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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나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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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공
작품등록일 :
2006.10.22 23:49
최근연재일 :
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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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0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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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귀(餓鬼)

DUMMY

모두가 잠든 밤 칸은 칼리 앞에 섰다. 칼리의 달빛을 받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투기장의 열기 속에서 있었다. 아리가 쓰러지고 가족들이 땅굴로 옮겼을 때부터 그에게 여유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광장의 흙바닥을 고르던 칸은 멈춰 고요히 호흡을 따랐다. 몸이 원하는 율동을 찾아 박자를 맞추고 기를 조율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대륜권의 24개 심결이 수레를 굴렸다. 수레는 칸의 내부에서 조용히 일어나 세상을 돌렸다. 수레는 스스로 일어나(自由) 스스로 있었고(自在) 스스로 움직였다(自然) 칸은 다만 깨어 있을 뿐이다.


"으음"


수레가 큰 움직임을 보이자 몸이 비명을 지른다. 격해진 흐름에 상처들이 고통스러워한다. 매일 같은 격전에서 상처들은 깊게 흔적을 남겼고, 아물지 않은 상처 사이로 새살이 힘들게 비집고 올라왔다. 치료수는 한계가 있었다. 몸에 넝마처럼 새겨진 상처들은 낙서처럼 빽빽했다.


아픔을 분별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곧 무심한 마음에 파란이 일었다. 칸은 몸의 변화에 당황했다. 부서진 몸에서 새롭게 나오는 변화는 그의 상상을 넘었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투기장의 열기를 호흡하면서 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다. 낮에는 피곤한 몸을 치료하기에 바빴다. 오늘처럼 상대자가 없어 스스로를 관조할 시간이 없었다.


'날개라도 생기려나…….'


등을 뚫고 나오려는 뼛조각들을 느끼며 머리와 꼬리뼈에 자라는 이물질들에 인간이었던 칸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차라리 몇 겹으로 꼬이는 근육의 변화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치 고양이처럼 싸울 때만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손톱은 칸의 생각 밖이었다.


'변태라…….'


칸은 변태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리나의 권속들이 변태하는 특성과 그는 달랐다. 겹치고 꼬이는 근육과 나선형의 관절을 감싸는 근육 그리고 한두 개의 촉수나 팔이 가이리나 권속이 변태하는 특징들이었다. 가끔 능력자들이 날개나 뿔을 갖지만 칸은 능력자가 아니었다.


'안 좋아'


변태는 불안했다. 칸의 의식 안에 머물던 힘들이 상처받고 부서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의 의식 밖에서 변화를 일으켰고 변화도 각기 다른 여러 힘이 반발해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몸을 이루는 생명의 조각들이 현자가 주입한 기억들과 엉켜버려 손쓸 수 없을 만큼 변질 돼 버린 것이다.


칸은 정상이 아니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조차 정상이 아니었다. 다만 중심에 서 있기에 잃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관조할 여유가 필요했고, 자신을 돌아봐 힘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위험과 두려움에 멈춘다면 그가 칸이라 불리지도 않았다.


전차(戰車)를 몰아 생사(生死)를 가로 지르고

채찍(鞭)을 휘두르니 전마(戰馬)가 울부짖는다.


우지직 하며 오른쪽 날갯죽지에서 뼈들이 날개처럼 일어섰다.


세상은 거칠어(有碍)도 법륜은 거침없으니(無碍)

지나간 길(道)을 돌아보지(回望) 않는다.


간질거리는 이마에 붉은 눈동자가 흐리게 비치고 머리에 단단한 3개의 혹이 도드라진다. 어릴 적 색목인들이 무서워하던 악마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철조차 가를 것 같은 손톱과 함께 길어진다.


그러나


아하! 법륜의 가고 옴(往來)이 흔적이 없으니(無痕)

내가 비로소 법륜인가 하노라!


심결이 다했을 때 악마의 상은 사라졌다. 아직은 때가 아닌지 얇은 피부 밑으로 몸을 감춘다.


오랜만의 수련이었지만 칸은 상쾌하지 않았다.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칸은 매일처럼 명상을 하고 투기장에서 상대방이 없을 때에는 밤새워 자신을 다스렸지만 한번 어긋난 변태는 꾸준히 진행됐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데니아는 잠자리에서 칸의 변화를 눈치 챘다.


"신전에 가야해요"


데니아는 떨렸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변태시기가 가까워진다고 해도 신전의 도움 없이는 변화는 멈추기 마련이지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데니아는 걱정이 앞섰다.


'아닐 거야…….'


그녀가 알기로는 이런 모습은 돌연변이 밖에 없었다. 만약 돌연변이라면 앞이 깜깜했다. 그녀에게나 가족에게나 칸은 기둥과 같았다.


칸은 고개를 끄떡였다. 나락은 아직도 그에게 알 수 없는 곳이고 변태는 칸의 이해를 넘어섰다.



아침 일찍 샤리와 함께 칸도 데니아를 따라 신전으로 갔다.


"돌연변이는 아닙니다."


칸을 진찰한 사제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휴~ 돌연변이 아니라고요……."


데니아는 일단 안심이 됐고 알게 모르게 칸의 표정도 펴졌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 돌연변이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네?"


"돌연변이는 아닙니다. 칸님의 모습은 온유하신 대지의 여신님의 징표를 따르지 않았지만, 말씀하신 데로 몸을 받은 곳이 여울의 도시의 생명의 샘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대부분의 권속들이 온유하고 너그러운 여신님의 징표를 따르지만 간혹 자비로우신 여신님의 상대자의 징표를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생명의 샘은 신의 유전자를 따르지만 생명을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른 유전자가 필요합니다. 대부분 다른 유전자는 왕의 유전자를 따르며 아란트 성의 물의 종족처럼 너그러우신 여신께서 허락하여 왕의 징표를 따라 태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울의 도시에는……."


"그렇습니다. 여울의 도시에서는 다른 징표를 받은 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칸님의 증표를 보니 여울의 도시의 왕의 징표와 같습니다."


"왕이요? 여울의 도시의 왕이 있었나요?"


데니아가 질문했지만 사제는 말을 끊고 머뭇거렸다. 조심스러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래전이지만 있었습니다. 데니아님도 알 것입니다……. 용의 날개와 삼각수의 뿔, 불타는 두 눈과 죽음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 신을 물어뜯는 이빨, 대지를 찢는 손톱 그리고 부서지지 않는 억 겹의 피부를 가진 왕입니다."


데니아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점차 왕을 묘사하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설마 태상왕?"


"네 그렇습니다. 태상왕 테무입니다."


사제는 놀라지 않고 담담한 칸에게 실망했지만 경악에 빠져 있는 데니아를 보고 충분히 만족했다.


"문제는 태상왕 테무는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야후신과 합일됐다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징표의 인정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데니아님은 모르시겠지만 강한 의지를 가진 자들이 가끔 스스로 변태를 합니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유전자가 무너질 위험이 높아 대부분 돌연변이가 됩니다. 그럴 때 생명의 샘에서 변태를 도우면서 징표의 인정을 받아야하는데 칸님은 징표의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그.그럼 어떻게 하지요?"


데니아는 간절한 눈빛으로 사제를 봤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다시 몸을 정화하고 위대하신 여신님의 징표를 받아 변태를 하는 방법입니다. 보통의 변태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돈이 무지 많이 들어 100골드도 넘게 들걸?"


소년은 샤리에게 진실을 말했고, 진실은 언제나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였다. 샤리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귀족에게도 많은 돈이지 더군다나 몇 년 동안 걸리는 변태동안 누가 돌봐주지?"


샤리의 표정은 질려 파랗게 보일정도였다. 소년은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내가 도와줄 수는 있어 엄마가 신전의 최고이고 아빠가 신전에 돈을 대니 그 정도는 가능하지……."


소년은 샤리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안 그래?"


소년의 유혹에 샤리는 저항할 수 없었다. 칸은 가족의 행복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가 쓰러진다면 가족을 더욱 불행해 질 것이다.


그날 밤 샤리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데니아가 아무리 호통을 쳐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름답던 샤리의 머리카락은 단발이 되었다.



.................




일꾼들의 안식처는 마을 서쪽에 있었다. 허름하지만 튼튼한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안식처는 아란트성의 안식처처럼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물론 아란트 성처럼 높지는 않지만 3층의 건물이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냄새가 나 맛있는 냄새야"


한 늙은 일꾼이 피곤한 몸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온 우윳빛 내음에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오 정말 부드러워"


감시꾼은 안식처 3층의 베란다에서 페어리를 애무했다. 밑에는 일꾼들의 잠꼬대가 들렸지만 감시꾼과 페어리는 상관하지 않았고 일꾼들도 모른척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페어리들은 절대 주점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감시꾼은 운이 좋은지 우연히 얻은 열매당을 미끼로 가장 예쁜 페어리를 꾈 수 있었다.


"뜨거워요"


붉은 눈을 가진 페어리는 차가운 입술로 감시꾼의 벌거벗은 가슴에 키스를 했다.


"흐흐흐 그래 오늘 뜨겁게 태워보자고"


감시꾼은 칼이 아니었지만 봉인골 수술을 했기 때문에 성교가 가능했다. 남작을 따라 성전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군대에서는 봉인골 수술이 흔했다.


"뜨거운 심장이 좋아요"


페어리는 감시꾼의 가슴을 혀로 핥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맛보 듯했다.


"그래 내 심장은 뜨겁…….컥!"


페어리의 날카로운 손톱이 감시꾼의 가슴을 갈랐다. 그리고 비명을 삼키는 감시꾼의 심장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감시꾼의 눈동자는 커진 채 굳었다. 페어리는 게걸스럽게 심장을 파먹고 피를 빨아먹었다. 육식동물이 헐떡이며 음식을 먹는 소리가 어두운 밤에 소름끼치게 들렸다.


"음 그런 대로 맛있어"


붉은 눈을 반짝이며 페어리는 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앞에는 선채로 죽어가는 감시꾼이 굳어 있었다. 심장이 부서져도 살수는 있지만 피까지 모두 빨린 감시꾼은 고목처럼 말라버려 살 가망이 없었다.

페어리로 위장하고 있던 혈귀 중에 상급혈귀이며 이지미 여신의 알에서 태어난 흡혈귀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오랜만에 포식을 한 것이다.


"응?"


탁자에 열매당을 담은 주머니가 보였다.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감시꾼이 가져온 것이다.


"훗 너나 먹어라"


흡혈귀는 주머니를 열어 퍼석거리는 감시꾼에게 부었다. 열매당의 달콤한 향기가 흘러넘쳤지만 그녀는 혈향이 묻히는 것을 아쉬워 할뿐이었다.


쿵!


굳어진 감시꾼의 몸이 쓰러진 것은 흡혈귀가 사라진지 오랜 후였다. 시체는 난간에 걸쳐져 위태롭게 흔들거렸고 결국에 1층 바닥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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