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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한 글입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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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3.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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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 The King's Herald(4)

DUMMY

이후로 나는 왕궁에 머무르며 왕의 전령사가 되는데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검술, 승마, 전술, 법학, 수학, 신학을 비롯한 중세의 모든 전문 분야를 망라한 고등교육 과정이었다.


“오늘은 회계학을 배우겠습니다. 장부를 정확히 읽고 해석하는 능력은 전령사의 기본······”

“선생. 장부를 왜 이렇게 개판으로 써놨어?”

“천 년간 내려온 전통의 방식입니다만.”

“천 년간 회계사들이 게을러터졌단 소리네.”


나는 펜을 들어, 교재로 제시된 회계 장부를 고스란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옮겨썼다. 용돈 기입장 수준이던 장부에 복식부기 개념이 더해져서 보기도 좋고, 쓰기도 쉬워졌다.


“이거나 보급해. 쓰는 법은 나한테 배우고.”

“아, 아니, 이게 무슨······”

“시끄럽고 실무자들한테 줘봐. 절하러 온다.”


분명히 왕국 최고의 지성인이란 사람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데, 무슨 중학교 우등생에서 컷당할 소리나 하고 있었다. 특히 수리나 자연과학 계통은······곱게 말해줘서 안 배우는 게 나았다.


“어떤 성직자들은 병을 신께서 내린 징벌이라고 부른다지요.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무지함을 광신으로 숨기려는 불경함에 불과합니다!”


끄덕끄덕.

여기까진 그래도 상식인인 줄 알았지.


“사람이 병이 나는 이유는 체액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체액의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나는 이유는 사람이 물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인데·········”


······그냥 신벌이라고 믿어도 되겠다. 어설프게 아는 놈이 아예 모르는 놈보다 더 무섭거든. 처음에는 이리저리 반박을 해봤는데, 이젠 그러기도 귀찮아서 시큰둥하게 들었다.


“선생. 수리시간과 과학시간은 전부 빼지.”

“폐하께선 왕자님께 모든 과목을 가르쳐서 왕국의 인재로 길러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봐. 왕실학자 선생.”


나는 노학자를 향해 빙긋 웃었다.


“국왕 폐하께선 글도 모르시네.”

“·········으음.”

“그런 분이 학문을 뭘 아시겠나? 그냥 하신 소리지. 학문을 아는 우리끼리 대충 합의보자고.”

“·········”


노학자는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진실을 말하면 불경죄요, 거짓을 말하면 학자적 양심을 포기하는 것이니, 침묵이 답이다.


“내기를 하세. 자네가 이기면 내가 수업을 성실히 듣지. 내가 이기면 이 짓은 그만하자고.”

“저는 왕실학자이지, 왕실기사가 아닙니다!”

“누가 칼싸움으로 정하쟀어? 논리로 싸우자고.”

“예?”


띠용!


왕실학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논리로 싸우자는 지성인이라니, 이렇게 정중하고 세련된 사람이 어떻게 왕자란 말인가?!


“대단하십니다! 왕자님!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단판, 삼세판?”

“남자답게 단판으로 가지요!”

“학문의 왕인 수학으로 결판을 내지.”

“학문의 왕은 당연히 신학입니다만?”


씨발. 무식한 헬중세 새끼들.

마인드가 저 모양이니 발전이 없지.


“결국 모든 학문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니 학문 대결은 당연히 교리 논증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다. 꼴에는 날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헬중세에선 저 말에 반박을 못하지.


반박하면 이단이다. 그러니 교리논증이 지적 성과의 척도가 된다는 말에도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또한 헬중세 왕족들도 수학이나 행정같은 실용적인 학문은 필요하면 배우지만, 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거의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름대로는 날 카운터할 묘수를 냈단 모양인데.


“좋아. 그럼 신학 토론으로 가지.”

“저, 정말입니까!”

“내일 정오 그리폰 광장에서 공개 토론하지. 심판은 대신관님이 봐주실 걸세.”

“왕자님은 경전도 안 보셨잖습니까?!”

“오늘부터 공부하면 되지.”

“그 분량을 어떻게 하루만에 봅니까?!”


너도 K-대학교에서 벼락치기 하다보면 다 할 수 있어. 시험시간 2시간 앞두고 내용만 달달만 외워서 중간고사 치는 스킬을 니가 알아?


나는 태양신의 성서를 한 권 구한 후, 밤을 세워서 속독했다. 솔직히 보편성 있는 종교의 경전이 그렇듯, 별로 대단한 가르침은 없었다.


생명을 존중하라.

타인을 배려하라.

착하게 살아라.


누구나 아는 단순한 내용을 그냥 시대와 지역에 맞게 풀어놨을 뿐이다. 태양신 교리도 그런 맥락에 맞게 이해하면 그냥 쓱쓱 이해가 된다.


‘결국 사람 하는 생각이 거기서 거기지.’


물론 이세계 종교답게 고유한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만 주의 깊게 읽고 넘어가니 해가 뜨기도 전에 속독을 마칠 수 있었다.


‘아. 편하네.’


난 주요내용을 간추려서 쪽지에 적어둔 뒤에, 정오까지 늘어지게 자다가, 터덜터덜 토론회에 나갔다. 가는 길에 쪽지나 뒤적이면서 기억을 되새겼다.


‘수박겉핣기 수준의 이해에 불과하다만.’


공개 토론에선 진짜 학식이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다. 그냥 그럴듯한 궤변을 청중이 알아듣게 하면 이긴다.


‘아레노스 선생. 당신을 날 너무 얕봤어.’


나는 김현우, 대한민국의 비루한 산업역군.

이름하여 『문과 4년제 졸업생』이다.


* * *

“무적의 태양께서는 항상 우리의 몸과 영혼에 기거하시기에 인성을 지니셨으며, 하늘엔 태양의 형상으로 기거하시므로 신성을 지니셨으며, 신비한 영의 형태로 기거하시므로 성스러운 영이라고도 할 수 있으심이라, 이에 따라 그분의 실존이 증명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도 이해 못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장광설을 끝마쳤다. 그런데 우슈르테툼의 신학자들은 내 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대단하십니다! 키마누 왕자님!”

“오오! 진정한 문무겸비의 기사이시다!”

“이보다 완벽한 논증은 본 적이 없소!”

“???”


재판관 역할을 맡은 대신관은 쿡쿡 웃고 있었고, 몰려온 청중들은 이유는 몰라도 그냥 내 이름을 연호했다.


‘애들 그냥 내 편 드는 거 아냐?’


근데 정작 아레노스 선생도 크게 낙담한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여론몰이할 생각으로 장광설한건데 당신마저 넘어가버리면 안 되지.


“크윽······졌습니다.”

“오늘부터 수업은 불참!”

“키마누 왕자님!”


털썩!

선생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를 제자로 거둬주십시오!”

“환갑이 넘은 왕실학자가 무슨 남의 제자가 돼? 지금에 만족하고 그냥 잘 살아.”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입니다! 제발 기회를!”

“그만 배워! 어차피 이해 못해!”


나는 선생의 손아귀를 매정하게 떨쳐내고, 자리를 떠났다. 존경받는 노학자는 스스로가 박식하다는 착각을 누리며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덕분에 난 모든 시간을 무예 교육에 쏟았고 실력이 금방 쑥쑥 늘었다. 내 노력만으로 한 건 아니고, 왕실기사단장 로드릭 경이 날 전담해서 가르쳐주었다. 약혼녀인 칼라야 공주의 명이란 모양이었다.


“자네 검술은 실전성이 떨어지더군.”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현대 검술은 스포츠 종목이지, 살인기술은 아니다. 실전성과는 거리가 멀고, 유실된 전승도 많다.


“하지만 기본기는 정말 좋더군.”

“고맙습니다. 로드릭 경.”

“그러니 조금만 더 노력하세! 이얍!”

“자, 잠깐만요!”

“실전에 잠깐이 어딨나! 머리!”

“아아악!”

“비명을 지르다니! 더 처맞게!”

“아아아아악!”

“비명지르지말라고!”

“컥!”


나는 로드릭 경에게 기사가 되는데 필요한 검술, 승마, 투척을 비롯한 무예 전반을 존-나 빠르게 익혀나갔다. 기본소양이 있다보니 맞다보니 실력이 바로바로 늘었다.


그렇게 개처맞듯이 처맞는 지옥의 6주가 지나자, 나는 축복의 힘을 빼놓고 봐도 꽤 싸우는 기사급은 되었다.


‘확실히 강해졌는데?’


검술과 기초체력 모두에서 올라가자, 자신감이 붙었다. 실전에선 축복의 힘도 사용하게 될테니 감히 맞설 자가 없으리라!


“자네, 배우는 속도가 빠르더군.”

“교수자가 좋았던 덕입니다.”

“자네의 열정도 좋았네. 그래서 말인데, 왕실기사단에 정식 입단을 할 생각은 없나?”

“흠. 제안 감사합니다!”


왕실 기사단에 소속되면, 기사단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비기를 배울 수 있다, 워낙 높으신 분이 단원 중에 많아 알짜인맥 키우기도 딱 좋다. 그렇지만.


“충성하는 건 체질이 아니라서요.”

“하긴 자네도 왕자인데 내킬리가 없군. 실례했네. 그럼 수고하게.”


그렇게 마지막 훈련도 끝나고, 나는 국왕에게 무릎을 꿇고 기사 서임을 받았다.


“악인들과 용감하게 싸우라. 천상의 신들 앞에 진실하라. 언제나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라. 비취왕조의 키마누여.”


의식이 끝나고 엘다니온 국왕은 내 뺨싸대기를 때렸다. 그리고 왕실 기사들이 몰려들어 날 마구 구타했다.


“멋진 기사가 되십시오! 키마누 왕자님!”

“지금 맞아야 실전에서 피를 덜 흘립니다!”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으아악!”


이 난데없는 구타 덕분에 사흘간 신전신세를졌지만, 신고식 중에 사람이 죽어도 그러려니하는 곳이니 별 수 없다.


‘젠장. 좆같은 헬중세 똥군기.’


기사 작위도 생겼으니 장비만 마련하면, 왕명을 전하는 전령사의 자격를 갖추게 된다. 다만 역시나 이번에도 예산이 문제였다.


‘대장간 사업이 성공한건 좋은데, 이거저거 빼면 내 여윳돈으로 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우선 대장간 수익의 절반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재투자된다. 그럼 나머지 절반의 절반을 내 몫으로 가져오는데, 이게 왕족의 ‘품위 유지비’라는 게 생각보다 정말 많이 깨졌다.


저택 수리비야 일시불이니 큰 맘 먹고 한번 지르면 되는데, 최소한의 인력인 경비병과 하인, 하녀, 집사만 고용했는데 10명이 넘어서 고정인건비 지출이 엄청났다.


‘내가 하급 귀족이면 임금이라도 후려쳤지. 그런데 왕족이니고 오히려 시가보다 넉넉하게 월급을 주고, 주기적으로 보너스도 챙겨줘야하네.’


직원 생일이라서 사장이 보너스를 챙겨준다는 개념은 알겠다. 그런데 사장 생일이니까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챙겨줘야하는 이유가 뭔가? 빌어먹을 헬중세 같으니라고!


게다가 영웅놀이 할 때는 몰랐지.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게 전부 돈일지는.


“키마누 왕자님! 한 푼만 줍쇼!”

“개똥아. 너는 왜 우리집에만 오냐?”

“헤헤. 왕자님이 좋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요!”


키마누 왕자가 인심이 후하고, 약자에게 관대하단 이야기를 들은 거지들이 내 저택을 단골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거렁뱅이 새끼들이 어딜 기어들어와!”

“으악! 경비대다! 모두 튀어!”


······하룬이 눈치 빠르게 근위대를 보내준 덕에 파산은 면했다만, 이래저래 자선 활동에 돈이 세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헬중세는 사회안전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왕자’라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젠장. 당장 장비를 살 돈은 어디서 마련하지?’


사용인들을 퇴근시키고, 장부를 보면서 어디서 대출을 받으면 낮은 이율로 받을 수 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케드란이 날 찾아왔다.


“키마누 형님. 왕의 사자가 되셨다면서요?”

“그렇게 됐다. 그런데 경비가 말이지······”

“짜잔! 제가 그럴까봐 선물을 준비해왔습니다!”


케드란이 박수를 치자, 녀석이 고용한 인간 조수들이 무거운 상자를 내 앞에 내려뒀다. 묵직한 물건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형님만을 위해 준비한 최고의 물건입니다. 당장 사용해보시죠! 마음에 드실 겁니다!”

“오오! 그래! 고맙다!”


두구두구두구!

템 받을때 가장 신나는 언박싱의 시간!

나는 기대감을 부풀어올라 상자를 열었다!


“이것은?!”


작가의말

오늘 연참 관계로 내일 연재는 18:00로 미뤄질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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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4 53 11쪽
»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7 52 12쪽
28 8. The King's Herald(3) +10 22.03.13 1,613 64 15쪽
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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