했는데, 그 안에는 한 마리의 말이 그려져 있었다.


“마패이니라. 단원들은 모두 받는 것이니 잘 간직하거라.”

“이게 말로만 듣던...!”


랑이를 제외한 우리는 마패라는 것을 난생 처음 봤기 때문에,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마패를 연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그런 우리가 재미있는 듯 랑이는 옆에서 쿡쿡 웃어댔다.


“비록 지금은 1마패지만, 차후 높은 관직에 올라가게 되면 5마패까지 받을 수 있으니 노력해 보거라.”

“5마패면...”

“말을 더 많이 빌릴 수 있는 게지. 게다가 영멸청 소속 관원들이 받는 마패에는 본래의 것과 차이점이 있는데... 알아보겠느냐?”

“흐음...”


애당초 기존 마패도 보지 못한 우리들은 마패를 이리저리 만져볼 뿐, 그 차이점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기존의 것을 본 적이 있는 랑이는 마패를 유심히 보더니,


“어? 원래 마패 뒷면에는 상서원인이 찍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버지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

“잘 아는구나. 영멸청에서 만든 마패는, 당연하게도 상서원에서 발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멸청의 상징인 滅(멸) 자가 새겨져 있단다. 너희는 이제 종9품의 단원이므로 아직 삼수변의 첫 획밖에 그려져 있지 않지만, 종3품 이상의 관직에 오르게 되면 완벽한 ‘멸’자가 새겨지게 되는 게지. 보거라, 나도 아직 오른쪽 위의 한 획이 안 그어져 있지 않느냐.”

“오오... 확실히!”


나리가 내민 마패에는, 그가 말한 것처럼 ‘멸’의 한 획이 덜 그어져 있었다. ‘멸’은 총 13획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글자가 마패에 새겨지기 위해서는 종3품이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 마패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멸’자에는 여러 가지 혜택들이 숨겨져 있지. 뭐, 그건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일단 역으로 가보자꾸나.”

“역?”

“마필을 주는 곳이야.”


랑이의 부연설명에 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앞장서서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역으로 향한 우리는, 나리의 진두지휘 하에 손쉽게 말을 빌릴 수 있게 됐다. 랑이를 제외하곤 아직 한 번도 말을 타보지 않은 우리였지만, 나리가 알기 쉽게 설명해준 덕에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말의 등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랑이의 경우에는, 비록 말군(襪裙)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사내들이 주로 입는 소창의와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말을 탈 수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

“네!”


나리의 수신호에 맞춰 배운 대로 발꿈치에 살짝 힘을 줘 말을 자극시켰고, 신호를 받은 말들은 일제히 앞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오, 오!”

“우, 움직이는데?!”

“하하하!”


난생 처음 타보는 말에 잔뜩 흥분한 우리들은 말이 움직일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런 우리가 귀엽다는 듯 나리는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를 천천히 인도해 주었다.


그렇게 5분정도를 천천히 평보로 움직였을까. 슬슬 속도를 낼 생각인지 나리는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


“이 앞부터는 계속 달리게 될 터이니 자세를 낮추고 몸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둬 보거라.”

“이, 이렇게 말입니까?”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어, 어...!”

“긴장하지 말고 고삐를 팽팽하게 잡고 있거라. 조만간 능숙해질 터이니.”


나리의 말대로 무게중심을 앞으로 실자 말이 점점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석오와 한량도 살짝 헤매는 듯싶더니, 곧잘 따라 하기 시작했다.


“옳지, 그 상태로 계속 따라오면 된다.”

“네에...”


잔뜩 긴장한 우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다루며 나리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




그렇게 한 시진을 넘게 달렸을까.


“나, 나리...”


아무리 달려도 보이지 않는 영멸청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한량이었다.


“왜 그러느냐?”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아, 말을 안 해줬었구나.”


나리는 깜빡했다며 다시금 친절하게 목적지의 위치를 알려줬다.


“개성에 있는 영멸청으로 가고 있는 중이지.”

“개, 개성이요?”


의문을 제기한 것은 랑이. 그도 그럴게, 우리는 영멸원에서 영멸청은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한양에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개성에도 영멸청이 있습니까?”

“...? 아, 너희들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구나.”


이어지는 내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리는, 이내 그 질문의 이유를 파악하곤 설명을 덧붙였다.


“아, 본디 한양에 있었건만, 작년부터 개성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나와 결국 금년에 옮겨 버렸다.”

“아하...”

“혹시 왜 옮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묻자, 나리는 살짝 고민하더니 이내


“그야, 최근 개성에 도깨비들이 들끓기 때문이겠지.”


라는 섬뜩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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