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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43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08 13:00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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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예언

DUMMY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있는 것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메리였다.

나는 그 묘한 시선에 살짝 의아함을 느꼈다. 항구 도시에 사는 그녀에게 있어 리자드맨이 그리 독특하게 느껴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당신이 어제의 그 아저씨가 맞나요?"


허나 의아함은 얼마 못 가 불쾌함으로 변모해 있었다.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 진 눈매에 메리가 몸을 움츠렸다. 나는 내 얼굴을 매만졌다. 굳이 거울에 비춰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내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저 녀석은 왜 저러지?"


나는 무어라 변명하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멍하니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잭을 보며 질문했을 뿐이다.

메리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자신의 대답으로 인해 내가 더 화날 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아저씨가 자고 있을 때..그 검을.."


하.


"겁도 없는 녀석이구나 정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숨을 뱉었다. 겁도 없이 마검에 손을 대다니 정신이 나간 건 아닌가?


"차라리 아티펙트를 가져갔다면 이해가 갔을 텐데"

"..어젯밤의 그걸 보고도 가져갈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리고.."


메리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잭과 비슷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웨어울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약 때문인 것일까? 하긴, 어차피 정신이 있건 없건 위험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 그 손들과 웨어울프..골렘을 다루는 마리에 비하면 나는 우스워 보였나?"

"..그 검이 좋아보였나봐요"


메리는 나름 변명 거리를 찾는 듯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이 소녀가 내 앞에서 알짱대는 이유를 짐작할 것 같았다.


"저 얘를 낫게 해달라는 건가?"

"..가능한가요?"

"착각하는 것 같으니 알려 주마 꼬마야. 이건 아티펙트 따위가 아니야"


그 순간 메리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든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왜 그리도 저 녀석을 위하는 거지? 널 도구 취급하던 아이가 아니냐"


나는 그들에게서 아티펙트를 빼앗으려 했을 적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잭은, 잭에게 있어 메리는 걸리적거리는 방해물이었을 뿐이었다.

정작 그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것은 이 소녀 덕분인데도.


"..성국에 오빠가 있어요"

"널 팔아 넘긴 거야?"

"..오빠는 아니에요. 부모님이셨죠"


성국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특별한 것은 오직 그들의 신 뿐.

모든 인간이 특혜를 받으며,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인간들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은 모두 신을 위해 일하고, 땀흘리며,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며, 단 한번의 다툼 없이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으로 분류된 사람이라면 말이다.


"..알만하다. 네 오빠를 사제로 만들기 위해 널 팔아넘긴 거지?"


그리고 그 분류의 기준은 신앙이었다. 신에게 세례 받은 자는 인간이 되고, 세례 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을 떠받치는 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사제가 되기 위해 온갖 기괴한 수를 쓰곤 하였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로니에리의 기억이었다. 날 죽인 란돌프 사제. 그에게서 들었던 성국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고 신비로웠지만, 동시에 어린 로니에리에게도 느껴 질 정도로 섬뜩했다.


"..네"

"잘도 도망쳤네"

"배가 난파했어요. 저는 운 좋게 살아남았죠. 하지만 살아남을 힘은 없었어요. 잭이 없었다면, 죽었을 테죠"

"성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네 부모란 작자들은 또 다시 널 팔아버릴 텐데?"

"..오빠는, 아니에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일까.


널 아끼기에 팔아넘기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의지할 수라도 있다는 것일까.


"네 오빠는 사제가 되었나?"

"제가 떠날 때까지는, 아직"


그렇다면 가능성은 희박할 테지. 계급이라는 것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법이니까.

누구나 원하는 자리는, 그만큼 희소하기에 빛나는 것이니까.


"이름은?"

"..안토니"

"사제가 되었다면 이름이 바뀌었겠지. 그를 보게 된다면 너를 보았다고 말은 해줄게. 하지만 그 이상은 안돼. 너도 보았겠지만, 우리는 쫓기는 몸이야. 널 데려갈 수는 없어. 설령 데려간다 해도, 너의 오빠라는 사람이 곤란해 질 테지. 우리는 수배자니까 말이야"


피나르와 성국의 사이는 좋다고 말 할 수 없었지만 서로 간의 범죄자를 숨겨 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저 끔찍하게 전설적인 수사관 녀석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를 쫒아 오고 말 테지.


"표식이 될 만한 게 있나?"


메리는 떨리는 손으로 머리핀 하나를 내밀었다. 아무런 장식도 되지 않아 투박한, 칠이 벗겨져 녹이 슨..


그럼에도 반짝이는 소중한 것.


"마리"


나는 그것을 마리에게 넘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검집을 들어 잭의 몸을 두드렸다. 컥-하고 호흡을 되찾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메리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바라지 마. 나에게만 가능한 일이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풀었다.


"마리, 아무래도 손님이 온 모양이야"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저 손님이 이토록 가까이 찾아올 수는 없었을 테지.

하지만 초겨울의 추위는 리자드맨에게 있어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메리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니 말 다한 셈이지.

나는 둔한 몸을 억지로 폈다.


"그래서? 당신은 적인가?"


나는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등 뒤에서 잭이 반색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스승님!"


눈앞에 있는 것은 치즈 색의 고양이였다.


"샤트라라고 불러. 도마뱀 양반"

"당신의 울보 제자를 찾으러 왔나?"

"그 아이는 내 제자가 아니야"


나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잭 외에 그녀가 찾아올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이 무엇이지?"


허나, 아무래도 정말 다른 용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마리 앞에 앉아 질문을 던졌다. 웨어울프들의 몸에 붕대를 감던 마리가 시선을 돌렸다.





*




"마리"


샤트라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어딘가 입에 붙지 않는 기분이었다. 가명인가? 하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생각이 맞는가였으니까.


"마리. 당신들은 여전히 창을 가지고 있나?"

"아뇨"


마리는 즉답했다. 하지만 묘하게 놀란듯한 기색이었다. 마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배배꼬았다.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은 눈빛이다.


"마그나는 낙원인가?"

"낙원이 아닌, 방주였다고 하더군요. 지금에야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샤트라는 그렇군-이라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그곳도 아니군"


그렇게 답하는 샤트라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마리는 그 작은 고양이의 표정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절 왜 찾아오셨죠?"

"당신에 대한 예언이 나왔기 때문이야"

"예언?"

"장로의 예언이지. 우리 종족의 미래를 결정지을 예언"


마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또, 인가요?"

"글쎄. 네 사정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알 길이 없지"


마리는 대답 없이 상처투성이의 웨어울프들을 보았다. 샤트라는 그들을 보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400년 전의 그것이군"

"..네"

"무거운 짐이야.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겠죠"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겠어. 그 짐에 우리도 얹혀져야 할 것 같거든.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미안하게 됐어"


가만히 고개를 젓는 마리를 보며 샤트라는 몸을 일으켰다. 뒤돌아서는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러니 지금은 돕도록 하지. 조금이라도 빚을 갚도록"


밖에서 걸어 들어오는 것은 암흑가의 사람들이었다.


"저걸 보고 오신건가요?"

"널 찾고 있었어. 그리고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차림새로 오는 녀석들을 찾았지"


샤트라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복부에는 마치 잠자리의 날개처럼 생긴 하얀 털들이 나 있었다.


"저 짐 덩어리는 뭐지?"


앞으로 나서던 그녀가 구석에 쓰러져 있는 엠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판국에 기절했나 싶었는데 숨소리를 들어보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마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무시하세요. 일단은 인질이니까"

"내가 감시할게"


마리는 그녀의 앞으로 나서는 보리스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부터 파라크가 너무 힘을 쓰는 것 같았지만 상황 자체가 몹시도 미묘했다.

하기야 그렇다고 상처투성이에 정신도 온전치 않은 웨어울프들에게 전투를 맡기는 것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태어난 이후로 싸움만 시키는 것 같네..이러다가 진화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


마리가 그렇게 마음 속으로 사과를 건네던 찰나, 암흑가의 사람들이 멈춰섰다.

그들 무리를 헤치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하른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잭"


얼굴 가득 만연한 웃음이 징그럽게 휘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인사치레로 건넨 말이라는 듯, 그들은 단숨에 무기를 꺼내들었다.


콰득.


그리고 망설임 없이 쏘아 진 화살을 파라크가 움켜쥐었다. 후방에서 날아든 화살이었다. 마리는 자신들이 포위 당했음을 깨달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작전은 있어?"


샤트라의 질문에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반 고양이 녀석이군. 잭을 지켜주러 오셨나?"

"너로구나, 더러운 변태 녀석. 너랑은 말 섞기 싫지만 착각은 바로잡아 줘야겠네. 잭은 이제 내 소관이 아니야"


샤트라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아니, 그것을 검이라 불러도 좋은 것일까?

보리스는 무척이나 실례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것은 검이라기보다 쇠 꼬챙이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흥"


허나 오히려 하른은 그것을 우습게 보지 않는 듯 했다. 면식이 있는 것 같아 보이니 만큼 이미 겪어본 적이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적은 그게 다인가? 괴상한 생명체 하나와 반 고양이 하나, 도마뱀 하나..그 외에는 모조리 다 환자와 어린애들 뿐이군"

"부족해 보이나?"

"넘치진 않는군"


하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겁 많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전력적으로 우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녹을 위시한 묘하게 용병 같은 이들 없이 자기들끼리만 오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자기 세상이다 싶었던 것이다.

그들이 왜 오지 않았는지는 생각할 마음이 없을 테지.


"그럼 병력을 추가하지"


하른의 대답을 들으며 샤트라는 웃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 고양이 특유의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진다.

부서진 건물 파편을 밟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수 십을 넘어서는 고양이들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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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2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6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6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7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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