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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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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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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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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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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안티 카페 아니겠죠?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점심시간.


홀로 이른 식사를 하고 있는 정지혁 사장의 테이블로 황재정이 다가왔다.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황재정이 물었다.


“외근 있으십니까? 일찍 식사 하십니다?”

"마케팅팀이 경영지원 파트에서 제일 바쁠 텐데, 자네 아직 본사 떼를 벗지 못한 모양이군.“


혼내는 투는 아니었다.


“모두 외근 나가서.... 사무실 지키고 있어봐야 할 것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황재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경영지원 부서.... 인력 보강 안 합니까? 다들 업무량이 말도 아니던데.”

“다음 시즌 끝나면.”

“개인이 처리해야 할 업무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율이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네.”

“흑자로 돌아선지 몇 년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습니까?”

“시설 보강과 안전설비 또 관련 인력에 투자하고 있지.”

“그거야 매년 꾸준히 해야 하는 겁니다.”

“자넨 어떤가?”

“그런대로 업무파악은 된 것 같습니다.”

“지낼 만 한 가?”

“그럭저럭... 뭐 그렇습니다.”

“군령이 분명치 못하고, 전달이 불충분한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이미 군령이 분명히 전달되어 있는데도 병졸들이 규정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곧 대장 된 자의 죄라고 볼 수 있지.”

“의장님을 비난하시는 겁니까?”


황재정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정지혁 사장을 지그시 노려봤다.


“덕이 높은 군주 밑에 덕이 있는 신하들만 있으라는 법은 없네.”

“.....”

“의장님이 한국에 들어오시면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겠지?”

“제게 물어보셔도 잘 모릅니다.”

“세무조사가 끝나면 자넨 다시 본사로 복귀하겠지. 그때까지 잘 쉬다 가게.”

“쉬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사장님.”


정지혁 사장의 눈가에 반달모양의 주름이 잡혔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식사 다 했나?”

“예.”


정 사장이 일어서자, 의자가 밀리며 마찰음을 냈다.


드르륵.


“날 따라오게.”


식당을 나선 정 사장이 황재정을 시민호텔 구역으로 이끌었다.

그는 일언반구 없이 호텔과 콘도의 로비부터 복도, 계단, 객실들을 꼼꼼히 점검했다.

재킷까지 벗어 한쪽에 걸어놓고, 객실 청소 담당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대기실을 정리정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기만 하던 황재정이 물었다.


“기자들 들락거린다고 이러는 겁니까?”

“점심 먹고 소화시키기가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네. 때로 고객 입장에서 우리 서비스를 점검해볼 수도 있고. 직원들의 어려움도 엿볼 수가 있지.”

“....”

“뭐 하나? 사장이 일하는데 안 거들 텐가?”

“예?”

“그 재킷도 벗어 치우고.”

“아, 예.”


황재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 사장을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개 동을 돌며 시설을 돌아보며 간간이 직원들도 격려했다.

정지혁 사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점심 식사 후 산책을 하다 주변 쓰레기를 치운다거나 지저분한 곳들을 청소했다.


“일상이라네.”

“......”

“우리 직원들은 몇 년 전 회사가 파산하면서 큰 아픔을 겪었어. 그때 많은 직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나기도 했고. 회사에 돈은 없고, 리조트는 곳곳이 노후화하고 있고. 그때 몇 남지 않은 간부들과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리조트 곳곳을 보수하기 시작했어. 직원들도 힘을 보탰지.”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맞아. 이젠 기존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이 끝났어. 락 페스티벌 같은 대규모 이벤트도 열리고 있고.”


꼰대의 특성이다.

추억팔이....


“몇 년 간 직원들이 솔선수범해서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버린 거야. 그러다 보니 주변에 담배꽁초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괜히 찝찝하고 두고 볼 수가 없거든.”


황재정의 표정이 어딘지 불편했다.


“우리는 회사가 파산하는 걸 직접 경험했어. 다시는 그런 시련을 겪고 싶지 않을 뿐이네. 몇 년 간 이렇게 하다 보니 직원들 손때가 리조트 곳곳에 묻었지. 왕방울이 이 거대한 리조트를 건립했지만, 그걸 보수하고 유지한 건 임직원들이라고 할 수 있네.”


단순히 출근했다 퇴근하면 끝나버리는 근무공간이 아닌, 자신이 직접 고치고 가꾼 시설.

고위 임원과 간부들만의 자기만족이 아닐까.

냉소적인 황재정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동참하는 건 아닌가 보군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네. 휴식을 취한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고.”

“가온그룹에서 휴식보장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의 기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자발적이라네. 나도 이제 그만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직원들 때문에 은근슬쩍 빠질 수가 없어. 하하.”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직원 간 불화가 생기지 않습니까?”

“작은 불만까지 없을 수 있겠나? 하지만 우린 함께 IMF를 극복한 전우들이라네.”

“....그렇습니까?”

“무얼 말하고 싶은지 잘 아네. 간부들만 강제하고 있네. 그들은 많은 연봉을 받는 만큼 책임감도 커야하니까.”


황재정도 그렇지만, 가온그룹 임직원 대다수는 IMF를 뼈에 사무치게 느껴보지 못했다.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국민들이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가온그룹은 무섭게 성장하기 바빠서 임직원 모두가 정신없이 보냈다.

특히 황재정 같은 젊은 간부들은 IMF는 딴 세상 이야기로 여기기까지 한다.

또래 지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좌절할 때, 또 카드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 절망할 때, 가온그룹의 간부들은 높은 연봉과 상여금을 받았다.

뉴스나 신문기사에서 보는 절절한 사연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류지호가 뭔가 느껴보라고 의도해 황재정을 무주리조트로 내려 보낸 것은 아니다.

가온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IMF 시기를 가장 치열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버텨낸 사람들 속에서 황재정의 마음자세나 태도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장님.”

“응. 뭔가?”

“만선 하우스 뒤편에 터다지기를 해놓은 건 뭡니까?”

“공연장과 극장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네.”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글쎄. 그건 마케팅 팀장이자 전 본사 전략기획실 소속 팀장이 기획안을 줘봐야 알겠지?”

“예산은 잡혔습니까?”

“150억.”

“더 늘려 잡아도 됩니까?”

“이보게. 우리 회사는 가온그룹 다른 계열사와 비교해서 영업이익이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작아.”


경영 정상화가 이루어진 무주리조트는 최근 3년 간 매해 700억에 가까운 매출과 57억 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대평리조트와 엎치락뒤치락 업계 1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의장님 지시로 전략기획실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리서치를 하고 있습니다.”

“....?”

“전 지구적인 문제인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대한 것도 살피고 있습니다.”

“.....”

“인공설을 만드는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영하 3도 이하, 습도는 70%.”

“하루 인공설을 뿌리는데 드는 비용은요?”

“8,000에서 최대 1억 원. 비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네. 처음 인공설을 깔 때 양질의 눈이 깔려야 오랫동안 유지가 되고 눈이 단단해지기 때문에 온도가 무엇보다 중요해.”

“그렇다는 말은 자칫 겨울철 기온이 높기라도 하면 그 만큼 슬로프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인공설 작업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 일로 개장일을 지연시켜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또 천년만년 스키나 스노우보드가 겨울철 대표 레저가 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당장 소득수준이 올라가니까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났지 않습니까?”

“결국 서비스 차별화와 다양화 외에는 해법이 없지 않겠지.”

“만약 빈 터에 문화시설과 함께 컨벤션 센터가 들어서게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컨벤션 센터?”

“문화 공연시설은 방문객이 크게 늘어나는 스키 시즌에 주로 이벤트가 벌어질 테고, 비수기에는 뚜렷한 고객 유인 요소가 적을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자네 팀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겠지.”

“공연장, 극장, 컨벤션 홀, 전시공간이 함께 들어가 있는 복합 문화시설이 들어서면 어떨 것 같습니까?”

“여름 휴가철이 아니라면 매출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군.”

“가온그룹 계열사와 수련원이 없는 다른 중견 기업 직원 수련회 및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세미나 등 각종 행사를 유치해야지요. 아셈 같은 국제회의도 유치해 봐야겠습니다.”


정지혁 사장이 옅은 웃음을 흘렸다.


피식.


국제회의를 무슨 수로 유치할까.

자신들도 궁리를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현실성이 떨어져 검토조차 안 하고 접은 사안이다.


“일단 팀원들과 의논해서 기안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정지혁 사장은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좌천 인사로 인해 풀이 죽어 있을 것 같아 프로젝트를 맡겼다.

왠지 황재정이 일을 크게 벌일 것 같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인사가 일을 벌여놓으면 잘되건 못 되건 남은 사람들이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왠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기도 하고.....’


❉ ❉ ❉


레오나 파커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류지호는 4월 초가 되어서야 한국으로 날아왔다.

자신의 전용기에 DoTA-Allstar 맵 제작자 7명을 태웠다.

젊은 게임 개발자들은 억만장자의 프라이빗 제트기를 체험하는 호사를 누렸다.


‘저스틴TV까지 갖게 되면 완성인데 말이지...’


Justin.tv는 2007년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임 라이브 스트리밍 전용 인터넷 개인 방송 서비스다.

JHO 계열사 목록에 인터넷 라이브 방송 서비스까지 추가하게 되면 트라이-스텔라, 위성방송 JHO/DirecTV, 유니벌스뮤직, NeTube, Snowstorm, Timely, JHO Sports, E-게이밍 회사 등.

미디어, 음악, 인터넷 스트리밍, 게임 및 E-스포츠, 프로스포츠, 코믹스까지.

전 세계 수억 명의 인류에게 각자 선호하는 엔터테인먼트를 분야별로 제공하는 명실상부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제국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JHO Company Group은 한시도 확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경쟁자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도 있고, 일본은 물론 심지어 중남미에도 토종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존재한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플랫폼 생태계 수직계열화 전략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북적북적.

술렁술렁.


김포공항이 시쳇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어떻게 입국 시간을 알았는지 대한민국의 매스컴 모두가 기자를 파견했다.

류지호의 전용기 도착 훨씬 전부터 팬클럽, 또 시민단체마저 가세했다.

아수라장이요, 혼란의 극치였다.


짝짝짝.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류지호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연속해서 번쩍거렸다.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김우영 비서실장이 얼른 달려와 류지호의 백팩을 건네받았다.

연신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에 류지호가 눈을 못 뜨고 있는데, 기자단 대표로 보이는 이가 언론사 마이크 뭉치를 들이밀었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환영인파의 환호성과 한쪽에서는 시위대의 구호복창 소리도 뒤섞였다.

시장통도 이렇게 번잡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뜨거운 환영과 인파가 몰릴 것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에 류지호를 보호하겠다고 비서실 직원과 경호원까지 가세해 방패막을 형성해 물밀듯한 기자들의 공세에 대항했다.

좀 넓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면 사정이 조금은 나았을까.


“쯧...!”


류지호가 나지막이 혀를 차며 김우영 비서실장을 손짓으로 불렀다.


“따로 기자회견장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룹 세무조사로 인해.... 약식으로 포토라인 포즈만 취하고 빠지는 것으로 했는데.”


보다시피 통제불능의 개판이다.


“기자들 눈이 날 잡아먹을 기세인데, 인사만 하고 빠지라고요?”

“시차적응을 마치시면, 강남 G.O.M에서 기자회견을 따로 하기로 조율을 했습니다만....”


보다시피 기자라는 족속은 약속을 지키는 이들이 결코 아니다.


“이 아수라장을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죄송합니다.”

“공항 측과 논의해서 기자회견 장소를 마련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공항경비대가 무리하게 밀려든 기자들을 뒤로 물렸다.

잠시 게이트 주변이 정리가 되자 류지호가 가볍게 인사말을 건넸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공항 이용객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장소를 옮겨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류지호는 짧게 사진 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해보였다.

기자들이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준 후 게이트를 비워주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는 가운데 누구는 외투 단추가 터져 속옷이 드러나고, 누구는 하마터면 넘어져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포토라인 따위는 진즉에 무너지고, 기자들의 취재 룰도 무시되었다.

누가 최초 시작했는지 모른다.

기자, 시민단체, 팬들, 공항 경비대가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그걸 신기하게 생각한 공항 이용객들까지 기웃거리고.

상황이 이쯤 되자 공항경비대가 인원을 추가투입하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간단한 기자회견을 허용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혼란과 사태를 수습할 수 있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의장님.”


김포공항 고위 관계자가 사과했다.


“미처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저희 측 잘못도 있어요. 그냥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걸 그랬네요. 괜히 저희 때문에 상부에서 한소리 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녁 뉴스에 이 광경이 고스란히 나갈 터.

김포공항 관계자들은 상부와 언론으로부터 혼쭐이 날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이후, 김포공항으로 유명인사가 입국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류지호의 의전팀과 경호팀은 프라이빗 제트기 서비스업체 K-Bas 영업소가 있고 국제선 노선도 적어 여유로운 김포공항을 류지호의 입출국 공항으로 정했다.

정확한 입국시간도 따로 언론사에 공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사단이 났다.

며칠 안에 오늘의 난장판에 대한 조사가 진행 되고 원인을 파악할 것이다.

암튼 기존 김포공항 기자실은 폐쇄된 모양이다.

임시로 마련된 넓은 공간엔 급조된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달랑 놓여있었다.

기자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모두 간이 의자였다.

급조한 태가 나는 임시 회견장에 류지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한 번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손으로 가리개를 만들고서야, 질문하는 기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먼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안 합니다. 어디 신문사의 누구시라고 했습니까? 미처 듣지를 못했습니다.“

"SBC 김영철 기자입니다."

"먼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시기라, 웃으면서 인터뷰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소 딱딱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류지호는 잠시 마이크에서 고개를 돌려 목을 가다듬었다.


“한국영화도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로 수상한 것이기 때문에 오스카 수상이 우리 영화팬들에게 뜻 깊은 일일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다 떠나서 많은 분들께서 응원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덕분에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시상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 칸과 베니스에서 수상하게 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그때 긴급 기자회견을 주재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제제에 나섰다.


- 추가적인 질문은 삼가주실 것 부탁드립니다.


SBC의 기자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데, 류지호가 짤막하게 답변했다.


"노력하겠습니다.“

- MBS의 정종훈 기잡니다. 시간이 없으시다니 짧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돌아오신 것으로 아는데, 차기작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 해 주시죠.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흥분도 되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아주 복잡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영화 작업을 앞두고는 설렘과 함께 많은 고민이 찾아옵니다. 기대도 되면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항상 그래왔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KBS의 조중호 기자입니다. 가온그룹이 지주회사 체계로 출범한지 5년도 안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극장 체인 사업 역시 10년도 되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런 무명의 극장 체인이 수십 년 역사를 가진 로우즈 씨네플렉스를 인수하는 경이적인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곧이곧대로 들으면 가온그룹에 대한 경의.

비꼬아서 들으면 생트집을 잡고 싶어서 미끼를 던진 것이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잘못 대답하면 연쇄적인 질문이 쏟아지게 된다.

유도성 질문에 말려들면 피곤해진다.


“가온그룹은 국내 시장에 안주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G.O.M의 첫 극장인 강남점을 세울 때부터 세계시장을 향한 마스터플랜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정부의 영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한국영화 팬들의 지지가 큰 동력이었고, 가온 임직원들의 뜨거운 열정과 땀이, 그리고 노력이 그런 기적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 한 가지만 더.....

- 그만, 다음 분 질문하세요.


김우영 비서실장은 한 언론사 당 한 번의 질문만 허락했다.

이어 신문사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 이번에 오스카 트로피도 가지고 오신 겁니까?

“트로피는 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제작사 또 참여한 모두의 영광입니다. 미국의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 본사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 두 번째 수상이신데 첫 번째 수상과 다른 점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수상의 결과보다는.... 시상식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판타지 장르가 아카데미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영화를 연출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기회가 닿는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연출을 한다는 것이나 그런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 가온그룹이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가온그룹의 비밀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비상장기업이라 그런 편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온그룹은 법이 정한 기업 공개원칙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비상장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밀이니 신비주의니 하는 것 같은데....”


류지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가온의 이사회는 단기적 이윤 추구를 위해 사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일반 투자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증권거래소에 IPO를 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기업을 공개하게 되면 투자자는 회사가 이익을 내라고 압박할 겁니다. 그런 주주들의 압박 때문에 경영자들이 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갖 편법과 불법이 일어나겠지요. 주식가치를 띄우거나 EXIT를 위해 기업가치에 거품을 조장할 것입니다.”


류지호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생수를 집어 한 모금 마셨다.


“이사회는 단기간에 급성장한 가온의 기초가 튼튼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그 위에 각종 구조물을 올려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경영 여건에서는 왜 빨리 건물을 짓지 않냐고 닦달할 사람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 가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윤영철 기자입니다. 피앙세와 언제쯤 결혼하실 겁니까?

“약혼식부터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은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정략결혼이라는 말도 들려옵니다. 그런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품위 있는 언론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타블로이드에서 하는 말을 인용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어떤 계산도 이해득실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 쯤 경험해봤을 그 감정 외에 어떤 것도 없습니다.”

- 결혼하게 되면 국적문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아이들은 두 개의 여권을 가지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번거롭긴 하지만, 감수할 생각입니다. 여권 자체는 가벼우니까요. 하지만 국적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면 언제든 국적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제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이 정도에서 기자회견을 마쳤으면 합니다."

- 조금만 더 합시다!


누군가 외치자, 너도나도 좀 더 회견을 하자고 요구했다.


- 오랜만에 이렇게 기자들이 모였는데, 겨우 몇 마디하고 가는 건 아니죠!”

- 삼십분 만 더 하시죠. 의장님!


김우영 비서실장이 칼 같이 선을 그렀다.


- 의장님... 마지막으로 한국영화 팬들에게 따로 전할 말씀 한 마디 하시지요.

“최근 한국영화 제작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고, 우리 영화가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팬들께서 다양한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방문해주셔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한국영화인의 한 사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마이크에서 떨어져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비서실 직원들이 잽싸게 마이크를 받아가고 단상을 치워버렸다.

기자회견이 완전히 끝났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임시 회견장을 빠져 나온 류지호는 한쪽에 모여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들 손에는 펜과 종이가 들려있었다.

류지호가 다가오자 ‘꺄악~‘ 소리를 질러댔다.

모여 있던 인원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자,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남자가 말했다.


“감독님, 시간 되시면 저희 카페 한 번 방문해 주시면 영광입니다.”

“어디? 넥스트? 네이브?”


류지호는 촌스럽게 어느 동네 카페냐고 묻지 않았다.


“네이브 류지호 팬 카페예요.”

“네이브도 카페 서비스를 시작한 모양이네요?”

“예. Yo!"


카페지기로 보이는 남자가 선창을 하자, 팬 카페 회원들이 일제히 후창했다.


"Jay! Ho!"

“일본 팬모임이 J. HO라서 저희는 앞에 Yo를 붙였습니다.”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어감이 ‘야, 지호!’ 또는 ‘얀마 지호’다.


“안티 카페 아니죠?”


류지호가 웃으며 농담을 던지자, 절대 아니라며 펄쩍 뛰는 팬들이다.

순수한 팬클럽의 순수한 모습으로 인해 기자회견으로 인해 받았던 약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탄핵이다 총선이다.... 나라가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류지호에 대한 취재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해외 슈퍼스타 입국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 만큼 류지호의 오스카 2회 수상 및 오랜 만에 한국영화 복귀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고, 한편으로 가온그룹이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오너의 반응을 영상에 담는 것도 매스컴으로써는 매우 중요했다.

경제 관련 시민단체까지 몰려와서 특별세무조사를 받는 가온그룹의 오너 류지호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불편을 초래해 죄송합니다.”

“인천이나 김포나 자가용 비행기 전용 계류장이 따로 없지요?”

“예.”

“K-Bas 영업소는 김포에만 있습니까?”

“현재는 그렇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옮기라고 할까요?”

“다른 그룹 회장들은 어떻게 한답니까?”

“경우에 따라 다른 것으로 압니다.”

“비즈니스 제트기 전용 계류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인천공항을 통해 나가거나 들오는 걸로 합시다.”

“예!”

“그리고 일부러 조용히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해외출국과 입국은 정식으로 보도자료 돌려서 제대로 포토라인 치고 취재할 수 있도록 합시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스텔스로 돌아다니는 것도 웃겨요.”

“명심하겠습니다.”


류지호는 곧장 한남동 본가로 향했다.

이후로는 외부노출을 삼가고 <민중의 적> 후속편 프리프로덕션에 몰두했다.

가끔 자신의 팬 사이트나 카페에 들어가 팬들이 뭘 하고 노는지도 구경했다.


“WaW 픽처스 앞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요?”

“예.”

“WaW종합촬영소과 여주호텔에 각각 오피스와 숙소 마련해 둬요. 그쪽으로 출근하게. 비서실은 평상시처럼 업무를 보고, 경영지원팀에서 한 명, 의전팀에서 한 명 해서 두 명만 수행하도록 하고.”


류지호는 파파라치를 방불케 하는 언론의 등쌀 때문에 한남동에서 여주로 숙소를 옮겼다.

외부인 출입이 불허되는 WaW종합촬영소로 출근하며 <민중의 적> 후속편에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작가의말

한반도의 기후가 요상하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9월이 코앞인데 장마라니....

밝고 활기차게 새로운 한 주 맞이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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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200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404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92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25 105 24쪽
600 총수란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남자? (2) +16 23.08.31 2,559 102 23쪽
599 총수란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남자? (1) +4 23.08.30 2,530 107 25쪽
598 할리우드 겉멋 그 자체... +3 23.08.29 2,534 97 26쪽
» 안티 카페 아니겠죠? +4 23.08.28 2,438 103 25쪽
596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2) +4 23.08.26 2,536 108 24쪽
595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1) +5 23.08.26 2,379 103 23쪽
594 신상필벌(信賞必罰). (4) +6 23.08.25 2,478 100 22쪽
593 신상필벌(信賞必罰). (3) +4 23.08.24 2,480 107 23쪽
592 신상필벌(信賞必罰). (2) +5 23.08.23 2,505 106 25쪽
591 신상필벌(信賞必罰). (1) +7 23.08.22 2,559 97 22쪽
590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2) +3 23.08.21 2,547 104 25쪽
589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1) +5 23.08.19 2,564 88 23쪽
588 인수·합병이 여의치 않을 것 같은데. +8 23.08.18 2,584 97 23쪽
587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2) +4 23.08.17 2,559 111 23쪽
586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1) +2 23.08.16 2,585 111 24쪽
585 PayMate Mafia. (3) +2 23.08.15 2,614 117 22쪽
584 PayMate Mafia. (2) +4 23.08.14 2,622 118 23쪽
583 PayMate Mafia. (1) +4 23.08.12 2,785 103 24쪽
582 두 번째 오스카! +8 23.08.11 2,686 111 23쪽
581 인간들이 배가 불렀어, 아주! +3 23.08.10 2,590 100 22쪽
580 Pix-Art. +7 23.08.09 2,571 103 23쪽
579 부자 되세요, 꼭이요~ +4 23.08.08 2,632 109 27쪽
578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8 23.08.07 2,641 107 22쪽
577 흘러가게 놔두라고 하십니다. +6 23.08.05 2,712 100 22쪽
576 REMO : ....or Maybe Dead! (11) +8 23.08.04 2,590 106 27쪽
575 REMO : ....or Maybe Dead! (10) +4 23.08.03 2,557 10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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