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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용사
작품등록일 :
2022.02.17 13:58
최근연재일 :
2022.03.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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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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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4)

DUMMY

싸움은 원펀치 한번으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라우렌 남작이 쓰러지자, 나머지 인원은 싸울 의욕이 전혀 없어진 것이다.


“호오! 아주 훌륭한 공격이었다! 왕자!”


야만인 경호대는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운 뒤에 일을 수수방관했다. 야만전사들에게 ‘고용주’란 보호세를 내는 사람일 뿐이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싸워주지 않는다.


한편, 뒤늦게 나타난 병사들의 경우엔 처음부터 전투 의지가 없었다. 녀석들이 힘을 합쳐 날 공격해왔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만······


“키마누 왕자님이 때린거면 이유가 있겠지.”

“남작님도 귀족인데 구린 거 있을 거 아냐?”

“나쁜 짓하다가 두들겨맞았으니 쌤통이지.”


평민들 사이에선 내가 인기스타인 모양이다. 한편, 기사장이라도 반발할 줄 알았는데 그 아저씨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더라.


“저는 왕자님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나야 좋지만, 기사가 그래도 되나?”

“남작은 기사들의 충언이 듣기 싫다고 야만인들에게 호위를 맡긴 철부지입니다. 그런 주군을 위해 뭐하러 왕자님과 싸우겠습니까?”


멍청한 주군은 어찌 되든 내 알바 아니라는 기사의 태도에선, 한 점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헬중세인들은 주종 관계도 일종의 거래로 보는 까닭이었다.


‘헬중세의 기사들의 충성 서약은 유교적 충의와는 완전히 다르지. 주군이 자신을 인정해주면 따르지만, 주군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자신도 마음을 다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헬중세의 모든 관계는 계약의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내가 하나를 내줬다면 너도 하나를 내줘야한다. 이걸 해낼 수 없다면 관계는 끝이다.


‘정이 부족하지만 합리적이긴 하지.’


아무튼 저항이 일소됐으니, 본격적인 대화를 해볼 시간이었다. 한 대 두들겨놨으니 협상에선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이다.


* * *

“으헉!”

“인마. 일어나.”


남작의 머리에 물을 끼얹어서 깨웠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날 감히─”

“여기가 어딘데? 잘 몰라서 말이야.”

“여긴 위대한 라우렌 가문의 저택이다! 그런데 거기서 감히 손님이 주인을 때려? 내 친구들이 이걸 가만히 놔둘 성 싶으냐?!”


라우렌 가문은 근위대 생활 2년하면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급귀족이란 뜻인데, 왜 왕족에게 큰소리를 치는 지 모를 일이었다.


‘역시 기반이 없어서 그런가?’


하기야 나는 우슈르테툼에 내 용맹과 기개를 증명한 것이지, 권력이나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적은 없었다.


‘아직도 무늬만 왕족이란 소리지.’


결국 스스로의 힘과 권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혈통에 걸맞는 대접은 받을 수 없다.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 일이었다.


“하! 키마누. 루벤 같은 무늬만 귀족인 놈을 날리고 기고만장했나본데, 나는 사교회에서 손 꼽히는 실력자다. 어디서 감히 내게 대항해?”

“······네가 사교회 실력자라고?”

“그래! 내가 다음 세대의 귀족들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란 소리지. 싸움은 너보다 못할 지언정, 세력에선 너를 압도한다. 키마누!”


라우렌 남작은 밧줄에 묶인 상태에서도 나를 향해 고개를 빳빳히 치켜들었다. 내가 사교회란 말에 겁먹기를 의도한 눈치였다.


‘이놈. 그냥 흔해빠진 한량 귀족이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정반대로, 놈이 아주 우스워졌다. 지금까진 정확한 입지를 알지 못해 나름 조심하던 참이었지만!



“꼬맹아. 헛소리 그만하고 물건 내놔.”

“······꼬, 꼬맹이라고?”

“엄마 젖이나 더먹고 오거라. 애송아.”


헬중세에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는 열 여섯이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인식하는 기준은 나이와는 완전히 별개였다.


“애, 애송이라고?”

“너 전장 나가본 적 없지?”

“그, 그건!”

“사내 놈이 전쟁을 안해봤으면 애새끼지.”


나도 처음엔 이게 무슨 병신같은 개념인가 했는데, 헬중세에서 오래 살다보니, 섣불리 부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란 걸 납득해버렸다.


남의 목숨을 빼앗아보거나, 자기 목숨이 위협당해서 사투를 벌여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근본부터 바뀌게 된다.


‘그런 경험 없이는 생존투쟁이란 개념을 알기 힘들다. 살아남기 위해 동물적인 분노에 몸을 맡겨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지.’


허나 까놓고 말하면 PTSD나 정신병 환자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단지 헬중세에선 그런 병을 지녀야만 ‘진정한 어른’이라고 불러줄 뿐이다.


‘씨발. 나도 헬중세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군.’


이런 무지막지한 사회에서 젊은 귀족들의 사교회란, 보다 막중한 책임을 맡기 전에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는 모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실 꽤심하지는 않다.

그냥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 뿐.


“꼬맹아. 내가 거인학살자를 꺾은 건 알지?”

“하! 절름발이 노인 따위를 이겨놓고 지금 내 앞에서 주름잡겠다는 거야? 우리 사교회에 그 노친네보다 강한 놈은 수두룩해!”


아, 그러셔?

하긴 직접 겪기 전엔 알 수 없는 게 있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 때, 1층에서 한 무리의 귀족 청년들이 우르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회장에 있던 놈들이 이제사 소식을 듣고 오는 모양이었다.


“키마누 왕자가 오스카를 습격했다고 한다!”

“감히 망명객 놈이 우리 사교회 멤버를?!”

“한 명은 군대를 불러와! 지금 당장!”

“이미 내가 파발을 보냈다! 오스카를 구해!”


녀석들은 푸른 피의 귀족들답게 체격도 크고, 훈련도 제대로 받은 티가 난다. 숫자도 열다섯에서 열 여덟 정도는 된다. 경비병보다는 훨씬 위협적인 적수다.


그런데 질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헬중세인이라기엔 너무 눈빛이 맑다.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받았는데.’


군기도 잘 잡혀있고 나름 호전적인 분위기도 나는데, 잘 살펴보면 어딘가 어설프고 풋풋한 느낌이 나는 20대 초반 청년들······


‘MT가는 체육과 신입생 같구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헬중세에서 저렇게 해맑게 자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귀족만의 특권이다.


“후후후. 키마누 왕자.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나? 내 친구들이 도착하면 넌 죽은 목숨이다. 지금이라도 빌면······”


오른쪽 무릎으로 놈의 머리를 벽에 처박는다!

쾅!

풀썩!

꿻!


“조용히 있어. 실수로 죽일 뻔 했잖아.”


나는 조용히 계단에 앉아 풋풋한 애송이들을 맞이해줬다. 놈들은 나를 발견하고 아우성을 쳤다.


“키마누 왕자! 당장 오스카를 돌려주시오!”

“아무리 왕자라도 갑자기 이럴 수는 없소!”

“만약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않으면, 뭐?”


어쩔건데?

니들이?


“검으로서 되돌려받겠소!”

“우슈르테툼 청년회! 발검!”


스르르르르릉!


뽀송뽀송한 귀족 청년들이 각자 검을 뽑아들었다. 서로 검을 뽑는 시간도 달라서 소음이 요란했다.


“아무리 당신이 세도 이 인원은 무리일거요!”

“평민도 아니고 우리 전원 귀족이란 말이지!”

“기사 작위를 받은 애들도 절반이나 된다고!”

“음. 그래. 니들은 칼싸움은 잘하게 생겼다.”


나는 시큰둥하게 답한 뒤,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실전 뛰어본 놈?”

“·········엄.”

“강적이랑 목숨 걸고 싸워본 놈?”

“············흠.”

“둘 다 동시에 겪고 싶으면 와라. 가르쳐주지.”


스릉!


검을 뽑으면서, 놈들에게 살의가 서린 시선을 내리꽂았다. 큰소리 치던 애송이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서로를 우두커니 쳐다봤다.


‘야. 선봉의 영광을 양보하마.’

‘괜찮아. 니가 가면 내가 따라갈게.’

‘니가 우리 중에 제일 세잖아!’

‘아냐. 네가 가장 센 걸로 하자.’


귀족 청년들은 서로 눈치를 주면서 진입을 미룰 뿐, 감히 계단을 올라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가만히 서서 대치만 했다!


“이 의리 없는 놈들아! 구해줘!”

“기, 기다려라! 오스카! 기다리면 된다!”

“그래! 군대를 불렀으니 지원군이 올 거다!”


피식.

그래. 지원군 기다려보던가.


나는 우두커니 애송이들과 대치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저택 밖으로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제 1,2,3초소는 정문으로 진입하라!”

“제 4초소는 창문으로!”

“제 5초소는 지붕으로 가겠다!”

“제 6,7초소는 예비대로 대기!”


백 여명이 넘는 군인들이 우르르 라우벤 저택을 향해 난입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저택을 장악하고, 나를 포위했다.


“하하! 넌 이제 끝이다! 키마누!”

“다들 뭐하는가! 키마누를 붙잡아서 압송해라!”

“아직 근위대장놈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허! 그 용맹한 근위대장이 직접 온다고?”

“푸하하하! 네놈은 이제 끝이다! 키마누!”


창문 밖을 보니 전신판금갑옷을 입은 근위대장이 저택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검을 칼집에 되돌려넣었다.


“그래! 그렇게 투항을 해야지!”

“어서 오게! 근위대장! 저기 납치범이 있네!”

“이제 무장해제하고 무릎을 꿇어라!”


하지만 귀족들이 뭐라고 하건, 병사들은 날 둘러싸기만 했을 뿐 전혀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태도다.


철컥. 철컥. 철컥.


근위대장이 계단을 올라왔다. 누가 보아도 위압적인 모습이었고, 노련한 군인의 생애가 묻어나오는 훌륭한 움직임이었다.


근위대장은 내 앞에 도착해서.

건틀렛을 찬 오른손을 들어올린 후,

────내게 경례를 했다.


“국왕 폐하 만세. 간만에 뵙습니다. 왕자님.”

“그래. 오랜만이야. 승진했다면서?”

“모두 이게 다 왕자님 덕이죠.”

“모두 자네의 용기 덕분이 아니겠나?”


근위대장이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자 얼굴이 드러났다. 각진 얼굴에 근육질의 몸매를 지닌 다부진 중년의 남성, (구) 백인대장 하룬이었다!


“승진 축하하네! 이 친구야! 으하하하하!”

“왕자님도 이름을 되찾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힘껏 포옹한 뒤, 손바닥을 부딪친 뒤에 쾌활하게 웃었다. 우리 둘 다 불과 몇 주 사이에 극적으로 위치가 변했으니까!


“근위대장 일은 어떤가?”

“책임이 많고 힘들지만 그래도 버틸만 합니다.”

“이비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매일 같이 왕자님은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어보더군요. 와이프는 새로운 딸이 생겼다고 엄청 좋아합니다.”

“하하하하하하! 이비에게도 안부 전해주게.”

“직접 만나서 하십쇼. 왕자님만 기다리니까요.”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한 근황을 주고 받았다. 새로 얻게 된 지위에 적응하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부터, 아재개그가 포함된 시시콜콜한 농담 같은 것들이었다.


긁적긁적.


사교회 청년들은 무안한 태도로, 수다를 떠는 왕자와 근위대장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키마누 왕자가 라스칼을 꺾었다길래, 라스칼이 형편없는 퇴물이 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키마누가 거물일 줄이야·········


그 때.

한 눈치 없는 청년이 말한다.


“근위대장! 범죄자 체포는 안하나?”

“도련님. 키마누 왕자님이 뉘신 줄 알고 그런 망발을 하십니까. 그러다 칼 맞으십니다.”

“어······어, 그, 키마누가 범죄자인데······

“그만 입 닥치십쇼. 도련님.”

“나, 나보고 입을 닥치라고? 넌 평민이잖아!”

“처맞기 싫으면 아가리 여무십쇼.”

“···············”


기세등등하던 귀족 도련님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운동을 많이 한 건장한 청년들인데도, 오늘따라 어깨가 유난히 좁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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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 사막의 여정(3) +4 22.03.15 1,354 49 15쪽
31 9. 사막의 여정(2) +7 22.03.14 1,448 59 15쪽
30 9. 사막의 여정(1) +12 22.03.14 1,534 53 11쪽
29 8. The King's Herald(4) +16 22.03.13 1,606 52 12쪽
28 8. The King's Herald(3) +10 22.03.13 1,613 64 15쪽
27 8. The King's Herald(2) +11 22.03.12 1,706 5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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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7. 헬중세 우당쾅쾅 대소동(2) +10 22.03.09 2,033 7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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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장사하자, 돈 벌자, 먹고 살자! (4) +28 22.03.05 2,514 7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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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5. 영웅의 탄생(1) +16 22.03.01 3,104 120 12쪽
13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4) +13 22.02.28 3,188 124 13쪽
12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3) +17 22.02.27 3,298 116 11쪽
11 4. 떨어지는 자, 비상하는 자(2) +12 22.02.26 3,359 12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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