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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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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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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6.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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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엠버

DUMMY

"역시 이상하군"


반은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방황하는 상인들을 보고 있었다. 실로 묘한 광경들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무엇이 이상하죠? 저들을 이곳에 묶어버린 건 다름 아닌 자작님이신데요"

"금전적인 피해는 예측했네. 장사라는 것은 의외로 돈이 많이 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왜 방이 없다는 거지? 오히려 남아도는 것이 아니던가"

"..자작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감각'적인 면에서의 조언을 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시장 님이 좀 수상하군요"


시장이라..


반 역시 그 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나 강한 뒷배를 둔 그가, 정식 명령서도 가지고 오지 않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으니까.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지. 언제나 말이야"


그렇다면 시장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였을 터.

그리고 필시 자신의 제안은 그것을 위한 핑계 거리에 불과했으리라.


'노인네..곤란한 척 하더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군..하지만 익숙한 방법이야'


반은 굳이 자신을 핑계 거리로 사용한 것에 대해 기시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사촌 동생을 이용해 길버트 황자를 죽이려 했던 세력들의 방법이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잘 알지 못하는 그 둘을 엮는 것은 근거가 몹시 부족한 망상에 가까웠지만..


'묘하게도 이런 쪽의 감은 잘 맞았었지'


반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 지를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로 가시는 거죠?"

"암흑가라 부른다지? 그곳으로 갈 예정이네"

"무모해요. 솔직히 자작님께서는.."

"약하다는 건가? 그래서 이걸 가지고 온 걸세"


반은 그렇게 말하며 품 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노을처럼 물든, 석양의 검이었다.


"아티펙트인가요?"

"그렇다네. 이거 하나 만으로 이 도시 절반을 살만큼 값비싼 녀석이지"


마검이나 정령검 따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의 단검 역시 아티펙트 중에서는 상위의 것으로 손꼽힐 명품이었다.

다름 아닌 클락 자작가의 인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어떤 효과가 있죠?"

"그건 비밀로 해두지.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은 일일 테니 말이야"


엠버는 반의 대답에 조금 쓰게 웃었다. 반이 그녀에게 세우고 있는 벽 같은 것을 느낀듯한 표정이었다.

반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그나저나, 암흑가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엠버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골목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노골적으로 그들을 경계하고 있는 남자들이 서 있었다.

딱 봐도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사람의 인상 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지야 않겠지만, 만약 온 몸을 피로 물들인 채로 돌아다니는 이가 있다면 그 모든 오해는 그 사람의 책임일 터다.


반사적으로 단검을 움켜쥔 반이 눈에 힘을 주었다. 보이는 사람은 둘이지만 그림자로 보아 최소 한 명이 더 있어 보였다.

반은 해의 방향으로부터 추측해 그 그림자의 주인이 무척 키가 작은 사람이거나, 어린 아이일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엠버"

"네, 자작님"


반은 고민했다. 이 뻔한 함정에 걸려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


그리고 결정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꺼이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밖에서는 볼 수 없는, 함정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분명 있을 테니까.


"쏘게"


그리고 공격은 엠버의 탄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탕!


대낮에 퍼져나간 총성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허나 엠버는 권총을 뽑아 든 채 흔들림 없이 전방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제국 내에서도 특등 사수로 취급되는 그녀였기에 탄환은 정확하게 상대에게 꽂혀들었다.

대머리의 남자가 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팔짱을 끼고 있던 동료, 장발의 남자가 경악했으나 길지는 않았다.


탕!


연이은 총성에 그 역시 쓰러지고 말았으니까.

반은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사람들이 엠버와 그를 피해 흩어졌다.


"과한 건 아닌가요?"

"이미 쏘아 놓고는..반박이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자작님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믿고자 했다면 끝까지 믿게. 그리고 조심하게"

"네?"


쾅!


엠버가 의문을 표했을 때. 담장을 뚫고 나오며 모습을 드러내는 거한이 있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 위로 엷은 황색의 빛이 어른거린다. 엠버는 돌연 나타난 오러 나이트의 모습에 경악한 것처럼 보였다.


황급히 총구를 돌리려는 그녀의 팔을, 반이 움켜쥔다. 그녀가 반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말없이 단검을 들어올렸다. 석양을 닮은 칼이 피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죽어라!"


흑발의 거한이 그들을 향해 짓이 쳐들었을 때, 반은 그대로 단검을 휘저었다.

검 끝이 바르르 떨린다. 붓을 휘둘러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 그림의 물감은 다름 아닌 거한의 피였다.


"으악! 피, 피가!"


덩치에 걸맞지 않은, 호들갑을 떠는 듯한 말이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 하나 없는 팔에서 돌연 피가 쏟아져 나왔으니까.

반의 검에 닿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피는 분명, 불현듯 솟구쳐 뿌려지고 있었다.

허공에 흩뿌려 지던 피가 멈춰선다. 혈관처럼 얽히고 섥힌, 기괴한 형상으로 멈춘 피는 검붉은 빛의 유리 결정인 것만 같았다.


콰득!


순식간에 몸을 불린 핏줄기가 거한의 상체를 찢었다. 팔이 당겨 짐과 동시에 반으로 뜯겨버린 상체가 지면을 뒹굴었다.

반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날카로운 비명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역시나 과하시군요. 평소의 자작 님이셨다면 저들을 체포하려 하셨을 텐데요"

"잊었나보군. 난 지금 휴직 중일세. 그리고 자네의 말이 맞다면, 암흑가의 사람들은 시장과 결탁하고 있다는 뜻일 테지. 체포한들 소용이 없을 거야"

"..절 믿으시나요?"

"자네에 대한 의심과는 별개로, 자네의 능력은 신뢰하고 있네"

"..지나치게 솔직하시군요. 그야 알고는 있었지만요"


반은 입을 다물어버린 엠버를 보며 단검을 수습했다. 별 다른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엠버에게 자신의 의심을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하기야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을 높이 평가하던 반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숨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작님께서는 예전부터 그러셨죠. 하지만 좋지 않은 습관이라 생각해요"

"무엇이?"

"의심가는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하는 점이요"


반은 엠버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앞으로 나섰을 뿐이다. 널브러진 시체로부터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병사들이 출동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반의 의심은 강해졌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의심이었지만 아무래도 정말 이곳의 정규군들은 암흑가와의 모종의 접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반이 과하게 손을 쓴 이유였다.


정말 그의 추측이 옳다면, 이곳에는 그의 편이 없는 셈이고, 그는 스스로의 힘과 각오를 피력해야만 할 테니까.


"그래, 너는..너희는 누구냐"

"..잭. 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뒷골목 소년 잭, 그리고 메리는 그 오만한 남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숨겨놓았던 진실만이 아니라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한 일들마저 단숨에 꿰뚫어버릴 것만 같은..


반 폰 클락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




지독한 남자다.


다시 한 번 그를 마주한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그런 생각이었다. 물론, 마주했다 하여 그가 날 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오직 나만이, 나와 마리만이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나는 그 일방적이기까지 한 관찰 속에서도, 외려 나 자신이 꿰뚫어 보아지는 듯한 감각에 목을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섬찟하면서도 날 선 긴장감이 척추를 따라 내달린다.


'죽여야만 할까?'


나는 생각했다. 장래 이 남자가 우리에게 가져올 재앙에 관하여.


'마노는 반 형을 살려두라 했지만..'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이 남자가 무력해 보일 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독히 무력의 강함이라는 일면에 한정될 뿐이다.

지금껏 이 남자의 패배는 모조리 마법과 괴물들에 대한 미숙함으로 인해 무지로 인해 비롯되었을 뿐이다.

이 남자는 좋게 말하면 수도의 모든 사건들을 지배하고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수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가, 내가 아직 샤스포일 적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역시..죽여야겠어"

"멈춰. 룽겔"

"..말릴 셈이야?"


나는 내 옷깃을 움켜쥔 마리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면 이 아이는 묘하게 마노의 말에 순종하는 기색이 있었다.

물론, 표면 상으로 그의 시녀인 만큼 그러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녀의 진짜 정체가 그의 친척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진 나에게는 아니었다.

설령 그 추측이 틀렸다 해도 그녀가 일방적으로 그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 마그나 왕국은 신분보다는 개개인의 힘과 세력이 중요한 곳이었고, 그녀는 대륙에 손에 꼽힐 연금술사였으니까.


"그녀에게 들킬거야"


허나 마리는 전혀 뜻밖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 그녀라고?


"..엠버"


나는 불현듯 내가 제국의 군인, 헤벨이었을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 본 그녀는 위험성으로 따지자면 평범 그 자체였던 것 같은데?


"물러서"


다음 순간, 나는 내 옷깃을 당기는 마리에 이끌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마리가 경고한 것이 무엇인 지에 관해서 말이다.


"..지금 건 뭐였어?"

"나도 몰라"


나는 내가 조금 전에 본 것이 무엇인 지에 관해 생각했다. 마검의 은닉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뚫고 들어오던 그 정체 모를 손에 대하여.

그리고 그런 사람의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안개처럼 흩날리는 손에 뒤덮인 반 수사관에 대해서도 말이다.


단언컨데, 그 손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도 불길해 보이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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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거짓과 위선 21.07.10 29 0 11쪽
68 암살 21.07.09 20 0 11쪽
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1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6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 엠버 21.06.29 34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9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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