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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한 글입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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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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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 왕의 가도(1)

DUMMY

소년은 숨이 멎은 클로드를 훏어봤다. 아직까지는 육신에 생기가 남아있다. 지금 영혼을 되돌린다면 조건부로 되살릴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마법에는 대가가 따르지.’


이미 숨이 멎은 사람을 되살린다.

그에 걸맞는 대가는 또다른 목숨뿐이다.


‘그건 마도 법령이 금지하는 마법이다. 사전에 따로 허가를 받지 않는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바쳐서 주문을 시전해서는 안돼.’


하지만 호기심이 들끓는다. 새로운 마법을 시험해보고 싶단 욕구가 가슴 속에서 흘러넘친다. 스승님께선 반대하시겠지만······


‘차라리 해보고 혼나자.’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잖은가?

자신이 주문의 시전에 실패할지도 모르지.


‘클로드의 영혼을 살펴볼까.’


랜턴에 갇힌 클로드의 영혼은 남달랐다. 평범한 영혼들은 육신을 잃으면 자아도 풍화되어버린다. 그러나 클로드의 영혼은 자아가 흩어지지 않는다. 이룬 것이 많은 까닭일까?


‘몸으로 복귀하려는 욕망도 대단히 강해.’


머릿속에 새로운 연구일지를 마련해 사령술에 관련된 지식을 기록한다. 실험의 주제는 물질계와 영계, 육신과 영혼의 연관성이다.


[들어라! 사악한 마법사야! 내가 산자들의 세상으로 돌아가면 네놈의 가죽을 벗겨서······]


랜턴에 갇힌 클로드는 몰려드는 악령들을 베어내면서 고래고래 저주를 퍼붓고 있다. 이대로 며칠간 놔두면 다른 망령들과 똑같이 자아를 잃겠지. 그렇다면 표본의 특이성은 사라진다. 그전에 뭔가 실험을 해봐야하고.


“클로드 경.”


소년의 금안이 번득인다.


“산자들의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습니까?”


소년은 클로드에게서 삶에 대한 집착을 읽어냈다. 그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난 재능 있는 기사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명성을 떨치고, 가문을 재건하고 싶겠지.


[············]


그에 클로드는 침묵을 지켰다. 엘리온이 자신을 죽였다는 원한보다도, 이루지 못한 영광을 손에 쥐어보고 싶다는 집념이 훨씬 컸으니까.


“제 깃발 아래서 종군하신다면 육신으로 돌아올 기회를 드리죠. 충성 여부에 따라 기존보다 훨씬 튼튼한 육신을 드릴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것이 싫다면 끝을 받아들이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압박을 가한다.


“장기가 기능을 멈춰서 육신이 부패를 시작하면, 저도 당신을 되살릴 방법을 모릅니다.”


이건 진실이었다. 육신이 상처를 입지 않았으니, 영혼을 되돌려넣으면 의식을 되찾을거란 가설을 시행해볼 뿐이다. 육신이 부패하면 훨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겠지.


[······계약에 응하겠다.]


클로드는 선택을 내렸다. 자신을 죽인 마법사의 종복으로 되살아나서라도 영광을 되찾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에서 패하고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기보다는.


“충성의 맹세를 바치십시오.”


[나, 블랙우드 가문의 클로드는 마법사 엘리온에 대한 신종을 맹세한다. 내가 생전에 데네이르 대공 전하를 모시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 마법사 엘리온에게도 충성을 바치겠다.]


덜컹!


랜턴이 열리며 클로드의 영혼이 석방된다. 다른 영혼들도 같이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마법의 쇠사슬에 끌려서 붙잡혀간다.


“당신의 충성을 받아들입니다.”


번득!

죽었던 클로드가 눈을 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 같군.”

“당신의 결단이 빨라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전과 뭔가 달라졌어.”

“당신은 이미 한번 죽었습니다.”


몸과 영혼의 분리.

혹은 장기의 영구적인 정지.

그것이 죽음에 대한 정의다.


“헌데도 살아있는 자들의 세상으로 돌아와있지요. 그에 대한 대가가 있을 겁니다.”


클로드는 스스로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깨달았다. 대화를 나누는 지금도 생명력이 소진되고 있었다. 누군가를 주기적으로 살해해 생명력을 채우지 않으면, 자신은 빈껍데기만 남은 미라처럼 변해서 시들어버릴 것이다.


“한달에 한 명.”

“너무 쉬운 일이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을 죽여야할겁니다. 그러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전에 원하는 것을 얻고 삶을 마치세요.”


엘리온은 설명을 마치고 악수를 건넸다.


“잘해보죠. 폭풍검의 클로드경.”

“············”


클로드는 복잡미묘한 심경으로 엘리온을 바라봤다. 엘리온을 자신을 죽인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되살려낸 사람이다.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기존의 주군을 모시다가 죽을뻔했다. 그래서 새로운 주군을 모시며 목숨을 구했다. 기사들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잘 부탁하지.”

“그렇다면 새로운 명을 내리겠습니다. 우선 데네이르 대공가에 관한 모든 비밀을 밝혀주십시오. 하나도 남김없이. 샅샅이.”


그러자 클로드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주군을 모시는 계약을 맺었다고 치더라도 자신은 어쨌든 기사였다. 기존의 주군을 섬기며 맺었던 맹세도 중요하다.


“불가능하다.”

“합당한 이유를 말하십시오.”

“생전에 대공가에 신종선서를 바칠때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은 이후여도 바쳤던 맹세를 포기할순 없어.”


그때!


“어흑!”


심각한 흉통이 클로드를 엄습했다.


“커흑·········으허허어어억!”

“뭔가 착각하는군.”


일순간,

엘리온의 눈빛이 사납게 변한다.


“네겐 지켜야할 명예같은 덕목이 남아있지 않다. 비겁자 클로드.”

아아아아아아아악!


엘리온의 눈동자가 마력을 발할수록 클로드의 고통은 커져갔다. 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면서, 산채로 미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너는 도적들을 사주해서 백성들을 약탈하도록 시켰다. 그래놓고 네놈이 기사라고 생각하나? 지켜야할 명예가 남았다고 생각하나?”


이윽고 랜턴이 열리며 망자들의 영혼이 뿜어져나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클로드의 영혼을 낚아채서 거세게 끌어당겼다!


“그, 그만! 그만! 제발 그만하십시오!”

“이제야 공손해지는군.”

“명령, 명령에 뭐든지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엘리온이 마력을 거두자 모든 불빛은 사라지고, 클로드의 흉통도 멎었다.


“허억, 허억, 허어어억······”

“잊지 마라. 클로드.”


너는 고귀한 명예를 수호하는 기사같은게 아니야. 주군의 명을 받드는 칼잡이지. 재물을 쫓아다니는 용병들과 하나도 다를바 없는 사냥개들. 너의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네가 부여한 모든 것을 다시 빼앗겠다! 고통스럽게!


“알겠나?”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무릎을 꿇어라.”


고통에서 벗어난 클로드는 꺽꺽대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블랙우드 가문의 가주인 자신이 신분도 모르는 마법사 따위에게──!


“생각이 불경하군.”


짝!

뺨을 후려친다.


“·········”

턱이 돌아간 클로드는 살의가 깃든 눈매를 내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이 엘리온에게 달렸음을 깨닫고 경거망동하지 못한다.


“나는 네 주인이다. 클로드.”

“············”

“너의 생명. 너의 숨결. 너의 힘은 모두 내게 종속된 것이야. 그걸 한시라도 망각한다면 하나씩 고통스럽게 잃어가게 될거다.”


차디찬 목소리에 클로드는 깨닫는다. 눈앞의 소년은 일개 주문쟁이가 아니다. 그는 죽음을 다스리는 자였고, 왕들의 게임에 참가할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군.”

“좋아. 그렇다면 명령을 수행하도록.”

“우선 데네이르 대공가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최대한 왕국을 혼란에 빠뜨려서, 국왕군을 분산시킬 계획을 지니고 이씁니다. 이를 위해서 각지의 도적길드와 몬스터들, 심지어 마녀와 흑마법사들까지 영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이어진 대공가의 계획은 끔찍했다. 그들이 계획하는 전쟁은 왕위를 둘러싼 내전보단, 서로 다른 종족간에 오가는 말살전의 양상에 가까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목표로 삼는 파멸적인 전략.


“미쳤군.”


엘리온은 단언했다.


“음모가 발각되면 왕위탈환은 고사하고 왕국 전체의 공적으로 찍혀서 모두에게 버림받을 짓이다. 설령 왕위를 가지더라도 교황청에서 십자군을 선포해올게 뻔한 일이야.”


왕위쟁탈전도 쟁탈할 왕국이 남아야 의미가 있다. 헌데 데네이르 대공가의 계획이 실행된다면, 왕국엔 잿더미만 남을 것이다.


“누가 그런 미친 짓을 제안했나?”

“······데네이르 대공 본인의 계획입니다.”

“·········이걸 알고도 대공가에 협력했나?”

“·········”

클로드는 엘리온의 시선을 외면했다. 애초부터 도적들을 사주해서 백성들을 약탈하는 계획부터가 떳떳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문의 영지를 되찾고, 스스로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서라면 양심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이런 한심한 놈들이 기사니 귀족이니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동네 촌부들도 이토록 어리석고 무모한 계획을 세우진 않는다. 역시 왕공귀족들은 특별한 혈통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다.


“스승님. 저희도 조치가 필요하겠습니다.”

“?!”

“······이번건에는 어이가 없구나.”


동굴의 구석에서 갑자기 말총머리 청년이 나타났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것처럼.


“백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많은 군주들을 만났다. 선한 이도 악한 이도 있었고 단호한 사람도 나약한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처음 본다.

이토록 어리석은 군주는.


“······원래는 너를 혼날 생각이었다만.”


갈렌은 대단히 못마땅한 얼굴로 되살아난 기사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여서 연명하는 괴물을 되살린 꼴이었으니까.


“지금은 네 판단이 옳았다고 봐야겠구나.”

“긴급 상황엔 그에 맞는 대처가 필요하죠.”

“맞는 말이다.”


후욱.

갈렌은 곰방대를 소환해서 입에 물었다.

화륵.

오른손을 튕겨서 불꽃을 만들어내면서.


“남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


갈렌의 짙은 녹색눈동자가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가늠이 가지 않는다. 눈앞에 서있는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브레카다에선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손꼽히는 자들이 대마법사의 칭호를 얻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처럼 황당한 일을 해내진 못했다.


사자의 부활.

대단히 어려운 마법이다.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


소년과 청년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소년에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본능이 있었고,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때도 똑같은 사고방식을 적용했다.


“위험해.”

“·········”

“너는 분명히 세계에 위험한 존재다.”


소년의 사고방식은 마도 사회에서 드물지 않다. 아브레카다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찬반을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소년의 생각을 바람직하다고 불러주는 부를 것이다.


“······그러니까 달라야해.”

“·········”

“넌 평범한 마법사들과 달라야한다. 엘리온.”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쪽이 낫겟지.


“따라와라. 엘리온.”


터벅터벅.

동굴을 나서는 갈렌.


“직접 보고 판단할 기회를 주마.”


* * *

이틀뒤.

어느 시골마을.


“·········이게 뭐죠?”

“실패한 마법이 만들어낸 잔흔이지.”


엘리온은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시취에 눈쌀을 찌푸렸다. 밀밭엔 무성하고 마을엔 인기척이 없다. 무너진 폐가에선 쥐떼가 들끓고 방치된 횟대엔 까마귀떼가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자신들을 불길하게 내려다본다.


“직접 살펴보고 와라.”


철컥!

갈렌은 석궁을 건네주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볼트통을 포함해서.


“그럼 알게 될테니까.”


어째서 우리 마법사들이 인간들의 경계를 받는지. 그리고 네가 품은 가능성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는 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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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 사막의 여정(3) +4 22.03.15 1,354 49 15쪽
31 9. 사막의 여정(2) +7 22.03.14 1,448 59 15쪽
30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4 53 11쪽
29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7 52 12쪽
28 8. The King's Herald(3) +10 22.03.13 1,613 64 15쪽
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26 8. The King's Herald(1) +3 22.03.12 1,781 5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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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2) +10 22.03.09 2,033 72 12쪽
22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1) +12 22.03.08 2,207 79 13쪽
21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6) +26 22.03.07 2,322 87 15쪽
20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5) +12 22.03.06 2,379 74 14쪽
19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4) +28 22.03.05 2,514 78 12쪽
18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3) +15 22.03.04 2,582 84 14쪽
17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2) +10 22.03.03 2,789 84 13쪽
16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1) +8 22.03.02 2,970 109 12쪽
15 5. 영웅의 탄생(2) +6 22.03.02 2,994 108 17쪽
14 5. 영웅의 탄생(1) +16 22.03.01 3,104 1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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