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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27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5.13 11:22
조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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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9쪽

시작

DUMMY

"이정민 어디갔어!"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찔한 나는 괜스레 겁이 나 더욱 몸을 숙였다. 학교 내에서 내 단짝 취급을 받는 선철이가 진땀을 빼며 변명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선생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야! 빨리 전화해봐!"


매섭게 다그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울상을 짓는 선철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아쉽게도 내 휴대폰은 꺼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전화하면 무조건 받을 거란 생각은 너무 안일하지 않나?

그래도 미안하다 선철아. 하지만 너도 이해해주겠지?


모름지기 고 3의 삶이란, 야자 때 몰래 먹는 닭강정이 제일 맛있고 야자를 째는 순간이 가장 즐거운 법이잖아 안 그래?

닭강정을 먹었다면 이제 돌아갈 일만이 남은 거라고.


야옹~


"어우 깜짝이야"


이제 담을 넘어 도망치는 것만이 남은 순간,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숙였다.


"아오..고양이잖아?"


누가 들어도 고양이 소리였지만 온 신경이 뒤쪽의 목소리에 집중되어 있던 나로서는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수명이 5분은 단축된 기분이다.


"야! 저리 가!"


문제는 내가 도망치려는 루트를 고양이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란 눈을 가진 새카만 고양이. 하얀 양말을 신은 것처럼 발만 하얀 고양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할 뿐, 비켜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아씨..여기 아니면 안되는데"


언덕길 위에 지어진 우리 학교는 담장의 높이가 제각각이어서 넘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었다.

물론, 학교의 크기가 제법 되는 만큼 낮은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불법 주차 된 차량이 담장 옆에 떡하니 늘어서 있었다.


자칫 담을 넘다가 차를 파손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담을 넘다 차를 부순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담장의 모퉁이부분이 아니면 탈출은 힘들었다.


"야!"


다급해진 나는 먹다 남은 닭강정을 꺼내 눈앞에서 흔들며 고양이를 유혹했다.

경비 서는 아저씨가 슬슬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 까닭이다.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닭강정이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그제야 흥미가 가는 지 귀가 쫑긋해진 고양이는 우아하게 몸을 일으키며 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이런 순간에도 고양이는 고양이구나 싶어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미친!"


고양이가 그대로 발을 삐끗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닭강정을 내던지며 고양이를 잡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담장 아래로 달려든 순간, 발밑의 지면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제서야 고양이가 뛰어내리기도 전에 발을 삐끗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멀쩡한 땅이 꺼지다니! 싱크홀이라도 있는 건가?


허나 나는 그 해답을 찾기도 전에 끝없이 곤두박질쳤다. 나는 지금 어딘가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추락하는 아득한 감각이 위협적으로 달라붙어 목줄을 동여맨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내가 누구였지?


아, 그래. 나는 고양이. 고양이가 된 지 3일 된 3살 암컷 고양이다. 그런데 뭔가 말이 안 맞는 것 같은데?

고양이가 되었다니? 나는 처음부터 고양이었잖아? 안 그래?


"베키~우리 귀여운 아이. 밥 먹을까?"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저 노인이 붙인 제멋대로의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키가 뭐야 베키가. 성의가 너무 없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뭐, 상납도 꾸준히 하고 있고 식사 수준도 괜찮으니 일단은 넘어갈까.


하기야 길고양이인 나에게 이름이란 게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나는 아직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는 잘 구워진 스테이크 앞에서 그것이 식기를 기다렸다.

노인의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달싹이고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스테이크 위에 발을 올렸다.

뜨거워서 아주 잠시 올려놓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노인이 안보는 사이에 접시를 빼앗아버리는 까닭이다.


엊그제 보았던 외눈 까마귀같은 여자다. 기껏 찾은 소중한 먹이를 낼름 훔쳐가는 못된 녀석.


나는 코웃음 치며 다시 고기가 식기를 기다렸다.

노인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대하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냐옹(음. 수고했다)"


하는 수 없이 그리 말을 하자, 노인은 그제야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접시 위에 있는 고양이밥처럼 생긴 생선머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흠, 취향이 독특한 여자로군. 원래 생선을 좋아하는 건가?


순간 의아함이 들었지만 우선은 고기가 먼저였다.

나는 적당히 식은 고기를 뜯어먹으며 한숨을 내쉬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무시했다.


흥, 허구한 날 나를 내쫒을 생각만 하는 주제에..


"어휴..'또' 베키를 데려오셨네..불쌍해서 어쩌지.."


여자가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입 안 가득 채워진 고기를 씹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고기보다는 생선이 더 좋긴 하지만 저런 머리만 남은 생선은 사양하고 싶었다.

역시 생선이라면 알 가득 밴 생선이 최고지. 암.


식사를 마치고 의자 위로 뛰어올라 누웠다.

밥 먹은 후에는 또 햇빛을 쬐어줘야 기분이 좋으니까.

따뜻한 햇살이 몸을 덥히기 시작하는 이 순간은 점점 선선해져가는 요즘 시기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야옹(아 햇빛 가리지 말란 말이야)"


그렇기에 갑자기 멍하니 몸을 일으키는 노인의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더운 날에야 그늘도 썩 마음에 드는 편이라지만 지금은 가을이었으니까.


"어, 어머님!"


그러던 중 젊은 여자가 노인의 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비명처럼 날카로운 소리다. 귓가를 찌르는 듯한 소리에 절로 귀가 아파온다.

왜 저리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귀아픈데 말이야. 응?


콰득!


나는 갑자기 시야가득 채워진 노인의 엉덩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낯익으면서도 기분 나쁜, 증오해 마지 않는 남자의 소리다.


"후..버거운 놈이었어"


불쾌함을 견디지 못해 눈을 뜨는 순간, 강렬한 죽음의 기억이 덮쳐들었다.

갑작스레 깔려 죽어버린 기억과 동시에 달려드는 목 졸려 죽어버린 기억.

그 순간 나는 고양이임과 동시에 한 노인이었다.


숨이 가쁘다.


덜덜 떨리는 몸에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끝이 난 상태였으니까.


죽음..죽음..죽음..누가 죽음을 캄캄한 어둠이라 하였던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죽음은 빛이었다. 창백하고 차가운, 생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톱날같은 빛.


"봤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된단 말이야! 알겠어?!"


증오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그곳으로 밀어 넣은 자의 들끓는 듯한 말들이 귓가들 두드린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죽음에 의한 아픔은 어디에도 없었고, 혼란은 차츰 잦아들었다.

상황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녀석은 한스. 이 구역 부랑자들의 우두머리이자 나를 죽인 녀석이다.


그 끔찍한 빛 속으로 날 밀어버린 빌어먹을 자식.


"저, 저기..대장"

"엉? 뭐야! 너도 불만 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저기.."


부랑자 중에 한 명이 떨리는 눈으로 나를 손가락질 했다.

누구였더라?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신입인 것 같다.


"뭐, 뭐야! 어떻게 된거야!"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나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한스의 모습이 보인다. 경악하며 뒷걸음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평소에는 어떤 상황에도 겁먹지 않을 것처럼 굴었지만 결국 겁쟁이 아닌가.

날 죽이는 행동이 세상의 정의인 것처럼 지껄였지만 결국 제일 약한 녀석을 죽여 입을 줄인 것이 아닌가.


고작 그들이 굶주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머, 멈춰!"


뒷걸음치던 발조차 굳어,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직감했다.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녀석을 죽이자.


사람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목격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겁에 질리기도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거나 공격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너는 어떨까 한스.

이미 나를 한 번 죽인 너는 나를 또 죽이겠다 덤벼들까? 그렇지 않으면 겁먹고 도망칠까?


"오면 죽여버리겠어!"


비명지르듯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한스의 몸은 굳어버린 지 오래다.

그 얼어붙은 뇌로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괴물? 도플갱어? 유령?

어쩌면 노인과 아이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 지도 모르지.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곧 죽을 녀석의 생각 따위.


"그리도 잘났다면 죽여 봐"


내 이름은 로버트. 일흔 살의 노인이자 부랑자. 전직 목수.

화재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고 거리를 헤매고 있으며, 지금은 날 죽인 놈의 목을 조르고 있다.


"컥..켁..!"


죽기 전의 나는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골은 몸과 알콜 중독으로 장기가 썩어버린 노인이었다.

하지만 되살아난 나는 다르다. 새로 태어난 것 마냥 전신에 힘이 가득하고 더 이상 손이 떨리지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일흔 살 노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으로 되돌아온 이상, 평생을 목수로서 살아온 나에게 비쩍 골은 부랑자 하나, 겁에 질려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하는 녀석의 목을 조르는 건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죽어버려"


그것은 악에 받친 목소리가 아닌, 덤덤하기 짝이 없는 읊조림이었다.

한스는 괴로움에 발을 굴렀으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의 몸은 잠시 떨리다 멎어버렸다.


이내 곧 차갑게 식어버리리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 대장이 죽었어..!"

"도, 도망쳐!"

"죽은 녀석이 되살아나다니! 말도 안돼!"


뿔뿔이 흩어지는 부랑자들을 보며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치안이 강한 중심가보다는 차라리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눈부시게 발전한 제국은 황금과 음식이 가득했으나, 이제 막 제국에 점령당했을 뿐인 이곳은 그 휘광이 조금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거칠게 요동치던 심장의 고동소리와 함께, 불처럼 들끓던 분노가 차츰 식어가기 시작했다.

냉정해진 나는 혼란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고양이었는데..아니 동시에 로버트이고 말이야.


"아니, 아니지..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은 너무 뻔해"


혼란은 찰나에 불과했다. 채 1분이 지나기도 전, 나에게는 더 이상 자아에 대한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로버트였다.

고양이 베키였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내가 로버트가 되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다만, 궁금한 점은 어째서 한 번 죽어버린 내가 되살아났냐는 것.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물론, 죽음보다야 삶이 낫기는 하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술에 절어 살던 나조차 당연한 전제였다.


비록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을 달고 살았을지 모르나, 이제는 죽음이 어떤 것인 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한 번 겪어본 죽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끔찍했으니까.

고양이로서의 죽음을 합치면 두 번으로 세야 하는 것일까?


"근데 드라마가 뭐지? 영화는?"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그에 대한 답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 혼란하긴 한 모양이다. 뭔지도 모를 말을 지껄이고 있다니..


"알게 뭐냐. 밥이나 먹자"




*





그러나 나는 내 상황에 대해 굉장히 낙관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되살아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의 일이었다.


한스를 죽였을 때만 해도 이제 내가 이 구역에 있는 걸 방해할 녀석이 없으니 편해지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까닭이다.


물론, 나를 보면 겁을 먹는 까닭에 부랑자들이 나에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거리낄 것 없어 보이는 녀석들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하나 용기 있는 놈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문제는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었다. 부랑자의 고질적이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다른 부랑자들이 모은 것을 모아서 같이 나눠먹었고, 반대로 내가 식량을 구했는데 다른 녀석이 구하지 못했다면 나의 것을 나누곤 했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배려심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굶어 죽으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식량을 나누려는 녀석이 없다. 모두들 나를 보면 도망가기 일쑤였으니까.

나는 졸지에 모든 협력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고되고 버거웠다.


처음에는 그래도 그냥저냥 버틸 수는 있었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까닭인지 체력과 건강이 모두 정상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량을 구하지 못한 나날이, 굶주리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녀석이 훑고 지나간 곳에서 남은 것을 주워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않겠나.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나는 그 당연한 명제를 나는 새삼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 깨달음의 대가가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내가 70대 노인이었기에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저 찬란한 제국조차 평균 수명은 오십 살 정도가 아니던가.

일흔 살의 노인이라면 당장 죽어도 호사 소리를 들을 터였다.


허나 나를 특히 힘들게 하는 것은 요즘 들어 제국의 병사들이 많아지고 있어 식량을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음식 찌꺼기 하나 없지는 않아야 할 텐데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삭막할 정도로 말끔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우리 같은 부랑자들은 모조리 내쫒거나 일꾼으로 쓰려고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부랑자들 입장에서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랑자 생활보다야, 시민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꼬박꼬박 밥이 나오는 노예 삶이 나을 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록 내가 목수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평균수명을 아득히 넘은 나를 고용해 줄리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일을 소개받을 만큼 다른 부랑자들과 친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오히려 나에 대한 불길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노인을 내쫒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미신만 아니었어도 진작 쫓겨나고도 남았을 테지.

나는 스스로가 애물단지임을 씁쓸하게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점점 더 굶주려갔다. 속절없이 시간만이 흘러간다.

주린 배는 고통스러웠고 날아갈 것처럼 활기가 넘치던 몸은 점차 야위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날이 갈수록 고장 나고 있는 듯한 공포에 물들어갔다.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경종을 울린다.


아픔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음식을 안 먹어도 되는 시간이 얼마였더라?'


나는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공포를 이겨내려 했다.

작은 함정을 만들어 생쥐를 잡아먹고, 고인물로 목을 축여 겨우 하루를 버텼다.

고양이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생쥐의 날고기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 비해 쥐는 너무나도 작은 식량이었다.

그리고 고양이였을 적의 기억은 거부감을 줄여 줄지언정, 생쥐를 더 잘 잡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굶주려가며 급기야 썩은 음식에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끄으으..."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골목. 내가 죽었다가 살아나고 한스가 죽음을 맞이한 이곳.

두 달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시신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골목에는 인적 하나 없이 적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새로운 개척지의 일꾼으로 끌려간 까닭이다.


오직 나만이 옛 시절의 잔당이 되어 이 골목에 남아 있었다.

쓸모가 없어 버려진 나는, 병들고 지쳐 쓰러진 나는 웅크린 채 벽에 몸을 기댔다.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복통이 끓어오르고, 나는 매순간 쇠약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스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조차 나는 배고픔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먹었던 모든 것을 토해내고, 쏟아내고, 고인 물을 마시고 다시 게워내고..


"으어아악.."


의미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절로 쏟아지고 있었다.

눈앞은 흐릿하고 창백한 불빛이 눈앞에 번득인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굴렀다.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기 싫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안돼..그럴 수 없어..멈춰..멈추라고!"


또 다시 죽는단 말인가. 두 달 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그 끔찍한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아픔보다도, 죽음이라는 결과가 싫어 발을 굴렀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숨 가쁘게 목을 죄는 아픔과 작열하는 통증마저 저 두려운 것에 비하면 달콤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까.


견뎌, 버텨!


간절한 일갈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나에게로 걸어오는 저 발걸음은 천둥처럼 선명했고, 번갯불 마냥 푸르게 불타고 있었다.


나는 숨을 뱉었다. 삼켰다. 호흡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필사적으로 호흡하며 견뎠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남아야만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거..억.."


그러나 이윽고 배배 꼬인 것 마냥 뒤틀린 내장이 죄어들기 시작하고..

내가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뱉어낸 호흡은 그저 최후의 숨결이 되어버렸다.


나는 또 다시 죽어버린 것이다.




*



"..시발"


나는 거칠게 호흡하며 몸을 일으켰다. 또 다시 되살아나 버린 까닭이다.


내 이름은 마이크. 제국 수도의 변두리에 있는 마약상점의 주인이자 밀수꾼이다.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겠군.


아무래도 나는 죽는 순간 다른 생명이 되어 부활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이미 죽어버린 동물이나 사람이 되어서.


작가의말

공모전 시작 시간 전에 올려버려서 다시 올려야 한다는 군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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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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