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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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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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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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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항구도시

DUMMY

제국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아르바는 세계 무역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북대륙과 중앙대륙의 최강국인 피나르와 성국 사이의 해협에 인접해 있기도 했지만 육로로는 길이 막혀버린 남대륙의 상인들마저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국은 인간종을 제외한 모든 이종족들을 배척하는 곳이었기에, 사실상 세계인종 모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남대륙으로 가는 육로는 리덴이라 불리는 사막으로 인해 막혀있는 까닭이다.


바다 속에 서식하고 있는, 아직 인류로서도 손 쓸 수 없을만큼 강력한 괴물들을 피해 개척된 유일한 항로.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것이 바로 아르바였다.


"의외로 경비가 허술하군요"

"제국도 통제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꼭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 바닷길을 쥐고 있다면, 어차피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마리는 내 대답을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가만히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아무리 제국 군인이라고는 하지만 항구도시는 해군의 영향력이 큰 곳이었다.

흔히 알려진 정보 외에는 잘 모르기도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얼굴이 알려진만큼 오히려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좋은 의견이라면 수용하면 될 일이고, 아니라 하더라도 그 점을 감안하여 계획을 짜면 될 일이니까.

나는 해군에 대해서만 무지할 뿐, 군인의 생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일행들과 흩어져버린 상황이라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테지.

그래야만 우리가 맡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몇 시간 전의 일들을 회상하며 주머니 속의 동전들을 세기 시작했다.




*




우리가 두 개의 조로 흩어지기 전의 일이다. 우리들은 도시의 출입문을 눈앞에 둔 채 그 자리에 멈춰섰다.

눈앞에 벽을 둔 것 마냥 막막한 기분이었다.


아르바까지의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평생을 제국에서 살아온 룽겔 중령이었고, 샤스포 수사관이나 마이크 등의 다른 제국민으로서의 기억 역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도시 안에 들어가는 것에 있었다.


경비의 삼엄함은 문제가 아니었다. 제국의 수도처럼 결계가 쳐져 있는 것은 아니었고, 수도를 제외한 도시의 골렘들은 병기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니만큼 경비 역시 병사들로 이뤄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골렘에 대한 우대가 심한 나라이니만큼 일반 병사들의 군기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수도가 테러를 당한만큼 평소보다 강도 높은 경계를 서고야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없던 군기가 곧장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다.

바다로 나가는 것 자체는 힘이 들지 몰라도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그 안에서의 활동 자체는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평범한 일행들이라면 말이다.


"현상수배된 인원이 마노, 마리, 유라에다가 제국 군인이 한 명..그리고 제국의 황태자가 한 명..그리고.."


나는 누가 봐도 인간의 크기가 아닌 루루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통이 큰 로브로 몸을 가렸다지만 3미터에 이르는 키부터가 평범한 인간을 벗어나 있었다.

제 아무리 군기 빠진 병사라 할지라도 이런 루루가를 검문하지 않을 리는 없을 테지.

게다가 지금은 루루가의 부족원들도 함께 있지 않던가.


나는 루루가로부터 고블린 제 무기를 받고는 좋아라 하며 웃는 오크들을 보며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의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나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오크들의 평가를 한 단계 낮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루가를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노가 말하기를, 자신들은 오크 부족들에게 배를 주고 그와 동시에 그 배를 타고 성국으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이크..아니, 룽겔 네가 들고 있는 마검을 오크들이 들고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나는 유라의 생각없는 말에 분노를 느꼈다. 이 검이 없으면 나는..!


아니, 아니지.


나는 심호흡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건 안 될걸세"


다행히도, 마노가 유라를 제지했다.


"어째서?"

"마검은 손에 든 사람을 파멸시키기 때문이지. 자네도 들어는 봤을 텐데?"

"나도 들어보긴 했지만 룽겔 저 인간은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고 있잖아?"

"왜일 것 같나?"


유라는 마노의 반문에 미간을 모았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나는 마노의 씁쓸한 미소를 모른 척 했다.


딱히 알려주지 않아도 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묻겠네 룽겔. 자네가 그 검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춰줄 수도 있나?"

"의미 없는 질문이야. 그게 직접 검을 들고 있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뿐이네"


나는 마노가 왜 그리 고심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굳이 오크들을 데리고 가야 한단 말인가.

저들이 진정 제국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애초에 성국은 왜 가는 거지?


"그렇다면 룽겔. 우선은 마리와 함께 들어가주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들어갈 방법을 찾겠네"

"아니, 내가 방금 말한 거 못들었..어?"


나는 마노의 고갯짓에 입밖으로 내놓던 반문들을 되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버틸 수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마리의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호문클루스, 파라크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의 탄생을 지켜본 순간부터 그녀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긴 했다지만..


"..네, 괜찮겠네요"


나는 마리의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혹시 그녀 역시 메이거스인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것을 견디지?

물론, 나 역시도 메이거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결정되었군. 우리는 다시 산맥으로 돌아가 해안으로 간다음, 그대로 해안선을 따라 배를 구해 항구로 갈 예정이네.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지"


나는 그가 알려주는 위치를 기억하면서도 여전히 떨떠름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자꾸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 마리와 마노의 정체는 무엇이지?


정말로 평범한 망국의 백작과, 그 시녀가 맞기는 한 것일까?

백작이야 론디아르의 핏줄이니 그렇다 치지만 마리는..


'그러고 보면 올가 그 여자의 태도가 조금 수상쩍던데..'


나는 마리 역시 그녀의 핏줄인 것은 아닌가를 의심했다. 수백 년의 시간이라는 간극이 있는 만큼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한들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애초에 보라, 지금 역시도 범상치 않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시녀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연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리 역시 론디아르라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특출난 연금술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점이 많았다.

애초에 연금술 같은 고등교육을 받을 환경이 마그나에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중 몇이나 그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유난히 마리를 싸고 도는 마노의 태도 역시 핏줄의 연장선상에 놓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왜 같은 핏줄인 마리는 시녀로 있는가 하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민감한 부분까지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왜 저희는 함께 가지 않는다는 거죠?"


마리의 질문에 마노는 조금 쓰게 웃었다.


"조금 빨리 걸을 예정이라 그런 거지"


마리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마리의 저주받은 신체능력을 떠올리며 웃었다. 물론, 우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진심으로 동의했기에 실소가 나왔을 뿐이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지. 자네들에게는 인어들과의 접선들 요청하고 싶네"

"인어?"


나는 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근방 해역에 인어가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무심코 반문하고 말았다.

마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말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강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중령인 내가 모른다고?


하지만 나의 의문과는 다르게, 마노는 여전히 담담했다.


"기존의 항로는 제국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 힘들어. 하지만 인어들이 영역을 조금만 양보해준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테지"

"인어를 어떻게 찾지?"


나는 우선 마노의 말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내가 그들의 존재 여부를 믿는다 쳐도, 대체 그들을 어떻게 찾아야 한단 말인가.

제국 중령인 나조차 모르는 이들을 말이다.


"그건 자네에게 맡길 수밖에 없군.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지라 내 정보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믿어주게 그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 그리고 이종족들의 특성상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테지"


나는 막막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의문의 크기와 무게, 그것에 대한 한탄보다는 시시각각 흘러가는 한줌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물었다.


"무엇으로 교섭해야 하지?"

"간단하네. 그들에게 내 이름을 대게. 그리고 오래전의 빚을 받으러 왔다고 전하게"


나는 내가 아직 마이크일 적, 마노가 이전에도 제국에 온 적이 있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인어들을 만난 것인가? 나조차도 모르는 그들을?

단순히 수도에 들른 것이 아니었던가?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녔던 거지?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이군'


나는 호기심에 달싹이던 입술을 그대로 굳게 닫았다.

굳이 너무 많은 것을 알려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저들은 저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될 뿐인 일이다.


내가 저들을 궁금해 할 필요도, 저들이 나를 알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원하는 것을 얻고, 얻었다면 헤어질 뿐.


어차피 우리들은 태어난 나라도, 살아온 과정도, 신분과 실력조차 모두 다르지 않던가.


"자네를 믿겠네. 룽겔"


하지만 나의 무관심한 수긍은, 또 다른 몰이해를 가져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저들은, 나를 믿고 있는가.


태어난 나라도, 살아온 과정도, 신분과 실력마저 확실치 않은 나에게.

왜 이리도 과분한 신뢰를 건네주는가.


"..."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묻게 되는 순간, 나 역시도 모든 것을 밝혀야만 할 테니까.

그것만은 있어선 안 될 일일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묵묵히 걸었다. 아무런 말도, 인사도 하지 않았다.







*






마리는 그런 룽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감추고, 속이며, 비틀대는 모습을.


전에도 한 번 생각했던 것이지만, 저 모습은 위험했다.

그는 언제나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언니를 떠올리게 한다.

항상 스스로를 속이며, 강한 척 살아가다 죽어버린 그녀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언니지만 속은 얼마나 곪아 있던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본모습을 보이던, 마리를 걱정하며 죽어가던 언니의 모습은 어땠지?


"..룽겔"


마리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고 변해버렸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하나였던 이름들.

언제나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그였지만 본질은 속일 수 없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이의 껍질을 뒤집어 썼을 뿐이다.


"가까이 붙어. 마리"


룽겔은 마리의 부름을 애써 무시했다.

그가 검을 뽑았다. 새카만 검날에서 피어난 연기가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가 사라져간다. 마리는 그것이 마치 그의 미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


필시, 쓸데없는 걱정이리라. 그는 결코 죽지 않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불길한 검이다.

마리는 착잡한 얼굴로 룽겔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스륵.


커튼을 치는 듯 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드러난 것은 커튼이 아닌 칠흑같은 어둠이다. 모든 빛을 삼킬 듯한 짙은 어둠이 그들을 감싼다.

마리는 자신이 붙들고 있던 옷깃의 감촉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위습"


다음 순간, 어둠을 몰아낸 것은 정령들이었다.

온전치 않은, 이미 죽어버린 이들이 남긴 정령의 부스러기들.

황녹색의 불빛들이 등불처럼 늘어선다.


마리는 처음 성 밖으로 나서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어둡던 밤을 이 불빛으로 밝혔던가? 그래, 그랬었지. 그가 새카만 밤 속에서 길을 인도해 주었어.

그런데..


'그런데 왜 당신은 그리도 헤메고 있죠?'


마리는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삼켰다. 그녀는 자신의 발끝을 보며 시선을 내렸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아무런 궤적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도시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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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1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6 0 11쪽
66 선동 21.07.07 26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6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5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6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1 1 11쪽
»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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