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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비의 서재

당신을 위한 무덤은 없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잔빛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9
최근연재일 :
2021.07.17 13: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2,656
추천수 :
60
글자수 :
441,567

작성
21.07.09 13:00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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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암살

DUMMY

"저 고양이들은 왜 하나같이 검을 들고 있는 거지?"


하른이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들었다. 검은색 고양이의, 캐트 시의 검을 받아내며 그와 동시에 황색의 캐트 시를 발로 쳐냈다.

검 하나로 받아치기에는 적의 숫자는 많았고, 가격 범위는 좁았다. 하른이 이를 악문다. 검을 타고 흐르는 것은 미약한 오러였다.


"오러다!"

"메이지가 나서!"


그와 동시에 캐트 시 검사들이 일제히 물러섰다. 엄호하듯 검을 꼬나 쥔 그들 뒤로 일렁이는 것은 소용돌이 치는 바람의 흔적이었다.


"젠장! 로이스!"


하른의 명령과 함께 거구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쿵 하고 내려치는 것은 거대한 철판과도 같은 형상의 방패였다.

이윽고, 폭풍이 그들을 두드린다. 망치로 징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쿵!


암흑가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방패의 뒤에 서서 로이스의 등을 밀었다. 충격은 피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로이스 혼자서는 바람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암살자들은 앞으로 가!"


바람이 잦아들자, 칼날을 거꾸로 든 자들이 사선으로 교차하며 몸을 숨겼다.


"화살!"


다시 한 번 쏘아지는 것은 화살이었다. 여전히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의해 화살들은 맥없이 휘몰아쳤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가릴 수 있었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실제로, 그 찰나의 혼란으로 인해 암살자의 모습을 놓쳐버리고 말았으니까.


"파라크"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붙잡아"


마리의 명령을 들은 파라크가 감았던 눈을 떴다. 반개한 눈이 바라보는 것은 오직 그의 주인 뿐이었다.

허나, 그렇다 하여 파라크가 목표한 것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보지 않아도, 그에게서 뻗어 진 보이지 않는 손들은 이 근방 모든 것들을 손에 쥘 듯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점차 잦아드는 심장의 고동이 파라크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심장의 박동마저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었다. 아티펙트를 들고 있는 잭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을 정도였다.


"커헉!"


그들의 상대가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보리스. 그녀는 우선 내버려두자"

"..그래야겠군"


그리고 파라크 이외에도 그들이 보이는 자가 있었다. 리자드맨, 보리스였다.

그의 눈에는 저들의 체온이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체 이상으로 체온을 낮추지 않는 이상, 아니..정확히는 주변의 온도와 체온을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도망치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였다.


엠버의 몸을 묶은 보리스가 검을 뽑았다. 아니, 뽑은 것 같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마치 검을 뽑다 말고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파라크조차도 보지 못할 수준의 은신이었다.


"침착해! 제 아무리 수준 높은 아티펙트라도..커헉!"


하른이 말을 잇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복부에서부터 번져나가는 피 때문이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허우적거리며 손을 휘저어보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다음 순간, 보리스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우두머리의 목을 잘라냈다.



*



"아"


잭은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 허망하기까지 한 죽음을 보고 있었다. 자신들을 그토록 괴롭히던, 그 끔찍한 자의 최후가 그곳에 있었다.


"즐겁나?"


샤트라의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그가 죽기만을 바라왔건만..왜 즐겁지 않은 거지?


"그럴 테지"


허나 샤트라는 수긍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잭은 우두커니, 그녀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뜻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그는 혼란을 느꼈다.


이제 와서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동정심을 느낄 만큼,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녀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선량함에 눈뜰 만큼, 스스로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럼 왜지?"


스스로의 의문에 답하는 것은, 기다렸다는 듯 치솟는 감정이었다.

지독하기까지 한, 집착적이고 끈적한 불쾌함. 역겨움. 분노.


자신의 손으로 원수를 끝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그럴 힘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

지금 이곳에 일어난 모든 결과에 대해, 단 한번도 개입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


"..스승님"


그렇기에 소년은 늘 힘을 바라왔다. 스스로의 운명을 방관하고 싶지 않아서.


"적의 전력이 생각보다 약해"


샤트라는 그런 소년을 무시했다. 그는 아직 준비가 부족했으니까. 자신의 검을 배울 각오가 부족했으니까.


"우리의 전력을 잘못 잰 것이 아닐까?"


보리스의 대답에 샤트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약했다. 어젯밤 마리가 보여주었던 무력이라면 적어도 오러 나이트급 이상의 실력자들로 구성해야만 할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지가 없었어"


샤트라는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본래라면 전투원 자체를 오러 나이트와 메이지의 혼합으로 구성하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 찾아온 이들은 마치..


"..그들은 달라요"


그 순간, 입을 연 메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다르다니?"


보리스의 질문에 메리의 시선이 잠시 하른에게 머물렀다. 목을 잃고 나뒹구는 그의 몸뚱이가 보였다.


"저들은 본래부터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에요"

"..외부자라는 건가? 암흑가도 그런 게 있나?"

"아마, 소속이 다를 거에요"


소속?


보리스는 그 단어에 의아함을 가졌다. 사실 암흑가라는 말 자체가 그들을 총칭하는 단어일 뿐, 그들 모두를 소속시키는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소속이라니? 마치 군인에게나 쓸 법한 단어가 아닌가.


"..그리고, 이곳에 저 사람들을 보낸 건 우리의 발을 묶고, 시선을 돌리려고 한 걸거에요"

"..혹시"


이해하기 힘든 메리의 말을 끊은 것은 마리였다. 그녀의 눈이 메리에게 향했다. 어딘가 서로 닮은 듯한 눈빛이 오간다.


"하녹이라는 사람이 그들의 우두머리니?"

"..아마도요"


그 말을 들은 마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어이지?

애초에 왜 자신들을 이곳에 묶어놓은 것이지?


"시청.."


의외로, 답을 내어놓은 것은 보리스였다. 리자드맨 상인으로서의 기억을 가진 그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




"..머리가 아프군"


그리고 두통의 원인은 비단 술 때문이 아니리라.


아르바의 시장, 몬테소 하겐트 남작은 비어버린 브랜디 병을 내려두었다. 벌써 세 병 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하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술렁이는 가슴이 진정될 기미 없이 쿵쿵거리고 있었다.


"..불안함이 사라지질 않아"


그는 원인 모를 불안감에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서성이고 있었다. 창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들의 간절함에 미안함이 들었을 뿐이다.


저들이 비록 작은 이익에 쉽게 움직이고, 흔들릴지언정 근본적으로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과는 조금 다른 바가 있겠지만, 이 나라의..정확히는 버나르 가의 치부를 여럿 보아왔던 그에게는 아니었다. 그 참혹한 사실들에 비하면 저들의 행보는 외려 순진무구해 보일 정도였으니까.


"..후"


하겐트 남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얼음이 덜그럭 거리는 물 잔을 크게 들이켰다. 차가운 감각이 식도를 타고 위를 두드렸다. 덕분에 머리는 더욱 아팠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제법 마비되는 것 같았다.


"불안한가?"

"누, 누구냐!"


그러나 그렇게 마비된 공포는 다음 순간 단번에 깨어나고 말았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린 하겐트 남작의 시야에 지면을 구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흡, 하고 숨을 들이키는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체, 체니아"


그것은 다름 아닌 하겐트 남작 직속 시녀의 목이었다.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목은 마치 죽을 때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그리도 두렵지?"

"하, 하보크?"


그리고 그 얼굴은 하겐트 남작에게도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아르바를 돌아다니며 종종 보았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 기억에 남는 이름은 아니었으나, 극도로 긴장된 공포가 그 이름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니, 아니군"


그러나 하겐트 남작은 이내 스스로의 생각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여관 주인이 저렇게나 농밀한 살기를 내뿜을 수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누구냐"


하보크는, 아니..하녹은 다음 순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밤을 닮은 흑발이 휘날린다. 진녹 색의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 알 같은 눈이다. 조롱하듯 휘어진 눈동자에서는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표정과 감각의 괴리가 너무나도 심하다.


"너는.."


그리고 하겐트 남작은, 그의 정체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오? 날 기억하는 거야? 분명, 날 보았던 건 십 년도 더 된 일일 텐데..그 자리에 괜히 앉아 있는 건 아닌가 보지?"


하보크는 벽에 걸린 도끼를 움켜쥐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하기야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지는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날 죽이라고 하시던가?"

"알면서도 존대를 하는군"

"아니기를 바란 거지"


그렇게 대답하는 하겐트 남작의 얼굴은 절망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


"날 대신해 시장 노릇을 할 작정인가?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모든 건 그분의 뜻대로 되지 않나!"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안 그래? 도구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어? 응?"

"..무슨 뜻이지?"


하겐트 남작이 물었다. 설마하니 오늘 찾아온 반 수사관에 대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돌아가는 일들은 마치 애초부터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알려줄 이유는 없군"


하녹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묵 빛의 낫이 한 점 광택 없이 도사리고 있었다. 낫 끝에 달린 사슬은 절그럭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붕붕거리며 회전하는 낫이 하겐트 남작을 노리기 시작했다. 하겐트 남작은 자신의 시녀처럼 굴러 떨어질 목을 상상하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그런가? 아쉽군. 나는 그 이유를 들어야겠는데 말이야"

"뭣?"


허나 그 순간. 어디선가 쏟아진 피의 칼날이 하녹을 내리쳤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낸 하녹의 시선이 방의 한 구석으로 향했다.


"반 폰 클락!"


탕!


"알아봐줘서 고맙군"


그리고 한 발의 총성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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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레모리 21.07.17 32 0 12쪽
75 아가사와 파라크 21.07.16 21 0 10쪽
74 간파 21.07.15 20 1 14쪽
73 샤트라 21.07.14 19 1 12쪽
72 포교와 이단 21.07.13 35 0 10쪽
71 성국 21.07.12 33 0 9쪽
70 인어 21.07.11 21 0 10쪽
69 거짓과 위선 21.07.10 29 0 11쪽
» 암살 21.07.09 20 0 11쪽
67 예언 21.07.08 27 0 11쪽
66 선동 21.07.07 27 0 11쪽
65 묵은 진실 21.07.06 21 0 12쪽
64 맹약 21.07.05 31 0 12쪽
63 혈통 21.07.04 26 0 10쪽
62 노블 텐 21.07.03 24 0 12쪽
61 깨달음 21.07.02 27 0 13쪽
60 보리스 21.07.01 26 1 13쪽
59 수사망 21.06.30 26 0 12쪽
58 엠버 21.06.29 33 0 11쪽
57 쌓여가는 불만 21.06.28 21 0 12쪽
56 캐트 시 21.06.27 29 0 13쪽
55 부랑자들 21.06.26 19 0 11쪽
54 단서 21.06.25 27 0 14쪽
53 잭과 메리 21.06.24 23 0 13쪽
52 만연한 음모 21.06.23 26 2 12쪽
51 하녹 21.06.22 23 1 13쪽
50 작은 거래 21.06.21 38 1 12쪽
49 부랑자들의 거리 21.06.20 17 1 12쪽
48 소매치기 21.06.19 22 1 11쪽
47 항구도시 21.06.18 3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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