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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나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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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공
작품등록일 :
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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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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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3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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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愛慾)

DUMMY

칼리가 떠오르자 명상을 끝낸 칼은 검들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검법을 익힐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검법이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검을 휘두르고 싶을 뿐이었다. 그저 즐기기 위해, 땀 흘리기 위해 칼리 앞으로 나설 뿐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던 힘들을 하나둘 알게되고 그것의 사용법도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마력이라 불리는 힘을 불꽃의 문장으로 배웠다. 타투(문신)의 성장을 통해 육체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웠다. 이 제 불꽃은 자유자재로 내뿜고 거뒀고, 힘을 쓸 때마다 마법의 타투는 단전을 중심으로 살아 있는 생물처럼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정화했다. 무한한 체력이 칸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칼리의 달빛은 창백했다. 하지만 하얗게 작열하는 롱소드처럼 정열적이었다. 두텁게 피어 오르는 밤안개를 뜨겁게 태웠다. 달빛과 불꽃이 타올라 밤 안개를 태우자 단발마가 터지며 허둥지둥 도망치는 그림자가 있었다.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악령들이 햇빛 아래 나온 바퀴들처럼 사방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안개는 순수한 이슬을 내리고 너울 너울 하늘로 올라갔다.


"대지 위 흘러내리던 햇살은 간 곳이 없고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잠이 들었어요

어두운 밤하늘에 깨어나는 꽃들처럼

하나 둘 눈 뜨는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요"


동굴 안에서 아리엘이 노래를 불렀다. 긴장되 약간은 갈리진 목소리였지만 리듬은 칸의 검에 실려 부드럽게 밤하늘로 퍼졌고 가사는 깊게 타올랐다. 오늘 칼리의 달빛은 어제 보다 덜 앙탈스러웠다. 언제나 여왕처럼 사방으로 채찍질을 날리던 달빛이 조금은 부드럽게 칸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수줍은 처녀처럼, 춤을 신청하기 바라는 아가씨처럼 조금은 부끄러운 얼굴로 칸 주위에서 유혹의 미소를 보냈다.



악령들이 칼리의 달빛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었다. 악령들은 칼리의 시선을 피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습기를 잔뜩 품은 구름이나 아침에 자욱이 피어오르는 안개에 몸을 숨기고 어둡고 그늘진 곳을 찾을 뿐이었다. 때로는 수많은 악령이 모여 그림자의 세상을 만들지만 그 또한 칼리의 살벌한 눈초리 한 번이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칼리가 높게 뜨는 밤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벌어진다. 스스로 습기를 뿜어내며 달빛을 막고, 나락을 점령하겠다고 오만에 찬 수많은 그림자의 세계가 사라진다. 칼리가 없었다면 오래전에 나락은 악령의 그림자 세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히 피어오르는 밤안개는 칼리의 달빛을 우연히 막는다. 그늘지고 습한 곳에 숨어 있던 악령들을 날뛰게 만든다. 사람들은 안개가 짙은 날에는 밤이든 낮이든 꿈을 꾸지 않는다. 언제 악령들이 꿈속으로 들어와 자신들을 역귀로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샤리는 오늘 깊게 잠들었다. 모두들 긴장을 풀고 있어 샤리가 깊게 잠든 줄 몰랐다. 아리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칸의 동굴에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렸고, 데니아는 아리엘을 걱정하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봤다. 아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킥킥대고 레키는 주먹을 꼭 쥐고 참는다. 침울한 가리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부정적인 상상으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흥건히 땀으로 젖은 몸을 부드러운 바람으로 말리고 돌아선 칸의 눈이 번쩍였다. 밤안개 속에 숨어 있는 악령들과 구분돼지 않는 피의 냄새가 동굴 쪽으로 이어졌다. 역귀처럼 썩어가는 피냄새였다. 그는 달렸다.


"까아아악"


샤리가 악몽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숨어있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기억에 있었다. 어제 만난 상단의 어두운 곳에서 일행을 바라보던 냉혹한 눈빛이었다. 주작이 먼저 불꽃을 뿜었다. 칸의 오른 손에 들린 주작검이 휘둘러지자 새의 모습을 한 불꽃이 안개 속에 숨어 있던 혈귀들을 덮쳤다.


"앗"


절대로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혈귀들은 놀라서 물러선다. 악령을 다루는 혈귀들은 밤에 더군다나 안개 속에서는 완벽하게 기척을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칸의 감각은 습격을 위해 숨어 있는 혈귀의 살기를 골라낼 수 있었다. 악령은 악의에 찬 의념을 뿜어내지만 혈귀들은 명백하게 자신에게 살기를 보냈다.


혈귀들은 빠르고 강했다. 어둠과 악령을 다루는 기술이 있었고 마법을 쉽게 썼다. 그들은 이지미 여신의 치사와 치전사급에 해당하는 권속들이었다. 신이 다르면 신역의 조직도 달랐다. 혈귀라고 불리는 신의 대리자들은 칸의 일 검을 피할 만큼 강했다.


"다섯"


하지만 그의 롱소드는 정확하게 혈귀의 수를 세고 백색의 이빨을 드러냈다.


"컥!"


피했다고 믿었던 선두 혈귀의 목에 아가리를 박고 피를 마셨다. 검은 용서가 없다 싸움이 벌어지면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어야 했다. 무사의 기본적인 소양이며 극에 이를 때까지 명심해야할 심결이다. 그리고 모든 무사의 정점에 있는 칸은 자연스럽게 검의 무자비함을 보여준다.


'지나간 길(道)을 돌아보지(回望) 않는다.'


후회하지 않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에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남은 4명의 혈귀가 자리를 잡고 정신을 차려 공격하기 전에 다시 검명을 토하며 밤안개를 찢었다. 그의 검은 기습이었다. 싸우는 중에 틈을 찌르는 기습이고, 혼란된 정신에 당황하는 적의 머리를 베는 기습이었다. 혈귀들은 자신이 자랑하는 힘을 써보기도 전에 하나둘 검의 먹이가 됐다.


"크으 이럴 수가"


혈귀들 중에 가장 반응이 빨랐던 대장이 동굴 앞까지 물러서 신음을 토했다. 최초 주작의 검에 스쳐 화상을 입었지만 멀쩡했던 혈귀는 순식간에 동료들이 당하자 충격을 받았다.


"안 돼 샤리!"


칸이 검을 멈춘 것은 혈귀와의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었다. 갑자기 뛰어나온 샤리가 너무 혈귀와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지 않았다. 샤리를 잡아 인질로 쓸려던 혈귀가 한 눈을 판 사이 칸은 벌써 공간을 도약해 날고 있었다. 주작검은 붉은 불꽃을 토하지 않았다. 다만 서리처럼 차갑게 혈귀의 목을 지나갔다. 비명도 없이 샤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던 혈귀의 목은 땅으로 떨어졌다.


"샤리아"


샤리를 겨우 붙잡은 데니아가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뒤따라 나온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샤리를 중심으로 모였고 아리엘의 벌거벗은 여체를 본 칸은 고개를 돌렸다. 그 때 혈향이 짙어짐은 느꼈다. 5개의 피의 길이 서로 만나 하나의 혈마를 만들었다.


"크으으 우리의 죽음으로 너는 저주 받을 것이다. 그 소녀의 손으로 너의 비참한 최후가……."


혈마는 공중에 떠 저주를 중얼거렸다. 형체가 없는 피의 저주는 칸의 심장을 조이기 위해 악의를 발산했다. 어떠한 물리적인 공격도 소용없는 무형의 칼이 그의 심장을 향해 내리쳤다.


'륜(輪)을 돌려 번뇌(煩惱)를 끊는다.'


하지만 혈마의 저주는 끝맺지 못했다. 주작검이 혈마의 아가리를 뚫고 지나가며 혈마를 불태웠다.


"카아아악"


영과 혼을 끊는 심검이 혈마를 한줌의 재로 돌리고, 신의 저주조차 비웃던 튼튼한 심장은 혈마가 최후로 토한 저주의 칼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썩은 피를 털고 검을 검집에 넣으며 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동굴로 향했다. 칼리의 달빛을 피해 일행도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악령에 홀렸던 샤리도 다시 쓰러져 잠들었다.



"혈귀의 낙인이에요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아리는 샤리의 어깨에서 발견한 붉은 핏자국을 문지르며 말했다.


"원래 몸의 주인이 아니라 그럴 거야"


데니아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샤리를 위해 구한 몸이 혈귀의 낙인이 찍혔던 몸이었다. 몸을 팔은 마기들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혈귀의 낙인은 이지미 여신이 권속을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모든 신역을 돌아다니는 이지미의 상단에서 순결한 몸을 발견하면 혈귀는 낙인을 찍고, 혈귀의 사제들은 낙인이 찍힌 사람을 데려다 혈귀로 만들었다. 혈귀들은 피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권속이기 때문에 어떠한 종족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을 혈귀로 만들면 그 신역에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암암리에 허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혈귀가 되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평치사급과 같은 정도의 힘과 권력을 누리지만 혈귀는 최후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역귀가 돼 버린다. 이지미 여신의 진정한 치사 급은 우피러라 불리는 피의 종속자로 이지미 여신의 알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하지만 세상을 돌아다니는 상단 모두에 우피러들을 파견할 수 없어 대안으로 혈귀들을 만드는 것이다. 즉 혈귀들은 일종의 소모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샤리 몸의 원래 주인은 혈귀의 낙인이 찍히자 마기들에게 몸을 팔아버리고 새로운 몸으로 바꿨다. 혈귀가 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다.


"또 올까?"


깊이 잠든 샤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데니아는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글쎄……."


아리도 자신할 수 없었다. 혈귀들의 집요함은 그들의 장사꾼 기질만큼 유명했다. 하지만 칸의 든든한 등을 바라본 아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샤리를 데려갈 수 없다는 거야"


데니아도 고개를 돌려 동굴 밖을 향해 앉아 일행을 지키고 있는 칸의 뒷모습을 봤다. 그녀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날 밤 일행은 샤리를 제외하고 잠들지 못했지만 그것을 샤리에 대한 걱정이었을 뿐 외부의 침입 때문은 아니었다. 밤새도록 칸은 동굴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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