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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53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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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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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거짓과 위선

DUMMY

"쿨럭"


하녹은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폐가 당기는 듯한 기분이다.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갉아먹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지?


"..마탄"

"이해력이 좋군"


하녹의 눈앞에는 반이 서 있었다. 겨누어 진 총구가 연기를 뿜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하녹은 이를 악물었다. 반의 얼굴을 보려 애썼지만 너무도 높았다. 어째서지?


'일어설 수가 없어..'


하녹은 그제야 자신이 쓰러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명상이었다. 필사적으로 생명을 그러모으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죽음은 물처럼 스며든다. 구멍 난 채 좌초해버린 이상, 이제는 침전하는 수밖에 없을 테지.


"언제..부터"

"자네가 시장으로 한 번 변장했을 때부터..일세"


그렇군..


하녹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반과 엠버 수사관이 이곳에 왔을 때 자신은 시장으로 변장해 그들 앞에 나섰다.

그리고는 시장에게 버나르 가의 명령이라 말하며 봉쇄령을 내리게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전부터 반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던 시장에게 그러한 역할을 맡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실수였던 모양이군'


자신의 실수는 그것이었다. 반이 다시 한 번 시장에게 찾아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어째서지?'


자신은 왜 그런 간단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왜 그리도 어리석었지? 그건 나 답지 못한 일이었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군"


그리고 그런 하녹의 의문은 반 역시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반은 허망할 정도로 손쉽게 잡혀버린..심지어 죽어가고 있는 하녹의 모습에 허탈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죽이지 않고 정보를 조금 더..


'아니, 아니지'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반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경악했다. 찬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찰나의 순간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머릿속에 수많은 단서들이 조합되기 시작했다.


"하겐트 남작!"


그리고 반이 뒤돌아섰을 때,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녹이었다. 빙긋 웃음을 터트린 그의 발밑에는 하겐트 남작의 목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그의 시녀와 몹시 닮은 형상이었다.


"도플갱어였군..!"


반은 단숨의 그 트릭을 꿰뚫어보았다. 너무나도 어설펐던 암살자..그것은 그가 암흑가의 수장이 아닌, 그로 변신한 괴물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은 자신의 발밑에서 숨을 거둔 하녹의..도플갱어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하녹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다행이군"


파삭!


하녹이 그렇게 답하며 발을 굴렀다. 으깨져버린 하겐트 남작의 머리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목을 잃은 몸뚱이도 단숨에 부서졌다.


"젠장"


그 의미를 깨달은 반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암흑가의 수장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죽고, 그 시신마저 없어져버린 하겐트 남작..이 도시의 시장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을 끌어들였군"

"제 아무리 숙련된 암살자라도, 도시의 우두머리가 있는 이곳에 잠입하기는 쉽지 않거든"

"병사들의 시선을 돌리고, 너는 도플갱어와 함께 이곳에 왔다는 건가? 하지만 대체 상인들을 어떻게 선동한 거지? 아티펙트인가?"

"후후. 지금 그걸 신경 쓸 때인가?"


하녹..아니, 하겐트 남작이 웃으며 물었다. 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피로 된 발판이 그의 몸을 받친다.

반의 등 뒤로 거대한 고함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 암살자다! 반 수사관이 시녀를 죽였다!"


쯧.


반은 혀를 차며 몰려드는 병사들을 지켜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상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여보내 달라며 그리도 소리를 쳤던 주제에 막상 병사들이 사라지니 제자리에 멈춰선 꼴이었다.


"세뇌인가? 저렇게나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아티펙트가 있던가?"


있다 할 지라도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 없었다. 적어도 노블 텐 급의 아티펙트일 테니까.


"그렇다면..!"


반은 순간적으로 발을 멈춰 설 뻔한 것을 간신히 막았다. 생각에 잠기면 행동을 멈추고 마는 것은 자신의 나쁜 버릇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그에게 멈출만한 시간은 없었다.


탕!


등 뒤로 날아드는 탄환을 피의 칼날이 막아선다. 눈으로 보고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그 정도로 뛰어난 동체 시력은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반 역시도 숙련된 사격술을 가진 바, 총구의 방향으로 궤도를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은 차라리 저 탄환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종족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시장을 죽이려 했다. 그 이유는 필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교섭의 재료를 얻으려 한 것일 터'


그리고 필시, 그 교섭의 대상은 성국일 터였다. 그들은 인간 외의 모든 종족을 이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웨어울프나 도플갱어 따위의 괴물로 분류된 종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시장을 죽이려 든 것도, 그리고 그 시장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던가?'


허나, 반은 그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의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국이 강국인 것은 확실하나, 피나르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국은 부유하기는 해도 제국이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교섭해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반을 가장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간밤에 들었던 한 목소리였다.


"나는 죽이지 말라고 했던가? 어째서?"


대체 자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기에? 그 추악한 진실을 들키는 한이 있어도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지?


"..무엇을 숨기나. 버나르"


반은 그렇게 사라졌다. 어느새 지기 시작한 석양이 그의 몸을 붉게 물들였다. 석양에 젖은 핏방울이 루비처럼 빛난다.

세상 모든 진실들이 그 광택 아래 숨어드는 것만 같았다.





*




"여기는?"


엠버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또 다시 밤이었다.


"메리의 예상대로야. 시청에서 사건이 벌어졌어"

"사건이라니?"

"사람이 죽고, 반 수사관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더군"


반이라고?


"그게 정말인가요?"


모두의 시선이 엠버에게 꽂혀들었다. 꽤나 늦은 기상이었다. 잡히기 전에도 밤이었던 만큼, 어쩌면 엠버는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리가 그녀의 앞에 나섰다. 무릎 꿇고 엠버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엠버는 마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마리를 보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기색이었다.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눈치채고 말았거나.


"..몸은 괜찮은 것 같네요. 하루를 꼬박 주무시기에 걱정했는데"


마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덤덤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비보를 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되었군요. 당신과 몸값을 교환해 줄 사람이 쫓기기 시작했거든요"

"..자작님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거에요"

"그를 믿나보군요"


엠버는 스스로의 '감각'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하기야, 괜히 그런 것을 입에 담았다가 마리의 경계심을 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터였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엠버의 모습에 마리는 의아해하였으나,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사실 마리로서도 엠버의 곁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의 눈에 엠버의 모습은 실로 불길한 손을 안개처럼 흩뿌리는 괴물처럼 보였으니까.


"..진정해"


그리고 그 손들을 본 것은 마리만이 아닌 듯 했다. 파라크는 생전 처음으로 주인인 마리의 명령 없이 스스로의 검은 팔을 휘저으며 엠버를 위협하고 있었다.

엠버의 시선이 파라크에게 꽂혔다. 지독히도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면 수도에서의 그녀는 동경과 동시에 멸시의 대상이 아니던가.


"무엇을 노린 거지?"


한참 동안 엠버를 노려보던 보리스가 물었다. 엠버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답한 것은 샤트라였다.


"그들은 최근에 괴물 하나를 더 들였어. 도플갱어였지"

"도플갱어.."


보리스는 가만히 그 단어를 곱씹었다. 그만큼이나 불길한 단어였던 까닭이다.


숲에서는 유령이 사람을 불신케 하듯,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의 도플갱어는 유령 이상으로 불길한 존재였다.


"아마, 시장을 노린 걸거야"


샤트라는 단언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종족들을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성국이 찾아오는 건가?"


성국이라는 말에 잭과 메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메리야 사정을 들었으니 그렇다쳐도, 잭은 왜 저러는 거지?

보리스는 의아함을 느꼈으나 시선을 엠버에게서 떼지는 않았다.


"그럼 그들이 오겠구나"

"그래"


마리는 짧게 답하며 반이 가지고 있던 스칼렛 위치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에서 보았던 던 위치 역시도.

두 개의 아티펙트를 노블 텐에 올려놓을 정도로 강했던 영웅..그리고 그 영웅을 탄생시킨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나라.


"성국의 이단심문관들.."


보리스는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며 로니에리일 적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란돌프 사제에게 들었던, 그들의 말로는 골렘보다 강하다 자부하던 괴물들의 이름을.


'뭐, 실버 골렘을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할 지라도 그들이 강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리라. 보리스는 문득 유라와 길버트가 보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나마 편했을 텐데.


'여기 오고부터 싸움만 계속하는 것 같은데'


보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엠버가 머뭇거리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왜 아까부터 저를 그렇게 보시는 거죠?"

"..그냥"


보리스는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물론, 지금 보리스가 내뱉은 변명은 거짓 그 자체였다. 무심코 엠버에게 시선이 갔던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가진 거짓 간파의 힘 때문이었다.


사람의 체온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거짓과 진실을 분간해내는 리자드맨 고유의 힘.


그 힘으로 본 엠버의 모습은 마치 거짓과 위선, 그 자체를 뭉뚱그려놓은 것처럼 보였던 까닭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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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2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20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3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 거짓과 위선 21.07.10 29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6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8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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