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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나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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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공
작품등록일 :
2006.10.22 23:49
최근연재일 :
2006.10.2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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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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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애욕(愛慾)

DUMMY

환호하는 전사들을 뒤로 하고 가리푸는 억지로 칸을 따랐다. 흥분에 물든 전사들을 부러운 듯 가리푸는 계속 돌아봤다. 칸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기다렸다. 터벅거리는 가리푸의 발길은 떠나기 싫은 듯 무거웠다.


쿠우우


겨우 큰손 족의 마취약에서 깨어난 워 스쿼드가 포효했다. 거대한 덩치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상아들을 치켜 올렸지만 벌써 적은 사라진 뒤였다. 자작은 한숨만 쉴 뿐이었다.


밤새도록 야영장은 시끄러웠다. 시체의 조각과 피를 찾아 귀령들이 몰려다녔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며 야영장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었다. 다행이 새벽이 가까워져 칼리가 다시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었기 망정이지 계속 구름이 짙게 깔려있었다면 일행들은 잠을 못 이룰 번했었다. 달빛이 비추기 시작하자 귀령들은 언제 나왔냐는 듯 숲 속에 그늘진 곳으로 자취를 감췄다.


"안 돼!"


"할 테야!"


아침이 되자마자 일행은 싸움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억지부리지마!"


"억지가 아니란 말이야 나는 꼭 할 거야!"


데니아와 가리푸는 언성을 높여 말다툼했고 일행과 칸은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군대에 들어가겠다니 너 미쳤니?"


"미치기는 누구나 군대에 들어갈 수 있어!"


데니아와 가리푸가 싸우는 이유는 아침이 되자 자작이 붙인 포고문 때문이었다. 간밤에 자작은 나놈과 큰손 족의 영혼석 뿐만 아니라, 토벌 때 죽은 전사들의 영혼석까지 잃었다. 전사들을 부활시키려던 자작의 의도가 빗나가자 전사가 모자라 서둘러 모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과 훈련기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급한 모병은 두 가지다 필요 없이 군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군대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지만 또한 높은 곳으로 가는 기회였고 괴물들의 위험이나 배고픔, 사냥의 고달픔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벌써 많은 수의 여행자나 상단을 따르던 용병들이 지원을 했다.


"지금 군대에 들어가면 너 정도는 소모품에 불과해! 계속 죽어서 노예나 된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나는 할 수 있어! 그리고 자작은 강해 그를 따르면 꼭 성공할 수 있어!"


데니아는 계속 가리푸를 말렸지만 그는 완강했다. 그녀는 서서히 지치는 자신을 느꼈다.


"너는 자신을 알아야해 아무런 연고도 없이 군대에 들어가면 떨거지에 불과해져"


그녀의 말은 애원에 가까웠다. 군대 역시 연고가 중요했다. 대부분 가족이 모두 함께 지원하기 때문에 가족이 없는 가리푸의 경우에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가 너무 죽어 노예만 될 뿐이었다.


"난 갈 거야!"


그러나 가리푸의 말은 확고부동했다.


"오빠!"


샤리와 아리엘까지 나서봤지만 고개를 흔드는 가리푸를 말릴 수 없었다. 가로막는 데니아와 가족을 거칠게 밀면서 임시로 마련된 모병소로 걸어갔다. 말리던 데니아는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가족을 사랑했고 책임을 느꼈다. 소론이 떠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가리푸는 아니었다. 그가 뻔히 잘못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가리푸의 뒷모습은 고집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구원을 청하듯이 칸을 바라봤다.


칸은 가리푸를 억지로 잡을 수 있지만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억지로 잡는다면 더욱 타락하게 될 것이다. 최초로 가리푸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인정해줘야 했다. 다만 데니아의 염려처럼 그는 아직 약했다. 두려움이 아직도 그의 영혼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개장……."


난처한 풍경에 아리가 슬며시 말했다.


"소개장?"


데니아가 놀란 듯이 말하고 다시 칸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고위의 치사가 준 소개장이면 아무리 자작이라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귀중한 소개장을 함부로 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칸의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애절하게 떨고 있었다.


"가리푸"


칸의 목소리에 가리푸가 뒤돌아 봤다.


"가져라"


그리고 날아온 두루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놀랐다. 그도 무엇인지 알았다. 한참을 서있었다. 데니아와 가족은 칸과 가리푸에게 시선을 옮기며 어쩔 줄 몰랐다.


"고맙소."


가리푸의 입에서 어렵게 말이 나왔다. 칸은 잠시 미소를 보였을 뿐이다.



뿌우웅!


고동소리와 함께 자작의 군대는 떠났다. 워 스쿼드가 힘차게 땅을 밟으며 움직였고 전사들이 뒤를 따랐다. 일행들은 손을 흔들며 치사 곁에서 호위를 하는 가리푸를 배웅했다. 데니아와 아리엘, 샤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빠 잘 가!"


"건강해야해~"


아리엘과 샤리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데니아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말을 하지 못했다. 살며시 칸이 그녀를 안아주자 그의 품 안에서 격하게 울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라고 칸은 말해주고 싶었지만 축축이 젖는 가슴 때문에 말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등을 다독여 줄뿐이었다.


"잘 가세요. 꿈꾸는 길에 편안함만 있길 기원해요"


"고마웠어요. 그대들도 행복한 꿈을 꾸기 기도해요"


"부디 안전한 여행되세요."


순례자들도 떠나야 했고 칸의 일행도 떠나야 했다. 떠나는 사람들 끼리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했다. 칸은 괴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괴인도 칸을 향해 고개 숙여 말없이 인사를 받았다. 그는 사이하지만 강인한 의지를 풍겼다. 칸은 그를 인정하고 있었다.


"우리도 떠나야지"


아리가 도끼 새에 오르며 말했다. 일행들도 멀어지는 순례자들에게서 돌아서 도끼 새에 올랐다.


"가자"


칸의 시종마가 더욱 단단해진 육체를 가지고 앞장을 섰다. 그 뒤를 주인이 빠져 허전한 도끼 새 한 마리를 끌고 여성들이 뒤따랐다. 비야마까지는 이틀거리만 남았다.



"훌쩍거리지 좀 마! 너는 눈물도 안 마르니?"


아리는 자신의 뒤에서 계속 울어 되는 아리엘에게 화를 냈다. 화를 내는 이유는 사실 아리엘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난처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최면을 통해 서지만 데니아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가리푸가 떠나자 자매들은 모두 슬픔에 젖었고 자신도 슬픔에 젖어야 했다. 최면이란 만능이 아니었다. 의심을 하게 되면 깰 수도 있었다. 따라서 슬픔을 연기해야하는 아리는 어떻게 울어야할지 고민했다. 그녀는 연기를 잘하지 못했다.


"아리언니는 너무 냉정해!"


그런데 실마리는 아리엘이 던져줬다. 그렇다 자신은 냉정한 성격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아리는 원래 냉정한 성격이었다.


"냉정하기는! 겨우 초보 전사를 벗을 가리푸가 치사의 호위가 됐으면 출세한 거지 뭘 더 바래? 축하해주고 축복해줘야지 괜히 훌쩍여서 부정 타게 하지 마!"


"이잉"


입을 쭉 빼며 아리엘은 데니아의 뒤로 갔다. 데니아가 물에 젖은 눈을 들어 미소를 보냈다.


"그래 그만 울자 가리푸도 좋은 곳으로 갔으니 우리도 힘을 내야지?"


"으응"


아리엘도 억지로 눈물을 닦고 미소를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앙 가리푸 오빠~ 소론 오빠~"


"으아아앙"


아리엘이 다시 목 놓아 울자 데니아의 품에서 숨죽이던 샤리까지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아아 머리 아파"


아리는 포기했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두 소녀가 눈물을 쏟으며 울었고, 데니아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항상 배고픔과 위험을 지고 사는 긴장의 연속이었기에 이렇게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칸의 든든한 등 뒤에서 그동안 참았던 슬픔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엄마~"


"우아아앙"


"훌쩍 훌쩍 아빠……."


레키가 슬픔에 전염돼 훌쩍였고 아리까지 침울해져 눈가가 물기에 젖었다. 나락에 온 자들 중에 슬프지 않고 한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치사조차 계약에 끌려오는 곳이 이 곳이었다. 일행은 길에 멈춰서 울었고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으아아앙"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지난날의 과오 때문에, 흐릿한 죄악 때문에 그녀들은 울었다. 가리푸의 떠남은 단지 방아쇠에 불과했다. 남에게 말할 수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가진 그녀들은 울 수밖에 없었다. 울음을 통해서만 한을 흘릴 수 있었다. 어느새 여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서로의 눈물을 보고 안심하며 울었다. 자신만 슬픈 것이 아니고 자신만 한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서로 끌어안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따사로운 헤그머가 그녀들의 눈물을 빛내줬고 겹침 나무들이 그녀들의 울음소리를 바람에 날려줬다.


칸은 시종마 위에서 그냥 앉아있었다. 아무런 위로도 다독임도 없이 그냥 기다렸다. 슬픔이 다하고 한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줄 것 같았다. 아니, 그녀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방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울 수 있었다.


'바람이 가볍군.'


그의 짧은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의 장난은 아이들의 미소처럼 밝았다. 그리고 무거운 물기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게 하늘로 올랐다. 칸은 바람을 따라 하늘을 봤다. 새털구름들이 파란하늘을 하얗게 흘렀다. 나락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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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애욕(愛慾) +17 06.08.31 8,534 5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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