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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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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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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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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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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김성한 홍보실장은 불안했다.

이놈에 나라에서는 내 편 아니면 무조건 적이니까.

줄 잘 못 서면 한쪽 편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룹 주요 사업장이 소재한 지역별로 유력 후보의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좀 사주는 정도로 해 봅시다. 그 정도는 의장님께서도 뭐라고 하지 않으실 겁니다.”


선거운동 3개월 이전에 국회의원 출마자의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사주는 것은 현행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물론 도를 넘는 액수가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긴 하지만.


“여당이 둘로 갈라섰는데, 양쪽에 다 지원을 해야 합니까?”

“아니요. 서울, 부산, 인천, 대전, 여주 지역구 중심으로 새롭게 창단한 여당과 기존 보수야당 유력 후보에만 집중하는 걸로 합시다.”

“전북은 어떻게.....?”

“새만금개발 문제 말이죠?”

“예.”

“솔직히 전북 지역구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국민의 정부 때부터 별 도움이 되질 못했다.

숟가락 얹어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바빴다.


“새롭게 여당이 된 참여당은 입후보자가 많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 쪽에서 지원하고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치와 행정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당 계열 정권은 국가 운영에 있어 군대식 지휘, 즉, 권위주의가  통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민주당 계열 정권은 지도자가 올바른 목표와 의지만 지니면 관료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관료란 집단은 집권자가 공포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따라 오지도 않고, 정의의 깃발을 나부낀다고 따라오지 않는다.

정권의 압력을 피해갈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목숨은 짧고 공무원 목숨은 길다는 믿음도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 믿음이 틀린 적이 없기도 하고.

그 같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어떤 정권도 국가 운영에 성공하지 못했다.

국가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을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위대한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색깔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양대 정당이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을 수는 있지만, 정권을 성공시킬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정치가로서 이념과 신념도 뚜렷하고, 뛰어난 행정 원칙과 능숙한 스킬로 관료를 장악하고, 관료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를 운영할 수 있고, 정권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유신정권은 산업화를 성공시켰지만, 독재로 인해 비명에 갔다.

문민정부는 문민화에 성공했지만, 국가를 재정 위기에 빠트렸다.

국민정부는 경제위기를 해결하고 대북화해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비리 사건으로 오명을 남겼다.

참여정부는 탈권위주의 정치를 처음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어떤 인물이 필요할까.

부강한 나라를 자신이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리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일념의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류지호는 누가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일 테니까.

세계를 움직이는 이들을 접해보니 한 국가의 리더는 대단히 신중하며 용의주도한 인물이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보는 류지호다.

이념이나 좋은 취지 혹은 힘과 권위만으로는 관료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민주화된 시대에는 관료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할 수 있는 리더가 더욱 절실해 지게 마련이다.

탐욕스러운 리더는 곳간을 축낸다.

청빈하고 성품이 선량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무능한 리더보다는 차라리 탐욕스러운 리더가 그나마 낫다.

탐욕스러운 리더는 발전을 정체시키는 것에 그치지만, 무능한 리더는 시대를 역행하거나 퇴보를 시켜버리기에.

이번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이 끝났다.

행정 관료들의 저항과 반격이 시작됐다.

권력기관들의 무수한 태클에 직면했다.

언론은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정평가와 비판에 온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사법기관의 항명은 한 편의 코미디다.

실상 한국의 대통령으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간은 3년도 안 된다.

남은 시간 동안은 야당의 정치적 공세, 레임덕 등으로 제대로 된 국정수행도 못하고 버티다가 대통령에서 물러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사실상 제왕 행세를 할 수 있는 기간은 대선후보 시절과 당선 후 인수인계 기간 그리고 재임 2년 남짓이다.

그 외 기간 국가는 누가 운영할까.

관료가 한다.

그로 인해서 재벌들에게 대통령의 중요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집권 1~2년 차에 후딱 해치워야 한다.

류지호는 미국의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한국처럼 권력분산과 견제 시스템이 엉성하게 갖춰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고위급 관료도 필요 없다고.

차관이나 국장급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포진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공은 의전만 받다가 임기가 끝나고 혹은 마치지 못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반면에 늘공은 정년 때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뭣도 모르는 어공을 늘공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다.

대부분의 어공들은 임기 내내 의전만 돌다가 떠난다.

늘공들이 그런 식으로 유도하기도 하고.


“선거 때마다 귀찮아서 원....”


회의가 종료되자 황재정이 투덜거렸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 임원의 상당수가 SKY 출신이다.

어떤 대기업도 정치권의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다리 걸러 지연, 학연, 혈연에 걸릴 수밖에 없으니까.

황재정 역시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나름 인천 명문고 출신에, 서울대·스탠퍼드로 연결된 상당한 사회적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정치권 인사가 꽤 많았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이런저런 루트로 선거자금 지원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정치자금법을 좀 바꾸던가.”


고현준 커뮤니케이션팀장이 말했다.


“몰랐어?”

“.....예?”

“곧 정치자금법 개정이 이루어질 것 같던데?”


1965년 제정된 정치자금법은 현재까지 십 여 차례 개정되었다.

하지만 16대 대선 당시 자유국민당의 800여 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인한 일명 ‘차떼기 사건’과 현 대통령 캠프에서도 상대적으로 액수만 적을 뿐 수백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확인되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정치자금법 개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뭐 정치자금법이 단기간에 제대로 뿌리내린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없긴 하지만.”

“커뮤니케이션팀이 따로 선거에서 할 일은 없으시겠네요? 빅보스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전북은 새만금 이슈를 좀 더 띄워야 할 것 같고. 충청과 경남에서 전경련이 제안한 기업도시유치를 후보들이 어떻게 써먹을지 따져봐야 할 것 같아.”

“수도권에서는 기업도시 이슈를 써먹지 못하겠네요.”

“행정수도이전이다 뭐다 땅값 떨어지네 마네 서울에서 난리도 아니잖아.”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그나마 새만금과 기업도시 사업이 탄력을 받지 않을까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자치강화가 중요 국정과제긴 해. 그나저나... 황 팀장?”

“예?”

“혹시 의장님으로부터 뭐 들은 거 없어?”

“영화 찍을 때는 한 눈 안 파시는 거 아시잖아요. 왜요?”

“내가 의장님 관련 부정적인 뉴스를 몇 차례 못 막았잖아.”

“신경 안 쓰실 걸요?”

“면목이 없다, 내가.....”

“우리나라 신문은 차라리 양반이에요. 미국과 유럽의 타블로이드가 보스에 관해 내보내는 뉴스 보시면 팀장님도 빅보스처럼 금방 해탈 하실 겁니다.”

“그래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시는 것은 좋은데, 사후의 일처리가 매끄러운 걸 의장님은 더 좋아하실 겁니다. 목장 건과 자가용비행기 건은 재벌 할애비라도 좋은 말 안 나오는 사안이잖아요.”


의장 비서실은 그룹 홍보실과 함께 새만금개발 관련 여론을 가온그룹에 유리하도록 조성하기 위해 주요 언론사에 광고를 많이 줬다.

더해 류지호와 관련된 비판 기사들도 함께 누그러뜨렸다.

미국의 언론은 광고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천만에 말씀이다.

이미 8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시장논리에 따라 편집국과 경영, 광고, 판매국 등 경영 및 영업부서와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토털 뉴스페이퍼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신문사의 경영을 위해 편집국과 비편집국이 서로 협조해 전략을 수립하는 개념인데, 사실은 언론사의 생존을 위해 광고를 우선으로 두는 구조다.

즉 언론사의 광고영업은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기업의 리스크와 기업의 영업 기밀이나 부정적 정보 등을 이용하는 일종의 ‘삥뜯기’가 되어 버렸다.

기업입장에서 언론광고는 마케팅 일환이 아니라 관리다.

기업이나 제품 홍보보다는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오죽하면 미국 내에서 저널리즘이 정보산업이 아니라 광고산업이란 조롱을 들을까.

한국의 언론 역시 급격하게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공익이나 가치 운운하기에 앞 서 돈벌이에 내몰린다.

특히 한국의 언론사는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정부로부터 광고도 많이 받는다.

권력의 감시와 견제라는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언론이 대놓고 정책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짓을 서슴없이 한다.


- 20~30대를 위한 특별한 홍보 전략이 있는지 그리고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 20~30대의 정치적 무관심·정치적 냉소주의.. 현실이죠. 투표를 하겠다는 사람이나 20대, 30대가 많이 늘어난 것은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 굉장히 바람직한 거죠. 미래는 20~30대들의 무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꼭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다시 말하면 20~30대는 지금 뭔가 결정하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잖아요. 무대에 올라갈 사람이란 말이에요. 이해관계로 봐도 투표에 참여하는 게 자기의 이익이지요. 자기들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는 건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

모 대기업 계열 일간지 기자와 VJ의 취재 중,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한 발언이다.

말은 정치의 시작이고 끝이다.

수준 낮은 말만 막말이 아니다.

대중적 정서에 반하는 언행도 막말이다.

그런 막말을 교묘하게 선거에 이용하는 언론은... 아무도 통제하지 못한다.

류지호는 한국 선거에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어쩔 수 없이 언론과 한통속이 되어야 하기에.

헌데 세상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만 내버려 두지도 않고.

특히나 금력을 가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 ✻ ✻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는 독립영화 성격의 저예산 영화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레이블이 있다.

바로 스페셜티 디비전(Specialty Division 혹은 Specialty film division)이다.

ParaMax Films가 그런 포지션이었다.

현재는 준메이저 스튜디오로 부상했지만.

LOG Company에는 서치라이트, 유니벌스는 USA필름스가 대표적인 스페셜티 디비전이다.

한국에서 스페셜티 디비전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WaW 엔터테인먼트다.

저예산 및 예술영화 전문 제작사 라이스케잌 필름이 그 주인공이다.

이 브랜드가 만들어지기 전에 독립영화계에서 극렬히 반대했다.

상업영화에 이어 독립영화계까지 WaW가 다 먹어버릴 속셈이냐면서.

박건호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우리는 정부나 영진위가 지원하는 작품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겁니다. 기존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소외된 영화를 발굴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명확한 역할의 구분이 큰 몫을 했다.

제작사는 제작에 집중하고, 창작자는 창작에 집중하고, 투자사는 투자에 집중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장르와 수준 높은 영화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고,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2003년은 이상적인 한국영화계 모델을 제시한 대표적인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모든 영화가 다 흥행한 건 아니었으나 수익이 나는 산업구조로 자리 잡기 시작한 해다.

절대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스크린쿼터 사수의 기준으로 내세웠던 한국영화 점유율 40%도 가볍게 넘어섰다.

2001년에 50%를, 내년에는 자그마치 59%를 기록하며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각 영역에서 자신의 역량에 집중하고, 기업도 수익을 내기 위해 투자에 적극적이고, 공적자금도 간접 투자를 통해 한국영화의 안정적 제작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상황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가운데 2000년도부터 영화진흥위원회는 투자조합 출자사업을 시작했다.

몇 년이 흘러 정부의 공적자금이 영화모태펀드란 이름으로 100억 원 이상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공적자금 지원 기준이 오락가락한데다가 나중에는 대기업에서 독식하는 불합리한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공적자금을 타내기 위해 온갖 편법이 난무하게 된다.

그 모든 걸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류지호다.

따라서 WaW 엔터테인먼트만이라도 꼭 투자를 받아야 했을 영화와 프로젝트에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그 일환 중에 하나가 저예산 및 예술영화 전문 투자배급제작사 라이스케익 필름 설립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충무로에서 돌고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겠다는 듯 시나리오만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부서를 확대개편하기도 했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시나리오 검토 직원만 스무 명이 일하고 있다.

업무도 세분화되어 있다.

시놉시스만 읽은 직원, 초반 10페이지만 읽는 직원, 20페이지까지 읽는 직원, 클라이맥스만 읽는 직원, 초반 20페이지와 엔딩 10페이지만 읽는 직원,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직원 등.

직원들은 각자 읽은 부분에서 색깔로 분류된 최악과 최고를 표시해서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검토를 거친 시나리오에는 세 가지 색깔의 스티커가 촘촘하게 붙어있다.

스티커의 숫자가 적은 시나리오는 기획실로 올라갈 기회조차 잡지 못한다.

기획실에서는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는 페이지만 일단 확인하고, 감이 오는 시나리오 위주로 꼼꼼히 읽어본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시나리오 검토 담당이 시놉시스와 첫 10페이지만 읽고 폐기 혹은 유보 상부 보고 등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는 세분화·전문화되어 시나리오가 검토된다.

자사에서 거부한 시나리오가 경쟁 스튜디오에서 흥행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면서 시나리오만 검토하는 직원 수를 대폭 늘렸다.

통상 메이저 스튜디오에는 10~20명이 매일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나리오만 읽는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 비해 WaW 엔터테인먼트에 접수되는 시나리오는 절반 수준도 안 된다.

그럼에도 시나리오 검토만 전담하는 직원이 10명이다.

제작사인 WaW 픽처스에도 기획실 직원들이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저예산영화 전문 제작사 라이스케잌 필름에서도 전담 직원이 따로 있다.

WaW 소속 프로듀서들도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받아 읽는다.

충무로에서 돌고 있는 시나리오 거의 전부가 WaW를 거친다고 본다면, 촘촘한 거름망을 통과해 영화가 걸러진다고 볼 수 있다.

라이스케잌 필름 기획실.

각자의 책상마다 뽑아 놓은 시나리오가 두 뺌 정도 쌓여 있다.

다섯 명의 직원 두 눈에 잔뜩 핏발이 서 있다.


후릅.


김은아 실장은 옆에 놓여 있는 커피를 마치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잠이 깨지 않는지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두 눈을 마사지했다.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지 다시 시나리오에 집중했다.

김은아 실장은 저예산·예술영화 전문 브랜드 라이스케익 필름의 기획실 맏언니로 신인감독 발굴·육성과 독립영화투자심사를 책임지고 있다.


펄럭펄럭.


기획실에서 A4 용지를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김은아가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후아, 다 읽었다....”


그녀의 말소리에 나머지 네 명의 직원들도 고개를 들었다.

김은아 실장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목과 어깨를 마사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드득.


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 굳은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홀가분했던 마음도 잠시다.

여전히 수북이 쌓여 있는 시나리오들을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기획실 짬밥이 많은 그녀조차 질리게 만드는 양의 시나리오가 물 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 달에 접수된 시나리오는 총 140여 편.

기획실 직원들이 이 모든 시나리오를 읽고 교차로 검토해야 한다.

충무로에서 돌고 있는 10억 미만 영화 대부분이 라이스케잌 필름에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3억 미만도 들어오긴 하는데, 초저예산 프로젝트는 주로 영화진흥위 지원 사업으로 몰린다.

일반적으로 메이저 영화사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쳐낸다.

시놉시스의 몇 문장을 읽어보면 대강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WaW 엔터테인먼트 계열은 다르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무조건 꼼꼼하게 읽어보고, 리뷰까지 써야 한다.

리뷰는 임직원이 모두 읽어본다.

잘 정리된 리뷰는 해당 프로젝트 관계자에게 전달된다.

시나리오를 손보는데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프로듀서 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프로덕션 헤드를 통해 영화화가 결정된다.

투자는 다른 문제라서 다시 WaW 엔터테인먼트 투자심사위원회로 올라가서 또 다시 검토된다.

라이스케잌 필름에서 제작이 결정된 영화는 5억 원 예산의 가출청소년 이야기를 적절한 코미디와 문제의식으로 접근한 <Come Back Home>과 10억 원 안팎으로 제작된 <가족>이다.

25억 예산을 넘지 않는 <꽃피는 봄이 오면>, <호로비츠를 위하여> 시나리오에도 투자가 결정되었다.

기획실 막내 사원이 물었다.


“출출하지 않으세요?”

“아네모네 가서 샌드위치 먹고 올까? 다들 어때?”

“좋죠.”


가온그룹의 영화사업 부문은 경영지원직과 관리직을 제외하고 영화실무직의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이다.

외근이 많은 탓이다.


삑.


김은아 실장이 아네모네 커피숍에서 가온카드로 결제했다.

라이스케잌 필름이 입주해 있는 G-Tower 지하 몰에는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다수가 입주해 있는데, 가온그룹 임직원들은 모든 매장에서 할인혜택을 받는다.

가온그룹 금융사업부문에서 다이너스클럽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라이선스를 이어받아 다이너스카드를 발급하고 있긴 했지만, 가온그룹 임직원들은 가온카드를 더 많이 쓰고 있다.

직원용 할인카드(신용/체크)는 그룹의 주거래은행 KB시민은행에서만 가능했지만, 현재는 계열사인 가온카드 및 다이너스카드를 비롯해 여섯 개 카드사와 은행에서 발급을 받을 수가 있다.

임직원들은 그룹의 극장업, 유통업, 홈쇼핑, 호텔&리조트, 아네모네 프랜차이즈 등 계열사 전부분의 서비스에서 할인을 받는다.

일반적인 카드사 할인과 가온그룹 직원할인을 중복해서 적용받을 수 있다.

직원카드라서 연회비가 없다.

중복 적용되는 서비스가 많아서 일반카드의 혜택을 두 배로 받는 효과를 누린다.

카드 혜택은 그룹 내 높으신 분부터 말단직원까지 모두가 동일하게 누릴 수 있다.


“미정씨는 3년 간 휴직한다면서?”

“예. 이번에 박사과정 들어가게 되었어요.”

“박사과정 끝나고는? 다시 WaW로 복직할 거야?”

“박사 따고 그룹으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장학금 받기로 해서 무조건 돌아올 거예요.”

“잘됐다. 그거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하던데.”

“라이스케잌으로 복직할지 다솜방송으로 갈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어요.”

“미정씨 전공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었나?”

“예.”

“어차피 다 식구인데 뭘. 자주 놀러와.”


가온그룹은 임직원들의 자기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회사다.

어학교육 지원은 기본이고 글로벌 직무연수를 통한 글로벌 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이외에도 직무전문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위지원제도를 통해 MBA 및 국내외 박사과정 학위를 지원하고 있다.

일반 대기업이 우수함을 입증해야 하고 사원 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과 달리 가온그룹은 웬만하면 신청자 대부분에게 전일제 박사과정 진학을 시킨다.

암튼 가온그룹 임직원 전용 카드(신용/체크) 외에도 ‘가온 페이’라는 제도가 있다.

외근 영업사원들이 사용하는 카드다.

협력업체 직원과 식사를 할 때 상대방의 돈이 아니라 회사 영업비로 자기 밥값을 내도록 한 제도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더치페이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를 통해 접대비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쓰는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고 있다.

영업직 사원들도 썩 만족하는 분위기다.

가온그룹은 중소기업 시절부터 사내 복지에 진심이었다.

직원할인 혜택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해 자회사와 계열사 매출에 기여하는 효과도 보고 있다.

특히 영화·드라마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펙트럼DVD 사업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직원들이 구입하거나 선물하는 DVD 타이틀 매출이 꽤 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 사회는 카드대란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있다.

가온그룹 직원들은 카드 돌려막기나 신용불량자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벌써부터 그룹 계열 리조트에서 보낼지 해외로 떠날지 휴가계획을 세우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평화롭다.

마치 가온 임직원들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달까....


작가의말

너무 덥습니다. 건강 관리에 유념하시면서 활기찬 한 주 맞이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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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99 Under85
    작성일
    23.08.07 09:07
    No. 1

    작가님도 더위 조심하세요 ㅎ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40 링월드
    작성일
    23.08.07 10:03
    No. 2

    180석에 당해보니 그나물에 그밥 수준이 아니고 나라를 절단낼수도 있었습니다 이상한 이념으로 대가리에 똥만 찬 넘들 때문에 여기가 1세계에서 퇴출당하고 2세계로 분류될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죠

    찬성: 0 | 반대: 10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08.07 10:23
    No. 3

    크읔 나도 가온그룹 입사하고 싶어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85 샤이
    작성일
    23.08.07 13:43
    No. 4

    작가가 정치에 관한한 최대한 회색지대를 표방하는 거야 이해 가능합니다.
    눈떠보니 후진국이 되어 있는데도 댓글에 이상한 글 싸지르는 왜인룬이 지지자는 머리가 장식인가 싶네요.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8.07 15:38
    No. 5

    정권 잡은지 2년이 되가는데 무슨 사고만 터져도
    전정권 탓 하려면 뭐하러 집권 한지요?

    찬성: 6 | 반대: 1

  • 작성자
    Lv.99 의지
    작성일
    23.08.07 17:15
    No. 6

    진짜 이런 회사가 있다면 좋겠네요!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5 zyxw
    작성일
    23.08.07 23:28
    No. 7

    대가리에 똥만 찬 주제에 혓바닥으로도 똥맛을 보는 멍청한 이가 있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8.08 10:45
    No. 8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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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 민중의 적 : EMBARGO. (4) +2 23.09.04 2,200 84 25쪽
603 민중의 적 : EMBARGO. (3) +4 23.09.02 2,404 104 24쪽
602 민중의 적 : EMBARGO. (2) +2 23.09.02 2,292 73 24쪽
601 민중의 적 : EMBARGO. (1) +9 23.09.01 2,525 105 24쪽
600 총수란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남자? (2) +16 23.08.31 2,559 10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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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잡초가 아니라 꽃을 따가는 것이다. (1) +5 23.08.26 2,378 103 23쪽
594 신상필벌(信賞必罰). (4) +6 23.08.25 2,478 100 22쪽
593 신상필벌(信賞必罰). (3) +4 23.08.24 2,480 107 23쪽
592 신상필벌(信賞必罰). (2) +5 23.08.23 2,505 106 25쪽
591 신상필벌(信賞必罰). (1) +7 23.08.22 2,559 9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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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1) +5 23.08.19 2,564 88 23쪽
588 인수·합병이 여의치 않을 것 같은데. +8 23.08.18 2,584 97 23쪽
587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2) +4 23.08.17 2,558 11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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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PayMate Mafia. (3) +2 23.08.15 2,614 117 22쪽
584 PayMate Mafia. (2) +4 23.08.14 2,622 118 23쪽
583 PayMate Mafia. (1) +4 23.08.12 2,784 103 24쪽
582 두 번째 오스카! +8 23.08.11 2,686 11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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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Pix-Art. +7 23.08.09 2,571 103 23쪽
579 부자 되세요, 꼭이요~ +4 23.08.08 2,632 109 27쪽
»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8 23.08.07 2,641 107 22쪽
577 흘러가게 놔두라고 하십니다. +6 23.08.05 2,711 100 22쪽
576 REMO : ....or Maybe Dead! (11) +8 23.08.04 2,590 106 27쪽
575 REMO : ....or Maybe Dead! (10) +4 23.08.03 2,557 10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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