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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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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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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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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신상필벌(信賞必罰).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홍콩필름마켓의 규모가 40%나 증가했다면서요?”

“TV마켓이기도 해서 HD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 중국의 방송 관계자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VCR 단계 없이 DVD 시대로 곧바로 건너뛰어 버렸다.

극장도 디지털 시스템으로 곧바로 도약 중이다.

중국의 성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방송사에서 자체 제작해 방송하는 HD영화와 HD드라마의 수요가 엄청나서 미처 채우지 못한 제작 물량이 홍콩으로 넘어오고 있다.


“감독이나 기술 스태프가 홍콩에서 장기간 보이지 않는다면 중국에서 HD영화나 HD드라마를 찍고 있다고 보면 십중팔구 맞습니다.”

“해외사업 부문에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죠?”

“극장은 보스의 한국 기업에서 진출할 테니, 지분 참여만 할 생각입니다. ParaMax가 홍콩영화 여러 편에 투자하면서 제작부문 합작을 펼치고 있으며, 트라이-스텔라 영화의 배급력 확보를 위해 중국 영화사들과의 우호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 직배는 불가능하다.

정부에서 할당한 6개 배급권을 나눠준 기업 외에 외국 기업에게 배급권리를 허락할 리가 없다.

특히 검열은 할리우드가 중국 시장에 안착하는데 큰 장벽이다

불법복제와 공유가 만연한 것도 큰 골칫거리다.

중국은 해외영화에 대해 1년에 20편 수입 정책을 고수한다.

그 역시 큰 걸림돌이다.


“중국의 Eye-MAX 상영관은 많이 늘었던가요?”

“각 성의 주요 대도시는 적어도 한 개관이 들어섰거나 점차 들어서는 추세입니다.”


중국의 Eye-MAX 독점은 차이나 필름 스텔라다.

이전 삶에서는 만달(萬達)그룹 산하 만달시네마가 미국 독점권을 가진 AMT를 인수하면서 권리를 승계했다.

한국 독점권을 가진 BGV도 중국에 진출한 상영관에 Eye-MAX관을 열었다.

이전 삶에서 Eye-MAX는 13억 인구에 땅덩어리도 넓고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덕분에 중국에서만 차이나 필름, 만달, 광주대지, BGV 등 네 개 브랜드가 1,000개 이상 상영관을 열었었다.

전 세계의 Eye-MAX 스크린의 47%가 중국에 있을 정도였다.

그러는 한편 짝퉁 시스템 DMAX라는 걸 내놓기도 했다.


“중국 시장은 성급하게 달려들지 말아요. 다른 메이저들이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것을 확인하고 전열을 제대로 정비해 들어가도 늦지 않아요.”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하겠습니다.”

“DALLSA의 이미지센서나 D-Cinema 부문도 직접 진출보다는 한국을 통해 거래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 보는 게 좋겠어요.”

“해당 회사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마련하겠습니다.”

“대련을 근거지로 한 만달그룹이 영화업에 뛰어들기 전에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놔야 합니다.”

“중국 지사에 만달그룹과의 꽌시에 신경 쓰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꽌시가 양날의 검인 것은 스텐 크레이그도 잘 알고 있다.

류지호는 따로 잔소리를 늘어놓진 않았다.

이전 삶에서 중국 정부는 디지털 영화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소닉에 100대의 카메라 주문을 넣었던 나라다.

그걸 DALLSA D-Cinemas가 가져오게 된다면....


“좋아요. 다음은....”


금융사업 부문의 최대 이슈는 원유 선물거래였다.

매튜 그레이엄은 2000년~2003년까지는 원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22달러에서 25달러 사이에서 일정하게 유지됐다고 말하면서, 최근 들어서 세계경제의 회복세 및 국제투기자금 유입 등을 배경으로 국제유가가가 중하반기에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올해 GARAM Invest의 주요 투자방향은 원유선물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강조했다.

여담으로 매튜 그레이엄의 예상대로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이 면서 10월 하순경에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55달러대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면 그렇지.’


류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JHO Security Services가 리조트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그 안에 담긴 의도를 눈치 채긴 했다.

바로 자금세탁과 비자금 조성에 관한 비밀이다.

리조트 리모델링 비용 과다 계상과 인테리어에 사용할 예술품 구입 및 거래.

특히 미술품 거래는 뒤처리가 깔끔해 돈세탁의 '고전'으로 통한다.

상세한 거래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는 데다 정해진 가격이 없어 웃돈이 오가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돈세탁이나 비자금 조성에 좋은 수단이다.

기업 활동에서 비자금 혹은 비밀적립금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해도 류지호로서는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JHO도 아일랜드를 주로 이용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더블 아이리시(Double Irish) 시스템.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사업 총괄법인을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만들어 자회사 기술료(로열티)라는 형태로 자금을 이동시키고 나서 다시 한 번 버뮤다 등의 '제로 세율' 지역으로 옮겨 납세액을 최소화하는 회계 기법을 일컫는다.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빈약한 아일랜드가 1990년대부터 시행했는데, 유명한 다국적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해 해당 기업의 조세회피를 도운 편법이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에 불과했다.

미국과 유럽의 20~30%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더블 아이리시를 이용한 조세회피 행위는 법인등록 지역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미국과 기업의 원소재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아일랜드 간 조세법상 차이를 이용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MacIntosh는 아일랜드 정부와의 이면 거래를 통해 2% 안팎의 법인세를 내고 있다.

미국 조세당국은 다국적기업들이 아일랜드 법인을 통해 조세를 낮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도 조사도 어렵고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고의로 장부를 조작하거나 매출을 줄여서 세금을 줄인 것도 아니고, 법의 미비점을 이용한 절세이기에 두고 볼 수밖에 없다.

영국에는 '특허 박스'라는 제도가 있다.

기업의 특허 같은 지식재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일반 법인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조세 제도다.

무지막지한 음악 관련 저작권을 보유한 유니벌스뮤직그룹이 미국 본사보다 영국 법인을 통해 주된 사업을 벌이는 것이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다.


“아일랜드, 버뮤다, 저지아일랜드 등을 이용한 조세회피는 10년도 못 갈 겁니다. 적당한 시점에 정리하도록 하세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좀 더 교묘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본사 소재지의 높은 법인세를 피하려고 낮은 세율 국가에 해외 소득을 신고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MacIntosh처럼 해당 국가 정부와 이면합의로 말도 안 되는 세금혜택을 받는 건 비난 받을 일이다.


“미국의 모기지론 상황을 보면, 머지않아 뭔가 사단이 나도 날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가 오려면 4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조짐이 있는 모양이다.

매튜 그레이엄 역시 우려를 표했다.


“정말 이러다 대공황이라도 오면 어쩌려고... 다들 미쳤어.”


모르고 들여다보면 ‘설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미국 금융계와 주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흐름을 분석하니 위험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류지호는 일찌감치 JHO의 수뇌부들에게 금융위기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올해 들어 그런 조짐이 좀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금융위기를 예측한 사람이 아예 없지 않았다.

닥터 둠이라고 불리는 뉴욕대학 경제학 교수를 비롯해 몇 명의 경제전문가 및 금융업 종사자들이 각종 컨퍼런스에서 경고했다.

누구도 그들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매튜 그레이엄 역시 검증되지 않은 모기지론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도리어 쓸데없이 위기론을 부추긴다는 욕만 먹고 있다.


“형은 계속 월가에 경고를 보내도록 해.”

“늦었어.”


작년부터 미국의 거의 모든 프라임 대출 대상자가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쓰고 있거나 쓸 생각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은행은 새로운 CDO(부채 담보부 증권)를 신규 투자자에게 발급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이 필요했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대출인 서브프라임(Subprime) 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재앙이 막 시작되었는데, 그 재앙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주택시장 거품은 언제 쯤 꺼질까?”

“빠르면 2년 후, 늦어도 3년 후에는 닷컴버블 몇 배의 충격파가 휩쓸 것 같아.”

“내년까지 공격적인 경영을 유지하고, 금융위기가 구체화하는 시기까지 보수적인 경영을 견지합시다.”

“주택시장 거품이 빠지고, 금융시장에 혼란이 어느 정도까지 파급력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는 현재로서는, 그 수밖에.....”


류지호는 경제전문가도 출중한 경영전문가도 아니다.

세계사적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평범한 회귀자일 뿐.

물론 사업을 하면서 경제흐름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레만브라더스 파산, 세계적 금융위기, 세계적인 불경기,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지도 대처할 수도 없다.

그저 전문 경영인들이 위험을 피해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폭주하지 못하도록 단속할 뿐.

류지호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쑤는 측근들이라서 금융위기에 대해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어서 안심을 할 수 있었다.

JHO Company Group은 어떤 외부적 위험에도 미래가 꽤나 낙관적이다.

하버드대학 기숙사에서 창업한 페이스노트가 곧 실리콘밸리로 이사할 예정이다.

2005년에는 누구나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 공유하며 즐기는 NeTube가 서비스를 시작한다.

2006년에는 140자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Flitter가 등장할 것이고.

2007년에는 아이폰이 출시되며 모바일 혁명과 SNS 시대가 활짝 열린다.

2008년에는 차량 및 숙박시설 공유 서비스가 시작되어 수 년 후 수십조 원의 가치를 지닌 공룡이 된다.

비슷한 시기 StreamFlicks 혹은 그룹 자체적으로 OTT 서비스를 시작할 터.

DVD 대여 서비스에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면서 100조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한다. 그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미래의 유망한 기업 수십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

그룹에 재무적으로 위험에 처할 기미가 보이면 처분해서 사용하면 된다.


“연말에 즐거운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봅시다! 물론 보너스만한 즐거움이 없겠죠.”


하하하.


일행이 웃음을 터트렸다.


“황을 촌구석으로 쫒아버렸다며?”


좋은 분위기에 매튜 그레이엄이 찬물을 확 끼얹었다.

류지호의 측근 중에 측근이라고 알려진 황재정이 좌천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것이 JHO Company Group 임원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해고를 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 하면서도 만회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류지호의 대인배적인 도량에 감탄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촌구석은 아니야.”

“그 녀석이 한 짓이 그렇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던데?”


매튜 그레이엄이 보기에 세무조사라는 것이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회사를 위해 벌이다 발생한 귀찮음이다.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되었다면 징계가 아니라 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책임까지 물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밭 갈라고 시켰더니, 옆에 논에 물을 대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어. 오너의 지시를 무시하고 멋대로 일을 벌였으니까. 혼나는 것이 맞아.”

“소유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조직문화와 기업 문화는 미국과 달라.”

“황은 꽤 똘똘한 녀석이잖아. 네게 충성심도 남다르고.”

“상과 벌은 엄중하고 공정해야 해.”

“내 동생은 평상시에는 너그럽다가도 한 번씩 화를 내면 무섭지.”


매튜 그레이엄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한국에서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자신이 아는 의동생은 어지간한 모욕도 잘 참고 넘기는 편이다.

그런데 한 번 화를 내면 꽤나 무섭다.


“너 자신보다 세상에 소중한 건 없어. 네가 휘두른 칼에 네가 다치지 않게 적당히 해.”

“뭔 소리야?”


매튜 그레이엄이 자리를 정리해서 일어섰다.

장내를 곁눈질해 보니 참석한 측근들 전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굳이 황재정에 대한 좌천을 거론한 의도는 충분히 거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문공이 오랜 충신이자 장인인 호인에게 물었다.


[내가 좋은 음식을 신하들에게 두루 내려주고 백성들의 집에도 술과 고기를 주려 하오. 병사들에게는 공납된 직물로 옷을 만들어 입히려 하오. 이리하면 백성들이 나를 위해 싸우게 하기에 충분하겠소?]

[부족합니다.]

[백성들이 재산을 잃으면 관리를 보내 전후를 조사해 궁핍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고 죄가 있는 사람은 사면해주겠소. 이러면 되겠소?]

[그래도 부족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나를 위해 전장에 나서려 하겠소?]

[공이 있는 이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이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면 됩니다. 그러면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징벌의 경계는 어디까지 하면 좋겠소?]

[친근한 사람이나 존귀한 사람을 피해가지 않고, 잘못이 있다면 총애하는 사람에게도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저 유명한 신상필벌(信賞必罰) 이야기다.

뛰어난 리더는 기왕불구(旣往不咎)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잘못인 줄 알지만 이미 지난 것이니 허물을 꾸짖지 않는다는 말이다.


❉ ❉ ❉


캐나다에서 돌아온 황재정은 군소리 없이 무주리조트로 내려갔다.

이 일을 두고 그룹 안팎에서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때마침 매스컴에서 가온그룹이 특별세무조사를 받게 됐다고 떠들었다.

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오너의 외화 밀반출 의심, 최측근의 횡령·배임 찌라시까지.

이 때다 싶어 언론에서 영화산업에서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각시켰다.

언론사 편집의 논조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특정 기자 몇 명이 교묘한 말장난으로 가온그룹과 류지호를 흠집 내려 애쓰는 인상이랄까.

하지만 가온그룹 이슈는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온통 한국 사회를 점령해 버렸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탄핵규탄 촛불집회가 열리는 판국에 가온그룹 특별세무조사나 류지호에 대한 억측이 주목을 끌 리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어.”

“투덜거릴 시간 있으면 광화문 나가서 촛불이라도 들어.”

“그러지 않아도 주말에는 나가볼 참이야.”

“그나저나 류 감독 훈장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세무조사다 뭐다 괴롭힐 것이 아니라.”

“무슨 훈장?”

“문화훈장 말이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아서?”

“그것도 벌써 두 번째 수상이잖아.”

“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미국 국내 영화제잖아. 우리나라로 치면 그랜드벨어워즈 같은.”

“아카데미상을 어디서 비리 시상식에다 갖다 대. 실례야 실례.”

“큭큭. 것도 그러네.“

“류 감독은 칸과 베니스 빼고 4대 국제 영화제 두 군데서 감독상도 받았잖아. 임 감독님도 감독상 받으신 걸로 훈장 받으셨는데, 류 감독이야 자격이 차고도 넘치지 않나?”

“한국인 최초의 아카데미... 아니 아시아 최초 수상자였지 아마?”

“잘 못 한 게 있으면 죄 값을 치르는 게 맞는데, 순 추측만 가지고 떠들고 있더구만.”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워낙 크다보니까 보수 쪽에서 물타기 들어갔나 보지 뭐.”


청담동의 한 고급바에서 영화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는 한산했다.

토파즈색 양주가 둥근 얼음 밑으로 찰랑였다.

바 테이블에는 40대 초반 남자 둘이 차분하게 술을 마시고 있다.

한 명은 김자영의 사촌 오빠이자 전 대유영상미디어 사장 김지훈이고, 다른 한명은 모 재벌가의 장남 장재영이다.

둘의 술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합류했다.

전 유림영화사 대표 성영대와 최근 충무로에서 부상하고 있는 DH 픽처스 대표 전대훈이란 인물이다.

성영대가 두 명의 선객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연배가 비슷함에도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그들 사이의 서열을 암시했다.


“인사는 적당히 하고, 얼른 앉기나 해.”


전대훈이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정중하게 말했다.


“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김지훈이 좀 더 상급자인 듯한 장재영의 눈치를 봤다.


“룸 하나 세팅 해 놔.”

“옛!”


잠시 후, 업소 안쪽 룸으로 일행이 자리를 옮겼다.

전대훈은 어디 가서 말석을 차지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충무로에서 나름 잘나가는 제작자인데다가 집안 내력도 어디 가서 꿀릴 정도가 아니다.

DH 픽처스.

조폭가족 시리즈 영화를 포함한 코미디 영화의 잇따른 흥행으로 충무로 메이저 제작사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영화사다.

그가 충무로에 나타났을 때, 할리우드 제작자 출신이라는 사실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한때는 류지호와 비교되며 크게 화제를 끌기도 했다.

실상은 그가 할리우드에서 세운 프로덕션은 지역광고물을 제작하는 소규모 제작사였을 뿐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지역 유선방송사가 내보내는 동네 치킨집 광고를 제작하는 영세 프로덕션인 셈.

그 조차 한국에서 영화 사업을 펼치기 위한 우회 투자처였다.

우회 투자.

미국의 은닉 재산을 세탁했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자금이 들어왔다는 걸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그는 영화를 넘어 음반, 매니지먼트까지 손대며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장재영, 김지훈과는 미국에서 곧잘 어울리던 사이다.

성영대는 영화를 하면서 친분이 생긴 케이스다.

셋 모두 도박, 마약, 섹스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바 있는 재벌가 아웃사이더들.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전대훈 입장에서 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한 명은 현 재벌가 자식이고, 다른 한 명은 그룹은 망했지만 여전히 잘 나가는 재벌가 자제이며, 마지막으로 극장업은 망했지만 여전히 명동 큰손의 상속자였으니까.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강남 일대 대부분의 바는 일본식 술집을 벤치마킹해 커튼을 친다.

원래 바에는 이런 밀실을 두어선 안 된다.

어쨌든, 문이 열리며 깔끔한 정장차림의 일행 또래의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와라.”

“오랜만이네요. 영감님.”


성영대의 호칭에서 남자의 직업을 알 수 있다.

젊은 남자에게 영감이라 부른 직업은 검사 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김경원 검사.

특수부 검사는 검찰 내 성골(聖骨)이자 인사의 꼭짓점이다.

특수부 검사가 출중한 능력을 보여 들어가는 곳 같지만, 잘나가는 특수부 선배 검사와 일하다가 발탁되는 경우거나 검찰 출신 친인척 등 확실한 ‘뒷배’를 갖고 검사 생활을 시작하거나 둘 중 하나다.

김경원 검사는 후자의 경우로 그가 서평특수 건으로 가온그룹을 압박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일추탁언(一鰌濁堰)!

한 마리 미꾸라지가 강물을 흐린다는 말이다.

엘리트라는 오만함 때문에 용의 코털을 건드리고도 당당했다.

이들은 절대 제 밥그릇 빼앗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빼앗았으면 빼앗았지.

김지훈이 다짜고짜 투덜거렸다.


“효과도 없는 세무조사를 해야 하는 거냐?”


그와 김경원 검사는 중학교 동창이다.


“세무조사는 이제 막 시작됐어.”

“얼마나 걸리는데?”

“3개월 통보했을 걸. 2회 연장하면 4개월 정도.”

“아주 탈탈 털리겠다?”

“그야 모르지.”

“세무조사는 그렇다고 치고.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절차라는 게 있어. 고소·고발 사건도 아니고.”

“너만 믿으라며?”

“전방위로 내사를 벌이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대한민국 검찰은 죄가 없는데도 죄를 물을 수 있다.

법원에서 죄가 없다고 판결이 나도 그 동안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죄를 주는 것 이상으로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회사도 망하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것도 없다며? 밀어붙이면 안 돼?”

“뭐가 있어야 수사로 전환하지. 기자들도 대강 눈치 깐 모양이더라.”


성영대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대화에 끼러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것만 해도 소득이라면 소득이지요.”

“누구와?”


실제 나이는 성영대가 한참 위다.

그럼에도 성영대가 아랫사람 같다.


“대외적으로 미국계 래리 킴 회장이 얼굴마담을 하고 있고, 비서실장이 컨트롤 하는 모양새지만, 류지호의 손발로 움직인 것이 불알친구 황재정이랍니다.”

“틈을 벌릴 수 있을까?”

“계속해서 가온을 흔들어서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 빼왔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까 어디서 순 쭉정이만 뽑아왔던데? 이력서 보니까 순 지방대 출신들이잖아.”


전대훈이 입을 열었다.


“걔들은 지역밀착형 채용을 선호한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개소리냐?”

“서울 지역 외에 소재하는 자회사나 계열사는 그 지역 출신들을 우선 채용하고 있다던가.”

“당연한 거 아냐?”


지방대 출신 취업 희망자는 주요 대기업 지방 계열사 입사조차 쉽지 않다.


“전 대표 쪽에서 영화계 내부에서 흔들어볼 순 없어?”

“WaW 물고 늘어지면 역풍 맞습니다. 씨네마21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류지호 까는 애기했다고 저더러 류지호 반만 하라며 건방떤다고 사방에서 욕하더란 말입니다. 내가 참... 기가 차서.”

“할리우드 메이저와 안 친해? 할리우드에서 영화 했다며?”


전대훈은 대답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깊이 들어가면 할 말이 궁색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반발한다고 그래서 뭐? 겨우 하청업자 주제에. 하청업자가 뭐야? 원청업자 시다바리잖아. 본보기를 좀 보여. 영화 못 찍게 해버려. 그래야 주제를 알지.”


장재영의 말에 영화밥을 먹고 있는 세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을 당당하게 지껄이고 있었기에.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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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200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404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92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26 105 24쪽
600 총수란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남자? (2) +16 23.08.31 2,560 102 23쪽
599 총수란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남자? (1) +4 23.08.30 2,531 107 25쪽
598 할리우드 겉멋 그 자체... +3 23.08.29 2,536 97 26쪽
597 안티 카페 아니겠죠? +4 23.08.28 2,438 103 25쪽
596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2) +4 23.08.26 2,536 108 24쪽
595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1) +5 23.08.26 2,379 103 23쪽
» 신상필벌(信賞必罰). (4) +6 23.08.25 2,479 100 22쪽
593 신상필벌(信賞必罰). (3) +4 23.08.24 2,481 107 23쪽
592 신상필벌(信賞必罰). (2) +5 23.08.23 2,506 106 25쪽
591 신상필벌(信賞必罰). (1) +7 23.08.22 2,560 97 22쪽
590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2) +3 23.08.21 2,547 104 25쪽
589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1) +5 23.08.19 2,564 88 23쪽
588 인수·합병이 여의치 않을 것 같은데. +8 23.08.18 2,585 97 23쪽
587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2) +4 23.08.17 2,559 111 23쪽
586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1) +2 23.08.16 2,586 111 24쪽
585 PayMate Mafia. (3) +2 23.08.15 2,615 117 22쪽
584 PayMate Mafia. (2) +4 23.08.14 2,623 118 23쪽
583 PayMate Mafia. (1) +4 23.08.12 2,785 103 24쪽
582 두 번째 오스카! +8 23.08.11 2,687 111 23쪽
581 인간들이 배가 불렀어, 아주! +3 23.08.10 2,591 100 22쪽
580 Pix-Art. +7 23.08.09 2,572 103 23쪽
579 부자 되세요, 꼭이요~ +4 23.08.08 2,633 109 27쪽
578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8 23.08.07 2,641 107 22쪽
577 흘러가게 놔두라고 하십니다. +6 23.08.05 2,712 100 22쪽
576 REMO : ....or Maybe Dead! (11) +8 23.08.04 2,591 106 27쪽
575 REMO : ....or Maybe Dead! (10) +4 23.08.03 2,557 10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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