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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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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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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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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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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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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하녹

DUMMY

잭과 메리가 머무르던 골목을 지나면 판자 따위로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갖가지 오물들로 가득한 골목보다야 낫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레한 몰골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곳에서 살기는커녕 가까이 다가서는 것조차 치를 떨며 거부할 테지.


그곳이 바로 부랑자들의 영역이었다.

시민들이 늘 없애 달라 성토하지만, 그럼에도 벌써 백 년 가까이 사라지지 않은 범죄자들의 소굴. 암흑가.

물론, 이곳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암흑가가 된 것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는 했다. 하이야 그 20년이란 시간이 한낱 건달들의 소굴에 불과했던 이곳을 도시 규모의 무력집단으로 바꿔놓기는 했지만..


힘이 있는 곳에는 권력이 붙는다. 부패한 권력자들과 결탁한 이곳은, 상업지구와는 또 다른 의미로 부와 권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설령 그것이, 내세울 수 없는 권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허나 그렇게나 많은 돈이 오감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민들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터였다.

한낱 상인이 돈 좀 만져보겠다고 오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도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힘만이 전부였고, 가진 바 힘이 없다면 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한들 그것을 지켜낼 수 없을 테니까.


흔히 암흑가라 불리는 이곳은 그런 장소였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범죄들이 숨쉬듯 일어나고, 그에 대한 결과로서 돈이 오가며, 누군가는 그것을 빼앗고 지키며, 가진 것을 오랫동안 지켜내어 계급을 확정짓는 장소.


실제로 지금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잭과 메리의 경우는 가장 아랫 단계에 있었다. 아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였다. 지켜줄 사람이 없다면 한없이 굴러떨어지는 연약한 존재.

거지와 좀도둑, 강도들로 가득한 이곳에서조차 멸시당하기 일쑤인 것이다.

이곳에서 누구나에게나 동정 받는 존재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밑에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이 뒷골목은 그 자체로도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한없이 비천해 보이는 곳이었지만, 그런 곳에서조차 계급은 나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 저길 봐"

"소매치기 꼬맹이들이잖아? 또 은화를 들고 온 건가? 킥. 한 번 뺏어볼까?"

"아서라. 상납금에 손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나도 알아. 그냥 해 본 소리라고. 하지만 겁주는 것까지 허락받을 필요는 없지 않아?"


누군가는 키득대며 조롱하고, 누군가는 욕정하고, 누군가는 살의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곳.

그들의 눈에 어린 소년들의 모습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메리가 작게 몸을 떨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별을 속이고는 있다지만, 그런 노력조차 조금 전의 남자에게는 순식간에 들켜버렸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메리는 어쩌면 이들 중에도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볼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오래 전에 들켰는데도 자신만이 몰랐던 것일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동시에 조금은 있었으니까.


걱정스런 마음이 드는 한편 메리는 자신의 정체를 단숨에 꿰뚫어보면서도, 별 달리 관심을 갖지 않던 그를 떠올렸다.


룽겔이라 하였던가? 묘한 사람이었다. 귀족인 주제에 묘하게 자신들에 대한 이해력이 깊었다.


혹시 수사관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해가 가기는 했다. 모든 단서를 공평하게 취급해야 하는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메리는 룽겔이 자신들에게 품었던 동정심만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모를까,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귀족들에게 있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차갑기만 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수사관이라 해도 귀족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으니까.


얼어붙을 듯 한 그 눈빛마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그 시선마저 바뀐 적은 없었으니까.


"어딜 그리 가나?"

"..저리 꺼져"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남자의 목소리에, 잭이 으르렁거렸다.


늘 자신에게 시비를 걸던 남자였다. 빌어먹을 변태 새끼. 이 녀석은 분명 메리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이러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저런 눈빛으로, 굳이 메리가 있을 때만 저렇게 다가올 리가 없으니까.


"입이 험하구나. 잭"


잭은 자신에게 멋대로 입을 놀리는 그 목덜미를, 그리고 그 끔찍한 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일은 아니었다.

저런 종류의 더러운 눈빛은 이곳에선 너무도 흔한 일이었으니까.


당장에라도 저 목에 칼을 꽂아버리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스스로의 나이 어림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제 아무리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우습게만 보이는 외형이 그 모든 것을 막아 세우고 마니까.


한 때는 그 모든 것에 저항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 같은 사람 둘을 죽인 대가는 뼈저린 것이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어 굶어죽기 전까지 내몰리고, 어디선가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지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돌려달라는 명목으로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자신이 그 범인인가 아닌가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었다. 치료받을 수도, 거리로 나서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사는 곳이 불타고, 먹는 것, 마시는 것은 오물로 더럽혀지고, 결국 살려 달라 빌고 나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응? 그 눈빛은 뭐야? 날 죽이고 싶은 거야? 어디 한 번 해 봐. "


그렇기에 잭의 패배는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한 번 무릎을 꿇어버린 이상, 잭의 마음은 영원히 꺾여있을 테지.

그가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어찌하건, 어떤 계획을 세우건, 어차피 현실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결국, 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좀도둑 하른이 그런 잭에게 손을 뻗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그에게 가볍게 벌을 내릴 작정이었다.

운 좋게도, 혹은 운이 나쁘게도.

그런 하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 이게 누구야? 잭과 메트잖아?"


메트는 메리의 가명이었다. 하른이 그것에 콧웃음을 쳤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등뒤의 남자에게 그런 태도를 들켰다간, 곱게 죽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환전을 하러 왔나?"


항구도시 아르바의 뒷면을 지배하는 암흑가의 주인, 황금종의 일원인 하녹이었다. 온갖 정보를 취급하는 정보상이자, 달인급의 암살자인 그는 바라기만 한다면 설령 상대가 오러 나이트라 할지라도 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다.


"..넌 이만 가보지 그래? 하른"

"..그러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잭을 몰아붙이던 하른은 천적이라도 만난 양 몸을 움츠리며 모습을 감췄다.

잭은 그 비굴한 웃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번도 그가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었지만, 저런 모습을 볼때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믿을 수 없는 자들로만 가득했다.


'..따라오고 있겠지?'


그리고 지금의 잭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룽겔이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모습은커녕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입맛이 썼다.

위험과 껄끄러움을 무릅쓰고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특히 그랬다.


"왜 그러지? 뒤에 누가 있나?"

"아뇨. 아무것도"


잭은 그렇게 답하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바닥의 오물이나 벽의 균열들이 줄고 있었다.

건물들의 상태가 더 좋아지고, 부랑자들의 야윈 얼굴도 점차 살이 쪄갔으며, 값비싼 무기들을 들고 있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잭은 자신들을 향한 관심이 점차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암흑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더 나은 사람들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할 테지.


다만 그들은 스스로의 강함을 확신하는 만큼이나, 다른 누군가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오히려 행동은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니까.


설령 그 안이 썩어문드러졌다 할지라도.


"..평소와는 뭔가가 다르구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독기가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더 받아가겠다는, 언젠가 복수하겠다는 마음이 없어"


잭은 무심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평소 그와 마주할 때마다 생각을 엿보이는 것 같아 경계하기는 했었지만, 그런 마음이 무색하게도 단숨에 들켜버린 까닭이다.

아찔한 감각이다. 어디까지 파악당한 것일까. 자신의 이런 태도가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


혹시나 룽겔에 대한 일까지 눈치 채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의 말대로, 잭은 이번 거래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마음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코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뭐, 좋아. 우선은 따라와"


잭은 다행히도 하녹이 별 다른 말없이 넘어가는 것 같아 안도했다.

하지만 메리는 그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하녹이라는 사람은, 한 번 든 의심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긴장감에 몸이 굳어진 것이다.

평상시대로 행동하려 해봤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머리가 좋은 것과 연기력은 별개의 것이었다.


메리는 하녹의 얼굴에 스치는 일그러짐을 보았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잭!"


다음 순간, 뒤돌아선 하녹에게서 단검 하나가 쏘아졌다. 메리가 비명을 질렀으나, 잭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 단검의 목표는 잭이 아니었다.


잭이 무심코 돌아보았던 그곳.

룽겔과 마리가 있는 그곳을 꿰뚫고 지나간 단검이 그대로 벽에 꽂혔다.

잔 떨림 하나 없이 박혀든 단검이 싸늘하게 빛났다.


"..흠"


비명도, 선혈도 없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하녹은 혀를 찼다.

그리고는 잭과 메리를 이끌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녹의 공격은 별 다른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만 보였다.


허나 메리는 보았다. 단검이 스치는 순간, 바람결을 따라 날아가던 머리칼을.


그건 분명 짙은 밤색의, 마리의 것이었다.





*





'마노 그 사람이 알면 난리가 나겠네'


나는 쥐가 파먹은 것 마냥 구멍이 나버린 마리의 머리카락을 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머리카락들은 마검의 영역 안에 떨어져 보이지 않았기에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머리가 자라게 하는 아티펙트는 없겠지?'


마노와의 재회가 수개월 후의 일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일을 감추는 것은 무리가 있으리라.

묘하게 마리에게 팔불출 적인 면모가 있는 마노였으니 무사히 넘어가기는 힘들 테지.


반면, 마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린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내가 눈치 채지 못한 것뿐인가?

나는 내가 로니에르였을 적에, 그리고 웨어울프였던 아일라 시절에도 머리카락에 묘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리 역시도..아니지.


나는 호문클루스를 만들기 위해 망설임 없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어내던 마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마리가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도 상상은 안 갔지만 말이다.


철컥.


하녹이라 불리는 남자가 잭과 메리를 안으로 들였다. 나는 문이 닫히기 전에 방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는 하녹의 모습은 조금 독특했다. 검은 머리칼과 진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그는 한쪽 눈이 조금 독특했는데, 나는 간신히 그것이 의안임을 알 수 있었다.


몹시도 잘 만든 의안이었다. 멀쩡한 오른 눈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마치 진짜 눈 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유리알 같은 인공의 광택이 없었다면 나 역시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깡마른 체구의 그는 무척이나 키가 컸다. 대충 이 미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그쪽의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언제 나올 작정이지? 보아하니 잭의 아티펙트를 빼앗은 모양인데"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참 빨리도 계획이 깨져버렸다고.


나는 쥐고만 있던 검을 완전히 뽑아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듯한 수많은 기척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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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6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6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 하녹 21.06.22 23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7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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