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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91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02 07:09
조회
86
추천
1
글자
8쪽

제 4 부 개화(開花) (92)

DUMMY

-32-


흑호가 먼저 달려든 곳은,

한용덕 쪽이었다.


흑호의 왼손이 한 번 뻗어나가자,

비차에 연결되어있던 작은 유성추가

가죽 끈과 함께 채찍처럼

한용덕의 다리 쪽으로 날아갔다.


한용덕이

자신의 월도인 천참을 한 바퀴 돌려

추를 쳐내자,


어느 새 흑호의 오른손으로 옮겨간

비차의 시퍼런 칼날이

그의 눈을 노리고 있었다.




‘막을 수는 없다. 피해야 한다.’


재빨리 판단한 한용덕이

크게 뒤로 한 발 물러나며

간격을 벌렸다.


그러나 흑호는

그마저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한용덕의 목을

비차의 칼날로 노리며

기세 좋게 찔러 들어왔다.




‘역시

불필요한 베기 따위는 하지 않는군.


간결하고 신속해.’


한용덕이

이번엔 옆으로 비껴서며

칼날을 피하는 동시에,


천참을 아래로 휘둘러

흑호의 다리를 노렸다.


그러나 흑호는

땅을 박차고 몸을 공중으로 띄워

월도의 사나운 기세를

흘려버리면서,


그대로 오른발을 내질러

한용덕의 어깨를 걷어찼다.




큭,


짧은 신음과 함께

한용덕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흑호의 왼손이 한 번 더 움직이자

튀어나간 유성추가

한용덕의 코를 향해 날아갔다.


허리를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한용덕이 공격을 피하자,


흑호가 왼손을 후려치듯

갑자기 홱 돌렸다.


그러자

추와 비차를 연결한 가죽 끈이

한용덕의 목을 조르듯

칭칭 감기기 시작했다.




‘헉, 이런...끝이로군.’


뱀이 똬리를 틀듯

자신의 목에 순식간에 끈이 감기자,


한용덕은

순간적으로 죽음을 예감했다.


한용덕의 목을

세 바퀴 정도 돌아 묶은 후

자신의 왼손으로 다시 돌아온 추를

흑호가 힘주어 잡는 동시에,


비차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뒤로 당겨

그대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왼손엔 추, 오른손엔 칼이

한용덕의 목을 휘감은 끈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순식간에 적을 제압한 양상이 되었다.




크윽....


목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며

한용덕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언가를 시도하려 애써보았지만,

도저히 빈틈이 없었다.


흑호가 양손에 더욱 힘을 주어

그의 목을 거세게 졸랐다.


한용덕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안 돼...정신이 아득해진다.’


숨이 점점 막혀오며

빠르게 정신을 잃어가자,


한용덕이 최후의 힘을 내어

자신의 입술을

이빨로 강하게 깨물었다.


순간적으로 피가 터져 나오며

자해의 고통으로

겨우 정신을 유지한 한용덕이,


입안에 고인 피를

흑호의 눈을 향해

침을 뱉듯 뿜어냈다.




순간적인 기지로 인한 공격이었지만,

그 효과는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흑호의 두 눈에

한용덕의 피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윽,


흑호가 고개를 숙이며

눈을 닦아내려 왼손의 힘을 풀었다.


그러자

겨우 목의 압박이 풀린 한용덕이

천참의 봉 부분으로

흑호의 발등을 노리고

곧바로 찍어 내려왔다.




‘젠장, 다 잡았었는데...’


살짝 짜증을 내며 어쩔 수 없이,

흑호가 비차의 끈을 풀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거의 저승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한용덕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시금 천참을 비스듬히 들어

흑호를 향해 겨누었다.


흑호도

자신의 눈에 스며든 피를

마저 닦아내고

신중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틈을 보았다.




환한 달빛 아래

둘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가

주위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주변을 가득채운

무거운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새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푸드덕 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가

밤의 적막을 잠시 흩트려 놓았다.




한용덕이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

겨우 다시 흑호와 간격을 벌렸을 때,


구대성은

이랑과 삼랑의 동시공격을 받아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급소를 노린 간결한 찌르기와 베기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연속으로 들어오는 터라,


구대성은

피하기와 막기만으로도

많은 힘과 집중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그 사나운 연속공격 앞에서도

다만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적의 빈틈을 찾으려는

구대성의 눈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위기에 몰릴수록 본능적으로

사람의 집중력은

선명해지고 예민해지는 법이라,


쉴 틈 없이 치고 들어오는

두 살수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면서


구대성의 뇌는

집중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고 있었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듯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세세히 느껴질 정도였다.




구대성이

약 열 번 정도의 연속기를

피하거나 막아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은,


그들의 합격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랑의 일섬이 먼저 찔러오면

삼랑의 월참이 뒤따라 베어오는

공격방식이 하나,


아니면 그 반대로

삼랑의 월참이 먼저 베어오면

그 뒤를 따라 이랑의 일섬이 찔러오는

또 다른 공격방식이 하나 더 있었다.


둘의 공격에

일정한 순서가 확실히 있다는 것은,


구대성에게는

반격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랑과 삼랑의 연속기는,

일랑의 공격까지 합쳐져

삼인살법으로 가동해야

확실한 효과를 맺는 공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 흑호의 계획이

서산대사의 부재로 인해

처음부터 망가지면서,


이랑과 삼랑도

본래 자신들이 맡아야 할

보조업무가 아닌,


오롯이 전담해야할 임무가

갑자기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구대성의 집중력이

더더욱 높아지면서


이랑과 삼랑의 연속기는

점점 더 빗나가고 있었다.




‘흑호가

오랫동안 키운 놈들이라 그런가,

아주 정밀하고 신속하구나.


기술에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해.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 정직하군.


저렇게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며

순서조차 잘 바뀌지 않다니...

대단한 놈들이긴 하구나.’


그때,

구대성의 왼쪽 얼굴을

삼랑의 월참이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아주 가늘게 베인 뺨의 상처에

희미한 핏줄기 하나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 순간 구대성의 온 신경은,


얼굴의 상처가 아닌

자신의 명치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이랑의 일섬을 막아내는 것에

집중되어있었다.


구대성의 왼쪽 주먹이

칼을 잡은 이랑의 손목을

강하게 타격하자,


거의 명치에 다다랐던 일섬이

목표를 잃고 옆으로 튕겨나갔다.


이번에도

둘의 연속기가 아쉽게 실패하자,


이랑과 삼랑이 뒤로 한발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으며

구대성과 간격을 벌렸다.


구대성도 잠시 숨을 돌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애도인 벽오의 칼날을

적들을 향해 비껴 세우며

구대성이 생각했다.


‘이렇게 둘이서

호흡도 속도도 강도도 순서도

정확하게 합을 맞추기 위해


아마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피나는 수련을

수도 없이 반복했겠지.


그런데 어쩌랴.


너무 정직하면 오히려 눈에 띄는 법.


불필요한 변화를 극한까지 제거한

이 깔끔하고 매서운 공격이,


계속 일정하게 반복되니

눈에 익어버리는구나.


하하, 이래서 인생은 재밌어.


노력이 꼭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다 해서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니...’


열두 번째 합격을 받아넘기면서,

이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가자


구대성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맺혔다.


자신들의 합을 맞춘 공격이

이렇게까지 먹히지 않았던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던

이랑과 삼랑도

구대성의 입가에

갑자기 떠오른 미소를 보았다.


그 의도치 않았던 미소를 보고,

이랑은 분노했고 삼랑은 두려워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적인 둘의 엇갈림이

정밀했던 공격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고,


구대성은

드디어 드러난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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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5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3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9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8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1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1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9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2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6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8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70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6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70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9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1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9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2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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