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52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6.21 13:00
조회
37
추천
1
글자
12쪽

작은 거래

DUMMY

잭은 거의 발작하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잭을 무시한 채 아티펙트로 추정되는 락픽을 주머니에 넣었다.

과연, 내 몸에 닿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묘한 감각이 있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반짝이는 물건에 대한 감지가 바로 그 정체였다.


"그건 내 거야!"


잭은 목에서 피가 날듯 소리를 질렀으나, 아쉽게도 그건 어리광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을 들고 있을 적에는 결코 부리지 않았을 어리광을, 떼를 쓰는 것은 그만큼 이것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마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알려지긴 했지만, 힘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에게 독이 되는 듯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허리춤의 마검을 보았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만약 아티펙트가 독이라 하면 마검은 맹독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악!"


나는 그대로 잭의 몸을 놓아버렸다. 잭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메리가 잭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잭에게는 이미 메리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녀에게 거칠게 손을 휘둘러 뿌리치고, 내게 달려드는 잭의 모습이 보였다.

독기가 주륵주륵 쏟아지는 눈은 매섭다기보다는 끔찍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었다.

인간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나 역시도 저런 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이걸 쓰지 못하도록 팔을 잘라주랴?"


어린 아이에게 협박을 일삼는 내 모습도 꽤나 꼴사나웠지만 잭만큼은 아니었다. 저건 이미 이성을 벗어던진 모양새였다. 물론, 그런 이성은 내 꼴사나운 협박 탓에 돌아온 모양이지만 말이다.

잭은 명백히 겁을 먹은 눈빛으로 멈춰 섰다. 그제야 내 허리춤의 검을 본 모양이었다.


"제 아무리 악명 높은 도둑이었다 해도, 양 팔이 잘린 채로 문을 딴 적은 없을 테지"

"그, 그만둬! 내, 내가 잘못했어!"


나는 내가 로버트일 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로버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굶주리고, 기력은 떨어지고, 삶이 밑바닥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던 부랑자의 삶.


어린아이인 잭에게는 그런 삶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을 테지.


그렇기에 그런 삶에서 구해준, 구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아티펙트에 집착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저리도 꼴사납게 매달리는 것이리라.


"..룽겔?"

"걱정 마, 마리. 적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안해"


지금은, 이라고 유예를 두기는 했지만 잭이 우리를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공격할 마음은 없었다.


"너를 쓸 곳이 있다"

"..넌 귀족이야?"

"그래"

"..흥"


잭은 콧바람을 세게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이, 어지간히 아티펙트에 사로 잡힌 모양이다.


무엇이 이 아이를 그리도 집착하게 만드는 거지?


순간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으나, 나는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차피 곧 성국에 가야하는 나와 마리는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

어중간하게 손을 뻗을 바에는 그저 원망을 감내하는 편이 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일일 테지.


"네 나이의 아이들이 은화나 보석을 들고 다닐 수 있을 리는 없고, 그걸 동화로 환전하거나 판매하는 곳이 있겠지?"

"..나더러 그 사람들을 팔아 넘기라는 거야? 죽을 게 뻔한데도?"


나는 문득 이 아이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기야 이런 골목에까지 찾아온 귀족을 보면 누가 봐도 정상적인 이유로 찾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지.


"난 그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온 게 아니야. 그랬다면 고작 둘이서 왔을 리는 없겠지"

"그딴 건 나도 알고 있어!"


잭이 발악하듯 대꾸했지만 나는 그 말에 딱히 신뢰성이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내 말을 듣는 순간 잭이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박을 한 것은 오히려 메리였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무슨 뜻이니?"

"아저씨가 그들을 잡으러 왔던 아니던 간에, 그 사람들은 저희가 귀족을 데려왔다는 것만으로 우리를 죽일 거에요"


나는 메리의 말에 로버트일 적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전 삶의 기억들을 모두 가지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생에 충실했다.

부랑자로서의 기억보다는 귀족이자 제국 군인으로서의 자아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이 내 자아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여겼다.

이전의 삶과 현재의 삶이 뒤엉키는 순간,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으로서 혼란에 빠질 테니까.


"네 말은 혹시.."


그렇기에 나는 늘 이전 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익숙한 상황에 직면하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기억들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그것을 떠올리려 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지식을, 필요한 곳에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재의 내가 지향하고 있는 방침이었다.


"몸값 때문이니?"

"..네"


메리는 조금 놀란듯한 얼굴로 답했다. 설마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하기야 보통의 귀족들은 이런 면에서는 영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테지.


"하기야 그런 쪽 사람들이 거칠기는 하지. 내가 뭘 믿고 그러는 지는 생각조차 않을 거야. 그리고 자기들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덤벼들겠지. 그러다가 혹시라도 우리가 붙잡힌다면, 너희는 목격자인 셈이니 없애려 할 테고..우리가 잡히지 않는다면 너희는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구나"

"..네. 그리고 당신이 그들을 죽인다 해도 위험해요. 그들과 저희가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거든요"

"너희를 곧바로 의심하지는 않겠지만, 의외로 이 바닥도 좁으니까. 곧장 들키고 말 테지"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이다. 사람 한 둘 죽이는 것이야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한 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만큼 큰 문제였다.

음식을 훔쳐도, 숨어들어도, 결국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언젠가는 들키고 말 테지.


저들은 숫자가 많았고, 실력있는 사람도 꽤 있을 터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오러 나이트나 메이지가 있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아티펙트는 성가시긴 해도 처리 못할 물건은 아닐 터였다.


상대가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네?"


나는 의아해하는 메리를 보며 마리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검에 손을 대었다.

메리의 눈이 크게 띄였다. 역시 총명한 아이였다.


"저희에게 거래를 맡기실 작정이신가요?"


나는 분명 우리가 보이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는 메리를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마리와 이름이 비슷해서일까? 성격도 비슷한 것 같았다.

하기야 그건 아니겠지. 메리나 마리는 무척 흔한 이름이었으니까.


나는 검에서 손을 떼었다.


"너희에게 맡기지는 않아. 분명 제값을 못 받을 테니까"


나는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잭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명백히 분노한 기색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젠장"


잭은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견딜 수가 없다는 눈치다.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린아이에게 있어 이곳은 너무나도 잔인한 까닭이다.


"..그렇네요. 은화 하나를 가져가면 그 절반도 받지 못하곤 했었죠. 보석을 가져간다면 그보다는 더 받을 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가져오라며 닥달할지도 모르지"


흔히 말하는 보호비, 그리고 수수료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이 아이들은 조금도 보호받고 있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있어 위협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이곳에 있는데도 말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보호란, 그들 자신으로부터의 보호였으니까.


"그러니 너희를 지켜볼 거야. 그리고 그들이 거래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방법을 찾으면 되겠지. 그렇게 한다면 너희도 안전하고, 나 역시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안 그러니?"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어떤 걸 말하는 거니?"

"보석상이 아니라 그들에게 거래하시는 이유는 묻지 않겠어요. 그럴 사정이 있으실 테니까. 하지만 굳이 이 도시에서 하실 이유가 있나요? 혹시.."


나는 말끝을 흐리는 메리의 모습에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아티펙트씩이나 가지고 있는 이 아이들은, 굳이 이 도시에 머물 이유는 없었으니까.

메이지나 오러 나이트가 없는 도시로 가기만 해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테니까.


허나 이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 우리와 같은 것일 테지.


"..성국으로 가시는 건가요?"


어려운 추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보석을 제외하고도 스물 두 장의 은화를 가지고 있었고, 성인인 우리가 은화를 사용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석을 처분하려 하는 것은, 그리고 성국의 돈으로 환전하려는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성국이라는 곳이 어지간히 미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짧게 답했다. 모든 사치를 금지하는 성국에서 보석은 제사도구나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만 통용되곤 하였고 그런 장소에서 보석을 파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헌금이라는 명목 하에 빼앗기지나 않는다면 다행일 테지.


나는 병약했던 소녀, 로니에리 란트로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미치광이, 란돌프 사제와 관련해서는 좋은 기억이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성국에 대한 지식만큼은 확실하게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모를 광기와 집착, 역겨울 정도의 신앙까지도..


"그, 그렇다면 혹시..!"

"안 돼. 너희를 데려갈 수는 없어"


나는 망설임 없이 메리의 소망을 짓밟았다.

솔직히 말해 귀찮아서라는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제국에게 발각되기만 해도 성가셔질 일행들 사이에 어린아이마저 끼워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양심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어른이 된 이후에 가거라. 그들의 광기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네"


예상 밖으로 메리는 손쉽게 포기했다. 아니,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과연 이 소녀는, 이 아이들은 무언가를 쉽게 얻어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희망에 눈을 반짝여 본 기억은?


나는 착잡함을 느꼈다. 이 아이들은 자꾸만 내 이전 삶을 떠오르게 한다.

굶주림 끝에 죽어버린, 가엾은 노인 로버트의 삶을.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안 될 일이야'


나는 동정심을 억눌렀다. 책임 없는 동정은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대신 보수를 주마. 은화 3개 치의 동화를 주지. 물론, 수수료는 없다. 그 정도라면 너희도 몇 달은 버틸 테지"


그 이상의 돈은 오히려 독이 되리라.


나는 메리에게 군자금이라 말하며, 서른 개의 은화를 돌려주었다.

잭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는 모습이 보였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마리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는 검을 쥐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6 그레모리 21.07.17 32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20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3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6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 작은 거래 21.06.21 38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