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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29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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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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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맹약

DUMMY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반은 마리의 말에 반발하듯 입을 열었다. 마리는 그런 반을 지그시 바라보며 침묵했다.

반은 결국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이제 할 말은 다 했다 이거군?"

"그 이상을 듣고 싶으셨던거라면, 아쉽게도 알아서 알아내시죠. 사실 저희도 잘 모르거든요"

"..그 남자"


그 말에 반이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마노였다. 동료를 죽이고, 자신을 쓰러트렸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고 넘어가 버린 그.

반은 이제껏 그것이 실수였거나 죽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어서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 모든 것의 결정자라면, 대체 왜 자신을 살려둔 것이지?

진정 그가 이 기괴한 일행의 핵심인가? 그럼 왜 길버트 황자가 이들과 함께 하지?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황자라 할지언정 수도를 폭파시킨 자들과 함께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 그렇군'


반은 그제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지금까지 의심해왔던 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은 것이다.


"자네들은 올가 론디아르와 같은 편이 아니었군? 아니, 적어도 수도가 불타던 시점에는 아니었군?"

"..그걸 이제야 아셨나요? 저희와 함께 그녀와 대적하셨으면서도?"

"이제와서야 확신할 수 있었던 것 뿐일세. 오히려 같은 편이기에 선을 긋는 척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산맥에서 보았을 때의 자네들은 그녀와 협력하고 있지 않았던가"

"피곤하게 사시는군요. 당신에게 단 한 번이라도 진실 된 사람이 있기는 했었나요?"


반은 침묵했다.


"부탁할 것이 무엇이지?"

"우선은 환전이에요. 이 돈을 성국 돈으로 바꿔주세요"

"..목적지를 숨기지 않는군"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딱히 말씀도 드리지 않았는데 이곳까지 쫒아오셨잖아요?"


마리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내밀었다.


"수수료는 제가 드린 정보로 대신 하시죠"

"제멋대로군. 내가 환전소라도 되는 것 같나?"

"환전소보다 낫죠. 수수료가 없으니까"

"내가 이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지?"

"상관없어요. 물론, 당신은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반은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전력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이다.

마리라는 여자 자체로도 버거운데 이제는 싸움꾼으로 유명한 리자드맨까지 붙지 않았던가.


"엠버, 하나 묻겠네만"

"아쉽게도, 추가 병력은 구하기 힘듭니다"

"거대한 세력이라더니..도움이 안되는군"


마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반을 보았다. 기회가 되면 자신들을 붙잡으려 한다는 것 쯤이야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상의를 하다니?


허나 그런 마리가 느끼는 감정을 반 역시도 그녀에게 느끼고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하기야 스스로의 별난 구석 같은 건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서로를 별종이라 여기는 그들의 기묘한 거래. 그리고 그것은 지금 바로 성사되는 것만 같았다.


"마리!"


또 다시 불청객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요”


보리스가 마리를 부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파라크의 손을 늘렸다. 수없이 늘어선 인영들이 그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도시의 병사들인가?


"마리, 저건 암흑가의 놈들이야"

"네가 데려온 거야?"

"아니, 죽이긴 했지만 흔적은 지웠어"


보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암살검을 보여주었다. 마리는 순순히 납득한 듯 했다. 마검 씩이나 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오히려 흔적을 남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잭, 메리. 혹시 암흑가에서 무언가 받은 것이 있나요?"

"왜, 왜 묻는거야? 당신도 그때 들었을 거 아니야?"

"들어?"


그 순간, 마리가 떠올린 것은 자신과 룽겔이 하녹의 말을 훔쳐 듣던 순간의 일이었다.

그때는 그들이 털어놓는 정보 역시 중요하다 생각했지만..사실 그 모든 행동들이 자신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했던 거라면?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에 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리 복잡한 수작을 부리지는 못했을 터.

마리는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희미하지만 무언가 마법적인 흔적이 엿보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희미해서, 의심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전혀 보이지 않았을 그을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우우!


마리가 아이들을 불러 오려 했을 때, 어디서부턴가 늑대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웨어울프.."


그것은 마리에게 있어 너무도 익숙해진 소리였다. 물론, 당황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괴물이 왜 도시 안에 있는 거지?"


허나 당혹스러운 마음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반 역시 지금의 상황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듯 했다.

그렇다면 암흑가의 독단인가?


"빌어먹을..시장!"


허나 반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애초에 저들이 이렇게 집결한 것 자체가 그의 용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웨어울프와 같은 괴물의 도시 출입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바,저들의 존재 자체가 시장의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수사관인 나에게 저리도 당당하게 보여 준다는 것은..'


반은 긴장하며 단검을 더 거세게 쥐었다. 저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의외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저 남자를 빼고 다 죽여"


그리고 쏟아지는 것은 잿빛의 폭풍이었다.





*





피로 된 칼날이 춤춘다. 엠버를 향해 손톱을 겨누던 은빛의 웨어울프가 손목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손목을 잘라낸 피의 칼날이 주인에게 돌아가 위협적으로 춤췄다.

허나 웨어울프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고통스러워 할 뿐, 다시금 공격에 나서는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반은 그들의 눈빛이 무언가에 취해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마약인가? 이 나라에 마약이 돌고 있다고?'


마약과 관련된 자들은 설령 귀족이라 할지언정 사형을 시키고 마는 것이 제국의 국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감히 저런 짓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아니, 틀렸어. 설마 저건?"


그리고 반이 떠올린 것은 지금은 죽어버린, 알렉스 황태자의 비밀스러운 사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분명 그가 취급하던 것은 어린 아이들과 마약이었을 터.

마약도 마약이지만 적국의 아이들을 데려왔다는 사실에는 경악했던 기억이 있었다.


허나 그가 밀수한 아이들과 마약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 가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자작님!"


엠버의 외침에 반은 정신을 차린 듯 몸을 숙였다. 조금 전 팔을 잃었던 웨어울프가 그를 향해 남은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분명 자신은 죽이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팔을 잃고 난 후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았다.

반의 칼날이 적을 양단한다.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시체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점차 늘어나는 피를 보며 반은 이대로 가면 마리와 보리스를 붙잡는 것 역시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짓이냐! 공격하라니까!"


단,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저들 웨어울프들은 결코 마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맹약"


누군가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백이 넘는 숫자의 웨어울프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잠식한 마약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단호한 태도에 그들을 조종하던 이가 당황했다.

하기야 그가 알겠는가. 그들의 피 자체를 지배하는, 그들의 영혼 깊이 새겨 진 하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마리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더해지는 무게가 막중했다. 라이아칸의 부족들과는 다르게, 회색 털을 지닌 웨어울프들이었다.


분명, 다른 곳에 살고 있던 부족의 사람들인 것이겠지.


그리고 회색 털의 웨어울프들은 북쪽 땅의 산맥에 사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노와 마리가 피나르로 넘어올 적에 지났던 바로 그 산맥이었다. 즉..


"당신들은..마그나의 웨어울프들이군요"


마리의 질문에는 묘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이 약에 취해있었기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리는 자신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무겁다. 선조들은 왜 저들을 버렸지? 잊어버린 것이지? 전하지 않았던 것이지?


"이익! 쏴라!"


웨어울프들이 명령을 듣지 않자, 결국 암흑 속에 숨어있던 자가 소리쳤다. 단숨에 쏟아지는 것은 화살의 비였다.

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저들은 암흑가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었다 생각해도 좋을 터였다.

정규군들은 화살을 쏠 바에는 소총을 쏘는 편이었으니까.


"파라크!"


무릎 꿇은 웨어울프들을 포함해 일제히 쏟아지는 화살. 그것들을 모조리 잡아 챈 것은 수 천으로 증식해버린 검은 손이었다.

파라크는 무심한 얼굴로 자신의 어머니가 흘리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돌려주어야만 하겠지.


"피, 피해!"


빙글-


방향을 바꿔 든 화살들이 일제히 내던져진다. 쏘아 진 속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쏘아 진 화살들이 적들을 꿰뚫었다. 팔들에는 제각각 눈이 달려 있었다.

단 하나의 표적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해보였다.


카각!


그 와중에 내질러 진 피의 칼날을 막아선 것은 보리스였다. 룽겔의 경우와는 다르게, 보리스는 전사로서의 소양이 다분했다. 오러 나이트는 아니었지만 무수히 뻗어 진 손들의 좁은 틈새로 내질러지는 검 정도는 가볍게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위력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큭!"


지면을 할퀴며 밀려나는 보리스를 보며 마리는 눈을 감았다.

흥분해서는 안된다. 파라크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성숙한 아이였으니까.

이 투명한 아이는 필시 제 감정을 거울처럼 비춰낼 테지.


"일어서세요"


그리고 마리는 입을 열었다. 단숨에 몸을 일으키는 웨어울프들을 다루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여왕과도 같은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보리스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무른다.


"당신들이 잃어버린 자유를, 다시 되찾아 오도록 하죠"


그리고 다음 순간, 반과 엠버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최강의 아티펙트를 가졌다 한들, 피가 없는 호문클루스와 괴물들의 협공을 이겨낼 도리는 없었으니까.


"가렴"


허나 마리는 순순히 그들이 물러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잠시 잊혀졌던, 남아있던 한 기의 금색 골렘이 그들에게 쇄도한 것이다.


"엠버!"


그리고 반은 그것에게 붙잡혀가는 엠버의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약속을 지키시죠. 그럼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저희도 그녀에게 악의는 없으니까요"

“마리, 난 저 여자에게 악 감정이 있는데 말이지..”


마리는 보리스의 푸념을 한귀로 흘렸다. 반은 마리에게 떠맡은 돈주머니를 무겁게 끌어안았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성국 돈을 모조리 갖고 오라고"


그리고 검은 손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바람이 멎었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오직 반 하나 뿐이었다.

잭과 메리를 포함해 암흑가의 사람들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


반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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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1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0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6 0 11쪽
66 선동 21.07.07 26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 맹약 21.07.05 29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3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5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8 0 11쪽
54 단서 21.06.25 26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5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6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1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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