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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22,503
추천수 :
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3.03.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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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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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85화.

DUMMY

한강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핸더슨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라이온이라 할지라도 그 넓은 소련 땅을 헤쳐 나오기엔 불가능한 일이야. 공연히 아까운 자원만 잡아먹는 꼴이 되고 말께 뻔한데, 게다가 지금이 10월초 시기상으로 보면 곧 소련 땅에 악명 높은 라스푸티차가 시작될 테니 그런 진흙탕으로 귀중한 에이전트를 밀어 넣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아무래도 SAD(Special Activities Division)요원들 중에서 지원자들로 팀을 꾸려봐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데 까진 해보는 수박에 없었다.

임무는 단순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잡고 적국에서 벌여야 하는 까다로운 작전이라 지원자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명령만으로 강제로 지명해서 보낼 수도 없는 일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팀이라고 해봐야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도 없는 일이고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작전이었기에 러시아어에 능숙한 여성요원까지 포함해 지원자 세 명만이 미국인이란 걸 감추기 위해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제3국을 거쳐 소련 땅을 밟게 되었다.


공항에 근접하자 내리던 비는 전혀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비행기는 젖어있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셋은 그레고리의 집이 있던 라멘키 근처에 민박집을 구해 각자 숙소를 잡기로 하고 공항에서 헤어졌다. 통신수단이 있기에 한명이 잡히면 나머지 둘은 피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셋의 공통된 생각이었지만 드보크에 그레고리가 접선할 방법만 남겨 놨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을 작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장인 알파를 맡은 노아는 우선 무기부터 찾아 놔야 할 것이란 생각에 본부에서 알려줬던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상점으로 향했다. 자신처럼 조원들도 각자 지정 받은 곳으로 무기를 찾으러 갔을 것이다.


깨지기 쉬운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전략이란 것쯤은 알고 있기에 조원들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조장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조원들이 어디로 무기를 수령하러갔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이것은 소련에 뿌려진 세포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시내의 한 상점으로 들어간 노아는 자신이 숱하게 사진을 보고 기억하고 있던 얼굴과 현재 자신의 앞에 서있는 상점주인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신중하게 대조하고 있었다.

맞는다는 판단이 들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일 전에 맡겨 놓은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노아의 말을 들은 주인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


"어디서 오신 손님입니까?"


"민스크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곳 날씨는 어떻던가요?"


"쾌청합니다."


쾌청하다는 건 자신에게 미행이 붙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만약 흐리다고 했으면 주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물건을 건네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열장 속에서 가방을 꺼낸 주인이 노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보관수수료는요?"


노아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오천달러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가방이 바뀌었군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가방을 다시 받아 한쪽에 던져 놓은 주인이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

한숨을 내쉰 노아는 이제야 마지막 확인 절차까지 무사히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에게 주려던 가방엔 무기가 아닌 전혀 쓸모없는 엉뚱한 잡동사니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암호가 통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가방을 가지고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금액이 틀렸다면 또 다시 엉뚱한 가방이 나올 테니까.


주인은 자신이 미국인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CIA의 작전의 허술할 리 없었으니까.


주인에게서 새로운 가방을 건네받은 노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라멘키에 예약해 놓은 숙소로 돌아왔다.


가방에 들어있는 것은 중고품 토카레프33권총 한 자루와 탄창5개였다.

노아는 권총을 분해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꼼꼼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총 한 자루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게 될 것이니 허술하게 다룰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드보크에 감춰져 있을 접선방법을 찾아내 동료들에게 알려주어 그레고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우선은 찾아내는 게 먼저야, 탈출은 그다음에 생각할 일이고.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니 잘된 일인 것 같긴 한데.."


한달음에 공원으로 달려온 노아는 인기척 하나 없는 을씨년스런 공원의 모습은 마치 유령들의 소굴처럼 보였다.


저 멀리 안쪽으로 드보크가 있는 화장실이 보였지만 노아는 감히 공원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드세게 내리는 비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 분명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보크로 접근하는 순간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던 노아는 포기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숙소로 돌아온 노아는 생각에 잠겼다.


'작전 중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오랜만인데.. 꼭 그럴 때마다 문제가 생겼었단 말이지. 혹시 드보크 위치가 탄로난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노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만약 그레고리가 이미 체포된 상태라면, 그래서 드보크의 위치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리고 KGB가 CIA에 허위 정보를 흘린 거라면, 이 모든 게 우릴 인질로 잡기 위한 공작이라면.. 노아는 소름이 끼쳤다.


"이 모든 게 소련국가보안위원회의 공작이라면 아주 헛된 망상만은 아냐."


그러자 마치 한판의 잘 짜여진 연극판에 주연도 아닌 조연으로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우선은 팀원들과 지금의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두고 의논부터 해보는 게 순서겠지.


한데 모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기에 TV를 켜놓고 핸디토키를 켰다.


"브라보, 들리면 응답하라."


치잇.

-무슨 일인가, 알파.


"찰리 수신양호한가?"


-듣고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판단해보기 바란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해주기 바란다."


노아는 자신의 판단을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말해 나갔다.

유일한 여자인 찰리의 짜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가 함정 안으로 들어왔다는 거야⁉


"난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게 함정이라면 우리 셋의 무덤은 이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파의 말을 브라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황한 목소리로 찰리는 브라보에게 묻고 있었다.


-나도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


-어떤 면에서?


-아무리 정교한 위조여권이라지만 공산국가에서 입국을 그렇게 쉽게 허가해준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지. 오히려 빨리 들어가라는 듯 등을 떠밀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내말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고 보니 입국 절차가 어쩐지 너무 쉬웠다는 생각이 드네...


-우리가 받았던 교육을 기억해보면 KGB가 이렇게 쉬운 기관이라고 믿기 어려워.


알파가 이때라는 듯 끼어들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 생각일 뿐이지만 드보크가 있는 공원은 물샐 틈 없는 경계망이 펼쳐져 있을 거야.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대로 다시 출국해버리는 건 어떨까?

찰리의 목소리다.


"공항으로의 출국은 불가능할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그건 왜지?


"우리에 들어온 소를 그냥 풀어줄 목부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에 갇혀버린 소란 말이지?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다."


알파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브라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차피 탈출은 우리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듣지 않았나? 뭣하면 차라도 훔쳐 타고 핀란드로 가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그레고리가 어디에 갇혀 있는 건지 알아내는 게 급선문데.

그레고리의 식구들을 만나볼 방법은 없을까?


"설마 그레고리의 식구들을 KGB에서 방치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직원을 돈으로 매수할 방법은 없을까? 청소부라도 좋으니까 말이지.


찰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는지 브라보는 잠잠했다.


"그럼 어떻게 접촉하는 게 좋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난 뒤에 의논을 하도록 하자. 아웃.


------


인천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강호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인지 뭔지 확실하지 않은.. 자신은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틀림없이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다. 이게 자각몽이라는 걸까?


자신의 앞에 있는 노인, 틀림없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허, 아직도 각성하지 못했다니 아둔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쯧, 뭐가 네놈의 각성을 가로막고 있는 건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노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으면서도 강호의 입에선 저절로 말이 흘러나왔다.


"혹시, 제가 배웠던 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네가 배운 거라니 그게 뭐냐?"


"대략 108글자로 써져 있던 글귀입니다. 두뇌 훈련을 통해 영역이 확장되면 감각이 증폭되어 초감각의 영역을 이룰 수 있고.. 머릿속의 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써져 있었습니다."


"허.. 천문의 연이 너에게 닿아있었다고?"


"그게 천문이라는 거였습니까?"


"그렇다, 머릿속의 문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천문밖에 없지."


"그럼 전 이제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잘됐어, 차라리 잘된 일이야. 네가 아직 까지 각성하지 못한 이유는 올바른 방법으로 천문을 열지 못한 때문이다. 즉 네가 익혔다는 글귀의 수련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가진 선기로 너의 천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가 마계에서 건너온 마졸들과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저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만?"


"인간들이 마계에 종속되는 것이 싫어서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모르겠구나. 지금도 마귀들에게 물든 인간들 때문에 살육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인간들이 마귀들에게 완전하게 종속되는 순간 인간계엔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말게 될 것이다. 선계는 천륜을 지키기 위해 마계의 준동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마계와 싸울지 말지 선택은 너에게 달렸다."


지옥이 펼쳐진다는 말을 듣고 누군들 망설일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지요."


노인이 손을 머리에 얹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는 청량한 기운을 느꼈고 자신의 몸은 하늘높이 끝없이 떠올랐다.


색색가지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서로 이리오라는 것처럼 유혹하듯 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강호는 별들이 쏟아내고 있는 숱한 빛이 자신의 머리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호의 몸은 별들을 지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들의 강을 지날 때 배가 묶여있는 것을 보고 풀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배를 묶어놓은 밧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힘으로 풀 수 없었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강에서 짙은 향기가 풍겨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기분 좋은 향기였지만 어쩐지 강물을 오염시킬 것만 같아 차마 뛰어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향기에 취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곤 푸른 강물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퍼 올려 입으로 가져가 몇 번이고 빨아마셨다.


물을 마시자 알 수 없는 힘이 온몸에 솟아나고 있었다.

막연하게 강물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먼 곳에서 소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린 강호의 귀에 네가 올 수 있는 곳은 여기 까지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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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23.03.24 16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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