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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22,484
추천수 :
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3.03.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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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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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8화.

DUMMY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오인환은 잔인한 웃음을 베어 물고 있었다.


"내 자식에게 손을 댄 놈이라면 어느 누가 됐든 밝혀내는 대로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테다."


지금 눈이 돌아버린 저들에겐 자식들이 죽게 된 이유나 원인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과장은 형사들을 불러 모았다.


"최형사 그 죽은 여자애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턴 형사 1, 2, 3반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은 여자애의 아버지 행방부터 찾도록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풀릴 것 같으니까. 모두 알아들었으면 해산."


최창수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입도 뻥끗할 수가 없었다.

그 맹수의 눈빛같이 흉악하고 잔인하게 빛나던 눈빛은 아직도 꿈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처음으로 꿈속에 눈빛이 나타났을 땐 오줌까지 지릴 정도로 놀랐었다.


'으흐흐, 난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전출이라도 보내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창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형사들은 의욕에 불타고 있었다.


자그마치 서장과 실세인 공화당의원의 자식들이 살해된 사건이다. 해결만 하면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에 미처 앞뒤를 재볼 여유가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놈들,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보고 나야 후회를 하겠지. 내가 본 그자들은 보통 인간이 아니야.'

범인을 겪어본 창수가 보기엔 그랬다.

형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승진 앞엔 팀웍도 뒷전인 것이다.


특진에 눈이 멀어 결사적으로 달려든 형사들 덕분에 일출의 행적을 밝혀낼 수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포천읍내에 있는 한 병원에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미군헬기가 출동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 그 환자가 일출이었다는 걸 알아냈지만, 살해된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캠프 케이시로 들어갔다는 말에는 모두들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의문투성이인 일에 형사들 간에 설왕설래가 오고 갔다.


"그런 농투성이가 미군병원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지?"


"누군지 몰라도 미군 고위층에 아는 사람이 있었겠지."


"하기야 장교라 하더라도 고위급이 아니면 한국인을 미군병원에 입원시킬 수는 없겠지."


"이거, 공연히 벌집을 건드린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


미군부대는 한국의 공권력이 먹히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였다. 즉 한국 안에 있되 미국 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같은 한국인 이라면 고문을 하다 죽여도 무마할 수 있는 권력이지만 미군 코앞에다 대고 경찰신분증을 들이대 봐야 비웃음이나 안 받으면 다행인 것이다.

보고를 받은 백강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다, 그놈이 나올 때까지 부대 앞에 진을 치고라도 지키고 있는 수밖에."


그때부터 형사들은 교대로 붙박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안에 있으면 언젠간 나오리란 계산에서였다.

답답해진 형사과장이 서장을 찾았다.


"박길영 의원이라면 혹시 미군부대출입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야 모르지 이 상태로 시간만 잡아먹을 순 없는 일이니 한번 물어보도록 하지."


------


"허, 죽지 않고 살아있다 보니 그래도 얼굴은 보게 되는구나."


권영감의 꼬여버린 심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일이 일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쯧. 그래, 나는 그렇다 쳐도 저애는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누구를 말하는 건지 강호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게, 뭐 따로 약속을 했던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네요."


"허,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니, 둘 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 저 애가 널 기다리다 기린목이 되게 생겼다. 그런데도 모르겠다는 말이 나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난감한 얼굴로 강호가 권영감을 쳐다보았다.


"저야 부모님이 안계시니 그렇다고 하지만.. 자인이야 그래도 부모님이 생존해계신거로 알고 있는데..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애도 집안에서 내쳐진 마당에 무슨 허락? 너희 둘만 좋으면 되는 거지."


강호는 고개를 쳐 들고 천장만 쳐다보았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엔 아직도 덜컥 겁부터 나는 강호였다.

'거참.. 어쩌라는 말씀인지..'


"어휴, 이 답답한 놈, 됐다. 오늘 둘이서 실컷 의논해보아라."


초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남 얘기 듣듯 한쪽에 앉아서 귀만 쫑긋세우고 있었다.

못마땅한 강호의 눈이 그런 초리를 노려보았다.

'저놈이?'


'내가 뭘?'


뻔뻔한 초리의 표정은 영락없이 그렇게 보였다.

틀림없이 저놈이 영감에게 쏘삭거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가 뻔뻔하게..'


눈치가 빤한 초리가 손을 저으며 고개까지 흔들어 댔다.

'뭐래는 거야, 이 미친놈이.'


"안채에서 자네 올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만 가봐라."


어색한 자리에 앉아있기 곤혹스럽던 강호에겐 가뭄 끝에 단비 같은 말이었다.


"네, 쉬십시오."


------


서장에게 전화를 받은 박길영은 범인일지도 모르는 인간이 미군부대 안에 숨어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쳤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부대 안으론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군부의 인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군부의 위세는 국회의원신분인 자신으로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알고 있는 별을 단 놈들 중에 만만한 놈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보안사령관으로 있는 전일한이 이용해먹긴 좋을 것 같긴 한데.. 쥐새끼같이 얌통머리 없게 생긴 새끼가 돈을 너무 밝힌단 말이지. 그래도 할 수 없지 범인을 잡아내려면. 백강두 하고 오인수 한 테도 돈을 좀 보태라고 하면 되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박길영은 보안사령부의 전화번호를 돌렸다.

부관이 나오자 신분을 밝히고 사령관을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아, 전 사령관님. 나 박길영이올시다."


-어, 의원님? 의원님께서 웬일이십니까?


"아, 다른 게 아니고 부탁 드릴 일이 있다 보니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박길영은 자신의 자식이 죽었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범인으로 짐작되는 놈이 미군부대에 처박혀 있다는 얘기까지 쉬지 않고 지껄여 댔다.


"그래서 형사들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서 범인을 잡아 나올 방법이 없겠습니까?"


황당한 말을 들은 전일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돈 나올 구멍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같은 별이라도 한국의 별과 미국의 별은 차원부터 다른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장군이라도 국내에서나 통하는 별이지, 미군대령정도만 돼도 자신과 맞먹을 정도인데 하물며 기지사령관은 자신과 같은 소장이지만 감히 마주할 처지도 못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업무와 관계된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소통이 되겠지만 감히 미군기지사령관에게 범인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를 한다고?'

공연히 대통령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작살이 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생각 끝에 전일한은 점잖게 말했다.


"하하,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기다리시지는 마시구요."


전일한의 속을 모르는 박길영은 속으로 욕을 퍼부어 댔다.

'요 얌통머리 없는 새끼가 시작도 하기 전에 돈부터 요구하는구나.'


박길영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워낙 돈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 인간이라고 소문이 난 때문이었다. 당연히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던 참이다.


못났지만 이미 죽어버린 자식과 집에서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는 마누라를 생각하자 돈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좋다. 전일한이, 니가 얼마를 요구하든 그놈을 잡아 나올 수만 있게 해다오.'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드릴 테니 힘써주실 것이라 믿고 있겠소."


돈이 욕심나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기에 돈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던 전일한은 안타깝기 그지없어 군침만 삼켰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올 정도였다.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


자인과 마주 앉은 강호는 답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뭘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답답함이라, 구속 받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는 걸까?'


강호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자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강호는 환한 하얀 빛으로 둘러 쌓여있어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고치처럼 보였다. 그 빛은 일체 부정한 것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 것 같아요, 강호씨 마음을. 마음에 들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감정.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초부터 접근을 차단하는 마음이겠지요. 그래도 언제든 마음 둘 곳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부디 마음을 붙일 그곳이 저였으면 좋겠어요."


자인의 노골적인 구애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들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감정이라.. 내 마음이 정말 그런가?'

자문자답을 해봤지만 아니라고 부정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 마음은 뭐지..?'


속사정이야 어떻든 언제 봐도 그린 듯 단아하기만 한 여자다.

이런 여자가 왜 나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좋다는 말이야 이미 들었었지만 믿을 수 없어 장난처럼 흘려들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뭐라 대답을 하든 해야만 했다.


"난.. 싫은 게 아냐. 하지만 내 손에 묻어있는 피, 앞으로도 묻혀야만 할 피, 그렇게 지울 수 없는 피의 흔적을 다른 사람에게 묻힐 수는 없는 거야. 어때, 이런 내 말이 이해되나?"


"정확하진 않아도 그게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요. 피를 묻혔다고 했지만 검거나 붉은색은 아니니까. 처음에 봤던 하얀색 그대로니까, 그러니 괜찮아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이미 들었던 얘기지만 듣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내면에 들여다보인다는 색이 농담 삼아 한 말이 아니라는 건가? 하기야 여우까지 붙어 다니는 마당에..


말은 없어도 암묵적 동의 하에 시간을 조금 더 두고, 그래도 믿음에 변함이 없다면 살아보기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오인수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폭력배들을 동원해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와 다르게 백강두는 목격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기지 안에 있는 놈을 잡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이들이 납치됐을만한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탐문하는 형사들의 발바닥에선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형사1반의 남형사가 일동여고 앞길에서 투닥거리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주민의 진술을 들은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시구요?"


"말썽꾸러기인 애들이야 하도 자주 봐서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가 있었지만 같이 싸우고 있던 사람들은 내다보질 않았으니 누군지 모르겠네요."


"사람들이라고요? 혼자가 아니었습니까?"


한일출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고 알고 있던 남형사는 혼란에 빠졌다.

틀림없이 애들을 야단치고 있는 두 사람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럼 의뢰라도 했다는 건가?'


혼란에 빠진 남형사는 다시 한 번 한일출의 호적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시청으로 들어갔다.

협조 공문 한 장 없이 경찰 신분증만 내밀고 서류 창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 한일출의 호적을 열람할 수 있었다. 공권력의 위상이 그 정도로 높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호적계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남형사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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