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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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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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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 사막의 여정(1)

DUMMY

상자를 열자, 번쩍이는 판금갑옷 세트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매끄러운 강철이 눈을 시선을 잡아당겼다.


“오리하르콘 갑옷이냐? 아니면 아다만티움?”

“형님 전재산 팔아도 주괴 하나 못 만들어요.”

“그럼 뭔데?”

“스탈렌이라는 건데, 강철보다 튼튼하지만, 무게는 가벼워요. 이번에 하급 귀족들과 평기사들에게 판매 준비중인 제품입니다.”


녀석의 도움을 받아서 입어보니, 확실히 평범한 갑옷보다 가볍고 튼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적인 변화까지는 없고, 그냥 편한 정도다.


“미스릴 같은 건가보네?”

“그거 하위 호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너 이거 선물이 아니라 홍보샘플이지?”

“예산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뻔뻔히 어깨를 으쓱이는 땅딸보 놈을 보니 은근히 열받았다. 라우란 남작이 놈의 돈을 때먹은 심정도 이해가 갔다.


아무튼 공짜로 갑옷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신관이 날 부르더니 은도금이 된 검집을 주었다.


“태양의 기사를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

“실례지만 칼집에 무슨 기능이 있습니까?”

“제 개인적인 선물이라 대단한 힘은 없습니다. 그저 부정한 존재가 다가오면 경고해주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어도 왠만하면 죽지 않게 해줄 뿐입니다.”

“······충분히 대단한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사실 ‘심각한 부상’이나 ‘왠만하면 죽지 않는다’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받고 싶었으나, 신의 전령사란 사람에게 너무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묵묵히 받았다.


“제 축복과 함께 가십시오. 왕의 전령사여.”

“언젠가 빚을 갚을 기회가 있길 바라지요.”

“이방인이여. 당신은 제게 빚진 게 없답니다.”


태양의 힘을 머금은 성검과 마법걸린 칼집, 좋은 갑옷과 적당한 재산까지 갖춰졌다. 명마 한 마리만 있으면 딱이라서 구매를 알아봤는데, 가격표를 보자마자 관두고 승용마나 한 마리 샀다.


‘말은 좋은 거 타고 싶었는데, 아쉽네.’


군마가 외제차 가격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어떻게 해보겠다만, 군마는 외제차가 아니라 전투기 가격이다. 작정하고 구입하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쩝. 말은 다음 기회에 마련하자.’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왕궁을 찾아가자, 칼라야 공주와 울리히 집사가 날 맞이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국왕 폐하가 정무감각이 없기에 실질적인 통치는 장녀인 칼라야 공주가 하고 있다.


“어서 오시오. 키마누 왕자.”

“그래서 제가 파견될 곳은 어디입니까?‘

“왕국의 북서부, 칼바람해안이오.”


집사 울리히는 내게 걸어와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공손히 두루마리 서신을 내밀었다. 서신을 펼쳐보니 지역 행정관의 첩보가 있었다.


“북서부 해안에, 인신공양을 하는 사교도들이 출몰했다는 소문이 돌아 지역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요?”


나는 말꼬리를 올려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을 통치하는 행정관이 보낸 것치고는 내용이 너무 부실했다.


지역 주민들이 공포에 떤다는 건 알겠다. 그것만으론 제대로 된 첩보가 아니다. 인신공양을 하는 사교도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소문이 도는지를 알려야한다.


“자네가 보기에도 이상하지?”

“그렇습니다. 칼라야 공주님.”

“그런데 행정관도 소문은 파다한데 어떤 증거도 잡히질 않는다고 하더군. 그래서 우리가 직접 모험가들을 고용해서 파견해봤지만, 그들도 도중에 연락이 끊겨버렸어.”


그렇다면 확실히 왕의 사자가 특명을 띄고 출발할 만한 사건이 맞다. 북서부 칼바람해안, 그곳이 내가 처음으로 가야 할 장소였다.


“임무 내용은 어떻게 됩니까?”

“진상을 파악하고 재량껏 처리하게.”

“재량껏.이군요. 알겠습니다.”

“왕의 사자는 왕실의 대리인임을 명심하게.”


칼라야 공주는 오른손에 끼고 있던 여러 개의 반지 중 하나를 빼어 시녀에게 건넸다. 시녀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반지를 건넸다. 황금 그리폰이 조각된 금반지였다.


“신원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게.”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벌써 말인가? 다른 질문은 없나?”

“어차피 여기선 알 수 없는 건이니까요.”

“역시 결단이 빠른 사내로군.”


칼라야 공주는 웃음을 지으며, 부채로 입을 가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빠르게 알현실을 걸어나갔다. 등 뒤로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더군.


“왕실마굿간에서 말 한 필을 골라가게.”

“······왕실마굿간에서요?”

“동생이 자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더군. 불필요하다면 거절해도 좋네. 자네가 정할 일이니까.”


칼라야는 어깨를 으쓱였고,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전투기 가격의 자가용이 생긴다니 기쁘긴 한데, 이게 정말로 공짜냐고 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잘못하다간 막내공주에게 코 꿰이겠는데.’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멋진 말이 필요하다. 특히 처음으로 떠나는 임무인 만큼, 좋은 자가용을 타고 가고 싶었다. 미래의 문제는 미래의 내가 해결해줄 것이다.


“선물은 감사히 받겠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 전하겠네. 르네린이 좋아하겠군.”


칼라야 공주의 표정이 왠지 서늘했다.


* * *

내가 왕실 마굿간에서 고른 말은 날쌔보이는 백마였다. 건드려도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성격을 보고 골랐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화이트다.”

“히히힝?”

“히힝이라고 바꾸게 전에 만족하자.”

“히힝······”

“히힝이가 좋다고? 가자. 히힝아!”

“히히히히히히히히힝!”


녀석도 히힝이는 싫은지 가지 않겠다고 결사적으로 버텨서, 결국 화이트로 다시 개명을 해주는 귀찮은 일을 했다. 탈 것이 귀찮게 손이 많이 간다.


“이제 말 잘 듣자. 화이트.”

“힝!”

“옳지. 가자!”


내가 히힝이의 허벅지를 걷어차자, 녀석은 수도의 대로를 따라 질주했다. 은빛 갑옷을 입고 보검을 찬, 백마 탄 왕자의 출현에 수도 시민들이 환호를 보냈다.


“키마누 왕자님이시다!”

“이제는 진짜 왕자님 같은 걸!”

“뭘 하든 힘내십시오! 키마누 왕자님!”

“저희는 왕자님을 응원합니다!”


내가 수도를 떠난다는 소식이 퍼지자, 하룬이 제 1소대의 전우들을 데치고 도착했다. 이비도 함께였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그사이에 못 알아보게 달라졌구만.”


하룬은 근위대장다운 품위를 갖추었고, 이비의 표정은 화목한 부잣집 딸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제 1소대 전우들은 살이 토실토실 올라와있었다.


“·········너희는 왜 돼지가 됐냐?”

“헤헤. 다 왕자님 덕분입죠.”

“그런 몸으로 군인 할 수 있겠어?”

“저희는 이미 은퇴했습니다!”


······저 새끼들, 내가 라스칼과 결투할 때 집문서 결고 도박해서 상금을 따갔었지. 한창 일할 나이에 파이어족이라니 부럽다. 나도 은퇴하고 싶다.


“그럼 다녀와서 보지. 친구들.”

“왕자님의 무용담이 들려오길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이비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녀도 씩씩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들을 지나쳐 말을 달리는데, 대로에 모인 뒷골목 사람들이 보였다.


“눈에 띄기도 꺼리는 놈들이 왠 일이람?”

“키마누 왕자님께선 누구도 돕지 않는 저희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왕자님의 행동에 저희도 용기를 얻었기에 감사를 드리러 나왔습니다.”

“흐음.”


녀석들이 내 행동에 이렇게 화답해준다면, 나도 더 도와줄 방법을 찾을 의욕이 생긴다. 하지만 당장은 내 임무가 우선이니까.


“용기만 있다고 가난을 해결할 순 없다.”

“·········”

“하지만 용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지. 내가 귀환할 때까지 더러운 사업은 정리해놔라. 그러면 다른 살 길을 찾아주마.”

“그, 그건······”

“잘 생각해보도록! 이랴!”


나는 다시 화이트의 허벅지를 걷어찼고, 근위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성문 지역을 떠났다. 내가 성문을 통과하자, 도개교가 다시 올라가고 성문이 닫힌다.


“······씁.”


드높은 성벽이 지켜주는 도시를 떠나게 된 나를 맞이해준 것은 드넓은 황야였다. 서쪽으로는 한없이 넓은 바다가, 동쪽으로는 열사의 사막이 보인다. 내가 가야할 북쪽에는 도로가 있지만, 거칠고 위험한 황무지다.


“저곳으로 홀로 다녀와야 한다는 말이지.”


내가 헬중세에 떨어져 누린 행운이 있다면, 성벽 안에서 리스폰이 되었던 점이다. 성벽 안에서는 최소한의 질서도 유지 되고, 잠자다가 몬스터에게 잡혀갈 염려도 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지금까진 살만한 헬중세였지.”


한숨부터 나오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곳이 살만한 장소였다면, 이 드넓은 지평선 너머엔 무슨 위험이 날 기다릴지 감도 오지 않는다.


“히히히힝!”

“겁 먹었냐고?”

“히힝!”

“그럴리가 있냐!”


그러나 우슈르테툼은 용기 있는 자들의 땅.

싸움이 두려워 도망치는 건 용납 받지 못한다!


“이랴!”


나는 북방을 향해 말을 달렸다!


* * *

대체 우슈르테툼을 두고 “축복받은 왕국”이라고 이름을 붙인 새끼가 누군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여긴 “저주받은 왕국”이다.


“안 그러냐? 화이트?”

“푸히히히히힝!”


화이트도 서럽게 울어서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기세좋게 북방으로 향하던 우리는 해가 지자마자, 텐트안에서 냉동참치가 되고 있다.


“시발. 개춥네. 개추워. 개춥다고.”

“푸힝! 푸힝! 푸히히힝!”


막사 안에 힘겹게 모닥불을 피워놔도 강풍이 불어와 불을 꺼뜨렸다. 사막의 밤은 너무나 춥고 가혹해서 이대로면 노상에서 얼어죽을 판이었다.


‘동방의 왕자 키마누, 왕의 사자가 되어 북부로 파견되던 도중에 얼어죽다. 케드란이 이걸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케드란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사흘밤낮을 눈물로 지새울 것이다. 자기가 떼돈 벌 기회가 사라졌다면서 말이다.


‘내가 그 꼴은 못 보지!’


나는 롱소드 모습의 아스칼론을 뽑아 땔감이 모아둔 모래바닥 위에 내리꽂았다.


“태양의 불꽃이여! 피어올라라!”


내가 외침을 지르자 함께, 성검이 주인의 부름에 응해 칼끝에서 성스러운 불꽃을 지폈다. 텐트 사이로 스며드는 사막의 바람도, 성스러운 화염을 꺼뜨리지는 못했다.


“야! 빨리 붙어! 너 죽으면 걸어가야 돼!”

“히히히힝!”


우리는 아스칼론에 가까이 다가가, 추위로 얼어버린 몸을 녹였다. 성염의 열기에 힘입어 몸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살만하구만.”

“히힝!”


추위가 가시자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육포를 먹고, 화이트에겐 건초를 줬다. 이제 몸도 따스하고 배도 부르니 졸음이 몰려왔다.


“냐함. 한숨 자고 볼까······”

“푸힝!”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기대어 체온을 유지하며 노곤한 몸을 달랬다. 태양신의 축복을 받았으니 기후쯤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무슨 통뼈가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꾸벅.

꾸벅.

깊은 수면에 들기 직전!


펄럭!


“!”


누군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즉각 몸을 일으키며 땅바닥에 박아둔 아스칼론을 뽑아서 적들을 겨냥했다!


“누구냐! 침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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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 사막의 여정(3) +4 22.03.15 1,354 49 15쪽
31 9. 사막의 여정(2) +7 22.03.14 1,448 59 15쪽
»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4 53 11쪽
29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6 52 12쪽
28 8. The King's Herald(3) +10 22.03.13 1,613 64 15쪽
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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