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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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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2.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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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3)

DUMMY

헬중세인들은 키마누를 종종 ‘샌님’이라고 조롱했지만, 키마누는 그게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저런 놈들은 보통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만용을 높이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좀 빡대가리들이었다.


헬중세 귀족들은 분명한 전투의 프로다. 이들은 배움이 얇고 사고가 단순한 만큼, 싸움에서만큼은 수준급의 숙련도와 이해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싸움을 힘과 용기란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면이 있었다. 싸움을 잘하는 건 덩치가 크고, 칼싸움을 잘하며,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람이란 식이다.


하지만 키마누에게 싸움은 의지의 충돌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삶과 삶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에 따른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그걸 이해하는 지점에서 전략이 시작되지.’


자신은 라스칼에 비해서 힘도 떨어지고, 무기도 다루지 못한다. 심지어 마나도 없다. 분명히 결투에선 훨씬 약한 입장이다.


‘하지만 내 강점을 극대화하고, 적의 장점을 봉쇄한다면 얼마든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그게 전략이다.’


그리고 이건 용맹하고 단순한 사람보다는, 겁이 많고 신중한 사람이 유리했다. 헬중세인들이 싫어하는 ‘샌님’들이 잘하는 분야인 것이다.


내 능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적과 비교한다.


순수한 힘에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기교로 붙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소드오러에는 스쳐도 죽는다.


즉, 우직하게 한 자리에 발붙이고 공방을 주고받는 식의 싸움을 벌이면 처참히 발린다. 라스칼은 그런 싸움에선 나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싸움 방식이 달라지면 위치가 바뀐다.


녀석의 몸은 늙었지만, 나는 여전히 젊다.

체력에서는 확실한 우위를 가져가는 것이다.


상대는 절름발이지만 나는 두 발이 자유롭다.

이동속도나 반응속도에선 내가 확실한 우위다.


‘라스칼이 정상급의 기사니까 그나마 싸울 수 있는 거지, 결코 온전한 전투력은 아니다. 내가 작정하고 물러나기만 하면 절대로 못 쫓아와.’


거기에 소드오러의 사용은 몸을 금방 탈진으로 몰고 가겠지. 즉, 정면 교전을 피하고 지구전을 벌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지구전엔 난관이 있지.’


라스칼은 자신이 한 모든 생각을 훨씬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제 6감을 갓 깨우친 애송이지만, 라스칼은 이미 제 6감을 활용하는 게 완전히 몸에 익은 초인이다. 누적된 전투 경험 자체가 클래스가 다르다.


‘헌데 그 장점을 라스칼이 스스로 포기했지.’


지금 놈은 완전히 눈이 벌게져서, 분노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실력이 있어 공격은 날카롭지만, 냉철한 판단력은 사라졌다.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놈의 정신을 흔들어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기동전을 벌여 체력을 소모시키면 이긴다!


제 6감으로 보던 세상을 본래대로 되돌렸다. 극심한 두통이 엄습하는 가운데, 붉은 오러를 머금은 도끼날이 날아들었다!


“죽어라! 이 방자한 놈아!”

“큭!”


재빨리 후방으로 몸을 날려 도끼날을 간신히 피해낸다. 칠흑의 도끼가 쾅! 하고 지상에 박히며 다시 폭발을 일으킨다. 자신의 몸은 충격파에 휘말려 다시 바닥을 나뒹군다.


온 몸이 저려오고, 눈이 감긴다.


‘일어나. 키마누.’


싫다.

쉬고 싶다.

힘들어.


너는 왕자다.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꿈을 짊어진!

너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간직한!


일어선다.

검을 딛고 일어선다.

결국 최후에 기댈 것은 스스로의 검이다.


“언제까지 할 셈이냐? 키마누!”

“그래. 네놈을 쓰러뜨릴 때까지.”

“푸하하하하하핫! 어디 발악해봐라!”


라스칼은 검집으로 땅을 짚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느리지만 육중한 발걸음이었다.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최적의 도발 지점을 계산한다.


‘놈이 힘껏 공격하면 닿기는 하되, 나는 빠르게 몸을 뺄 수 있는 위치에서, 공격을 유도하고 물러나길 반복하면 된다.’


라스칼의 팔길이와 도끼의 길이를 인식해서, 사거리를 파악한다. 놈은 한 번에 한 걸음 밖에 걸을 수 없기에 사거리가 늘어날 수 없다.


‘좋아. 틈이 있군.’


달려가서, 공격에 필요한 예비 동작을 하자 역시나 도끼가 날아들었다. 계획해둔대로 옆으로 굴러 사거리에서 벗어난다!


후우우우웅!


도끼날이 어깨 갑옷을 자르고 지나간다. 이번엔 오라를 머금은 공격이 아닌데도 강철이 종잇장처럼 뜯겨나갔다!


“쯧. 피하기만 잘하는구나!”

“당신도 맞추진 못하잖아.”

“하! 맞기만 하는 놈이 헛소리는!”


라스칼은 코웃음을 치며 키마누를 비웃지만, 오히려 키마누는 씩 웃으면서 상대를 도발한다.


“그래서 나조차도 못 끝내는 게 자랑이냐?”

“네놈은 왕가의 자손. 충분히 가치 있는─”

“난 샌님이고 당신은 전설의 12기사잖나.”

“각자 중시하는 게 다를 수도 있는 것을─”

“동방 왕족들은, 칼 대신 붓이나 잡는 나약한 놈들이라고 했을 텐데. 당신 입으로 말이야.”


라스칼이 말문이 막힌 사이.

키마누는 말이 라스칼의 가슴을 찌른다.


“나한테 이기면 권위가 돌아올 것 같지?”

“·········”

“아니야. 당신은 이미 기사로서 끝났어. 지팡이 짚고 다니는 기사 따위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아. 당신도 그걸 알잖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사로 존중은 받고 싶지. 그래서 택한 게 체급도 안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거야. 그럴 필요가 없는데.”


12기사들은 우슈르테툼이 건국되고 모두 제후가 되어 영토를 부여 받았다. 자신도 변경백이 되어 국경의 지휘관으로 활약해왔다. 이 빌어먹을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알고 있다. 영웅으로 활약하던 영광의 시간이 끝난 것도. 기사로서는 쇠락할 일만 남았다는 것도. 자신이 추한 아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도.


헌데. 누가 그걸 지적하는 건 다른 문제다.

감히 외국인 애송이 따위가 나를 비난해?

고향과 가족을 잃고 도망친 도망자 주제에?


“키마누.”


망집에 찌든 눈에 증오가 곁들여진다.

붉게 타오르는 오러가 분노를 나타낸다.


“죽여버리겠다아아아아아아-!”

“가능하면 해보시던가!”


이제 라스칼은 완전히 흥분에 몸을 맡기고 폭주해버렸다. 닥치는 대로 도끼를 내리치며 연격을 날렸고, 마나 안배는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의 오러를 만드는데 전념했다. 놈을 죽이고 싶었다. 찢어죽이고, 터뜨려죽이고 싶었다!


양날도끼를 내리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약한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연달아서 벤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익!


“이 몸에게 그딴 말을 지껄여!”


머리 위로 도끼를 찍는다!

콰아아아아앙!


키마누는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뒤로 구르며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냈다. 오라를 잔뜩 머금은 일격이라 피해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벌레처럼 굴러만 다니는구나!”

“승리에 비해서 체면은 값싸다는 주의라!”

“그것마저도 벌레와 똑같구나! 뒈져라!”


콰아아아아아아앙!

키마누는 또 간발의 차이로 피한다!


“쥐새끼 같은 놈아! 이리 와서 싸우자!”

“난 충분히 잘 싸우고 있다만.”

“모두 보아라! 이 비겁한 개새끼가 하는 짓을!”


라스칼은 땅을 도끼로 마구 쳐대면서 울분을 토했다. 대결을 지켜보던 근위병들은 라스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이들의 관점에서 키마누의 지구전은 심하게 추해보였다.


‘아니. 남자면 그냥 발붙이고 싸워야지.’

‘굼벵이도 아니고 왜 굴러만 다니지?’

‘폼은 존나 잡더니 쫄았나보지. 치사하긴.’

‘결투 상대가 불구인 걸 이용하다니 졸렬해!’


여론이 변하기 직전.

키마누가 입을 열었다.


“내가 비겁하다고? 당신 양심 어딨어?”

“그래! 이 결투는 내 판정승이다! 비겁자야!”

“하긴 그래. 인정해. 내가 비겁했다.”


키마누는 칼날을 겨누면서 냉소를 지었다.


“나도 결투 전에 기습을 했어야 되는데 말야.”

“?!”

“나도 희귀 금속제의 고유무기도 구해오고, 마나는 있지도 않은 사람한테 찾아가서 소드오러도 써보고, 갓 입대한 병사한테 아니꼬우니까 결투하자고 졸라도 보고 해야지.”


키마누는 그리 말하고 껄껄 웃자. 근위대원들의 의견도 반전되었다. 여론이란 늘 갈대처럼 움직이는 변덕이 심한 존재이니까.


‘맞다. 반칙은 군주님이 먼저 했구나?’

‘무기도 같은 수준으로 맞추는 게 관례잖아.’

‘결투는 급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키마누는 공식적으론 평범한 서전트잖아. 그런데 다짜고짜 공격해서, 결투로 몰아간 것은 찔린 게 많다는 뜻밖에 안 되지.’


라스칼은 여론이 변하는 걸 보고, 분노를 가득 실어 양날도끼로 내리쳤다. 정통으로 맞으면 트롤도 일격에 죽일 수 있을 막강한 일격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찍이 본 적 없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수많은 먼지와 조각돌이 흩날렸다. 하지만 아무리 위력이 강해도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허억, 허억, 허억.”

“이제 나이 들어서 체력도 바닥났나보네.”

“다리만 멀쩡했어도 이미 진즉 끝난 싸움이다!”

“그렇게 말하면 병신 된 다리가 돌아오나?”

“이 개새끼아아아아아아-!”


쫓아가서, 내리찍고, 뒤로 물러나서 피하고, 다시 쫓아가서 내리찍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그 때마다 달라지는 건, 키마누의 잔상처가 많아지고 라스칼의 숨이 가빠지는 게 전부였다.


한편, 승부가 이렇게 흘러가자 근위병들은 김이 센 표정을 지었다. 극동의 왕자와 12기사의 대결이라서 역대급 도박판이 열렸는데, 이건 보니까 일방적으로 끝날 싸움이었다.


“야. 이거 언제 끝날까?”

“저러다 키마누가 실수하면 끝나지.”

“왜 반격은 안하고 도망만 다니지?”

“키마누 새끼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나보지.”

“흐음. 혹시 뭔가 생각이 있으실 지도?”

“생각은 무슨. 그냥 죽기 싫어서 튀는 거잖나.”


그렇게 근위병들이 김이 샌 표정으로 키마누의 패배를 예측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군인들이 난입했다.


“하룬 백인대장님? 그리고 1초소 대원들?”

“어이. 지금 배당이 몇 대 몇이지?

“9:1 정도 됩니다. 당연히 키마누가 1입니다.”

“킁. 너무 낮은 것 같군.”

“10%도 너무 높게 쳐준 승산 같은데요.”


하룬은 짤랑이는 돈주머니를 들어올렸다. 이곳에는 하룬의 모든 저축과 제 1초소 대원들의 연봉이 담겨있었다.


“아니. 배당금이 너무 낮다고.”


쾅!

하룬은 돈주머니를 키마누 측에 내려두었다.


백인대장 하룬과 제 1초소.

키마누 왕자에게 노후를 배팅하다.

······좀 심한 놈은 어머니 집문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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