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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1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30 21:28
조회
67
추천
1
글자
8쪽

제 4 부 개화(開花) (104)

DUMMY

-39-


“빌어먹을!!!

조금만 더 힘을 내!!!

이 바보 같은 놈아!!! 제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고갯길에서


속도가 점점 떨어지는 자신을

마구 채찍질하며

흑호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그의 두 다리는 점점 느려지다

고갯길 중턱에서

드디어 멈추고 말았다.




‘호흡이...

호흡이 회복되질 않는다.


몸이 너무 많이 부서졌어...’


평상시의 그답지 않게

숨을 헐떡이면서,


어떻게든 빨리

다시 달아나고자

몸속 가득히

공기를 불어넣으려 하였지만,


몸 안의 어딘가가 망가진 듯

호흡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긴...


형님들과 그렇게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마지막에

그 늙은이의 주먹까지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어딘가

몸을 숨길 곳을 찾는 것이

지금은 더 현명한 일이다.


하루 정도 꼼짝 않고 누워있어도

안전할만한 장소를 찾아보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흑호가

눈을 들어 주변을 유심히 돌아보며

은신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산세가 워낙 크고 험준하여

몸을 숨길 곳은 많아 보였으나,


문제는

지금 이 몸 상태로

과연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아까

대사에게 암수를 쓸 때도

자신의 몸만 괜찮았다면


충분히

그의 목숨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의 시야를 가리고

기침과 콧물로

호흡을 망가트리는 그 암수는,


흑호가

대사와의 대결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던 한 방이었다.


그 어떤 고수라도

그 가루를 들이마시면

한 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흑호의 비차나 독수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만한 틈은

충분히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까

흑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용덕, 구대성과

연이어 사투를 벌인 후,

그의 갈비뼈는 골절되어 있었고


부러진 뼈가

폐의 어딘가를 건드려

상하게 만든 것 같았다.


대사의 주먹에 명치를 맞았을 때도

호흡이 일순 끊어지면서 느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안쪽부터 많이 망가져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호흡을 제대로 써서

전심전력으로 공격을 날려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대였다.


아무리 독수라 해도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상대를 죽이지는 못하고,


비차는

급소에 확실히 찔러 넣지 못하면

온힘을 다해 목을 졸라

상대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


두 손과 두 발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상태에서

대사를 상대로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었고,


그는 결국

그 잠깐의 틈을 타

도주를 선택했다.


자신이 상대의 목숨을 끊기 위해

준비한 수를,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데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까의 내 행동을

지금 와서 후회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목숨을 보전하여

후일을 도모할 수만 있다면,


다음번엔 또 다른 방법으로

늙은이의 목숨을 노리면 된다.


같은 수에 두 번이나 당할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결코 쉽진 않겠지만,


재우만 무사히 구해내면,

다시 준비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절벽 근처에서

적당한 은신처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눈으로만 보아도

도달하기 쉽지 않을

거리와 높이였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흑호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자신이 찾아낸

절벽 근처의 은신처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산을 오르는 동안,


그의 뒤를

질풍 같은 속도로 뒤쫓던 대사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아래쪽으로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암수에 당해

자신이 놓쳐버린 그 잠깐의 시간을

넉넉하게 감안하더라도,


이미 흑호를 발견하고도 남았을

충분한 거리를

최대한의 속도로 뛰어왔다.


그런데 보이질 않았다.


제 아무리 흑호라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비로봉에 도달했을 리는 없고,


아까 잠깐의 대결에서

흑호가 자신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몸이 많이 상해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방향을 바꿨거나,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다시 흔적을 유심히 찾아보자.


그놈이 아무리 독하고

똑똑한 놈이라 하더라도,


이곳은

내 앞마당이나 마찬가지다.


산 곳곳에

어떤 짐승이

어떤 길로 돌아다니고,


어떤 꽃과 풀들이

언제 어디서 피는지부터,


어떤 나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난 다 알고 있다.


그놈이 숨었으면 찾아내면 되고,


그놈이 다른 쪽으로 달아났으면

쫓아가 끝내면 된다.


침착하자.’


그렇게 마음먹은 대사가

다시 천천히 흑호의 흔적을 살피며

산을 내려오다,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 흑호가

기력이 다해 주저앉은 자리에,

풀들이 엉덩이에 짓눌려

둥그렇게 누워있는 흔적이

대사의 두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찾았다.


흔적으로 보아

여기서 결국

다리가 안 움직였나 보군.


그렇다면....’


실마리를 잡은 대사가

주의 깊게 시선을 돌리며

흑호의 다른 흔적들을

신중하게 찾기 시작했다.


그때,


환한 달빛 아래

절벽을 천천히 기어오르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대사의 두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대사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짐작이

맞아 떨어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드디어 끝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대사의 마음에서

조바심을 내쫓고

냉정하고 침착한 마음을

되찾아주었기 때문이다.


대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도망 다니느라 애썼다.

이놈아.


이제 끝장을 보자.”




절벽 위의 조그만 공터를 향해

조심스럽게 산을 오르며

안간힘을 쓰는 흑호를 향해


대사가 다시 뛰었다.


한 번에 한손 한발씩

신중히 움직이는

흑호의 느린 움직임과는 달리,


대사는 실로 바람처럼 가볍게

그가 기어 올라가는

절벽 중턱의 공터를 향해

옆길을 타고 재빨리 이동했다.




은신처로 점찍은 곳에

거의 다 기어 올라온

흑호의 두 눈에,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대사가 보였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그는,


자신의 목숨이

이제 끝난 것을 느꼈다.


열심히 기어 올라오는 자신을,

싸늘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대사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흑호의 입에서

하늘을 탓하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젠장...이런 뭣 같은 상황이...


어쩐지 오늘 달이 너무 밝더라니...

내가 오늘 운이 없구나!”


더 이상 기어오르는 것을 멈추고

흑호가 욕설을 내뱉자,

대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령 달이 뜨지 않았더라도,


오늘밤이 가기 전에

내가 너를

반드시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하고 네 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다.


굳이 운을 탓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네놈이 내손에 죽는다는 결과는

결코 변하지 않았을 거다.”


“........”


“그건 그렇고...


계속 거기서

그렇게 멈춰 있을 테냐?


뭐, 그것도 상관없다.


어차피 언젠간 손아귀 힘이 빠져서

저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이니,


난 느긋하게 지켜보마.”




이제 흑호는 결정해야 했다.


대사가 서 있는 곳까지

기어 올라가서

맞아 죽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손을 놓아

떨어져 죽을 것인가.


흑호가 비장한 눈빛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남의 손에 목숨을 잃을 것인가,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을 것인가...


대두령께서 돌아가신 이후,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하고

거침없이 살아왔는데,


막상 이 순간이 닥치니

두렵고 아쉽기만 하구나.


할 일이 남았다 여겨서일까,


아니면

죽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문득 흑호가 고개를 들어,

대사에게 물었다.


“총사,

딱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어려운 말 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주시오.”


대사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놈...


그 정도 부탁 하나

못 들어주겠느냐.


뭐든지 물어봐라.”


작가의말

개화 103화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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