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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나쁜 놈 그보다 더 나쁜 놈.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2.12.20 19:18
최근연재일 :
2023.04.07 13:41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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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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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글자수 :
491,767

작성
23.03.1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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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9화.

DUMMY

호적계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형사를 쳐다보았다.


"왜? 뭐가 잘못됐습니까?"


"돌아가신 양반 호적을 뭐 하러 보러 오셨는지 궁금해서요."


"죽어요? 누가 말입니까?"


"거기 호적에 각개표가 돼있지 않습니까? 한일출이란 분. 이미 작고하신 분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아니면? 내가 형사님한테 무슨 이유로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가만, 그럼.. 사망 신고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놈이 형사가 맞긴 맞나?'

신분증이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심어린 표정이 호적계원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걸 알아보려면 읍사무소로 가서 알아보셔야지요. 우린 읍사무소에서 올라온 것을 보고 정리를 할 뿐이니까요."


"아, 그렇지. 사망 신고는 읍 사무소에서 해도 되는 거였지. 고맙습니다, 수고하십쇼."


호적계직원을 눈총을 받은 남형사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읍 사무소를 향해 달렸다.

승진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읍 사무소 직원에게서 황당한 사실을 듣고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허.. 미국인이 사망 신고를 했다는 말입니까?"


"네, 거기 미국 군의관의 사망진단서도 첨부돼 있잖아요. 왜 그러시는 건데요?"


"아, 별일 아닙니다."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사건이다. 굳이 서장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걸려있는 모가지가 많다 보니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인간이 기지 안에서 죽었다는 말 아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군의관을 만나볼 수 있을까?"


진급에 목 마른 남형사가 다시 캠프 케이시로 달려가 위병에게 손짓 발 짓까지 해가며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준 군의관과의 면회를 요청했지만 모욕에 가까운 거절의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저리 꺼져. 노랭아."


"아, 글쎄, 그 군의관 한번만 만나게 해달라니까?"


빙글 거리며 웃는 낯으로 남형사를 놀려 먹고 있었다.


"아 시발. 안된다고 저리 꺼져, 이 세퀴야!"


한국에서 오래 근무를 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빙글 거리며 웃어 대는 덩치 우람한 위병에게 찰진 욕까지 얻어먹었다.


에헤이, 안 된다고 만 하지 말고 군의관한테 연락이나 한번 해달라니까.


"입 냄새나니까, 저리 꺼지라고. 이 노랭이 세퀴야!"


'이 새끼가 한국에서 욕만 처먹고 살았나. 입만 열면 욕 질이네. 에이 드런 새끼.'


남형사는 한국인들이 미군에게 무시당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돈 보따리를 들고 미군과 PX물건을 거래하는 한국인들은 언제나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는 철저한 을의 신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래하는 물품도 거의 미군의 C레이션이나 술과 담배 같은 잡화 들 뿐이니 무시를 당할 만도 했다.


남형사는 하릴없이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과장의 방으로 달려간 남형사는 보고부터 시작했다.


"어때, 남형사는 뭐 좀 찾아낸 게 있나?"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발바닥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한일출은 벌써 죽어버리고 없답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한일출이 죽었다고요."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여태껏 우리가 뻘짓거릴 하고 있었단 말이야?"


남형사는 할 말이 없어 과장의 머리 위만 쳐다보았다.

'그동안 서장한테 많이 시달렸나? 다 빠졌네.'


"그러니까, 그게.. 결론은 그런 셈이지요."


"그건 어떻게 알아 낸 거야?"


"한일출의 호적관계를 뒤져보려고 시청에 들어갔다가 알게 됐습니다."


"허.. 그동안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니.. 가만, 죽었다면서? 그럼 사망신고는 누가 한 거야?"


"미군 군의관이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더라고요. 신고자 역시 미국인 이었고요."


"미국인이 왜..?"


"그거야, 저도 모르지요. 그래서 사실관계를 알아보려고 미군기지까지 가서 진단서를 발급한 군의관 면회를 요청했는데 깨끗하게 개무시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고생했네...더 이상은 미군을 상대로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서장님한테 가서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하게 남아있던 단서가 죽었다는 말에 서장의 눈이 돌아갔다.


"주, 죽어? 그 새끼가 죽었다고! 하하하, 이거 정말 미치겠구나‼"


과장이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뒤로 서장실안에서 집기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과장은 들려오는 소음을 이마를 찡그리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성질머리하곤.. 그러니까, 애새끼까지 그 모양이지.'

정말 이러다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이 죽은 이유가 밝혀져도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될 거고.

당연히 아이들이 살해된 이유가 뭔지 터져 나올 것 아니냐고.. 나야 어떻게 되든 간에, 그랬다가는 애꿎은 형사들까지 여럿 다치게 될 텐데. 이건 정말, 어떻게 풀어가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현재로선 서장이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구나.


------


만약 효진이가 내 동생이 아니었더라도 그 애들을 징치할 수 있었을까?

강호가 요즘 들어 부쩍 하는 고민이었다.

힘들게 지낼 땐 몰랐지만 잠깐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된 때문이다. 게다가 일출아재의 일까지.


모르는 척 하기엔 자신이 겪었던 아니 지금도 진행 중인 모진 시련이 생각났다. 난 그나마 알량한 전투능력이라도 있어서 힘이 들어도 우격다짐으로 해쳐나갈 수 있었지만 일출아재 같이 억울한 일을 겪는.. 아무런 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잖아.


'내 일신이 편안하려면 모르는 척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모르는 척 한다고 내 마음까지 편안할까?' 그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도움을 찾고 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줄 방법은 없는 걸까?

현재의 정권에선 힘들다는 게 자신의 결론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재벌들에게 기생충처럼 빌붙어 먹는 빌어먹을 공권력이었다. 거기서부터 억울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뉴스조차 입맛대로 조작하는 놈들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법부와 입법부까지 손아귀에 넣고 마음 내키는 대로 주무르는 놈들, 그런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흐흥, 통일주체국민회의라고?"

법을 주무르는 것 만으로도 부족해 듣도 보도 못하던 기발한 기관까지 만들어낸 놈들이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선거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는 도저히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사상초유의 듣도 보도 못했던 황당한 기관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대통령의 친위부대나 마찬가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관이다.


직접선거로는 야당을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법을 제멋대로 뜯어 고친 다음 체육관 안에 아무것도 모르는 2천여 명의 사람들을 국민의 대표자라고 앉혀놓고선 대통령과 국회의원정수의 1/3을 뽑겠다니 그야말로 미친놈들이다. 그렇게 되면 투표율 100%에 득표율 100%가 되는 건가? 흐흐, 공산당이 따로 없네. 그야말로 대표적인 막장정치의 표본이라 할만 했다.


이런 세상이니 어찌 불쌍한 사람들이 넘쳐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출아재같이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모르는 척 외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강호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니 읽는 게 아니라 훑고 있다는 게 맞겠다. 그것도 제목만 골라서.


'이게 좋은 나라라서 이런 거야? 아니면..?'

신문에 실려 있는 것도 겨우 사고사 같은 단순한 기사뿐이다.


'흐흐흐, 이거 참. 웃기는구나. 이 정도로 우리나라가 범죄 청정 국가라는 말이야? 사소한 문제라도 민심에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검열에서 빼버린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인 것 같네.'


그러니 신문을 보고 도와줄 사람을 찾으려는 생각은 헛고생인 것 같다.

'그럼, 신문엔 못 싣더라도 취재를 했던 기자는 이미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 겁 없던 여기자에게 한번 연락해 볼까? 에이 아서라. 공연히 문제라도 생기면 괜히 애꿎은 여자만 잡는다. 어떻게 좋은 방법은 없을까?'


------


유라는 아직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포천바닥을 서성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이들이 세 명이나 살해됐다는 사실은 어느 신문에도 기사로 나오지 못했다.


포천민주청년회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2층 건물의 창가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 갑수가 거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야, 그런데 저 기자라는 년은 뭘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아직도 여기서 죽치고 있는 거냐?"


"보기 싫으면 겁이라도 줘서 내쫓아 버릴까요?"


회장이란 감투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깡패조직의 두목인 오인수의 부하에 불과한 행동 대장인 갑수의 물음에 부하인 일수가 대꾸했다.


"쯧, 아무리 보기 싫더라도 아직은 문제를 만들면 안 돼. 아이들이 그렇게 되고 나서 웃대가리들도 몸을 사리고 있는 판국에."


그런 내막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갑수의 말이었다.

일수는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이 죽었다는 이유 만으로 비상이 걸려 여자들의 살 맛을 본지 제법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안 그래도 욕망을 터트릴 곳이 없어 불만이었는데 마침 기자란 년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흐흐, 저 정도면 생긴 것도 나쁘지 않고 마침 잘됐네.'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기 시작하자 자식들이 죽었음에도 상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포천서장과 박길영 의원이었다.


일수가 독한 심성을 내보이듯 흰 창 가득한 눈을 희번득거리며 말했다.


"그냥 슬쩍 겁만 주는 것도 안 된다는 말입니까?"


'이 새끼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여자라면 환장을 하는 놈이다. 혹시 이놈이..?


"너, 이 새끼. 지금 쟤가 맘에 들어서 그러는 거냐?"


"흐흐흐, 왜요, 그럼 안 되는 겁니까?"


"너 지금 저년이 기자라는 건 알고 그러는 거냐?"


"기자는 거시기에 금테 둘렀답니까?"


'이 새끼가?'

여자에게 한번 꽂히면 말린다고 해서 들을 놈이 아니다. 그렇다고 경고를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잔인한 눈을 가늘게 뜬 갑수가 일수를 쳐다보았다.


"네가 뭔 짓을 하던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난 널 죽일 거다.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반항기 가득한 눈. 절대 알아들은 눈빛이 아니다.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지금 성질대로 징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발정난 개새끼가,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그때 보자, 이 개새끼.'

속마음이야 어떻든 무시 못 할 격투 실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란 건 틀림없었다.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물불 안 가리고 가장 먼저 앞장서서 달려들던 놈이니까.


'그러고도 변변한 상처 하나 없이 빠져나왔지.'


일수란 놈의 눈은 아직도 기자의 뒷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놈이다.


유라는 오늘도 공화당 의원인 박길영의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다른 기자들은 공권력의 협박에 못 이겨 겁을 집어먹고 철수한지 오래였다.

자신이 남아 있는 건 기자로서의 욕심 같은 것도 아니다.


'내가 그 남자의 말대로 오지랖이 넓은 건가?'

그 질문에선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이러고 있는 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지.."


돌아가야겠다고 맘을 먹었을 때 자신의 코와 입을 막는 손이 있었다.


'이, 이건 또 뭐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거라던 남자의 말이 그 순간 떠올랐다.


'이, 이렇게.. 죽는다고?'

독한 알콜 냄새를 맡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수는 무너져 내린 기자를 부축해 자신의 차에 태우고 달렸다.


"흐흐흐, 넌 이제부터 내 거야."


------


민족일보 편집국장인 송태섭은 이틀째 연락이 두절된 성유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실종이 분명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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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80화. 23.03.25 17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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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78화. 23.03.23 163 4 13쪽
77 77화. 23.03.22 17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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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23.03.20 18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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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23.03.13 2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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