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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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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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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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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수 :
44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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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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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깨달음

DUMMY

"후욱"


덜덜 떨리는 몸을 움츠린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메이지가 뿌려놓은 얼음의 마법이 기온을 더 낮게 만들고 있었던 까닭이다.


돈을 노린 범죄인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고작 돈 따위를 챙기자고 항구 도시라는 거대한 이익의 배를 가를 리는 없을 테니까.


필시, 돈은 부차적인 이득인 것이리라. 그렇다면 무엇을 원했지? 무엇을 바랐기에 이종족들을 거리로 내몰았지?


나는 내 안에서 들끓는 증오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개인이야. 그렇기에 거대한 암흑가에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렇다면 다음은 어디인가. 바로 시청이다.


국가 간의 조약과 계약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이 도시의 행정기관이다.


"이상해"


나는 걸음을 멈췄다.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암흑가와 시장은 서로 협력하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 비록 이곳 출신이 아니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설령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암흑가를 저렇게나 크게 키운 건 다름 아닌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한낱 건달 소굴에 불과했던 암흑가에 강자들을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이었지 않던가.

그런데 왜지?

하지만 상황 자체를 보면 마치 그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일단은 아무래도 좋다"


나는 품속에서 짤랑이는 백금화들을 내려다보았다. 본래라면 고향으로 가져갈, 나만의 가게를 세우고 장사 밑천들을 구매할 밑천이었다. 더 이상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모조리 살해당해버린 이상, 이제 내게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예정대로 성국으로 가야만 하겠지.


'이유가 빈약하군'


나는 스스로의 모순을 비웃었다. 물론,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나는 지금, 보리스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적들의 비명이 쏟아진다.


"저곳을 노려!"


역시나 적들 역시 멍청하지는 않았다. 내가 검기 따위를 날리는 것이 아닌 이상, 내 위치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으니까.

갑작스레 죽어나가는 동료의 시체 옆에 범인이 있다는 추측 정도는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정도는 나 역시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적들이 많은 곳만 골라서 다니는 것이니까. 이런 곳을 누빈다면 그들 자신이 방패가 되어서..


"이런 젠장!"


콰광!


그러나 나는 곧바로 이곳을 향해 날아드는 불덩이에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휘몰아치는 열기가 얼어붙었던 피부를 덥혔다.

물론, 덥혀지는 정도로 끝난 건 내가 몸을 던져 피한 까닭이다. 원래 있었던 곳에 머물러 있던 곳에는 비명만이 가득했으니까.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까.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추위로 인해 굳었던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속도가 빨라져 몸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놀란 가슴은 여전했다.

따뜻한 지방에서 살아가던 리자드맨답게 추운 곳에서는 맥을 못 추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덩이를 던지는 건 조금 과한 감이 있었으니까.


고기가 타는 듯한 냄새가 매캐하게 코를 찔렀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버린 시신들이 바닥에 새카맣게 눌어 붙어 있었다.

내게는 모르는 얼굴이지만, 저들에게는 분명 익숙한 얼굴들이겠지.


"동료가 죽던 말던 신경도 안 쓰는 건가?"


나는 로버트일 적의 기억을 그대로 내팽개쳐버렸다.

단순히 부랑자였다는 동질감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 때의 기억만으로 상대하기에, 이들은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부랑자들 역시 거칠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이들은 그 격이 달랐다. 사실상 부랑자의 탈을 쓴 용병 집단이라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수했군"


나는 단숨에 뛰어올라 벽에 달라붙었다. 벽 위를 기어 내달리는 나의 속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평지에서의 속도와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 벽에 붙어 달리는 것은 리자드맨의 특기나 마찬가지였으니 오죽하겠냐마는..


단숨에 적들이 있는 곳으로 치달은 나는 불꽃을 쏘아 던진 이들 앞에 멈춰섰다.


"덕분에 몸이 풀렸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암살검으로 인해 들리지 않을 말들을 전하며 나는 곧바로 메이지의 목을 잘라냈다. 지금 내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적이었기 때문이다.

허공으로 날아간 목에 의해 쓰러진 몸뚱이가 피를 쏟아낸다. 곁에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날 보지 못하고 있는 녀석의 시선을 비웃었다.


"이런!"


무기를 뽑아 드는 녀석이 무언가를 외쳤다.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마법적인 힘이 담긴 언어였다.


저 녀석도 메이지였던가?


"뭐, 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하지만 뒤를 잇는 것은 녀석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제야 그가 들고 있는 곤봉이 안티 매직의 힘이 담긴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필시 그것을 이용해 내 모습을 드러나게 만들려고 한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아티펙트가 아니라 마검이었다. 하위의 힘으로는 상위의 힘에 간섭할 수 없다. 나는 곧장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들고 있는 것이 아티펙트라는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군'


그리고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하녹이라 불리던 남자였다.

만약 그가, 잭이 누군가에게 아티펙트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것을 지닌 사람이 이곳에 있다 생각했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사건으로 내가 지닌 것이 아티펙트가 아니라는 것을 들킨 셈이군'


나는 한시라도 빠르게 마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시 그녀의 성격이라면 내가 그녀를 찾아갈 수 있도록 여전히 반 일행과 함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 역시 암흑가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니만큼, 그들이 지닌 또 다른 아티펙트가 마리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전하기는 글렀군"


나는 품 속에 금화 주머니를 넣으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마리는 가만히 반 일행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물론, 너무 가까이 붙어서 가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엠버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손들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룽겔이 또 다시 되살아났다면, 십중팔구 이들을 찾아올 테지.

이들은 자신들의 적임과 동시에 이 연고 없는 도시에서의 유일한 이정표였으니까.


룽겔의 시신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시신 자체는 이 나라의 귀족이었으니 만큼 잘 수습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섣부르게 손대는 것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테지.


"그래, 무슨 말을 하려 부른 거지?"


그들이 걸음을 멈춘 것은 어느 한 공원이었다. 적막함이 감도는 공원에 멈춰선 반이 앞을 바라본다.

이미 해가 저물어 깊은 밤이 찾아온 공원에는 초겨울의 날 선 바람과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번쩍이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곳은 듣는 귀가 너무 많아서 말이야. 사실, 그 아이들도 떼어놓고 싶긴 하지만"


그곳에 멈춰 선 란가타의 여인은 그렇게 답하며 잭과 메리를 흘겨보았다. 조금의 신뢰도 담겨있지 않은 눈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입장이었기에 아이와 노인이라 하여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잭과 메리는 그런 입장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 친 잭이 이를 악물었다. 오늘 따라 일진이 사납다. 지금까지 마주한 사람들 모두가 어지간한 부랑자들과는 상대조차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하녹조차도..


저 반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이들 앞에서 내뱉는 거짓은 그 어떤 가치도 없을 것만 같았다.

무수한 거짓 속에 숨겨 진 진실을 기어이 찾아내고 말겠다는 듯한 눈이다. 저런 눈 앞에서 대체 무엇을 말해야 하지?


"그래. 그리 의미는 없을 테지. 고작 아이 둘을 감당하지 못할 당신이 아니니까"

"용건이 무엇인가. 짧게 답하게"


반의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내 소개부터 하지. 그래봤자 이름 뿐이지만"

"나는 반 폰 클락 자작이라 하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 알고 있지..나는 사라. 사라 란가타. 당신이 쫒고 있는 유라 란가타의 사촌이야"


새삼스러운 소개였으나 반은 묵묵히 경청했다. 혈육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던 바였다. 오히려 유라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다면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테지.

다만 고난과 역경의 흔적이 진하게 느껴지는, 마치 야생 속에서 자라난 것만 같은 인상의 유라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저 여자에게서는 그 어떤 역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유라가 무수한 전장에서 담금질된 역전의 용사라면, 사라는 우리에서 훈련된 맹견 정도의 인상만을 풍길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지?


"목적은?"

"유라 란가타를 죽이는 것"

"이유는?"

"그 멍청이가 론디아르를 죽일 지도 모르니까"


그 뜻밖의 말에 놀란 것은 반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리 역시, 놀람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 론디아르인가?"

"그 외에 론디아르를 자칭할 간 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피나르가 지배하고 있는 이 북대륙에서?"

"..내게 그걸 알려 주는 이유는 뭐지?"

"그 이상의 것은 묻지 않을 건가?"

"알려줄 텐가?"


사라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확실히, 유능한 남자였다. 자신이 그은 선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나 역시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야"

"그녀의 흔적인가?"

"..잘 아네. 산맥에 들어가 버린 이상, 우리도 그들을 쫓는 건 힘들어. 하지만 그러던 중에 이곳으로 들어와 봉쇄령을 내린 당신을 발견했지"

"봉쇄령을 내렸는데도 잘도 들어왔군"

"그게 우리 역할이잖아? 안 그래?"


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녀 역시 그들 일행을 찾고 있다는 것이니까.

일정 부분, 서로의 의견이 반목하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동안은 협력해도 좋을 터였다.


다만, 그러한 점까지 예측하고 저런 말을 꺼낸 그녀의 모습에 조금 지쳤을 뿐이다.


"그들 일행 중 두 명이, 이곳에 있다"


그렇게 말하며 반은 다시 한 번 잭과 메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제히 움찔하며 물러서는 그들의 몸이 엠버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상착의를 물으려 하던 참이었지"

"타이밍 좋게 찾아온 셈이군?"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허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곧바로 그녀에게 찾아온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

"사라님. 조금 전 당신께서 있었던 곳에서 갑자기 시체가.."


시체? 반은 그 말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사건마다 느껴왔던, 결정적인 단서의 냄새였다.


아마 란가타의 일원으로 추측되는 그 남자는 어깨에 커다란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그것을 내려두는 그 남자를 보며, 반은 앞으로 걸었다. 시체는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풀어보게"

"..."


무릎 꿇은 채 사라의 명령을 기다리던 남자는 황당하다는 듯 반을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사라를 보며 무언가를 말 해주기를 기다렸다. 반을 멈춰 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허나 아쉽게도, 사라 역시 반과 같은 입장인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시신을 뒤덮은 천을 벗겨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의, 엠버의, 그리고 사라의 시선이 그 시신에 못박혔다.


"..이 사람이. 허공에서 나타났다고?"


반이 헛웃음 지으며 물었다. 남자는 이제 어이가 없다는 눈치였다.


"..그렇네만?"


남자의 불쾌하다는 듯한 눈빛에도 반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체를, 시체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탄환의 흔적을, 너무도 익숙한 그의 모습을, 결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이의 이름을, 마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것만 같은 생생함을, 아직 따스한 온기를, 그 위를 덮은 오물과 진흙들을..


그 모든 단서가 일컫는 하나의 진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룽겔 폰 클락"


기나긴 침묵 끝에, 마침내 반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하나의 이름이었다.

온기 한 점 없는, 고저 없이 덤덤히 내뱉어 진 단 하나의 이름.

허나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냉정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웃고 있군?"


새하얗게 번져나간, 광기 어린 환희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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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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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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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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