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1

연중한 글입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94,844
추천수 :
3,231
글자수 :
205,271

작성
22.03.11 12:46
조회
1,910
추천
67
글자
17쪽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4)

DUMMY

“제가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공주 전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키마누 왕자.”


잿빛 왕좌에 앉은 칼라야 공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오른손으로 짚었다. 막내가 키마누를 먼저 찾아가서 ‘신체 접촉’을 하고, ‘교제’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것도 공개된 장소에 말이다.


‘사실상 르네린이 결혼 의사를 밝힌 셈인데.’


스물 넘도록 결혼 생각도 안하던 년이 갑자기 이 난동을 피운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대체 무슨 종류의 공주가 왕자를 찾아가서 대뜸 손부터 잡고 청혼을 한다는 말인가?


‘매우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런 일이다. 길거리 여자들이나 할 만한 짓이지! 그런데 내 동생이 그런 일을 했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내 막내동생 르네린이 바보도 아니고 그럴리가 없잖나! 그 년이 아무리 천방지 철부지라지만, 그래도 그리폰하트 왕가의 딸이란 말이다!


‘이 놈은 르네린에 어울리는 신랑감도 아냐.’


키마누가 대제국의 황태자여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무슨 쫄딱 망해서 재기도 불가능한 왕족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이지?


‘용모도 이국적이지만 평범한 수준이고.’


키도 크고 근육질의 몸이라서 한번 안겨보고 싶은 충동은 들지만, 그건 왕족 남성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소양이다. 별 이점은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고 능력이 좋아?’


알아보니 학식은 비상한 모양이지만, 싸움 실력은 평기사도 간당간당한 사내다. 멍청하고 무식해도 한 건 내조로 해결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싸움을 못하는 남자는 용납할 수 없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공주와 결혼하려면 단신으로 괴물을 쓰러뜨리는 역전의 용사는 되야지.’


라스칼을 쓰러뜨렸다지만, 늙고 노쇄하고 부상당한 몸이다. 전성기의 라스칼 같은 사내야말로 공주의 남편으로 어울리는 것이다.


‘이건 절대 인정 못하지!’


차라리 키마누를 의문사시키고 말지, 막내 동생은 절대로 내주지 못한다. 절대로! 기필코! 반드시 말이다.


‘이 놈이 신세 고쳐보려고 순진한 막내를 꼬신 게 틀림없다. 거짓말을 실토하게 만들어 아주 작살을 내주마!’


칼라야 공주는 푸른 눈을 부릅뜨며, 무릎을 꿇은 키마누를 직시했다. 키마누의 갈색 눈동자에선 굉장한 당혹스러운 표정이 느껴졌다.


‘흥. 날 속이려고 연기를 하는 군!’


칼라야는 본디 냉정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분노로 인해 판단력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녀는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묻는다.


“그대는 분명 내 동생이 먼저 그대의 손을 붙잡았다고 했소. 그 증언에는 틀림이 없는가?”

“분명 그러합니다. 칼라야 공주 전하.”

“그대의 목숨을 걸고 보장할 수 있는가?”

“제 신앙을 걸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시, 신앙?!”


칼라야는 강력한 반격에 마주해 당황했다. 명예를 걸고 보증한다니 하는 헛소리를 하면, 거짓말쟁이라고 고문실에 처넣으려 했는데······


“바, 방금 신앙에 걸고 맹세를 했소?!”

“제가 섬기는 모든 신들의 이름에 걸고 맹세합니다. 저는 르네린 공주님께 조금의 욕심도 낸 적이 없습니다!”


진짜야! 진짜라고!

이 미친 헬중세 공주들아!

난 너희가 싫어! 무서워! 저리가!


“끄으으으으응······”


칼라야는 긴 신음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헬중세에는 여러 가지 맹세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드높은 맹세는 신앙에 건 맹세였다. 이건 가장 막돼먹은 인간조차 함부로 어기지 못한다.


‘이곳 신들은 쪼잔해서 맹세를 어기면 진짜 벼락을 내리쳐서 죽이거든. 무시무시한 놈들이지.’


하지만 내가 섬기는 지구의 신들께서는 아주 관대하셔서, 믿지 않아도 살아 가는데엔 별 지장이 없다. 사후야 두렵지만 그건 그때 가서 판단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끄으으응.”


칼라야 공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앙에 걸고 맹세를 한다는데 거기에 화낼 필요는 없다. 만약 신앙에 걸고 거짓을 말했다면, 키마누 왕자의 신이 그를 알아서 벌할테니까.


‘거짓말 같지도 않아.’


자신의 감에 따르면 키마누는 지금 진실을 고하고 있었다. 그의 어조, 목소리, 당당한 태도가 모두 진실을 드러냈다.


“······일던 일어나시오. 키마누 왕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칼라야 공주 전하.”


나는 쭈뼛대면서 바닥에서 서서히 무릎을 때었다. 직감적으로 내가 사망 플래그를 피한 걸 알 수 있었다.


“저는 어찌 되는 겁니까? 공주님.”

“일단 상황부터 알아봅시다.”


칼라야는 길게 숨을 쉬어 마음을 진정시키고, 끓어오르던 마음도 가라앉혔다. 지금 마음 같아선 당장 내 목을 치고 싶겠다만.


‘칼라야 공주는 정통 왕족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늘 정확한 사리판단력을 유지하려고 하지.’


왕실 기사들에게 말했다간 뭘 해명하기도 전에 내가 토막나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공주와 단독 알현이 성사된 게 행운이었다.


“나의 그림자들아. 르네린을 데려와라.”

“명령 받들겠나이다. 주인이시여.”


칼라야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알현실 곳곳에 숨어있던 검은 인영들이 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뭘 그리 놀라시오? 키마누 왕자.”


칼라야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얄궃은 장난 같기도 하고, 위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중적인 태도였다.


“대단한 살수들을 데리고 계시군요.”

“왕족에게 칼은 많을수록 좋잖소?”

“맞는 말씀이십니다······”


한편, 칼라야는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눈 앞의 사내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막내야. 돌아오면 반드시 네가 키마누를 먼저 넘본게 아니라, 그 반대라고 말해다오. 그래야 언니가 정신이 말짱할 것 같거든.’


이 개년이 오냐오냐 놔두니까 감히 가문에 기어올라?


공주가 결혼을 하고 싶은 상대랑 하는 줄 아나! 당연히 가문에서 누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할 지 다 정해주는 거지!


‘오늘 둘 중 한 명은 뒈진다.’


말괄량이 막내 동생.

혹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왕자님.

둘 중 한 명은 자신의 분노를 맞이하리라!


* * *

칼라야 공주의 ‘그림자‘들은 현장의 실상을 확인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모든 목격자들이 이방인 왕자와 같은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거 사실대로 보고해도 괜찮겠나?’

‘거짓을 보고하고 자네가 책임 질텐가?’

‘음······막내 공주님이 안됐군.’


그림자들은 목격자들을 매수하고 위협해서 입막음을 한 뒤에, 실신한 르네린 공주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궁중 성직자를 데려와서 치유를 했다.


“내 동생이 대체 왜 기절한 건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까닭 같습니다.”


칼라야 공주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렇게 쳐다봐도 나는 해줄 대답이 없단 말이다! 내가 기절시킨 거 아니야!


그리하여 르네린 공주는 곧 정신을 차렸고.

나와 두 공주 간의 삼자 대면이 열렸다.


“사랑하는 막내야.”


칼라야 공주는 다정하게 물어오고, 르네린 공주는 앙증맞은 목소리로 답했다. 겉으로만 봐선 나이차 많이나는 자매들의 다정한 대화였다.


“네. 언니.”

“네가 길거리에서 왕자님 손을 먼저 잡았니?”

“네! 그렇게 했답니다!”


르네린 공주는 너무나 맑고 당당한 태도로 답했다. 칼라야는 물론 나조차도 순간 벙찔 정도였다.


“어째서 그렇게 했느냐?”

“아버지께서 늘 강조하신 게 있잖아요. 마음에 들면 일단 용기를 내서 쥐어보라고. 그래야만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요! 헤헤!”


어린 공주님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해맑은 표정을 지었지만, 세상 경험을 짙게 했던 공주님은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입을 연다.


“이 우라질년아. 뒈질래?”

“네, 넷?”


칼라야의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져서, 알현실에 마치 겨울이 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닥치고 구석에 짱박히는게 최선이었다.


“개쌍년이 오냐오냐해주니까 이젠 외간남자한테 가서 먼저 손을 잡고 청혼을 해? 지하감옥에 처박혀야 정신 차리지?”

“으, 어. 그, 그러면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되지. 쌍년아!”


쾅!

칼라야 공주는 팔걸이를 박력있게 내리쳤다!


“네 잘못을 알았으면 사과를······”

“제가 뭘 잘못 했는데요?”

“어디서 말대꾸야! 죽어!”

“왕자님! 살려주세요! 언니가 저 때리려들어요!”

“씨발년이 어디서 언니한테 대들어!”


품격이 넘치는 칼라야 공주는 순식간에 옥좌에서 뛰어올라 르네린에게 날라차기를 날렸다. 나도 해내기 까다로운 완벽한 묘기였다!


“켁!”

“쌍년야! 뒤져! 뒤져! 아주 그냥!”

“으앙! 그만 때려요! 언니! 잘못했어요!”

“잘못하면 왕족 생활 끝나냐!”


·········어. 역시 헬중세 여자들은 무섭다.

절대로 가깝게 지내지 말아야지.


* * *

이 대소동의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완벽히 구제를 받았다.


“내 동생의 무례에 사죄드리오. 키마누 왕자.”

“아닙니다. 어린 마음에 그럴 수도 있지요.”

“내 무례도 사과드리겠소.”

“······누, 누구나 그 상황이면 그랬을 겁니다.”

“이해해주셔서 고맙소.”


아니. 사실 이해 못하겠다. 나도 여동생이 연애하는 게 기분이 나쁘긴 했는데, 그건 좀 다른 방향으로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민증도 안 나온 년이 감히 연애를 해?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할 것이지 감히 어딜······’

‘오빠가 연애 못해서 부러운 거지?’

‘넌 오늘부터 용돈 없다.’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


나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공주들끼리 치고 받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친자매 사이가 원래 다 저렇지.


칼라야 공주는 잠깐 자리를 비우더니, 정돈된 차림으로 돌아왔다. 르네린 공주는 별실로 이송되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을 이어간다.


“키마누 왕자. 여쭙고 싶은 게 있소.”

“말씀하십시오. 칼라야 공주님.”

“어째서 르네린의 손을 마주잡지 않은거요?”


칼라야는 대단히 신기하단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의 말의 속뜻은, 르네린이 내게 호감이 있으니 그걸 이용해서 잘 꼬시면 완전히 신세를 고쳤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야 난 헬중세 공주랑 결혼하기 싫으니까.’


일개 백작 영애가 애인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목을 조른다. 그렇다면 공주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반역자가 되어서 꼬챙이형이나 사지절단이 확실하다. 헌데 그렇게 답할 순 없고.


“르네린 공주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

“그리폰하트 왕가는 망국의 왕자에 불과한 저를 손님으로 맞이해주고 계십니다. 그런 은혜를 저버릴 수는 없지요.”


칼라야 공주는 부채를 펴서 입가를 가리고, 감정을 숨겼다. 저 다혈질 공주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훌륭하다’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훌륭하긴 뭐가 훌륭하냐. 씹새들아.’


마음 맞는 사람 있으면 데이트도 좀 해보다가,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거다. 결혼하고도 정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게 맞고. 하지만 이곳 방식은 그게 아니니까.


“교제를 진행하더라도, 적합한 절차를 밟아야지요.”

“역시 왕조의 수장답게 품격을 아시는구려.”


칼라야 공주는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찬동을 표하면서, 일부러 부채를 걷어 입가의 미소를 엿보였다.


“그래서 내가 교제를 허락해준다면 어떻소?”

“예?”


날 떠보는거다. 잘못된 대답을 하면 곧장 변사체로 발견될 수 있다.


‘머리야 돌아라!’


마음에 든다면 당연히 공주를 노리는 위험인물로 간주해서 쓱싹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공주가 여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꽤씸죄로 쓱싹이다.


“귀공도 왕족 태생이시니 격은 맞는 셈이고, 라스칼 군주를 쓰러뜨려 용기도 증명하셨소. 더군다나 학식으로 유명하신 분이니 자기 여자 한 명 챙길 능력이야 되겠지.”


칼라야 공주는 방긋방긋 웃으며 말해왔고,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왕족의 세계란 이런 가식과 심리전에 능숙해져야만 하는 것인가?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답해주시오.”

“그건 제게 선택권이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내가 비겁하게 질문을 회피할 생각이오?”


칼라야의 시선에 경멸이 서린다. 저것도 진심은 아닐거다. 사람을 떠보는 하나의 테크닉인거지.


“분명 르네린 공주님께서 제게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크나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망명자이기에 격에 맞는 신부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칼라야는 재차 날카롭게 질문해온다.


“모든 공주들이 격에 맞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은 아니오. 오히려 능력 있는 데릴 사위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지. 그리 생각하면 어떻소?”


저건 칼라야 공주 본인의 이야기다.


“그래도 안됩니다.”

“가문의 비업을 이뤄야하기 때문이오?”

“르네린 공주님의 진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흐음. 동생은 그대가 좋다고 하는데?”


칼라야는 다시 부채를 펴서 입가를 가리고, 나는 마음에 품어둔 뜻의 절반 정도는 솔직하게 답했다.


“사랑이 아닌 동경심 같은 감정이겠지요.”

“············”

“낯선 사내에 대한 호기심은 르네린 공주님 또래의 여인들이 흔히 가지는 감정입니다. 그런 즉흥적인 열정으로 맺어지기엔, 왕족의 의무가 가볍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발언을 마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칼라야 공주는 처음으로 부채를 접으며, 진심을 내보인다.


“그대의 판단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요. 과연 한 왕조의 운명을 짊어진 사내라고 할 만해. 같은 왕족으로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군.”


칼라야 공주는 누그러진 시선을 보냈다. 연민과 경의가 동시에 느껴지는 태도였다.


“키마누 왕자. 그대는 왕실에 대한 신의를 지켰고, 보다 막중한 의무를 맡는데 필요한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소.”

여태까지 날 뭔가 떠봤다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나한테 라스칼을 잡은 공로로 왕궁에서 한 자리를 내준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국왕 폐하께서는 그대를 바로 중히 쓰고자 하셨지. 하지만 내가 반대했소. 용기는 증명했지만, 책임감과 신의는 증명한 적이 없었으니까.”


어쩐지 부패를 밝혀낸 일에 대한 보상이 늦더니, 이 욕심 많은 아줌마가 날 견제하고 있던 거였다. 이젠 상관 없게 된 모양이지만.


“내일 정오에 왕궁으로 오시오. 국왕 폐하께서 새 관직을 부여하실 것이고, 그대의 후견인인 대신관님께서도 참석하실 거요,”

“감사드립니다. 칼라야 공주님.”

“그러면 나는 자매간의 대화를 하러 가보겠소.”


칼라야 공주는 왕좌에서 일어나 수행기사들을 데리고 알현실을 떠나갔다. 그녀의 화난 표정을 보면 르네린 공주는 꽤 곤욕을 치를 듯 싶다.


‘근데 따져보면 그렇게 화낼 건 아니지않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데이트 신청 좀 해볼 수도 있지, 저렇게 표독스럽게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싶다. 그런 심리가 나온 건지 내 표정이 좀 어둡기는 했다.


“걱정 마시오, 키마누 왕자.”

“예?”

“내가 막내에겐 약한 편이라, 크게 혼내진 못하오. 덕분에 저런 천방지축 말괄량이로 자랐지만, 그래도 내 동생인 걸 어찌하겠소?‘

“······그렇군요.”

“그러니 크게 우려할 거 없단 이야기요.”


칼라야는 씩 웃어보이고 알현실을 떠났다. 나는 그녀가 방금까지 앉아있떤 왕좌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나랑 비슷한 또래같은데 답답하게 사네.’


서른 쯤이면 어린 나이는 아니어도, 막중한 책임지기엔 이르다. 아직 즐길 것도 많고, 인생의 쓴맛단맛을 다 본것처럼 행세하기엔 모르는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칼라야 공주는 벌써 왕국을 떠받치는 책무를 온 몸에 짊어지고 있었다. 진짜 왕족으로 살아간다는 건 저런 모습이리라.


‘평균수명이 짧으니 다들 철도 일찍 드는거지.’


열 다섯이면 성인, 스물이면 결혼 적령기 커트라인, 서른이면 완전한 어른, 마흔이면 원로가 되는 세상이다보니 나도 나이 많은 어른 행세를 하게 됐다.


낯설기는 하다만, 점차 적응해가야지.

이민자의 숙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


* * *

다음날 정오, 나는 한껏 차려입고 왕궁을 찾아왔다. 번득이는 은빛 판금 갑옷과 고급 모피코트 차림이었다.


그리고 왕실의 주요인사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칼라야 공주의 신뢰를 산게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예? 정말로 제게 그런 중책을 주신다고요?”

“놀랄 거 없네. 내가 바래서 성사된 일이니까.”


국왕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나의 □□로서 일해주길······”


이건 상상도 못했던 지위긴 한데······

고생깨나 하겠구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중한 글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키마누 왕자 후원자 명단 22.02.24 327 0 -
공지 연재시간은 매일 12:45입니다. 22.02.17 2,912 0 -
34 10. 왕의 가도(1) +28 22.03.16 1,767 53 12쪽
33 9. 사막의 여정(4) +7 22.03.15 1,415 49 16쪽
32 9. 사막의 여정(3) +4 22.03.15 1,354 49 15쪽
31 9. 사막의 여정(2) +7 22.03.14 1,448 59 15쪽
30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4 53 11쪽
29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6 52 12쪽
28 8. The King's Herald(3) +10 22.03.13 1,613 64 15쪽
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26 8. The King's Herald(1) +3 22.03.12 1,781 58 11쪽
»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4) +20 22.03.11 1,911 67 17쪽
24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3) +8 22.03.10 1,974 70 13쪽
23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2) +10 22.03.09 2,033 72 12쪽
22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1) +12 22.03.08 2,207 79 13쪽
21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6) +26 22.03.07 2,322 87 15쪽
20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5) +12 22.03.06 2,379 74 14쪽
19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4) +28 22.03.05 2,514 78 12쪽
18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3) +15 22.03.04 2,582 84 14쪽
17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2) +10 22.03.03 2,789 84 13쪽
16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1) +8 22.03.02 2,970 109 12쪽
15 5. 영웅의 탄생(2) +6 22.03.02 2,994 108 17쪽
14 5. 영웅의 탄생(1) +16 22.03.01 3,104 120 12쪽
13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4) +13 22.02.28 3,188 124 13쪽
12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3) +17 22.02.27 3,298 116 11쪽
11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2) +12 22.02.26 3,360 127 14쪽
10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1) +14 22.02.25 3,432 141 12쪽
9 3. 이계의 왕자(2) +15 22.02.25 3,476 131 10쪽
8 3. 이계의 왕자(1) +18 22.02.24 3,720 152 15쪽
7 2. 헬중세 천룡인(4) +8 22.02.23 3,739 14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