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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598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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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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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아가사와 파라크

DUMMY

날아드는 포환을 주먹으로 뭉개어 흩뿌리는 이가 있었다. 잇달아 날아드는 검격을 일일이 손으로 쳐내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캐트 시들의 검격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수녀복을 입은 여인.


그 모습을 본 순간, 샤트라는 몸을 숨기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동시에 다른 캐트 시들이 아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개 개인으로는 그녀에게 대적할 수 없었지만 힘을 합쳐 몰아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성난 돌풍처럼 보였다.


"불신자 놈들!"


아가사가 증오감에 치를 떨며 소리쳤다. 발이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과 저들 모두를 죽이고 싶은 감정이 충돌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에 반응하듯 전신에 맺힌 하얀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빛을 반사하며 흩날리는 머리칼이 얼음처럼 차갑게 일렁인다.


"샤트라!"


캐트 시 하나가 그들의 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녀를 믿고 덤벼들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캐트 시들이 수적으로 유리하였기에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었다.


과연 성국의 수녀라 해야 할까..실제로 아가사는 생존력을 따지자면 실버골렘보다도 한 수 위였다. 물론, 공격력은 조금 부족한 탓에 이렇게 발이 묶였지만 말이다.


"모두 물러나!"


그러던 중 샤트라가 캐트 시들에게 소리쳤다. 조금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모종의 수단이 완성된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적 우위를 포기하라는 말에는 모두가 의아해할 법도 한데도 그들은 의심 따윈 없다는 듯 몸을 날리고 있었다.

단숨에 몸을 피하는 모습이 일사분란하기 그지없었다.


"저건?"


그리고 아가사는 비로소 캐트 시들의 몸에 의해 가려졌던 샤트라의 검을 볼 수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빛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검을..


"오러블레이드? 아니, 아니야.."


순간, 아가사가 떠올린 이름은 오러마스터의 단계를 넘어선 자들에 대한 전설이었다. 단순히 오러에 통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완벽한 통제에 이른 그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힘을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스터의 단계마저 넘어선 그들은 단순히 오러를 밖으로 쏘아내는 것을 넘어서 응축시키고, 변질시키기며, 마치 전혀 다른 검처럼 제련하기도 한다 하였던가.


그렇기에 일견 샤트라의 검은 그 전설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오러블레이드라 불리는, 불순물 하나 없이 응축되어 모든 것을 분쇄한다고 알려졌던 옛 다섯 영웅의 검을..


"그 전설적인 검이 저렇게 쓸데없이 타오를 리는 없지"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진정 순수한 오러로 응축되었다면 저렇게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타오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사는 저 검에서부터 마법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것은 순수한 오러의 기술이라기보다는 마법을 병행하여 위력만을 올린 것이라 봐야 하겠지.


"편법으로나마 흉내 낸 것은 인정하겠다마는..그걸 휘두를 기력은 있어?"


아가사는 샤트라를 조롱하며 옷소매를 거칠게 털었다.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무수히 많은 포환들이었다.

그게 어떻게 들어가 있었는 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있다면 막아 봐!"


그리고 다음 순간, 아가사의 양팔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거친 파공음을 내며 쏟아지는 포환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쿵!


음속을 돌파한 포환들이 일제히 쏟아진다. 아가사는 이미 적들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살려둘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공격에 휘말릴 민간인들 역시 안중에 없어 보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곳이 타국이라는 것과, 포교라는 목적이 지워진 지 오래였다.

오직 불신자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만이 들끓고 있을 뿐이다.


"마리!"


허나 샤트라가 아무 생각 없이 홀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아가사가 뒤늦게 마리의 존재를 다시 떠올렸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몸이 검게 물든 사냥개였다.


"뭣!"


경악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수의 검은 창들이 뻗어진다. 제각각 창에 붙어있는 눈동자들이 표적을 찾아 데굴거린다.

포환들이 허공에 멈춰선 것은 순식간에 멀어진 일이었다. 동시에 벌어지며 길을 여는 검은 물결 틈새로, 샤트라의 몸이 쇄도한다.


츠컥!


아가사의 팔이 잘려나간 것은 그와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태껏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적의 팔을 자른 검은 그러고도 기세를 이기지 못해 바닥을 찍어버렸다. 바닥이 무너진다. 지면이 갈라지고, 터져나가는 파편이 날아간다. 아가사가 이를 악문다.

팔을 잘린 것도 문제지만 이대로라면 무너지는 바닥에 휘말려 저 깊은 지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젠장, 그렉!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야!"


둥!


다행히도 그녀의 발밑으로 생겨난 반투명한 발판에 의해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간신히 발판 위에 버티고 선 몸이 비틀거린다. 팔 하나를 잃은 탓에 균형이 맞질 않는 까닭이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으로 여겨야만 할 테지.

그러나 아가사의 표정은 굳어진 채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건 팔을 잘린 것에 대한 울분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밑에 벌어진 참상을 목격해버린 까닭이다.

골목길은 수백 년간 유지해오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하기야 형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 거리를 유지하던 낡은 벽돌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상황에 무엇을 찾겠는가.

지면 채로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나있었다.

그러한 길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기억뿐이다.


물론, 더 최악인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지만.


"하앗!"


샤트라의 기합과 동시에 검에 맺혀있던 흰색의 빛이 반월형의 검기가 되어 날아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렉!"


아가사의 발작적인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앞으로 무수히 많은 장벽들이 나타났다. 한 장 한 장이 어지간한 마법 정도는 우습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샤트라의 공격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다.


설탕처럼 녹아내리는 장벽들이 아가사의 앞으로 무너져 내리고, 공격은 간발의 차로 그녀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마저도 그렉이 늦지 않게 발판을 지운 덕이었다.


"뭐야 저 괴물같은 위력은!"


아가사는 경계심으로 쿵쿵 울려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불만을 터트렸다.

숫제 오러 마스터라 불리는 자들이 드물기는 해도 그들과 겨뤄본 적이 없지는 않았다.

골렘들이 주류인 북대륙과는 다르게, 아직 중앙대륙에서는 오러와 마법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과 겨뤄보면서도, 그녀는 결코 그들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오러 마스터는 성왕국의 괴물을 제외하면 등장하지 못한 지 오래였고, 그저 통달 단계에 머무는 오러 마스터들은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번 일이 끝나는 즉시 한 개 교구를 담당하는 수녀원장, 혹은 심문관으로 진급하는 것이 확정되어 있는 그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이건 성왕국의 그 괴물에게서도 본 적 없는 공격이 아니던가!


"아 그렇군..너는 검은 손의 사도로구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아가사가 찾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부심과, 광기에 가까운 신앙심을 지닌 그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스스로가 알지 못할 위협이 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지라는 것은 곧 공포였으니까.


"웃기는군"


물론, 수백 년을 살아온 캐트 시에게 그런 억지는 우스워 보일 뿐이다.

샤트라는 빛이 잦아든 검을 내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완성까지는 길이 먼 검술이었다.

오러 마스터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 가장 최근에 사용한 것이 무려 400년 전의 다섯 영웅 중 하나인 단타르크였을 정도로 보기 힘든 검.


오러 블레이드.


이른바 영웅의 검이라 불리는 그것.


'물론, 나는 마법을 이용해 만든 거지만..위력이 엄청나군'


숨어 사는 것이 일상이었던 캐트 시들이기에 이 검을 실험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자주 쓸만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처음 알 수 있었다.


'힘이 들어가질 않는데? 이걸 숨쉬 듯이 썼다던 단타르크는 대체 어떤 괴물이지?'


하기야, 진짜 괴물은 그런 단타르크를 포함한 다른 영웅들의 협공조차 우습다는 듯 받아쳐 버린 마왕이지만 말이다.


"보아하니 검은 손의 힘도 다 떨어진 모양이지? 호흡이 거친 걸?"

"글쎄? 어떨 것 같아?"


샤트라는 일부러 태연한 척 숨을 멈췄지만, 속으로는 혀를 차고 있었다.

사실 표정 따위로 숨길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발산하는 투기 자체가 지극히 미약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거야 보면 알 테지!"


아가사는 망설임 없이 샤트라에게로 몸을 던졌다. 단숨에 뛰어오른 그녀의 몸이 지면을 향해 떨어진다. 한 팔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기세였다.


"실례군요, 저를 이미 잊었나요?"


그녀의 몸을 잡아채는 거대한 독수리가 없었다면 말이다.


"뭣?!"


뚜둑.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한 팔이 없는 아가사는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목이 꺾여버린 그녀의 시신이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의 몸은 검었다.


전신에 가득한 눈동자가 없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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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1 0 12쪽
»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4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0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8 0 11쪽
67 예언 21.07.08 24 0 11쪽
66 선동 21.07.07 25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19 0 12쪽
64 맹약 21.07.05 28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3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5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5 0 12쪽
58 엠버 21.06.29 31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0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8 0 11쪽
54 단서 21.06.25 25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5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6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1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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