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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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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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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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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 The King's Herald(1)

DUMMY

헬중세 사회의 정점엔 왕이 존재하고, 왕의 산하에는 익히 알려진 공후백작남 구분에 따른 군주(Lord)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순히 왕의 신하를 넘어, 개별적인 영토와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반독립적인 국가의 지도자들이다.


‘나도 작위를 받아 군주가 되면 좋겠지만, 아직 이방인에게는 이른 일이지. 작위를 받으려면 공을 세우는 건 기본이고, 정치적인 지지까지 얻어야 하는 일이니까.’


따라서 내가 받을 지위는 독립적인 작위(Title)가 아닌, 궁정에 소속된 가신(Courtier)의 지위였다. 이들은 왕이 마음대로 해임하고 임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독립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가신도 모시는 이의 지위가 높다면, 해볼만한 자리다. 삼성전자 이사가 중소기업 사장보다 대우가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키마누. 짐의 전령사로 일해주게.”

“전령사요?”

“그래! 난 자네가 마음에 들거든!”


국왕은 무슨 대단한 자리를 맡기는 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솔직히 실망했다. 전령사라면 단순히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포고꾼이 아닌가?


“키마누. 짐은 전령을 단순히 서신을 나르는 파발로 여기지 않네. 잘 들어보게나.”


내 실망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인지,엘다니온 국왕은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전령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돌직구를 던졌다.


“나의 눈과 귀이자, 대리인이지.”


엘다니온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진중한 시선을 보냈다.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들었다.


“짐은 전령사 직위를 가장 신뢰하는 이들에게만 맡긴다네. 키마누 왕자.”


엘다니온 국왕은 차분히 전령의 역할과 권한, 위신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해주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뒤에는, 확실히 내가 막중한 자리에 앉게 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에선 그냥 서신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나와서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이곳에선 일종의 어사(御史)와 같은 역할이군.’


전령의 역할은 왕의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왕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것까지만 보면 중요하지 않는 직위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헬중세는 교통과 통신이 지극히 낙후된 세상이다. 정보 획득과 전달은 극히 어렵고, 행정 체계도 미비해서 왕의 의지를 실행시키긴 더 어렵다.


예를 들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마을의 유력자가 사교도라는 정보를 확보한다면, 국왕은 즉각 체포나 추살 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명령을 알리려고 전령이 파견되는데, 외진 마을에 가려면 산적이 들끓는 도로를 지나고, 몬스터가 사는 산을 넘어야한다.


온갖 고생 끝에 전령이 마을에 도착해서 명령서를 내민들, 끈끈한 현지인들이 ‘국왕 폐하의 명이시니 우리마을 어르신을 체포하겠소’라고 순순히 답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즉, 전령이 왕의 명령을 전달하기도 힘들고, 전달해도 실현된다는 보장도 없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알아서 대처해야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왕의 전령은 메신저보다는 ‘국왕의 대리인’에 가까운 자리가 된다. 전령사 를 무력, 지력, 판단력, 충성심을 겸비한 인재에게만 맡기는 이유다······라고 하신다만.


‘듣고 보니까 하기 싫어지는데?’


바꿔말하면 상시적으로 위협에 노출되고, 늘 바삐 움직여야 하는데, 믿을 것은 일신의 능력뿐이란 소리다. 이런 3D 직업이라면 사양이다.


그냥 안전한 꿀보직이나 받고 싶다!


“키마누 왕자. 짐의 전령이 되어주겠나?”

“·········폐하를 섬기게 되어 영광입니다만.”

“할 말이 있다면 당당하게 하게나!”

“전령사는 국왕 폐하의 대리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방인 출신의 이교도에 불과하기에 이런 중책을 맡을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슈르테툼 왕국은 성지 위에 세워진 특수한 국가이며, 국가의 구심점은 『무적의 태양』에 대한 숭배에 근간이 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치면 외국인을 방첩기관에 임명하는 셈이니,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궁중 가신들도 저마다 내 말에 찬동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키마누 왕자께서 옳은 이야기를 했다느니, 과연 분별력이 있으신 분이냐니 하는 칭찬과 함께 말이다.


본심은 요직에 자기네 일파가 아닌 사람이 앉는 게 배가 아픈 것이겠지만, 어찌됐든 목적이 같다면 지금은 한 편이다!


‘후후. 여론이 반대하는데 타당한 명분까지 있따면 아무리 국왕이어도 강행하기 어렵지.’


물론 엘다니온 왕의 권위는 절대적이라 작정하고 강행하면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성격상, 그렇게 하진 못할 것이다.


“크흠. 그것도 일리는 있군. 울리히!”

“명령하십시오. 국왕 폐하.”

“자네는 이번 안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래도 나는 키마누보다 짐의 대리인 자격이 어울리는 사내가 없다고 생각하네만.”


역시 국왕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뒤편에 있던 왕실집사 할아범을 불렀다. 그는 늘 냉정한 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기 어려웠다.


“우선 본인의 의향부터 확인해야겠지요.”

“그래! 자네가 전령사가 하기 싫은건가?”


당연히 싫다! 조선시대에도 암행어사가 듣기엔 멋있어도, 실제론 위험하고 어려운 관직이었단 말이다. 권력은 조금 적어도 수도에서 꿀 빠는 자리가 훨씬 낫다. 하지만 왕자가 그리 말할 순 없는 노릇.


나는 등을 쫙 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명예에 맹세코 말하건데, 이곳에서 나보다 국왕 폐하의 대리인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이는 없을거요. 하지만.”


일부러 고개를 돌려서 궁중 신료들을 뜸을 들였다. 역시나 그들은 발언을 계속하라고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교도 망명자가 전령사가 되면 필히 우슈르테툼인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소.”

“그러면 개종하실 의향은 없습니까?”

“언젠가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나는 아직 『무적의 태양』의 존엄함에 대해 배운 바가 없소.”

“흐음. 키마누 왕자님께서 개종이 어려우시다면 확실히 전령사 자리는 어렵겠습니다. 폐하.”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국왕은 한숨을 내쉬었고, 집사는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서 내밀었다. 펼쳐보니 다양한 요직이 적혀있었다.


“이 중에서 골라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음. 이런 자리라면 내게도 어울리겠지.”


집사가 제안한 자리는 시종장이나 재무장관, 수석감찰관처럼 현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도의 행정능력을 요하는 요직이었다.


역시 집사가 눈치가 빠르다. 가장 일은 적게 하고 떡고물이 몰리는 자리로 가자. 역시 헬중세에서 내 강점은 뇌지컬이지!


“내 그릇에는 재무장관 정도가······”

“후후. 그건 당신께 너무 작은 자리겠지요.”

““대신관 성하를 뵙나이다!””

“?!!?”


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궁중가신들의 행렬이 양 옆으로 쭉 갈라지더니, 번득이는 후광을 내뿜는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잿빛 머리칼은 몇 초에 한 번씩 태양빛으로 번득였고, 그 때마다 허리춤에 찬 장검과 두텁고 헤진 성서도 함께 빛을 발했다.


두 눈을 가리는 검은색 안대와 아름다운 자태가 한층의 신비감을 더하자, 대신관의 존재감은 왕의 홀 전체를 덮어버렸다. 오직 가장 뛰어난 몇몇만이 스스로의 색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관 성하를 뵙습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왕족들도 재빨리 고개를 숙였고, 국왕조차 목례를 보냈다. 그러나 대신관은 모든 인사를 아랑곳 하지않고, 오직 내게만 시선을 보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방의 망명자여.”

“대신관 성하를 뵙습니다.”


나 역시 일단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겐 빚진 것도 있거니와, 진짜로 머리에서 후광을 내뿜는 성녀 앞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니까.


“헌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조용히 지켜보다 떠날 생각이었지만,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 나서게 되었답니다. 후후.”


아니, 괜찮은데요. 도움 필요 없는데······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었단 말입니다!


대신관은 무릎을 꿇은 궁중 가신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성녀가 보내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무적의 태양을 뜻을 전하는 전령사로서 축복받은 우슈르테툼 왕국에 고합니다. 망명객 키마누는 신성한 불꽃의 뜻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에 대해 의심하지 말아주십시오.”


대신관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궁중 가신들은 움츠려들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국왕은 이 광경에 씩 웃어보였다.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군! 키마누, 이제는 전령사가 되어 방방곳곳에 짐의 정의를 전하는데 문제가 없겠지? 하하하하!”


거구의 국왕은 호쾌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툼한 아귀힘에 뼛 속까지 시려오는 기분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국왕 폐하.”

“좋아. 키마누가 왕의 전령사로서 부적격하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지금 앞으로 나오라! 짐과 칼로서 결판을 보자!”


세계 최강의 기사랑 감히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기에 모두 입을 다문다. 허나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듯, 왕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하늘로 치켜세운다!


““우리의 주군이신 국왕 폐하와 그분의 전령이신 키마누 왕자님께 영광을!””


이에 다른 가신들도 울며겨자먹기로 함께 칼을 뽑으면서 내 이름을 연호했다. 새로운 왕의 전령을 축하한다느니, 태양신께서 함께 하실 것이니 하는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들이었다.


‘배신자 새끼들······끝까지 반대했어야지!’


나는 체념의 한숨을 쉬었고, 국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인준 절차가 훌륭하게 끝났군.”


나는 원망을 담아 국왕을 노려보았다. 이 바보 아저씨는 내가 좀 째려봐도 둔해서 모를테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씨익.


갑자기 뒤틀린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네, 막내의 손을 붙잡았다면서?’

‘······제가 먼저 잡은 게 아닙니다만.’

‘경위는 중요치 않아. 내 딸의 손을 붙잡았다면, 안락한 과거와는 이별해야할 뿐이지!’


폐하.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 * *

형식적인 임명 절차가 끝난 뒤, 나는 왕실 기사들에게 붙들려 거대한 영묘로 끌려갔다. 장소에 도착하니 국왕과 대신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방의 망명객이여.”

“······대신관님. 일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 안대를 신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따지고보면 나의 헬중세 생활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근위대에 입대시켜준 것도 대신관이었고.

왕의 전령이 되게 만든 것도 대신관이다.

······그냥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겠지.


“제가 기다리던 날이 왔을 뿐이랍니다.”

”이 상황을 예견하셨다는 뜻입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대신관은 수수께끼같은 대답을 던지며, 질문에 긴 대답을 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태양의 성검부터 시작되었다. 한때 라스칼이 지니고 있었고, 지금은 내 허리춤에 꽂혀있는 마법검 말이다.


요지는, 성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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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 사막의 여정(3) +4 22.03.15 1,354 49 15쪽
31 9. 사막의 여정(2) +7 22.03.14 1,448 59 15쪽
30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3 53 11쪽
29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6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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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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