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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공
작품등록일 :
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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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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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3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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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애욕(愛慾)

DUMMY

높은 겹침 나무 사이를 따라 걸었다. 달빛나비들은 간간히 하천과 샘에서 빛을 뿌리며 머물었지만 망설임 없이 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칸은 아리엘을 안고 빛을 쫓아 바위를 넘고 물을 건넜다. 칼리가 높이 떠 빛을 뿌리고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러나 아리엘의 눈에는 달빛나비의 빛만 보였다. 밤이 깊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살짝 하늘을 보았다. 바로 위에서 수많은 별들이 얼굴을 내밀고 그녀를 봤다. 아리엘은 깜짝 놀라서 다시 칸의 품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무 가깝게 느껴져 놀란 것이다. 따뜻한 연인의 품에서 용기를 얻은 아리엘은 다시 하늘을 봤다. 하늘 가득히 별이 촘촘히 떠있었다. 언제나 칼리의 달빛에 가려 멀기만 하던 별들이 그녀를 어지럽게 만들 정도로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처음이었다. 가족의 눈을 피해 몰래 밤나들이를 해봤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멀리까지 나온 적은 없었다. 그 동안 보았던 밤이 얼마나 작은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꿈을 꾸듯 마음이 설레어진다.


아리엘은 아름다운 밤하늘에 넋이 나갔다가 다시 연인의 품안에서 얼굴을 비비며 킥킥됐다. 행복에 겨워 마음이 평온해졌다. 잠시 칸이 연인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봤지만 아리엘은 알지 못했다. 단단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아리엘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칸의 잔잔한 걸음이 멈췄다. 그의 품안에서 행복을 만끽하던 아리엘은 알지 못하고 있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해내고 앞을 바라봤다.


"아!"


거기에 달빛나비의 축복을 받아 반짝이는 형벌의 나무가 있었다. 조잡하게 깎아진 나무말뚝은 달빛아래에서도 섬뜩한 검붉은 피로 젖었고, 긴 그림자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엘의 놀란 목소리에 반응해 그림자가 움직였다.


"거. 거기 누구세요?"


갈라진 목소리가 떨려왔다. 칸이 한발자국 더 걸었고 어둠 속에서 그림자는 천천히 달빛나비의 빛과 칼리의 달빛으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몸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털은 상처와 피로 더렵혀져 있었고, 부드럽지만 강한 얼굴은 두 눈이 파져있어 고통을 전해왔다. 몸을 칭칭 감은 덩굴에 의지해 숨을 헐떡이는 여성스런 얼굴의 그림자는 큰손 족이었다. 손이 비록 크지는 않지만 전설 때문에 이름을 가진 숲의 평화로운 종족이었다.


"네? 네 아리엘이에요"


아리엘은 얼결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너무나 큰 고통과 슬픔을 간직한 큰손 족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아 치사인가요?"


"아니에요."


"그럼 숲의 요정인가요?"


"아닌데요."


큰손 족의 질문에 답하면서 아리엘은 치사도 숲의 요정도 되지 못한 자신이 왠지 미안했다. 그만큼 큰손 족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그럼 어떻게 왔나요?"


큰손 족의 질문에 칸을 돌아보고 아리엘은 순순히 말했다.


"달빛나비를 따라 왔어요."


아리엘의 대답에 큰손 족의 얼굴은 작은 기쁨이 솟았다.


"아~ 역시 칼리 여신의 요정이군요."


"아……."


아리엘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큰손 족의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저는 큰손 족의 사뿐걸음이라고 해요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오랜 시간 고통과 슬픔에 괴로워 한 그녀는 소멸의 안식을 기다렸다. 큰손 족이기에 달빛에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몸은 동족이 던지는 돌멩이와 두 눈을 파낸 창에 상처를 입었고, 침과 오물로 그녀의 자존심을 더럽혔다. 하지만 가장 아픈 것은 그녀의 실수로 죽어간 그녀의 가족과 동족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끝까지 싸우다 죽은 연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자상한 그녀가 쓰러진 이를 구한 것은 진정 죄였을까?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은혜를 배신한 자는 군대를 끌고 왔고 동족을 죽였다. 신역과 나놈 모두에게 공평했던 큰손 족의 마을은 나놈들을 끌어들였다는 죄로 마을이 불탔다. 그녀를 배신한 자는 자작의 보상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한 번의 친절로 그녀는 고통 속에 죽어갔다. 아니 벌써 슬픔에 눌려 정신은 죽어있었다.


"칼리 여신은 저를 위해 소멸을 주실까요?"


큰손 족의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리엘은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는 고통의 슬픔이 그녀를 가득 매웠다. 슬픔에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기나긴 슬픔의 기억이 조금씩 살아났고 애써 잊었던 감정이 살아났다. 이제는 희미하다고 믿었던 커다란 슬픔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칸의 품안에서 쓰려졌다. 안타깝게 달빛나비들이 일렁였지만 헛된 춤일 뿐이었다.


"왜 대답이 없나요? 저는 칼리 여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하나요?"


그녀의 얼굴을 애절해졌고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아리엘은 기절직전이었다. 대답할 수도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리엘도 알 수 없었다. 그 질문은 그녀도 애타게 찾던 것이었다.


"그렇군요. 저의 죄악은 용서받을 수없는 것이군요."


체념한 그녀는 무기력하게 나무말뚝에 매달렸고, 아리엘도 칸의 품에 축 쳐져갔다. 슬픔 앞에서 아무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누구의 위로도, 충고도 의미가 없었다. 신들도 대답하지 못하는 무거운 질문이 이 여리고 착한 이들을 아프게 짓눌렀다. 나락은 슬펐다. 칼리도 슬퍼 창백해졌고 별들도 눈물로 반짝였다. 어둠은 너무 슬퍼 더 깊숙이 어두워져 갔고 겹침 나무들의 강인한 가지들은 쳐졌다. 달빛나비들이 힘을 잃어 하나둘 떨어졌고, 대지도 더 이상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 했다.


"가라"


그 때 무심한 바람인 듯 칸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영혼을 울리는 거대한 목소리에 위대한 존재가 그녀 곁에 있음을 깨달았다.


"네가 삶을 사랑했다면 가지고 가라, 가족을, 동족을, 연인을 사랑했다면 가지고 가라, 너의 사랑과 슬픔을 같이 가지고 가라"


마치, 위대한 신왕이 현신한 것처럼 나락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칸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하늘도 땅도 바람도 하던 일을 멈췄다. 세상은 정지된 듯 고요히 침묵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가지고 가거라."


그리고 칸은 위엄에 찬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듯 자비롭게 말했다.


"흑 으흐흑"


큰손 족의 작은 여성 사뿐걸음은 눈물을 흘렸다. 차갑게 뚫린 동공에서 맑은 눈물이 샘솟듯 흘렀다. 눈물은 하나하나 작은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털이 빠진 차가운 살결 위로, 상처받아 더러운 몸 위로 흘렀다. 몸 안에 모든 물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흘렀다.


칸은 단지 존재 할 뿐이고, 세상은 눈물에 젖어갔다. 지쳐 멍한 눈으로 아리엘은 기적을 보았다. 사뿐걸음은 눈물이 되어 갔다. 투명한 눈물이 되어 흘렀다. 다만 땅이 아니라 하늘로 흘렀다. 투명한 그녀의 영혼이 무거운 육체를 벗고 하늘로 너울너울 날았다. 한 마리 커다란 달빛나비가 되어 칼리의 빛 안에서 날갯짓을 했다. 아리엘의 눈에서도 맑은 눈물이 흘러 찬란하게 빛나는 나비가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달빛나비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알았다.


찬란하게


찬란하게


찬란하게 날개 짓했다.


하나의 달빛나비를 더 얻은 칼리는 빙그레 웃었다. 아리엘은 연인의 품에서 소리 없이 울었고 칸은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줬다. 은빛 머리카락이 달빛나비인양 달빛에 찬란하게 빛났다.


데니아는 잠결에 다시 들리는 사랑의 신음에 미소를 띠고 다시 소녀들의 따뜻한 체온에 잠들었다. 오늘밤은 아리엘을 위해서 남겨둘 생각이다. 다만 칸의 열정을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들리는 사랑의 소리가 부드러워 걱정을 덜었다. 샤리가 꿈틀되며 레키의 품으로 들어가자 아리는 허전함에 데니아에게 기대왔다. 깊은 잠의 정령이 여성들을 행복한 꿈길로 안내했다.


아리엘은 들판에서 돌아온 후에 칸과 밤새도록 사랑을 나눴다. 칸은 그녀를 위해 자제해줬고 조심스럽게 다뤄줬다. 부드러운 연인의 사랑에 아리엘은 어린 고양이처럼 갸르릉됐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녀를 부드럽게 인도하며 칸은 처음으로 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합일되는 것을 느꼈다.


작고 여린 기운이 강대한 칸의 기운에 조심스럽게 조화되어왔다. 칸은 천천히 기를 보살폈다. 음양의 순수한 조화가 흐트러지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뜨거운 욕망과 질주하는 열정은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충실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칸이 가슴을 만진 다음에?"


"그러니까……. 이잉~"


아리엘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자신에게 묻는 샤리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어땠긴 그 다음은 뻔 하지, 아무튼 대단하다. 어떻게 밤새도록 칸과 사랑을 나눴니?"


"그래 알고 보니 네가 제일 대단하다."


"호호호"


같이 밤을 보낸 여성들은 의기투합을 해서 아리엘을 놀렸다. 레키조차 스스럼없이 대화를 가졌다. 큰 변화였다.


"부러워~"


"엥~"


아리는 놀렸지만 속으로는 질투로 바싹 탔다. 아리엘은 칸과의 사랑으로 변한 것은 조금 더 풍부한 표정과 홍조를 띄고 있는 투명한 살결뿐이었고, 도리어 더 어려 보였다. 그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소녀였다. 하지만 평범한 소녀라는 것이 문제였다. 나락은 평범한 소녀가 오는 곳이 아니었다. 죄악으로 더렵혀진 영혼만이 떨어지는 지옥이었다. 치사들조차 영혼을 판 대가로 끌려오는 곳이 이 곳이었다. 밤사이에 아리엘은 지극히 평범한 소녀가 되었다. 아리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부러웠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얼굴을 한 아리엘이 부러워 질투가 났다.


"가자"


칸은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행에게 말했다. 강인하기만 하던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 보였고 황동의 금속 같던 근육들에 생명의 기운이 맴돌았다. 몸 주위에서 휘돌며 다른 사람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던 기운조차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아리는 그것조차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이 아니라 아리엘 때문에 변한 칸을 보는 것이 속상했다.


히이잉


부르지도 않았는데 시종마가 칸 앞에 당당이 섰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발굽의 강인한 발톱으로 흙을 팠다. 세 개의 뿔이 빛을 담기 시작한 영혼석을 지키듯이 우뚝서있었고, 주인을 기다리는 시종마의 눈을 불처럼 타오르는 붉을 색이었다.


쿠우우


데니아가 피리를 불기 전에 도끼 새들이 몰려들었다. 시종마를 경계하면서 두려운 듯이 주위로 몰려왔다. 시종마의 소리를 듣고 온 것이다. 도끼 같은 부리를 탁탁 치며 도끼 새 중에 가장 큰 놈이 시위를 해보지만 시종마의 붉은 눈이 흘겨보자 곧 딴청을 피우며 깃털을 다듬는 척한다. 시종마는 칸을 향해 다시 든든한 등을 내밀었다.


"아리엘"


시종마 위에 올라탄 칸이 아리엘을 불러 그의 앞에 태웠다. 첫날밤을 보낸 아리엘이 불편해 하자 같이 탄 것이다. 여성들은 각자의 도끼 새에 올라타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레키는 입술을 과거처럼 뜯지 않았다. 잠깐 한숨과 부러운 시선을 보냈을 뿐이었다. 칸은 말없이 앞장섰다. 뒤에서 도끼 새를 탄 여성들이 따랐다. 그들은 이제 평범한 나락의 가족처럼 보였다. 칼과 그의 여성들이었다.


아리엘은 칸의 품안에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데니아에게 어제 일을 숨겼기 때문에 작은 죄책감이 있었다. 하지만 달밤에 나간 것을 알면 그녀는 걱정과 잔소리를 할 것이다. 단단하고 큰 칸의 품에서 귀엽게 혀를 내밀어보고 미소 짓는 아리엘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칸이 다정하게 쓸어준다. 붉어지는 얼굴에도 아리엘은 칸의 품으로 더욱 몸을 기댄다. 조금은 진해진 여향이 상쾌하게 칸의 코끝을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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