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아가니페
[아가니페],
류다 연방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드워프들의 도시.
"아가니페? 스승님이 편지로 뭐라고 보낸거야?"
레인은 달리는 수레 안에서 호기심 가득찬 표정을 한 채 물었다.
그렇다, 그 편지는 내 스승인 로웬이 내게 보낸 편지이다. 아무래도 모이라에게 편지를 맡기고 간 모양이다.
뭐, 편지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자면, 아가니페에 가서 다이달로스란 드워프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것이 골자이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번에 진 빚으로 인해 군말 없이 그의 요청을 따라주기로 했다. 스승이 없었다면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해결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이달로스란 드워프에 대해 조사해달래.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다이달로스?"
"혹시 뭐라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
레인은 무엇인가 아는 눈치인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자세히는 몰라. 내가 아는건, 세기의 발명가라는 이명 정도야."
"세기의 발명가?"
"응, 저번에 셰로인이 우리에게 준 녹음기 기억나?"
셰로인이 전에 건내줬던 동그란 구 형식의 녹음기가 머리속에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자, 레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다이달로스의 작품이야. 시대를 앞서가는 물건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명인 셈이지. 문제는,"
"시대를 앞서가는 물건이라니, 대단한데? 그나저나, 문제? 어떤 문제?"
"자신이 한 번 만든 물건은 다시는 만들지 않는다는 거야. 안 만드는 것인지 못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가격도 비쌀 뿐더러 아무나한테 팔지 않는데."
"그렇구나... 그렇다면 그 값비싼 물건을 셰로인은..."
잠시 그와의 추억에 빠졌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다시 스승이 쓴 편지의 내용을 곱씹어보며 그 목적을 고민해봤다.
"으음. 이 드워프를 스승님은 왜 조사해보라고 한 거지?"
"뭐 부탁하고 싶은 걸작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확실히 레인의 말 대로 원하는 물건을 얻고싶어 다이달로스의 조사를 부탁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음, 그런가?"
왜인지는 몰라도 불안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다는 직감 말이다.
***
꺄아아-
여기는 마족 진영 최남단의 한 마을, 수 많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에 바쁘다.
마족 토벌 작전 개시로부터 이틀째, 르 제국군들은 파죽지세의 형국으로 마족토벌에 나서고 있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여라!"
네!-
전장은 금새 빼곡한 제국군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채워졌고, 그들은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마족이기만 하면 무자비하게 살육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바닥과 벽에 흩뿌려지는 그들의 피, 지옥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이, 레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뭐야, 기온인가."
아이라 가문의 자제중 한 명인 기온이 레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황자의 명을 받아 전선에 합류한 아이라 가문, 그 중 실력이 뛰어나다고 명성이 자자한 기온은 레오의 잔인한 전쟁 방식에 참을 수 없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마족들도 인간과 별 다른 차이도 없는 종족이야.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민간인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 아닌가?"
"흥, 여전히 무른 소리만 하는군."
레오는 그의 손길을 뿌려치며 단언했다.
"그건 인간들간의 전쟁에서나 통하는 소리지. 너는 설마 돼지들을 죽일때도 같은 생각을 하나?"
"어이, 레오! 너 말이..."
"닥쳐! 내 명령이 불만이면 여기서 결착이라도 낼테냐?"
레오는 왼쪽에 차고있던 검을 뽑아들어 그의 안면에 갖다댔다. 평소 라이벌 관계었던 서로를 의식했는지, 금방이라도 싸울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주위는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번 토벌작전은 르 황제께서 친히 내게 모든것을 맡겼다. 닥치고 따르기나 해!"
"... 젠장."
하는 수 없다는 듯 기온은 한 발짝 물러섰고, 레오는 콧방귀를 끼며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흥, 그 년이 안 온게 아쉽군."
레오는 몇달 전에 있었던 셀레나와의 결투를 회상하며 혀를 찼다.
으아악-
곧이어 전장에는, 무고한 마족들이 죽어나가는 단말마가 울려퍼졌다.
***
"어이, 일어나슈."
"...?"
빠듯한 일정에 피곤했던 우리는 수레에서 깜박 잠들고 만 모양이다.
"도착했슈."
"... 아! 네."
나와 레인은 서둘러 수레에서 내려 길잡이에게 품삯을 쥐어주곤 아가니페에 입성했다.
드워프들의 옛 나라이자 현 류다연방제국의 서방도시인 아가니페는, 르 제국과의 특별한 연으로 인해 서로간의 출입 제한이 거의 없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꽤나 예전부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단지 자신이 르 제국의 시민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나 벳지 정도만 보이면 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로웬이 남긴 편지에 그 서류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가니페의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겨 통행인들을 감시하는 감시병에게 로웬이 준 서류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감시병은 그 서류를 훑어보더니,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레인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말했다. 이 서류에는 나에 대한 정보만 나와있을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그녀를 그냥 통과시킬 순 없는 모양이다.
"이 여자는?"
"동행인입니다."
"동행인? 무슨 관계지?"
"아,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꽤나 엄중한 정문의 감시병들 때문에 어물쩍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다.
'뭐라고 둘러대지... 친구? 가족? 아니야...'
"애인이요!"
"..?!"
그렇게 어떤 변명을 댈까 고민하던 와중, 문득 레인은 내 팔짱을 끼며 답했다.
"... 흠, 들어가게."
"...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발행동에 얼굴이 붉어진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레인과 함께 아가니페 안으로 입성했다.
***
"미안!"
"아냐, 괜찮아."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을 표시하는 레인을 앞에두고, 나는 손사래쳤다.
"덕분에 이렇게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 신경쓸 필요 없어."
"... 진짜?"
"응."
확실히 당황하긴 했지만, 그녀의 재치있는 행동으로 우리 둘 다 이 도시에 들어오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우리가 이 도시에서 먼저 해야할 것.
"다이달로스를 한 번 찾아볼까?"
"응!"
소매를 걷으며 의지를 다지는 나와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레인은 그렇게 인물 찾기를 시작했다.
- 작가의말
여유분 추가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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