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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28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6.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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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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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사망

DUMMY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반은 순간적으로 든 오한에 미간을 모았다. 단순한 착각으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한 감각이었다.

그는 불현듯 스스로를 잭이라 소개한 소년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안한 듯 몸을 떠는 소녀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 보였다.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터무니없는 수준의 조악한 남장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 만을 알았을 뿐이다.


"너는 잭이라 했고..그럼 네 이름은 뭐지?"

"메, 메트에요"

"그래?"


반은 그 대답으로부터 소녀에게 무엇을 묻는다 해도 소용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선은 넘어가야만 하겠지. 괜한 경계를 사서 좋을 리 없으니까.


'아니, 아닌가?'


반은 순순히 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 층 경계를 올리는 소녀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영리한 아이였다. 엠버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감이 좋아 보였다.


"너희 집으로 안내하거라"


반은 그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잭의 눈매가 비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에 대한 반감이 느껴졌다.


귀족이라서? 하지만 눈치를 볼 것 같은 아이는 아닌데 굳이 참고만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마치 위험에 처했던 척'을 하면 서까지 말이다.


'구해준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경우는 종종 있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헌데 이 아이는 조금 다르군. 내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허나 반은 그 모든 것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바라는 함정으로, 자신을 이끌어주기 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무엇이든 좋다. 하지만 착각하는 게 있군. 숲이나 산 따위와는 달라. 이곳은 내게 유리한 전장이야'


반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것을 발견한 메리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사람..역시..'


그녀는 지금 몇 년 전에 보았던 샤스포 수사관에 대한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녹은 이들이 누구인 지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면 이들은 분명 수사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투와 걸음걸이.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제식의 흔적. 그리고 조금 전의 총성까지..


"잭.."

"..알아"


메리에게 확신이 일었을 때, 그녀는 무심코 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옥불 마냥 타오르는 그의 눈빛이 보였다. 메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지독한 증오감이 그 작은 소년 안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메리는 그제야 하녹이 자신들에게 일을 맡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잭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못 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잭의 아버지를 잡아간 사람이 다름 아닌 수사관이었으니까.


"..따라오시죠"


설령 그가 범죄자였다 할 지라도,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들은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뒷골목에서 나고 자란 잭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지금..죽일 수 있나? 아니, 아니야. 나에게는 아티펙트가 없어'


다음 순간, 잭은 완벽한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점 증오조차 보이지 않는 냉랭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메리는, 그리고 반은 알고 있었다.


저 속에는 분명 얼음보다 차갑게 굳어버린 살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




쿵!


땅이 흔들리며 갈라진다. 우수수 쓰러지는 나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교차하고 엉켰다.


난데없는 재앙에 도망치는 짐승들 사이로 검은 형체가 내달린다. 길게 다리를 뻗으며 나타난 그것은 정형화된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안개와도 같은 모습이다. 주욱 찢어진 눈알 하나가 끊임없이 굴러다니고, 그 위로 여섯 개의 동공이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형상을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무언가였다.


아니, 과연 저것은 살아있는 생명이긴 한 것일까?


길버트가 그것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리가 창조한 호문클루스였다.

인공적인 생명을 부여 받았기에 조금은 불완전한 그것의 모습이, 불안정한 형태로 수축 팽창하는 괴물과 마주하는 순간 저절로 연상되고 마는 까닭이다.


허나,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 서로에게 무척 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부족한 것과, 넘쳐 흐르는 것은 그 성질 만큼이나 다른 것이었으니까.


"길버트!"


유라의 외침을 들은 길버트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었다. 허나 그는 얼마 못 가 그 방패를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방패를 들기가 무섭게 사라진 그것의 형체가 다름 아닌 자신의 방패로부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서리를 주의하게! 녀석은 각이 진 곳에서 라면 어디 서든 튀어나올 수 있어!"


마노의 설명이 뒤를 이었으나, 길버트는 오히려 혼란을 느꼈다.

각이 진 곳이라고? 그럼 칼도 못 꺼낸다는 건가? 그럼 무엇으로 싸우지?


그런 그의 망설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음 순간 그것은 길버트의 검집이 가진 모서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에 오러를 두른 그의 몸 위로 촉수와도 같은 가시가 쏟아져 내렸다.


"큭!"


그리고 길버트는 자신의 오러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경악했다. 황급히 물러서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오러를 끊어!"


유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르지. 다행히도 그는 오러 마스터의 이름이 아깝지 않게 오러의 사용에 능했다.

전력으로 회전하던 오러는 찰나의 순간에 잦아들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버트는 그대로 몸을 날리며 조금 전에 던졌던 방패를 주웠다.


"숙여!"


다시 한 번 방패에서 솟구치는 녀석의 몸을, 유라의 창이 꿰뚫었다. 기괴한 소리가 쏟아졌다. 살아있는 생명보다는 날카로운 진흙과도 같은 것에 창을 담가버린 기분이었다.


유라는 그 끔찍한 손맛에 이를 악물었다. 뼈로 된 창날 대신, 그녀의 오러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야카!"


몰아치는 음파가 그것의 몸을 날려버렸다.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마치 박쥐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개와도 같은 부정형의 날개와, 촉수와도 같은 발톱들, 끔찍한 눈동자를 한 그것을 박쥐라 일컬어도 좋다면 말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게 환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너무 끔찍한데?"

"시간의 마수일세.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늘보와 같은 종류의 괴물이지"

"국가 단위의 재앙이라는 거잖아?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건데?"

"이길 수 없네. 저것은 필멸자의 공격으로는 죽지 않으니까"

"그럼 이대로 죽자는 거야?"


마노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 든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유라는 그와 동시에 마수의 눈에 달린 여섯 개의 동공이 일제히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끔찍하게 마음에 든 모양인데?"

"그래야지. 이런 곳에서 쓸 줄은 몰랐지만 이래뵈도 론디아르 령의 재보를 모조리 털어 넣어 만든 거니까 말이야"


그것을 만든 이는 명백했다. 마노는 이곳에 없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단숨에 뽑아 든 마개가 땅에 떨어지고, 병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이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수가 그곳에 나타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단히도 홀렸군"


마노는 혀를 차며 유리로 된 병을 바닥에 두었다. 조심스레 몸을 이동하는 그의 몸짓은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어쩌지?"

"방패는 챙겼나?"


길버트는 가만히 방패를 들어보였다.


"뭐하나 그럼? 어서 달리게"


멍하니 서 있던 루루가가 부족민을 이끌고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들 일행이 저 멀리 보일 때 쯤이었다.



*




마노 일행은 그대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삼일은 걸릴 것이라 판단했던 목표점에 해가 지기도 전에 도착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유령밥 신세는 면했군"

"전부터 생각했지만. 마노 당신 농담은 그리 재미가 없어"


마노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길버트의 핀잔을 흘려넘겼다.


"조금 전에는 고마웠어 유라"

"..그래"


길버트는 시큰둥한 유라의 반응을 보며 쓰게 웃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껄끄러운 사람인 모양이다.

뭐, 태어나 서부터 저런 시선은 익숙했으니 아무래도 좋지만..


'괜히 마리가 보고 싶어지는군'


아니, 사실 더 보고 싶은 것은..


"크르르..길버트?"

"아, 루루가. 아무것도 아니야"


길버트는 거칠게 움켜쥐던 검 손잡이를 그대로 놓아버렸다. 덜컥이는 검집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조금 전 마수가 쏟아져 나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휴"


불현듯 아찔했던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린 길버트가 한숨을 토해내었다.


"마리를 데려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안 그래 마노?"

"무슨 뜻인가?"

"마리는 운동이 서투니까 말이야. 이렇게 달리기는 힘들었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그게 그녀에게 주어진 저주니까"

"응? 아니..아무리 운동을 못 한다지만 저주 받았다는 발언은 너무하지 않나?"

"비유같은 것이 아닐세. 길버트"


마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마주했다. 잠시 그 의미를 곱씹던 길버트는 불현듯 자세를 바로 잡으며 물었다.


"잠깐, 진짜로 저주를 받았다고?"

"이봐 당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길버트의 반문에 유라까지 힘을 얹었으나, 마노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저주가 그리 드물지는 않지"

"드물지. 드물고 말고. 아크 메이지나 메이거스 중에서도 일부만이 쓸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도 아크 메이지를 한 번 만났지 않나? 나와 마리의 인생에 있어 올가 론디아르가 유일한 아크 메이지였다 생각하나?"


길버트와 유라는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마그나 왕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크 메이지가 그리 흔하게 있으리 라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마왕의 나라였다 할지라도, 그건 이미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마왕이 죽어버린 시점부터, 이미 힘의 천칭이 기울어버렸다는 것이 세간의 주된 평가였다.

그들을 생존 시키는 것은 오직 마왕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결계 뿐..


애초에 대체 어떤 할 일 없는 아크 메이지가 일개 시녀에게..


'아니, 아니지..마리는 연금술사니까..일개 시녀라고 말하기는 그렇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엇이 그리도 문제지?"

"저주를 걸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사람의 목숨이나 목숨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잖아? 그런 걸 그리도 쉽게 걸었다고? 당신이면 몰라도 마리가 어디 가서 원한 살 것 같은 성격은 아닌데?"

"내가 어떻다는 건가?"

"입닥치고 대답이나 해"


마노는 거칠게 쏘아붙이는 유라의 물음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설령 본인에게 걸린 저주가 아니더라도,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라면 다르지 않겠나. 나와, 마리의 조상은 그만큼 거대한 원한을 사버렸으니 말이야"

"혈통? 아니, 잠깐만..설마 당신도? 아니, 혹시 당신들 남매야?"


혼란스러워 하는 유라의 질문에 마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 경고하겠네 유라. 혹시라도 마리에게 나와 남매냐는 질문은 하지 말게. 무척이나 싫어할 테니까 말이야"


그것을 끝으로 마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유라와 길버트는 온갖 성질을 부리며 대답하라 재촉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길버트가 마노는 사실 자신들을 궁금해 죽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정도였다.


허나 그들의 궁금증과는 별개로 마노는 심지어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는 고기를 지켜보는 루루가와 오크들만이 그날 밤의 유일한 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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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1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19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2 0 9쪽
70 인어 21.07.11 20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8 0 11쪽
68 암살 21.07.09 19 0 11쪽
67 예언 21.07.08 26 0 11쪽
66 선동 21.07.07 26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0 0 12쪽
64 맹약 21.07.05 28 0 12쪽
63 혈통 21.07.04 25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3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6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5 1 13쪽
»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8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8 0 11쪽
54 단서 21.06.25 26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2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5 2 12쪽
51 하녹 21.06.22 22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6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1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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