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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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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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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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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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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신상필벌(信賞必罰).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세무조사를 한다고 하여 그 기업의 회계 진실을 백퍼센트 인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비자금이 외국과의 거래를 통해 조성된 경우에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설사 조세피난처나 스위스 등과 조세정보교환 협정체결을 체결한다고 해도, 그들 국가가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하여 마지못해 협조하는 듯 겉으로 보여도, 실제로 정보교환을 통해서 비자금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도 페이퍼컴퍼니 만들어서 비자금이나 자금 관리해?”

“대형 M&A가 있었을 때 커미션이나 리베이트 주는 걸로 써먹고 곧바로 없애버려서 추적 못해. 이 부분은 그룹에서도 몇 명밖에 몰라.”

“이제 나도 추가되었네?”

“사실 말하지 않으려고 했어. 너는 해외출장도 많고, 한국 체류기간이 적어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른다고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정 뭐하며 재무이사나 내가 모든 책임을 지면 될 문제니까.”

“가당키냐 하냐?”

“내 생각이 아니라 다온로펌과 말을 맞춘 거야.”

“이번 호텔 인수건도 지금까지 말한 것들과 다 연관되어 있나 보다?”

“응. 캐나다 쪽 법률대리인과 연관된 회사 하나가 네 장모가 될 캐서린의 로펌이 관리하는 페이퍼 컴퍼니 중 하나야. 인수대금 일부가 이렇게 저렇게 돌아서 다시 가온 북미지사로 돌아올 거다.”

“미국은 한국보다 탈세나 불법자금 조성에 상당히 민감한데.....”

“캐서린 변호사님은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별로 금액이 큰 것도 아닌데 의심쩍은 현금거래가 있을 경우, 미국 과세당국에서 그 자료에 대해 소명하라는 통지를 하고 해명이 되지 않으면 해당 소득세 추징은 물론 검찰에 소환되어 처벌도 받는다.

물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이다.

캐서린 & 윌슨 로펌 정도 되면 합법과 불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잘도 빠져나간다.


“이번에 호텔 인수대금 일부로 만든 비자금은 어디 쓰이는 거냐?”

“워싱턴DC 로비에 쓰일 것 같아.”

“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든?”

“어른들이 쪽바리 몰아내야 한다고 무슨 재단 만드신다는 거 억지로 말렸다.”

“쪽바리를 몰아내?”

“한국의 명문대학 교수라는 작자들이 일본 우익재단 돈 받아서 시끄러웠잖아. 아라도 끼어들어서 성명서도 발표하고. 그걸 보시더니 이사장님이 네가 미국에서 사사키재단하고 로비로 맞서고 있다는 걸 어른들께 말씀하셨나봐. 그러자 아버지들끼리 돈을 보탠다고... 암튼 네 선에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간신히 진성시켰다.”

“너도 빠져.”

“....뭐?“

“쓸데없이 비자금 만들어서 미국에서 로비할 생각 말고 정상적으로 자금 조성해서 한국 내로 한정해서 관련 단체 후원을 하란 말이야.”

“.....”

“기업이 왜 정치문제에 발을 담그려고 해? 미디어와 엔터 그룹은 대중문화를 수출하는 것으로 소명을 다 하는 거야. 문화의 범위를 넘어 정치성을 띠면 콘텐츠 팔아먹을 수 있겠냐? 미국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경거망동 하지 마.”

“알겠어.”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

“네. 의장님.”

“내가 느슨했던 것 인정하는데. 까불지 마. 친구고 뭐고 용서 안 하니까.”


황재정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까분 적 없어. 맹세코.”


류지호가 이사장으로 있는 JHO Foundation은 법률적으로 미국의 민간재단이다.

재단을 통한 로비나 씽크탱크 지원은 철저히 미국법률에 따르고 있다.

다양한 자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한인 정치인도 지원하고, 미국 상하원 의원들로 구성된 극동지역 평화 프로세스 연구모임이 발족되어 정치인들도 후원하고 있다.

한국 정치인은 끼어들 수 없는, 순수 미국 정치인들의 연구모임이 대부분이다.

일 년에 두 번, 이들 연구모임은 한국 방문단을 구성해 다녀오기도 한다. 사사키재단은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A급 전범자’가 설립한 재단이란 사실로 인해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른바 보이지 않는 로비 즉 ‘스텔스 로비’ 성격으로 전환되고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미국 전직 관료나 정치인, 미국인 학자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일본 기업과 합작으로 우회적인 경로로 지원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보회사를 쓰기도 한다.

로비스트나 로비 회사를 쓰는 것이 아닌 만큼 미국 법무부의 외국로비공개법(FARA)을 피해갈 수 있다.

최근 공식 집계에서 국가별 로비자금에서 월등히 앞서있던 일본을 한국이 어느 정도 따라잡은 것처럼 나왔다.

웃기는 소리다.

비공식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내년에 터너씨와 학자, 정치인들 100명 정도 데리고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짜봐야겠어.’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에드윈 터너와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된 정치인 및 학자들을 대거 초청해 판문점 방문 행사와 한반도와 극동아시아 심포지엄 같은 행사를 묶어서 프로그램을 짜보면 그럴 듯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선경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회장이 구속된 거나, 엔론의 분식회계 같은 문제가 가온에서 벌어지는 건 용납 못해. 완전히 투명하고 합법적인 경영활동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하면 정도경영, 윤리경영이란 그룹의 이념을 지키려고 노력하자.”

“알겠어. 노력할 게.”


기업을 운영하는 CEO 입장에서 분식회계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분식회계를 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은 손실을 감추거나 실제보다 더 높게 이익을 계상하여 주가를 올리거나 성과를 꾸미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한 세금을 줄이거나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한다.

정리 해고를 위해 이익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줄이기 위해서도 분식회계(역분식회계) 한다.

허위 매출을 기재하거나 비용을 줄이거나 부채를 누락하는 등의 방법이 대표적인데,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분식회계 사례와 유형은 많다.

연구개발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회계부정이 이루어 질 수 있다.

R&D 비용은 그 성격에 따라 비용으로 계상할 수도 있고 자산 항목으로 계상할 수도 있는데, 연구개발비를 과대 계상했다는 것은 비용으로 인식해야 할 것을 자산으로 인식한 부분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다.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한 대유그룹 사례처럼 부채를 줄이거나 누락하고, 부실 자산 관련 비용을 줄이고, 가공의 매출을 계상하고, 투자유가증권 이익을 과대 계상 하는 등 여러 항목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업들은 일회성으로 한 번 분식을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분식회계를 하여 수치를 조작한다.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대부분 상장 폐지나 부도다.

외부감사라는 제어 장치가 있긴 하지만, 회사가 마음먹고 분식을 하면 회계법인이 감사를 통해 파악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내부자 고발이나 감사 기관이 인지를 하고 공을 들여 조사하지 않는 이상, 분식회계는 사실 적발되기가 쉽지 않다.


“네가 가온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아. 네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온그룹의 슬로건이 뭐냐?”

“쓰리 티(3T)?"

"그래.“

”Trust(신뢰). Together(동반성장). Tomorrow(미래지향).“

“위법이 아니면 비윤리적이 아니다. 그런 단순하고 안이한 인식은 윤리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경영 추세를 좇아가지 못하고 자칫 도태될 위험성이 있어. 경영학 면에서 이론적으로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만.”

“.....”

“세계적으로 수십 년 동안 장수하면서 윤리경영으로 명성이 높은 기업치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수준에 머무는 기업은 없더라.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잖아.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윤리경영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외풍 앞에서 당당하고 가온이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황재정이 마음먹고 반박하려면 못 할 것도 없다.

할 필요가 없다.

류지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고.

서평특수 사안은 명백히 자신들의 잘못이다.

하이에나에게 빌미를 제공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안일한 생각으로 사태를 키운 꼴이다.


“잘못했어.”

“겨우 300억 매출에 연연하다가 서평특수로 쫒아낸 사람들이 어떤 자들인지 놓친 거야. 사람은 잘 안 바뀌더라. 죽다 살아나지 않으면.”


죽다 살아나도 안 바뀌는 인간도 수두룩하지만.


후우.


황재정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면목도 없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가 몽상가에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아니, 버들양행 같은 회사는 수십 년 동안 존경을 받고 있는걸 뭐. 박통한테 찍혔지만 훈장까지 받았잖아.”

“우리가 완벽하고 무결점의 기업을 만들 수는 없겠지. 노력은 해보자. 온갖 추잡스러운 짓으로 최정상에 올라간 들 명예가 있겠냐? 그렇게 살아서 나중에 나이 먹고 떳떳하게 지나 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을까?”

“....”

“앞으로 가온그룹 채용에서 블라인드 테스트 시행하고, 여주 가온타운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만들어서 무상급식, 무상교육 해야겠어. 남녀직원 공히 출산휴가도 좀 더 늘리고, 직급도 5단계로 완전 정착시키고. 저소득층 지원사업도 늘려보자.”

“비용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세금으로 뜯기느니, 사내 복지비용으로 처리해 버리지 뭐.”


윤리경영.

쉽게 말하자면 정도를 걷는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요령을 피우지 않는 경영.

멀리보고 큰 이익을 꾀하는 경영.

다시 말해서 경영활동에 있어서 도덕적, 윤리적 판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영정신이다.

류지호는 윤리경영을 임직원의 부정부패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나 경영혁신의 도구 정도로만 보지 않았다.

궁극적인 목표인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기업이 투명한 경영활동과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고객, 종업원, 협력회사, 주주, 정부・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 모두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업 경영을 하자는 것이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이가 없게 하라.’


경주 최부잣집의 가훈 중 하나로 알려졌다.

우리 속담에 돈만 많으면 3대에 개털 되고, 덕까지 많으면 누대에 정승이라고 했다.

류지호는 개처럼 벌고 싶진 않았다.

정승처럼 쓸 생각도 없다.

스마트하게 벌어서 스마트하게 쓰고 싶을 뿐이다.


❉ ❉ ❉


- 황 실장을 무주로 말입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래리 킴 회장의 난감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 좋고, 공기 좋은 덕유산으로 내려가 반성하라고 하세요.“


류지호는 서평특수 건으로 황재정을 좌천시킬 것을 요구했다.


- CEO이나 COO아니고, 일개 부서의 팀장입니까?

“좌천 보내는데 그럴 듯한 감투를 씌워줄 순 없잖아요. 팀장급으로 발령 내는 것도 편의를 봐준 거 아니에요?”

- 무주리조트 마케팅팀은 다섯 명입니다.

“잘 됐네요. 그간 다섯 명이 업무를 꾸려가기가 꽤 힘들었을 텐데, 황 팀장이 내려가면 큰 보탬이 되겠네요. 아주 빡세게 굴리라고 해야겠어요.”

- ....음.

“마음 같아서는 평사원으로 보낼까도 했는데.... 무주리조트 사장이 하도 반대해서 팀장 정도로 타협한 겁니다. 아저씨도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 언제 복귀 시킬 예정이십니까?

“몰라요.”

- .....예?

“나도 모른다고요. 내가 바빠서 잊고 지낼지도 모르겠고.”

-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건 아닙니까?

“멋대로 일을 벌였어요. 출근정지 하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 그렇게 따지면 저도 책임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저씨도 계열사 부장급으로 발령 낼까요?”


유구무언이다.

이번 인사 조치는 그룹 내 기강 다지기와 해사행위자에 대한 엄중 경고가 담겨 있다.

황재정은 대표적인 류지호의 측근이다.

그런 이를 사소한(?) 실수를 문제 삼아 무주 산골로 내려 보내려 한다.

부서도 다섯 명이 근무하는 작은 팀이다.

일반 직원들은 황재정이 왜 시골로 내려갔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알지 못하겠지만, 임원급은 좌천 인사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오너의 최측근도 잘못을 저지르면 예외 없이 책임을 묻는다.

류지호가 그룹에 보내는 메시지다.

가온그룹이 연봉이나 복지 부분에서 막 퍼주는 것 같지만, 신상필벌(信賞必罰) 역시 확실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그룹 전체에 일깨워주는 조치이기도 했다.


- 임원들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겠습니다.

“50% 감봉 3개월. 일괄처분 내리세요.”

- 예. 의장님.

"세무조사 하겠다면 그러라고 하세요."

- ......!

"그 동안 그룹이 어려움 없이 성장만 했어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임직원들 결속력을 도모해 보고, 느슨했던 조직의 기강도 다잡고... 이 참에 가온을 만만하게 보는 곳들에 메시지도 전달했으면 좋겠네요."

-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해요.”

-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가온그룹 역시 임직원이 업무 명령이나 복무규율을 위반하여 기업 내의 질서를 흩뜨렸을 경우 ‘징계처분‘이라는 불이익 조치를 가했다.

경고, 견책, 감봉, 보직 변경(좌천), 출근정지, 권고해고, 징계해고 등.

50% 감봉조치와 계열사 보직 이동(인사 불이익)은 중징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감봉 조치된 임원들은 연말 보너스로 어느 정도 감봉에 대한 불이익을 복구할 수 있을 터.

가온그룹은 매년 성장하고 있고, 임직원에게 회사 이익을 후하게 나눠주고 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연말 보너스까지 임원들이 반납하는 것이다.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과 본보기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가온그룹 임직원들을 다잡을 수 있을 테니까.

류지호는 오너의 권위를 징계 같은 방식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과한 징계를 내린 면도 있다.

가온그룹은 창사 이래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임원들이 소위 ‘어깨뽕’이 차올라 있다.

연이은 경영실적과 대기업 고위직이란 신분으로 인해 자기애가 점점 강해지고, 비민주적인 형태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고, 고객으로부터 멀어져 세상 물정과도 동떨어지기 시작했다.

더 위험한 것은 ‘모두가 가온그룹을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전경련을 해체하고, 재계의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대기업들이 무너졌다.

그리하여 기존의 5대 기업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 사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오른 대기업은 가온그룹이 유일했다.

재계 지형도가 바뀌며 100대 기업에 편입된 기업과 기존 재벌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가온그룹은 오너인 류지호의 뜻에 따라서 전경련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대한상의, 경영자총연합회, 무역협회 등에만 가입했다.

전경련이 5대 재벌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단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굳이 가온그룹이 5대 재벌의 들러리를 설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는 류지호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 분야에서 류지호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체감하고 있는 국내 재계인사도 거의 없다.

저 대단한 오성, 경일그룹 회장도 한국 내에서나 황제고 왕으로 군림하지 미국에서는 류지호에게 한 수 접어주어야 함에도.

자신이 몸담지 않거나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는 잘 모른다.

한국에서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탈을 제대로 경험해 본 사람도 극소수인데다가 미국 미디어 산업의 주류에서 일해 본 사람은 아예 없다.

그러니 류지호가 얼마나 큰 무대에서 대단한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는 공화국이라 불리는 두 개의 조직이 있다.

바로 오성과 검찰이다.

그 둘은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다.

정도는 약하지만 나머지 4대 그룹도 만만치 않다.

가온그룹의 임원들은 자신들도 곧 그 반열에 들어간다고 굳게 믿고 있다.

류지호는 나래안전의 정보조직을 통해 이번 서평특수 건이 검찰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알게 모르게 여러 카르텔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기존의 기득권 입장에서 가온그룹이란 싹을 자를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났다.

대신 흔들어볼 순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척을 질 수도 없다.

류지호가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목줄(주식)을 쥐고 있어서다.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하는 순간 골치 아파진다.

작게는 이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고.

외국인 주주들과 손이라도 잡게 되면 자손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류지호 본인이 경영에 나설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주주들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창업자 자손보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류지호에게 기업을 맡기면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도 있다고 여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웨딩비디오 사업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을 키워낸 것으로 재벌 후계자들과 비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경총 회장을 밀어야 하려나....?’


올해 전국경영자총연합 회장으로 추대된 이준혁 (주)동양화학 회장은 류지호의 부친과도 인연이 조금 있다.

경총회장은 인천에서 농구로 유명한 개성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했는데, 다문화가정 자녀 장학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다울재단 역시 다문화가정, 탈북자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었기에 종종 자선행사에 함께 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이준혁 회장은 최장수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80년대 빙상경기는 인기도 없었고 선수층도 얇아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쇼트트랙이 한국 선수 체형에 맞는 종목이라는 일본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쇼트트랙 꿈나무를 기르기 시작해서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까지 아낌없는 지원으로 경기력 향상에 힘썼고, 마침내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노조를 대하는 태도나 일찍부터 한국 기업이 글로벌 M&A를 통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 등 평가 받아야 할 것도 많고 잘 한 것도 많다.

그렇다고 허물이 없을 순 없다.

경인지역 민방 폐국과 관련한 일련의 태도와 추후 밝혀질 조세회피 등으로 그간 사회공헌활동이나 동계스포츠에 기여한 것들로 얻게 된 평판을 모조리 까먹게 된다.


‘당장은 그 양반만한 인물도 없고.’


류지호는 경총을 중심으로 정경유착의 본산인 전경련과 대립각을 심화시키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

전경련을 악의 축으로 상정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재계도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나 경제대국 중에서 전경련 같은 조직이 재계를 대표하는 경우는 없다.

후진국조차 상공회의소가 그 국가의 대표적인 경제 단체 역할을 한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이 여전히 구시대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니까 정치인이나 대중도 대기업을 우습게보거나 저주하는 것이다.


‘에휴....!’


류지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것들을 대신 고민하라고 친구인 황재정을 키우고 있건만.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앉아있고, 자식이....!‘


류지호는 내심 친구 황재정이 올바른 경영관을 가진 기업가로 성장해 자신을 대신해 가온 그룹을 이끌어 주길 바랐다.

아무래도 30대 나이에 완성된 경영인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싶다.


‘반성하면서 고생 좀 해 봐라....’


❉ ❉ ❉


캐나다에서 볼 일을 본 류지호는 뉴욕에서 2시간 거리의 뉴헤이븐이란 도시로 날아왔다.

이 도시에는 예일 대학이 소재하고 있고, 레오나 파커가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류지호는 뉴헤이븐으로 날아와 연인 레오나와 소소한 일상을 즐겼다.

하루는 뉴헤이븐의 이스트 락 등산로를 올랐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3월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걸어 올라가고 있다.

차량 몰고 곧장 정상에 올라가도 된다.

레오나 파커는 운동부족 이유를 들어 힘들게 등산로를 걸었다.

두 사람은 데이트 코스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저 레오나 파커가 이끄는 곳으로 향할 뿐.

여느 대학생들이 하는 데이트처럼 소소했다.

공원을 산책하고, 미술관을 돌아보고, 맛집에서 식사하고, 예일대 잔디밭에서 함께 독서를 하고.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한 달에 한 번은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짧을 때도 있고,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모두 전용기가 생기고 난 후의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후아~”


이스트 락 정상에 오른 레오나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정상에서 뉴헤이븐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동부해안도 시야에 들어왔다.


‘기업형 도시라....’


한때 여주, 이천, 광주 세 도시 경계에 가온시티를 만들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사유지에 치안, 교육, 주택, 쾌적한 환경 등을 제공하는 미니 도시를 만들어 가온그룹 임직원이 모여 살도록 할 생각이었다.

끼리끼리 모여 산다는 비난과 막대한 재원을 감수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그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전경련의 제안으로 준비 중이다.

건설교통부에 정식으로 기업도시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란다.

이전 삶에서는 시범도시로 태안군, 무주군, 원주시, 충주시, 무안, 영암, 해남 등 6곳을 선정했다.

무안은 산업교역형으로, 원주와 충주는 지식기반형, 무주·태안·영암·해남은 관광·레저형으로 개발 목표를 설정하여 실행했지만, 무주와 무안은 무산되고 말았다.

무주군에는 가온그룹의 사업장인 덕유산무주리조트가 있다.

가온그룹이 의지만 있다면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

문제는 새만금간척지 프로젝트다.

가온그룹은 전경련이 추진하는 기업도시를 모두 합한 규모의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테마파크 경험이 없는 가온그룹이 과연 새만금에 미키마우스랜드 규모의 사업장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겠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온그룹과 JHO 컨소시엄은 올랜도의 미키마우스월드는 몰라도 유니벌스 스튜디오 수준의 테마파크는 충분히 감당 가능하고도 자신했다.

새만금간척지 테마파크 사업의 가온측 인사로 황재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무슨 생각해?”


레오나의 목소리에 류지호가 상념을 멈췄다.


“아니야, 아무 것도.”

“또 일 생각했구나?”

“나무가 많아서 그런가? 오밀조밀한 맛이 있어.”


레오나가 저 건물은 뭐고, 저 지역에는 뭐가 유명하고 한참을 설명했다.

정상을 빙 둘러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구난방이었다.

리포트를 쓰는 게 어렵다고 투덜거리기도 했고,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딱히 할 말이 없으면 침묵을 지키며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침묵의 고요함은 상대의 분위기로 인하여 위로를 받는 시간이다.

의무적인 시간이 아니다.

연인에게만 허락된 편안하고, 안정된 시간들.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사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취향이 다른 것까지도 너무 익숙했다.

다름 때문에 다툴 일이 별로 없다.

너무 익숙해서.


“한국에는 얼마나 있을 거야?”

“연말까지.”

“여름에 한국 가도 돼?”

“뭘 물어? 전용기 보내 줄게.”

“친구들은 남자친구가 차를 태우러 오는데 억만장자 남자친구는 프라이빗 제트기를 보내 태평양을 건너게 하네. 호호.”

“로스쿨은 1학년 때가 제일 중요하다며?”

“육법 수업을 들으니까.”


로스쿨 공부는 어렵고 혹독했다.

명문이든 덜 유명한 학교든 마찬가지다.

그 때문인지 로스쿨을 나온 사람들이 학교에서의 체험을 수기의 형식으로 담아낸 로스쿨 안내서들이 여러 편 나와 있다.


“안 되겠다. 그냥 내가 미국으로 올 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보상이 있어야겠지.”

“진짜?”

“방학 기간은 뉴욕에서 부모님들과 지내도록 해.”

“예스!”


두 사람은 남이 보기에도 무척 다정하다,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항상 원만하지는 않았다.

다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소소한 다툼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연인 사이에는 약간의 다툼은 행복한 감정을 더욱 북돋아주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하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포기해도 누가 무어라 하지 않는다.

류지호의 짝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반쪽, 누군가의 엄마.

그런 재미없는 삶에 한정되어 살길 원하지 않았다.


“졸업하기 전에 다시 방문해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해도 좋겠다.”

“이스트 락에서?”

“뉴헤이븐 그린에서 해도 좋고.”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이스트 락 일대를 돌아본 후에야 뉴헤이븐으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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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3.08.23 10:04
    No. 1

    예일은 최고 명문이라 법대에서 성적도 처음에는 따로 안 줍니다. 패스페일이에요 1학년 1학기는. 그 다음에는 4등급으로 나누지만 (실질적으로 ABCF에 해당). 보통 1학년 1학기 성적으로 여름방학 취업이 결정되고, 거기서 말아먹지 않는한 2학년 여름 및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만큼 예일법대 들어가면 사실상 성적 걱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레이군
    작성일
    23.08.23 11:55
    No. 2

    한국에서 계속 툭툭치는거 맞고만 있는게...차라리 한국비중을 줄이면..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8.23 18:32
    No. 3

    저 정도 크기면 한국에 더 기어오르지 못하게
    본때 한번 보여주는 것도 방법 일텐데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02 18:59
    No. 4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nu******..
    작성일
    24.02.25 23:42
    No. 5

    동생이나 아버지가 하는 일이면 막던가... 가족 때문에 공짜로 얻은 돈이라고 내키는대로 쓰는게 바로 도덕적 해이인데.. 자기가 벌어서 쓰던가... 갈수록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 내로남불이 심해지는 주인공이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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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1) +5 23.08.19 2,564 88 23쪽
588 인수·합병이 여의치 않을 것 같은데. +8 23.08.18 2,584 97 23쪽
587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2) +4 23.08.17 2,559 11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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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 인간들이 배가 불렀어, 아주! +3 23.08.10 2,590 100 22쪽
580 Pix-Art. +7 23.08.09 2,571 103 23쪽
579 부자 되세요, 꼭이요~ +4 23.08.08 2,632 109 27쪽
578 마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처럼.... +8 23.08.07 2,641 107 22쪽
577 흘러가게 놔두라고 하십니다. +6 23.08.05 2,712 100 22쪽
576 REMO : ....or Maybe Dead! (11) +8 23.08.04 2,590 106 27쪽
575 REMO : ....or Maybe Dead! (10) +4 23.08.03 2,557 10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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