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22,493
추천수 :
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3.03.25 14:19
조회
170
추천
6
글자
12쪽

80화.

DUMMY

"그, 그게 정말인가요? 날 겁주려는 게 아니고?"


"허, 내가 성유라씨한테 겁을 줘서 뭘 한다고?"


"취재를 못하게 하려고 겁을 주는 게 아니란 말이죠?


"쯧, 그나마 후배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열심히 알려준 건데, 내 말을 못 믿겠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아가씨가 무슨 일을 당하던 나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니까."


고민하는 유라의 표정을 보며 강호는 더 이상 설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강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초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라씨, 선배 말대로 위험한 일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위험하다는 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나도 그때 일을 잊고 싶은데 도저히 잊어버려지지가 않아요. 나쁜 놈들을 다 없애 버리면.. 그래야 잊혀 질 것 같아서, 그래서 손을 뗄 수가 없는 거라구요."


강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누군가 그랬다더군.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낫다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없는 거고."


강호가 사라진 방안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리와 금방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유라만이 남아 있었다.


1883년 인천항이 강제로 개항되고 1884년 청의 조계지가 되면서 주로 중국의 산동지방에서 청군을 따라 건너온 화교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곳이 차이나타운이었다.


산동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는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조선의 정세가 급변하자 청은 조선의 공식 요청이 없었는데도 산둥성에 주둔 중이던 오장경(吳長慶)의 4500여명의 수군을 파병하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청군은 또다시 통령수사제독(統領水師提督) 딩루창(丁汝昌)과 광동수사제독(廣東水師提督) 우창칭(吳長慶)이 이끄는 대군을 파병하여 대원군을 납치하여 텐진으로 이송하기까지 했었다.


한마디로 치욕스런 역사로 물들어있는 곳이 이곳 인천항이었다.

그런 차이나타운의 현재주인을 자처하고 있는 중국인은 적사방의 인천지부장인 장첸이었다.


오인수는 적사방의 인천지부장 장첸과 차이나타운에 있는 용정여관에서 빙두를 구입하기위해 회합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어 빙두(病毒)는 한자로 병독이다. 병의 근원이 되는 독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마약이다.

오인수는 인천을 거쳐 서울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한 마약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자신이 국내에 가지고 있는 권력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과 달리 짱깨와의 대화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인상을 구긴 오인수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이 새끼들, 짭새라도 동원해서 한번 길을 들여놔야 되나?'


오인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장첸은 회색빛에 가까운 눈동자를 천정에 고정 시키고 눈앞에 있는 건방진 빵즈(棒子)를 어떻게 이용해 먹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우선은 수급을 조절해서 자신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5kg을 요구하는 오인수에게 2kg밖에 줄 수 없다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2kg밖에 못 주겠다는 말이오?"


"이봐, 빵즈. 2kg이면 자그마치 5만 명 투약분이라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지? 그리고 우리가 현찰 거래밖에 안 한다는 걸 아직 모르고 온 모양인데, 그만한 돈이나 가지고 있으면서 더 달라고 하는 거야?"


장첸은 오인수의 염장을 살살 긁어대고 있었다.

빵즈라고 자신을 얕보는 말까지 들은 오인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급한 성격을 꾹꾹 눌러 참으며 대꾸했다.


'이 짱깨 걸뱅이 새끼가 돼지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하지만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푼도 줄 수가 없는 돈이라는 걸 알아야해."


"그래? 그럼 협상 끝이네. 얘들아 손님 가신단다. 배웅해드려라."


장첸을 노려보는 오인수의 얼굴에 야비한 웃음이 떠올랐다.


"날 이대로 보냈다가는 후회할 텐데?"


"흐흐흐, 후회라고? 공권력에 줄이 있다고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양이지?

우리 적사방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우습게 본 모양인데 너희 일가족을 모조리 돼지 밥으로 만들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봐."


잔인한 장첸의 말에 화가 난 오인수의 볼 살이 덜덜 떨렸다.

주도권을 쥐려면 첫 거래부터 끌려 들어갈 수 없었다. 더 이상 말로는 협상이 안 될 종자들이란 걸 깨달은 오인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이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힘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그날부터 박길영의원의 힘으로 중국인 거리에 경찰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장쉰은 정보원을 통해 경찰을 동원한 것이 한국의 국회의원인 박길영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여기서 밀리는 날이면 빵즈들의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본국의 총단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지원요청을 받은 총단의 무력부장 호요방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란 놈 하나만 처리해주면 나머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부장님."


-좋아, 척살대 살수한명을 보내주지. 그놈 하나 면 충분할 거다.


"고맙습니다. 부장님. 언제 한번 들어오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대만의 흑룡회 때문에 지금은 운신하기가 어려워, 시간이 나는 대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


"하하하, 뵙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흐흐, 오인수 이놈, 시답잖은 경찰 몇 놈 풀어놨다고 기고만장하는 모양인데, 인천에 살수가 들어오면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자신이 직접 본적은 없지만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척살조원들은 하나같이 고대무예를 계승한 전문살수라고 들었기에 자신하고 있었다.


장쉰의 얼굴에 잔인한 웃음이 떠올랐다.

'당분간 사업에 어려움이야 좀 있겠지만, 국회의원 이란 놈 하나 돼지 밥으로 만들어 버리고 나면 정신 좀 차리겠지.'


중국인 거리에 순찰을 나와 있는 경찰들은 경찰들대로 불만이 팽배해있었다.

챙겨 먹을 것도 없는 빈민가나 다름없는 거리에서 하루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얼굴이나 쳐다보면서 일 없이 보내는 게 힘 드는 탓이다.


평소 같았으면 밥을 먹고 파출소 책상에 몸을 기대고 낮잠을 즐길 시간이었다는 생각에 김경장은 짜증이 났다.


"어이 조순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건지 자네는 아는감?"


"헤헤, 순사장나리, 그런 고급정보를 저 같은 말단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흐흐. 허기사, 자네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아, 농담 따먹기도 지겹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제가 소식통에게 알아본 바론 국회의원 누구한테 여기 폭력조직이 찍혔다고 하던데요?"


"뭐라? 여기 폭력조직이라면 적사방 아냐..? 그럼 히로뽕 문제란 말이야?"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어라? 그럼 그 국회의원은 누구래?"


"제 모가지가 몇 개씩이나 됩니까? 그런데 그걸 알아서 뭐 하시려구요?"


"임마, 궁금하니까 그러는 거지."


"에헤이, 설령 그게 누군지 알더라도 함부로 이름을 입 밖으로 내기나 하겠습니까? 지금 이 얘기도 제가 고생할 거라고 청에 있는 동기가 귀띔해 줘서 알게 된 건데요."


"허긴.. 그렇지. 마약이나 주물럭거리는 짱깨폭력조직새끼들과 접점이 있다면 보나마나 공화당새끼들이겠지?"


"그거야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상 공화당인지 신민당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에이, 망할 노무세상. 국회의원이란 것들이 돈에 눈이 멀어 가지고 몹쓸 짓을 하다니.."


"김 경장님 말조심 하십쇼, 이거.. 아무래도 괜히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야, 임마. 누구한테 걸려도 너한테 들었단 소리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마, 에이 쫄보 같은 새끼."


조순경이 화난 목소리로 타박했다.


"겁쟁이면 뭐가 어때서요, 목만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재수 없으면 누구처럼 욕했다는 죄로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김경장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느꼈는지 수그러들었다.


"그래, 미안하게 됐다. 심심하다 보니까 별 말을 다 하게 되는구나."


"믿고 말씀드렸던 건데, 아시다시피 다른 곳에서 조금이라도 말 실수를 하는 날이면 선배나 저나.. 아니, 본청에 있는 저의 동기까지 한순간에 좆 되는 겁니다."


"그래 알았다, 그만해라. 내가 어디 가서 말을 퍼트리겠나."


그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 남았다.


------


한때는 너벌섬으로 또 다른 한때는 하중도라고도 불렸던 여의도는 태평로의 서울 시민회관 별관을 사용하던 국회가 여의도로 옮겨오면서 활발하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여의도에 있는 한 혼젠요리(本膳料理)전문 요리집으로 들어간 오인수는 아직 박길영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했다.

자신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동시에 죽은 뒤로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젠요리란 것은 사키즈케(先付け 전채), 완모노(椀物 맑은 국), 무코즈케(向付 회), 하치자카나(鉢肴 구이요리), 시이자카나(強肴 삶은요리 모둠), 토메자카나(止め肴 무침)등이 순서대로 나오는 일본식 코스 요리로 밥과 미소된장국 절임 등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물과자(水菓子 과일)가 나왔다.


이곳 식당을 일부러 선택한 것은 오인수 자신이었다.

아무리 법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지만 일개 폭력조직두목에 불과한 자신이 아무 곳에서나 국회의원을 만나다 기자에게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박길영 의원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음식 값이 비싸다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여기라면 안심이지."


한 끼 식사에 어지간한 봉급쟁이 한 달 월급이 다 들어가는 고급식당이기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고급식당 답게 소리 하나 없이 내실의 문이 열리고 박길영이 들어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오인수가 구십도로 허리를 꺾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님."


"어, 오래 기다렸나?"


"하하, 아닙니다. 그래도 국사를 돌보시느라 바쁜 의원님을 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음.. 좋아. 현재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


"큰 돈이 걸려있는 판이다 보니 짱깨들이 생각보다 쉽게 말을 들어 먹지 않고 있지만 의원님 덕분에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판매할 곳이 없어지면 틀림없이 저에게 넘기게 될 겁니다."


"뭣보다 중요한 건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오인수는 일부러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연하지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의원님께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입니다."


입안에 회를 한 점 집어넣고 우물거리던 박길영이 흡족하다는 듯 오인수를 쳐다보았다.


"좋아. 그만한 각오면 됐어. 앞으로도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약소하지만 국사를 처리해나가시는데 필요하실 것 같아서 가지고 왔으니 요긴한 곳에 사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식탁 밑으로 가방을 밀어 넣고 있는 오인수의 행동을 전혀 모르는 척하고 젓가락으로 음식만 집어다 열심히 씹어 대고 있는 박길영이다.

돈을 주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 속은 쓰렸지만 사업상 도움을 받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다.


먼저 음식점을 나서는 박길영의 손엔 들어올 땐 없었던 가방이 들려있었다.


박길영과 같이 나갈 수 없었던 오인수는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다 식어버린 음식만 깨작거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1 91화. +1 23.04.07 157 6 12쪽
90 90화. 23.04.06 125 5 12쪽
89 89화. 23.04.05 127 4 12쪽
88 88화. 23.04.04 127 7 12쪽
87 87화. 23.04.03 127 6 12쪽
86 86화. 23.04.01 131 5 12쪽
85 85화. 23.03.31 130 5 12쪽
84 84화. 23.03.30 143 5 12쪽
83 83화. 23.03.29 140 6 12쪽
82 82화. 23.03.28 148 6 12쪽
81 81화. 23.03.27 146 6 12쪽
» 80화. 23.03.25 171 6 12쪽
79 79화. 23.03.24 169 5 12쪽
78 78화. 23.03.23 163 4 13쪽
77 77화. 23.03.22 176 5 12쪽
76 76화. 23.03.21 182 6 12쪽
75 75화. 23.03.20 183 6 12쪽
74 74화. 23.03.18 206 7 12쪽
73 73화. 23.03.17 191 6 12쪽
72 72화. 23.03.16 212 7 13쪽
71 71화. 23.03.15 213 7 12쪽
70 70화. 23.03.14 209 4 12쪽
69 69화. 23.03.13 202 7 12쪽
68 68화. 23.03.11 222 7 12쪽
67 67화. 23.03.10 214 7 12쪽
66 66화. 23.03.09 223 7 12쪽
65 65화. 23.03.08 215 7 12쪽
64 64화. 23.03.07 223 7 12쪽
63 63화. 23.03.06 217 8 12쪽
62 62화. 23.03.04 227 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