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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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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51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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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혈통

DUMMY

'그래, 살아남기로 결정했었지. 그렇다면 언젠가 찾아올 일들이었어'


스스로의 목숨에 가치를 두지 않았을 적에, 마리는 죽음을 바라왔었다. 그것이 옳다고, 그것이야말로 정의라 믿었기에 벌였던 생각들이었다.

허나 이제는 그녀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죽음이야말로 그녀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라는 것을.


'버거워. 하지만 망설일 수는 없지'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실로 모순적인 일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치환될 수 있다 맹신하는 어리석음이다.

허나 양팔 저울 위의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지? 금과 납이라 할지언정, 납의 숫자가 수백, 수천, 수만 넘어선다면 어떻지?

그것이 납과 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라면?


'어차피 나는 죄인이야. 물려받은 죄를 벗어던진다 한들, 그것은 변치 않겠지. 다만 그것에 몇 개의 죄를 더할 뿐'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없이 많은 생명들의 생존에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마리가 가장 혐오하던 종류의 일이었을 터.


"저는 늘 죽을 곳을 찾고 있었죠"

"그렇다면 감히 추천하지. 이곳은 어떤가?"

"거절하겠어요.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죽음이거든요"


허나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진다면..


"그것 참.."


아쉽군. 이라고 반이 말을 이으려고 하던 순간의 일이었다.


"자작님!"


파라크의 팔이 뒤쪽으로 쏘아지는 것을 보며, 반은 엠버가 왜 경고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기에 반응이 늦어졌다. 파라크의 팔이 실버 골렘들에게 닿고, 은빛이었던 골렘의 피부가 금빛으로 물드는 순간까지도.


"골든 나이츠?"


문득, 반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 것은 이미 죽어버린, 알렉스 황자의 골렘이자 황실 전용의 골렘이 가진 이름이었다.

그 이름만큼 찬란한 금빛의 골렘. 그리고 그 찬란함에 조금도 따르지 못하는 성능의 결함품.

사람이 없을 때야 말로 진가를 발휘하는 골렘에게, 굳이 흠집을 남긴 용두사미의 실패작.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던 물건.


"그 무늬만 금빛으로 도금된 녀석이랑은 차원이 다르군"


허나 지금 이 순간, 반이 떠올린 것은 칠채색의 골렘이었다. 홀로 산맥의 주인 중 하나와 대적하고, 심지어 승리하였던 괴물.

물론, 저것은 그 괴물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으나 실버 골렘의 수준은 확실하게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상위 호환인 블랙과 화이트조차도..


"항상 저는 물러서 있었죠. 제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을 고생하게 만들었어요.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죠"

"멍청한 생각이군. 그래봤자 방관이 아닌가"

"네, 멍청했어요. 그리고 이기적이었죠. 그래서 이제는..그러지 않을 작정이에요"


반은 본능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피를 조종하는 아티펙트에게 있어 가장 큰 난적은, 피가 흐르지 않는 골렘이라는 사실을.

허나 피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게서 뽑아낸, 그리고 룽겔에게서 뽑아낸 피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카가가각!


다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위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지만.


"스칼렛 위치. 피를 다루는 단검이죠. 위력은 빼어나지만 그것도 조건에 따라서에요"

"잘도 아는군. 혹시 본 적이라도 있나?"

"그건 처음보는군요. 하지만 그 쌍둥이 검은 달라요"


던 위치.


반은 그 이름을 떠올리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역시 자네들은 마그나의 사람이었군"

"네, 맞아요"

"..순순히 인정하는군?"

"알려드리지 않을 이유는 없죠. 그리고 그 단검을 가지고 계신 이상, 당신 역시 저와 무관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자네 역시 귀족이라는 뜻이겠군"


반은 가문에 내려오는 이 단검의 연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의 영웅에 의해 탄생한 두 개의 단검이, 어떠한 연유로 나뉘었는지도.

가문의 역사서에서 지워 진 단 하나의 이름이, 얼마나 치졸한 배신으로 가문에 먹칠을 하였는 지도.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보고하지 못할 테고 말이야"

"당신에게는 그것이 치욕이던가요?"

"로멘스라 할 작정인가? 그렇다면 시대를 잘못 골랐군. 적어도 수백 년은 말이야"


붉은 파도가 몰아친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의 낱알들은 저마다 둔중하고 묵직한 둔기로 되어 있었다. 골렘들의 피부가 움푹 패이기 시작했다.

허나 그리 큰 효과는 없었다. 상처를 입는 족족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올렛의 재생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의 장난감을 빼앗아 가는 게 그리도 좋던가?"

"당신의 장난감은 아닌 것 같던데요?"


골렘들은 이윽고 탄막을 견디다 못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점차 익숙해져 간다는 듯한 그 모습에 기가 찰 정도였다.


"산맥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었지. 그렇다면 그 이상한 인형으로 해낸 것인가?"

"조언이 있었죠. 당신이 죽인 한 고블린의 동생이 해주었어요"

"라달다를 말하는군"


마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붙잡은 포로에게서 정보를 캐내지 못할 이유가 있던가?"

"포로..인가요? 하지만 마법으로 뇌를 파헤치는 건 조금 잔인하지 않나요?"

"잔인하다고? 마그나의 사람이 감히 그런 말을 하나?"


콰득!


단숨에 합쳐 진 핏줄기가 골렘의 몸체를 꿰뚫었다. 꿰뚫음과 동시에 비산하는 산탄이 그것의 육체를 완벽하게 비틀어내고 있었다.


"역시 살상력에 있어서는 마검에 필적하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던 위치가 더 두려워요"

"..이상하군"

"무엇이요?"

"왜 내게 정보를 넘겨주지?"


반은 그 묘한 감각을 견디지 못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입으로는 자신들을 죽이겠노라 말하는 그녀가, 왜 그리도 상세히 자신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는 가에 대해서.


"어차피 당신이라면 대부분의 것은 짐작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제가 왜 이러는 지도 짐작해보시죠"

"글쎄. 내가 답해 줄 이유는 없을 듯 하군"

"그리 많은 걸 알아내시진 못하셨군요"

"..왜 그리 생각하지?"

"흔히 탐정이란 족속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 나더라구요"


반은 그 뿌리깊은 편견에 반박하려 했다. 허나 끝내 양심이 찔려 입을 열지 못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자신은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샤스포 수사관과 친해진 것도 그러한 과정에서였지 않던가?


"큰 이유는 없어요. 사실 당신에게 알려준다기보다는..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알려 주려 한 거죠"


반은 무심코 엠버와 사라 일행을 돌아보았다. 알려준다고?


"아 그렇군요. 그 사람들은 알면 안됐어요"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사라와 그 부하의 목이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일격이었다.


'아니지..보이지 않았다고? 저 기괴한 인형의 손이 그렇게나 빨랐던가?'


아니, 틀렸다. 마리의 공격이 빠르기는 하지만 결코 놓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살검!


"엠버! 적이 늘어났으니 주의하게!"

"..이미 늦은 것 같군요"


엠버는 항복하듯 손을 들어올렸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감각이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어,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눈 이의 형상을.


"리자드맨이군요"


반은 그 말과 동시에 엠버의 목에 생기는 붉은 선을 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 가 그녀의 목에 칼을 가져다 붙인 듯한 형상이었다.


"..내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항복할 거라 생각하나?"


반은 허세를 부리며 단검을 휘둘렀다. 단숨에 말라붙는 사라 일행의 목에서 피들이 솟구쳤다. 단숨에 2배 이상 늘어난 핏방울들이 흉흉하게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반은 스스로도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배신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부하일 지언정, 그로서는 절대 그녀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 폰 클락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뇨. 검을 거둬 룽겔. 아니, 지금은 누구지?"


허나 오히려 마리 쪽이 그 검을 거두라 말했을 때, 반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엠버 역시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마치 그 말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 가 검을 거둬들이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보리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나의 리자드맨이었다. 매끄러운 피부와 촘촘한 비늘들, 다이아몬드 형의 눈동자와 붉은 갈기처럼 뻗어나간 머리칼.


"샤스포"


그리고 반은 발견했다.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 쓴 친구를, 메이지 아크롭스를, 헤벨 일병을, 사촌 동생 룽겔을.


지금껏 쫒아 왔던 이름 모를 누군가의 환영을.


"아니, 아니야"


그렇기에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당신은, 적어도 보리스는 아닐 테지"


그에게는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끔찍하게 뒤틀린 근원이.


"역린을 건드리는군"

"지금은 도마뱀이니 어쩔 수 없지 않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마리를 보며, 보리스는 콧웃음쳤다.


"왜 저들을 죽이지 말라 한 거지?"

"그것이 마노의 지침이었으니까"

"그의 계획을 신뢰해?"

"길을 헤매고 있다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법이야"

"부디 그가 고장 난 나침반은 아니기를 빌어야겠군"


그리고 이곳에 집결한 것은 여섯의 그림자였다.


시녀를 자칭하는 마리와, 그녀가 지배하는 호문클루스와 골렘.

리자드맨 상인이 되어 돌아온 보리스.

어딘가 체념해버린 듯한 기색의 엠버와 여전히 적의를 불태우는 반.


"그럼, 우선은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리고 저 멀리 숨어있던 잭과 메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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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2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20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3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 혈통 21.07.04 26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7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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