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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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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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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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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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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8화.

DUMMY

소름끼치도록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쥐? 박쥐가 저렇게 큰 놈도 있나?'


소름끼칠 정도로 눈에서 시뻘건 빛을 내뿜고 있는 놈은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커다란 박쥐가 틀림없었다.

'날개로 봐서는 박쥐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눈깔에서 불빛이 나는 박쥐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거기다 무슨 박쥐가 개 덩치보다 더 커 보여? 그렇다면 요괴 같은 건가?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구나.'


천장에 매달린 박쥐 같은 것들은 칼날같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명백하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틀림없이 덤비려는 모양새다.


키익.

키이익.

카옥.

'저것들이 서로 간에 무슨 대화라도 주고받는 건가?'


갑자기 사위(四圍)가 조용해지고 박쥐의 몸통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뿜어져 나온 안개는 박쥐의 몸을 가릴 정도로 짙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안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 나쁜 안개다.


'허, 뭔 안개발생기도 아니고 뭐 저런 것들이 다 있냐?'

몸이 완전히 가려지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강호는 소리 때문에 사용하길 망설였던 총을 꺼내 들고 박쥐를 향해 발사했다.


탕.

끼아악!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롭게 비명을 내뱉은 박쥐가 떨어져 내렸다.


쿵.

땅바닥에 떨어진 박쥐는 땅바닥으로 스며들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한 마리를 잡고 나자 박쥐들이 뿜어내는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총을 사용했어야 한다고 자책한 강호는 몸을 감추고 있는 박쥐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하지만 안개 속에 완전히 몸을 감춘 박쥐들에겐 총알은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안개를 뚫고 지나간 총알은 애꿎은 동굴 벽에 틀어박혔다.

'쯧, 그놈의 공연한 호기심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어.'


동굴 천장의 여기저기에 조금씩 뭉쳐있던 검은 안개 덩어리가 강호를 향해 탐색이라도 하듯 천천히 날아오기 시작했다.

총으로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여의환을 써!'

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 바보 같은 놈. 네 의지로 여의환을 끄집어 내야 하는 거라고.'


'아, 거 씨발!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이런 빌어먹을, 텅 빈 깡통 같은 인간을 봤나! 넌 의지가 뭐라는 건지도 모르고 있는 거냐? 그냥 죽어라! 그냥 죽어! 죽을 고생을 하다 보면 깨달을 수도 있겠지.'

따따따 쏘아붙이는 말에 강호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에효, 내가 뭘 하고 있는 짓인지..

어떻게든 저놈들을 처치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의환을 쓰기 위한 의지라.. 의지.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을 의지라고 하는 건 국어를 배웠다면 누구나 안다. 그러니 의지만 있으면 돼. 말은 쉽다. 하지만 어떻게? 하고 방법을 묻는다면, 역시나 결론은 모른다가 되고 만다.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총으로 안 되면 칼로 해보는 거지 뭐.

강호는 총을 집어넣고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전술배낭에서 꺼내 들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지, 해보자!'


자신의 눈이 잘못 본게 아니라면 박쥐가 변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검은 안개 뭉치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내 성격에 기다리는 건 적성에 맞지 않지.'


시잇.

앞으로 달려 나간 강호의 칼을 쥔 손이 검은 구름을 잘라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빠른 속도로 베어나갔다.


실패다.

마치 공기를 베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칼이 베고 지나간 검은 안개 뭉치는 아주 잠시지만 흩어졌다 다시 뭉쳤다.

'칼로도 안 된다고? 도대체 어쩌란 거냐?'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런 마귀소굴에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거 참.. 인간하고의 싸움이 아니라는 걸 잊고 있다니.. 달리 마귀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이대로 뒤돌아 도망가야 하나?'


몸을 돌리자 어느새 뒤도 검은 안개 덩어리들로 막혀있었다.

'헉, 감각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이것들이 어느새 이렇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검은 안개 뭉치들은 일정한 거리에 떨어져 망설이듯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가 뭐지..? 이런 현상이 과연 여의환이 가진 힘 때문일까?'

실상은 선기 때문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강호의 오해였다.


강호는 자신이 먼저 조심스럽게 안개 뭉치를 향해 다가갔다.

맞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개 뭉치는 강호가 다가선 만큼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허, 그렇다면 겁낼 것도 없잖아? 좋아, 동굴 끝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어디 한번 가보자.'


한번 결심을 하면 뒤돌아 본적 없는 강호의 성격이 튀어나왔다.

검은 안개 뭉치들은 주춤 주춤 강호를 따라 움직였다.

'이것들이 호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이건 또 뭐야?'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난 건 틀림없이 1층에서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싸웠던 괴물들이었다.


몸통은 사람처럼 이족보행이지만 대가리는 돼지를 닮은 것들. 천구가 말했던 마졸임에 틀림없었다.

'여기선 안개 뭉치가 아니라 실체처럼 보이는구나. 실체가 있다는 건.. 혹시 총도 먹힌다는 거 아닐까?'


대검을 집어넣고 총을 꺼내든 강호는 달려오는 돼지 인간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탕.

자신의 귀에 희미한 총 소리가 들렸을 뿐 소리는 어둠에 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달려오던 마귀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져 사라졌다.

땅이 사체를 흡수라도 한다는 거냐?


타탕.

또 한 마리의 마졸이 맥 없이 쓰러져 사라지자 마졸들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씻.

씨잇.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날아와 강호가 몸을 숨기고 있는 석주에 맞고 튕겨나갔다.

'뭐야 이 마귀 새끼들이 활까지 사용할 줄 안다고?'


위험을 느끼자 강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금빛이 더 짙어졌다.

석순을 박찬 몸이 한줄기 바람처럼 마귀를 노리고 날아갔다.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 건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강호의 공격을 눈치 챈 마귀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또다시 귀청을 뚫을 듯 들려왔다.


이상하다 총소리는 사라지는데 이놈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는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걸까?

어쨌든 나쁜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기척은 숨길 수 있고 저놈들의 기척은 아무리 숨겨도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또 다시 석주 뒤로 몸을 숨긴 강호는 일부만 보이고 있는 마귀의 머리통을 노리고 총을 쐈다.

탕.

역시 자신의 귀에만 들릴 듯 약한 소리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총 소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괴이쩍은 현상들이 자신의 몸에 있는 선기와 이곳에 충만한 마기의 보이지 않는 충돌로 인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강호는 착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하긴 하지만 내 주위만 금빛으로 빛나고 있군.'


이제 조금 기억이 났다.

'그럼 이게 여의환이 가지고 있는 선기라는 건가? 그래, 생각난다.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기억나진 않아도 여의환과 난 일심동체가 됐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내 물건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태껏 너는 너 나는 나로 생각해 왔기에 사용할 수 없었던 거로구나. 바로 의념(疑念)을 버려야 되는 거였어.'


여의환은 강호의 깨달음이 기쁘다는 듯 진동을 일으켰다.


"흐흐흐, 여의야. 이제 그만 애먹이고 나오지 그래? 바깥세상구경도 해봐야지."


이름에 환이 붙은 이유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변화한 것이 반지였기 때문이다. 여의이자 여의와 동체가 돼버린 천구다.


강호의 손바닥에 솟아난 것은 뽐내듯 금빛 찬란한 검이었다. 자신이 여의를 검의 형태로 불러낸 것이다.

길이는 한자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정 늘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자 길이에서 최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이야.'


여의에 종속된 천구는 지금 이곳이 마계와 연결된 결계 속이라고 알려주었다.


'아직은 선기의 방해로 완전하게 열린 게 아니라서 마기가 강한 놈들은 넘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완전하게 연결되는 날이면 이곳에 지옥이 열리게 될 거야. 지금 이곳을 막을 인간은 너밖에 없어, 그러니 네가 막아야 한다는 건 알겠지?'


'어떻게 하면 깨트릴 수 있는 건데?'


'어려울 것 없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석주를 무너뜨리면 돼. 조심해야 할 것은 바깥부터 무너트리면 네가 이 안에 갇힐 수도 있으니까 가장 안에 있는 것부터 무너트려야 한다는 거지.'


'이거 아무래도 보통 석주는 아닌 것 같은데?'


'맞았어. 마력을 결집 시켜서 석주 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거야.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가지고 있는 선기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지.'


천구가 알려주고 있는 게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동굴 안쪽의 석주부터라.. 그러자면 어차피 이 안에 있는 마귀새끼들을 전부 없애버려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이곳에 남아있는 마귀 새끼들은 결계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놈들이니까. 마귀등급 중에서도 최하급이지. 문지기나 하는 놈들이랄까?'


'그럼 여기 수용소장이란 놈은 어디로 간 걸까?'


'인간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면 마력이 제법 많이 빠졌을 테니 힘을 보충하러 마계로 돌아갔겠지.'


'본래의 힘을 되찾으러 돌아갔다는 말이지?'


'맞았어. 그놈이 있었다면 싸움이 힘들어졌을지도 몰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놈들과 싸우기 위해 우린 그곳으로 가게 될 거야.'


'하하하,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마계로 간다고?'


'그래.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면 가야지.'


'평화라고? 언제 이 세상이 평화로운 적이 있었나? 그런데도 내가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인간의 모든 탐욕(貪慾)과 진에(嗔恚)와 우치(愚癡)같은 것은 마기에 물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고, 마기는 말 그대로 순수한 악의 근원이지. 그러니 네 손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마계로 가야 한다는 말이 되겠지.

선계와 마계의 중간지대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양쪽 세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서 선기와 마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존재야.

하지만 인간을 계도하기엔 선기의 양이 적다는 게 문제지. 인간에게 선기란 양심이란 말로 표현되고 있지, 마기는 야심(野心) 즉 짐승의 마음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마기의 영향력이 더 큰 것은 사실이야. 그렇기에 마기에 적게 물든 사람은 조그만 죄를 짓고도 양심에 떨고 마기에 크게 물든 사람은 양심이 사라져 커다란 죄를 짓고도 뻔뻔한 모습으로 활보하게 되는 거지.'


레이디 저스티스(Lady Justice)라 불렸던 유스티티아의 신기(神器)인 천칭처럼 아니면 아테나의 신수인 부엉이처럼 여의 또한 천구의 지성을 지녔기에 물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가야 한다고 했으면 가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타인들에게 순수한 호의로 받은 게 있었던가? 없다. 그런데도 타인들을 위해 마귀들이 득실거리는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은 나중으로 미뤄두자. 지금은 여의의 힘이든 천구의 힘이든 빌려야 할 때다.

강호는 여의검을 잡고 미친 듯 앞으로 달려 나가며 휘둘렀다.


끼이익. 끼익.

황금빛이 선명한 빛줄기가 쓸고 지나간 자리엔 어둠이 사라지고 빛줄기에 쓸린 마귀들도 박쥐가 변신한 검은 안개 뭉치도 한줄기 연기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동굴의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때 어쩐지 불길해 보이는 검은 막으로 막혀있었다.

강호는 손으로 막을 짚어보았다.


공포로 점철된 두렵고 무섭다는 온갖 혐오스러운 감정이 손을 타고 올라오자 얼른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내가 두렵다는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야.'


'마계로 연결된 통로야. 지금 네가 느낀 그 감정이 진정한 마기인 거고 하지만 아직 네가 가진 힘으론 통과할 수 없어. 내가 막아주고는 있지만 너도 마기에 오래 노출 돼 잠식되면 좋을 게 없어 마귀들이 통로를 많이 만들어 두었을 테니까 지금은 이곳만 부시고 나가도록 하자.'


'알았다. 석주를 잘라버리면 된다고 했지?'


'그래. 결계를 보호하고 있는 석주두개를 잘라내면 막은 사라질 거다. 그다음은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알겠다. 무슨 말인지.'


석주를 베어나가는 여의검의 금빛이 환하게 터졌다.


쾅.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고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천장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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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화. 23.03.25 171 6 12쪽
79 79화. 23.03.24 169 5 12쪽
» 78화. 23.03.23 16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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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23.03.20 18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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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화. 23.03.17 19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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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23.03.10 21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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