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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한 글입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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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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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3)

DUMMY

나는 협상을 마치고 기분 좋게 대장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케드란이 시설 확충 및 인력 확충 방안은 마련해 놨을 것이다.


‘자금만 전달해주면 내 역할은 끝이지.’


이후엔 경영 일선에선 완전히 물러나서, 중대 사안에만 개입 할 것이다. 처음엔 경영자로 참가하는 방안도 고려해봤지만, 케드란과 대화를 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케드란이 현장 돌아가는 모습은 물론이고, 사업 구상하는 능력도 나보다 뛰어나다. 나는 자금만 모아오고 투자만 하면 된다.’


이것만 해도 일단 내 몫은 해낸 것이다. 『키마누 왕자』라는 IP는 홍보 효과나 신뢰도 상승 효과도 컸다. 무엇보다 이름값 덕분에 헬중세에서 장사를 하는데 따르는, 공연한 시비에 휘말릴 일은 없도 없을 것이다.


‘품위 유지비는 대장간 수익금이면 충분히 매꿀 수 있겠어. 저택도 개보수하고, 고용인들도 마련하고, 이런 걸 총괄할 집사도 필요하겠군.’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던 와중.


“키마누 왕자님?”


옆에서 난데없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왕자님 맞으시죠?”


물끄러미 고개를 돌리자, 매우 귀티나는 여인이 샤방샤방 걸어오고 있었다. 샤랄라한 드레스와 구김 없는 해맑은 미소로 미뤄볼 때, 굉장한 상류층 출신이었다.


‘돈은 엄청나게 많고, 크면서도 뭐든 부족함 없이 자랐군. 명문가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고위 귀족이다.’


헬중세 길거리는 아가씨 혼자 산책할만한 장소는 아니니, 근접 경호원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잠복 경호원도 보이지 않는다.


“왕자니-임?”

“비취왕자 키마누입니다. 숙녀분께서는?”

“으음. 저, 저는. 일단 비밀로 할 게요!”


이 순백의 아가씨는 해바라기처럼 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순진한 어린 아이의 표정이지만·, 내 직감은 불길한 경고를 전해왔다.


‘굉장히 위험한 상대다.’


모든 정황이 너무나 수상했다. 귀족 영애가 수행원도 없이 헬중세 길거리를 혼자 걷는데, 푸른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신변의 안전에 대한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헬중세 길거리에선 늘 긴장하는데.’


괜히 수도 치안유지에 근위대를 투입하는 게 아니다. 소매치기는 당하면 자기 책임이고, 강도들은 대놓고 석궁부터 갈긴다. 치안이 무너진 중남미 대도시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여길 해맑게 걸어다녀?’


그렇다면 다수에게 기습당해도 개의치 않을 수준의 대단한 강자거나, 누군가 자신에게 ‘적의’를 지닌다는 것 자체가 낯선 온실 속 화초던가.


그 때.

덥썩!


이 아가씨가 내 양손을 꽉 붙잡고 끌어모았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야!


“키마누 왕자님!”

“이건 놓고 이야기하시죠! 남들이 보면······”

“저랑 만나보지 않으실래요?”

“네?”

“밀회라고 하던가, 연애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거 있잖아요. 결혼 서약은 안했지만 서로 애정을 지니고 있는 관계요!”


나는 순식간에 생각의 흐름이 멈췄다.

지금 이 여자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가볍게, 부담 없이, 일단 만나보는거요!”

“이, 일단 이거 놓고 이야기하시죠!”

“네? 왜요?”

“남들이 보면 오해하잖습니까!”

“오해해도 저는 괜찮은데요!”

“제가 안 괜찮습니다!”


나는 황급히 이 아가씨의 손을 때어냈지만, 그녀의 손목힘이 꽤 세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어야만 했다.


“여자 손 잡는 게 쑥스러우신가봐요?”

“아니, 그게 말입니다.”

“전 당연히 왕자님이 연애 경험도 많이 있으시고, 오는 여자 막을 스타일도 아닐 줄 알았는데요. 헤에.”

“그게요. 아가씨. 일단 좀 떨어져서······”


그녀는 내 눈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서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냈다. 갈색 머리칼을 찰랑이고, 구슬만한 푸른 눈동자을 굴려대는 미녀가, 가장 한창인 시기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그냥 좋다고 해?’


거의 열 살 차이나는 이국적인 미녀가 들이대는데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남자는 없다. 그냥 눈 딱 감고 받아들이면 좋지, 좋은데 말이다.


‘정신 차려. 김현우.’


직감이 무지막지한 경고를 전하고 있었다. 이곳은 헬중세의 우슈르테툼 왕국이다. 미소녀가 좋다고 따라갔다가 진짜 좆되는 수가 있다.


‘나는 키마누 왕자다. 심호흡하고, 침착해.’


후우욱.

숨을 깊게 들이쉬고 제 6감에 의존한다.

느려진 시간 감각 속에서 차분히 생각한다.


‘이거 대체 뭐하는 상황이야?’


매우 대단한 집안의 연하녀가 내게 먼저 대쉬를 해왔다. 현대라면 충분히 가능할 법한······


‘아니. 현대여도 말은 안 되지.’


하지만 현대에서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나한테 있지만, 이번에 말이 안 되는 이유는 저쪽한테 있다. 내가 BTS 외모였어도, 헬중세에선 저럴 수 있는 고관대작집 따님은 없다.


‘밀회를 하고 싶으면 은근히 유혹을 하던가, 메시지를 남기던가 하는 식이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그것도 한 번 만나보자고?

무슨 미풍양속과 상식을 파괴하는 소린가?


‘당연히 이성교제는 결혼 전제로 하는 거지.’


헬중세에도 밀회를 즐기는 청춘들은 많지만, 현대처럼 만나보고 아니면 헤어지면 그만이란 개념은 아니다. 잠재적인 배우자 평가에 가깝다.


하물며 저런 높으신 집안의 딸이라면, 행동을 극도로 조심한다. 구설수에 오르는 것 자체가 결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근데 데이트를 한 번 해보자구요? 아가씨?’


이건 어지간한 고위귀족 자제도 대놓고 말했다간 사회적 지탄을 받고 매장당한다.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자유연애하는 소리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진짜로 생겼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면, 상식 바깥 범주의 사람이 개입한 것이다. 만약 저 여자가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지위라면?


잘못을 해도 주변이 모두 입을 닫는다면?

행색과 무관하게 시집을 갈 수 있다면?


‘귀족이 천룡인이라도 그게 말이 되나?’


천룡인 중의 천룡인이면 말이 된다. 이 여자는 말이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수 있고, 상식조차 뒤틀어버릴 수 있는 신분이다.


‘하하. 좆됐네.’


공주의 손을 잡아버렸다. 씨발.

그것도 국왕이 제일 아낀다는 막내공주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쥐뿔도 없는 거지를 데려와서 살게 하고, 등용도 해줬더니 내가 가장 아끼는 딸을 넘봤다라.’


최소 궁형, 최대 참형이다.

머리야 돌아라! 키마누! 넌 할 수 있어!


‘지금이라도 우슈르테툼을 떠나?“


아니, 그러면 추적당해서 죽는다.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 뿐이다

왕에게 직접 사실을 고하고 오해를 푸는 것!

제 6감을 종료한다.


“키마누 왕자님! 사실 좋으시죠?‘


르네린 공주는 내 팔짱을 끼면서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난데없는 길거리 애정행각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네. 좋습니다. 공주님.”


좋다 못해서 아주 기뻐서 환장하겠다.

기뻐서 소리 질렀겠지! 뒈질 각만 아니면.


“그럼 저랑 만나주시기로 한 거죠?!”

“물론입니다. 그러니 잠깐 뒤돌아서 있으세요.”

“네? 왜요?”

“제가 공주님께 드릴 깜짝 선물이 있습니다.”

“어머어머. 벌써 선물이요? 어떻게?!”

“망국의 왕자면 그정도 센스는 기본이죠.”


나는 해탈한 심정으로 미소를 지었고, 르네린은 눈망울을 반짝이고, 팔짱을 풀고 돌아섰다.


“눈 감고 100을 세시면 됩니다. 공주님.”

“헐. 100이나요?”

“절대 눈을 뜨시면 안됩니다. 절대로요.”

“으음. 대단한 거 준비하셨구나. 기대할게요.”

“자, 지금부터 차근차근 100을 세세요.”

“네! 왕자님!”

“100, 99, 98.. 직접 세십시오!”

“97, 96, 95...”


르네린 공주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올라 눈을 감고 숫자를 새어나갔다. 과연 왕자님은 어떤 선물을 준비해주셨을까?


‘자금 사정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 대업에 방해되는 철부지가 되긴 싫단 말이야.’


르네린 공주는 언제나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슈르테툼의 젊은 귀족들 가운데는 그럴 재목이 전혀 없었다. 다들 열심히는 하는데, 그녀가 볼 땐 그래봐야 위대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있는 상속자들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개척자셨지!’


아버지께서는 무명의 기사에서 시작해, 인간 세력 중 제일 가는 나라를 건국했다. 자신이 바라는 사람도 그런 사내다. 빈 손으로 출발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혼인 적령기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결혼을 미뤘고, 그 때 눈 앞에 이국의 왕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저 분이야!’


키마누가 라스칼을 쓰러뜨린 순간, 그녀는 기다리던 짝이 찾아온 것을 직감했다. 모든 면에서 자신과 딱 들어맞는 왕자님이었다.


‘저 분은 스스로 증명하셨어. 단순히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왕조를 일으켜세울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으시다는 걸!’


찾아보면 부족한 점이야 여럿 있지만, 그런 거야 자신이 내조를 잘해서 채워넣으면 된다. 지금이 아니면 아버지와 같은 남자는 만나지 못할것이다. 스물이 넘었으니 혼인도 서둘러야한다. 그러니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5,4,3,2,1. 눈 뜰게요!”


휑-!

그녀의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키마누 왕자님?”


어디 가셨지?


“키마누 왕자니이임-!”


선물을 들고 기다리는 왕자는 없고.

볼폼 없는 빈민 청년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 막내공주님 맞지유?”

“네! 어쩐 일이시죠?‘

“소문대로 엄청 이쁘시네유!”

“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왕자님은요?”

“아! 맞다! 그게 말이주······”


빈민 청년은 우물쭈물거렸다.


“왕자님은 도망치셨는데유.”

“도, 도망이요?!”

“쫓아오지 말라고 하시던데유.”


르네린 공주는 온 몸에서 힘이 풀렸다. 망연자실하게 왕자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왕자님이 나를 차, 차셨어.”


풀썩!


“공주님! 막내 공주니이이임-!”


쓰러진 자신을 보며 허겁지겁 모여드는 빈민.

공주가 의식을 잃기전에 본 마지막 풍경이었다.


* * *

나는 공주가 멈춰있는 동안, 온 힘을 다해 왕궁으로 뛰어갔다. 평생 이렇게 빨리 달려본 적이 없을 정도다.


“키마누 왕자? 왕궁엔 무슨 일이시오?”

“알현! 알현을 해야합니다!”

“흐음. 알현을 원하다면 사전에 일정을······”

“막내 공주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르, 르네린 공주님께 무슨 문제라도?!”

“어떤 개잡놈이 공주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궁성을 지키는 왕실 기사들의 눈빛에 굉장한 살의가 깃들었다. 이들은 모두 르네린 공주를 지켜줘야한다고 믿는 기사도 광신자들이었으니까!


“무어라?!!?!!?!!?!”

“어떤 개자식이 감히?!?!?!”

“당장 사지를 토막내버리겠다!!!!!”

“키마누 왕자! 당장 그놈에게 안내하시오!!”


살기 어린 왕실 기사들의 모습은 키마누마저 질겁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지금 드래곤이 나타나도 창 한자루 꼬나쥐고 돌격할 태세였다.


‘시발. 손 한 번 잡았다고 존나 호들갑이네.’


그것도 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것도 아니고, 공주 때문에 강제로 잡은 거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봐야 변명하기도 전에 찢겨죽겠지.


“그건 알현실에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장 말씀하시면 우리가 가서 놈을 박살을!”

“잠깐.”


혈기에 넘치는 어린 왕실기사를 제지한 사람은, 왕실기사단장인 로드릭이었다. 그는 완숙한 사내답게 흥분한 와중에도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해냈다.


“이번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

“······확실히 그렇군요. 자칫하면 공주님의 명예에 누가 되었겠습니다. 키마누 왕자님께선 역시 현명하십니다.”


다른 왕실기사들은 단장의 말에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제히 칼을 뽑아들어 하늘을 겨누었다!


츠릉!


수십 명의 기사가 모였지만.

발검은 오직 한 번!


““우리는 엄숙히 선서한다. 르네린 공주님의 명예에 누가 될 이야기를 결코 누설하지 않으리라. 허나!””


기사들의 엄숙한 함성이 일대를 뒤덮었다.


““누군가 자격 없는 자가 르네린 공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면, 왕실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합당한 징벌을 내릴 것을 결의하노라!””


·········그리고, 키마누 왕자는 그 풍경을 보면서 온 몸이 굳어버렸다 왕실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셨구려?”

“키마누 왕자께서도 공주님의 명예를 더럽힌 자가 있으니 분개하신 것이지! 서둘러 알현실로 뫼셔라! 지금 당장!”

““예! 기사단장!””


그만 둬.

기사도 덕후새끼들아.

제발 그만두란 말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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