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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596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7.04 14:47
조회
61
추천
1
글자
10쪽

제 4 부 개화(開花) (114)

DUMMY

-48-


덕관이

다시 굴 안으로 사라지자,


안현수와 동원은

그야말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곽재우 일행의 뒤를 따라

걸음을 서두르려는

동원과는 다르게,


안현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곽재우의 뒤를 따르려던 동원이

꾸물거리는 안현수를 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두목! 두목! 뭐 하세요!


살 길이 생겼는데 얼른 떠야죠!

이러다 타 죽어요!”


동원의 다그침에도

안현수는

어떤 생각 하나에 깊이 빠져

도통 움직이지를 않았다.


보다 못한 동원이

그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그러자

안현수가 강하게 버티며

입을 열었다.


“막내야.


저기 땅에 떨어져있는

총통 보이지?


저거 빨리 가져와.”


도망쳐도 모자랄 판국에

난데없는 명령을 내리는

안현수를 보며

동원이 짜증을 냈다.


“아니, 두목...

지금 저런 걸 챙겨서 뭐해요.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걸...


얼른 가요. 좀...”


“명령이다. 당장 가져와.”


안현수가

정색을 하며 다시 말하자,


동원의 얼굴이 구겨지며

어쩔 수 없이

총통을 가지러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안현수가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검은 용만 죽이면 된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잠시 후에

그 곰 같은 놈이

안고 나오는 아이가

검은 용일 것이다.


그때 총통으로 확 갈겨버리면,


그 애든, 그 괴물이든 간에

한 방에 싹 쓸려나갈 것이다.


어르신이 얘기한 그 증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못 찾았다고 하면 된다.


금군들도 다 죽어나갔으니

핑계거리는 충분해.


중요한 건,

그 애를 죽이는 거니까.’


그렇게 맘먹은 안현수가

결심을 굳힐 때,

동원이 총통을 가져와 말했다.


“가져 왔어요. 두목.

이제 빨리 가요.”


“가긴 어딜 가. 날 따라와.”


“예?


아니 도대체 뭘 하시려고요.”


동원이 자꾸 명에 따르지 않자

안현수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막내야.


너 출세도 하고 싶고,

부자도 되고 싶지?”


“아니,

느닷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내 말대로만 하면,


우리 둘은 한양으로 돌아가서

탄탄대로가 열린다.”


“...네?”


“내 생각이 들어맞는다면,


이제 잠시 후에


그 괴물 같은 새끼가

아이를 안고

맨 먼저

굴 밖으로 튀어나올 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굴 안에 숨어있던 떨거지들이

우르르 튀어나오겠지.


아무리 그놈이라도,

정신이 없을 거야.


그때,


이걸로

그 애랑 그 놈을

같이 보내버린다.”


“......”


안현수의 대담한 계획에

동원이 할 말을 잃었다.


안현수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총통엔 이미

조란환이 장전되어 있다.


잘 겨누고 불만 붙이면

알아서 방포된다.”



“그래서 저더러 겨누라고요?

전 이걸 난생처음 보는데요?”


“내가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맞춰서 잘 잡고만 있어.


심지에 불은 내가 붙일 테니.


그럼 돼.”


“...진짜 그게 끝이에요?

그럼 되는 거예요?”


“응, 그게 끝이야. 쉽지?


그렇게 한 방 확 날려주고 나서,


그 애랑 그 새끼

고꾸라지는 거 보고


우린

아까 그놈들이 튄 곳으로

곧바로 도망가면 돼.”


“...알겠어요. 두목.”


“그래,


이제 우린

부귀영화를 누릴 일만 남았어.


네 덕이다.


나 혼자선 못했을 거야. 하하.”


자신을 향한

안현수의 과장된 격려에

동원의 얼굴에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둘은

총통의 사거리가 미치는 곳까지

재빨리 이동해 고정시키고

금강굴의 입구를 겨냥했다.


부싯돌은 필요가 없었다.


사방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굴 안으로 다시 돌아온

덕관의 모습은 처참했다.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한쪽 다리는

심하게 절뚝거렸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자

진영은 마구 울기 시작했고,


자신들을 지켜내기 위해

혼자서 엄청난 사투를 벌인

남편의 얼굴을 본 미순은


말없이 다가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 광경을 보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마구 차올랐는지,


진용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가와

덕관에게 말했다.


“아빠...고마워요.”


덕관은


자신의 허벅지를 껴안고

울고 있는 진영의 머리를

화상을 입은

커더란 손으로 쓰다듬으며,


진용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리 와. 아들.”


진용이

진영과 미순의 사이로 파고들며

덕관의 허리를 꽉 안았다.


덕관은 두 팔을 한껏 벌려

넓은 가슴으로

자신의 가족을 힘주어 안았다.




“김총관,

우리 이젠 어떻게 하면 되오?”


잠깐 동안의

감격적인 가족상봉이 끝나자,

늙은 처사 중에 한 명이 물었다.


곽재우의 기지로

다행히 굴 안의 불은

이미 꺼져있었고

다친 사람도 아무도 없었으나,


굴 밖에서 계속 흘러들어오는

화마의 내음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제 저를 따라

탈출하시면 됩니다.


다행히 안전한 길이 생겼습니다.”


“아...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야...


부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총관.”


그 모습을 본 진용이 물었다.


“아빠,

산불이 크게 난 것 같은데

안전한 길이 있어요?”


“응...그게...”


뭔가 말하려던 덕관이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그자가 얘기한

빚을 갚았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구나...


그럼 속삭이듯 말한

고맙다는 것은...’


그제야 덕관은

곽재우의 모든 것을 바꾼 것이

아이들의 마음임을 알았다.


덕관의 얼굴에

자상하고 푸근한 미소가 돌아오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빠가

너희들을 지킨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아빠를 지켰구나.


고맙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하,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줄 테니

지금은 얼른 서두르자.”


의아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뒤로 한 채

덕관이 사람들을 독려하며

서둘러 움직였다.


그때,

갑자기 덕관의 입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엇?”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내린 피를 보며

덕관이 깜짝 놀랐다.


아까부터

자꾸 어지러웠던 덕관은


그냥 자신이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 줄만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흑랑의 살수들이

그에게 조금씩 박아 넣은 독이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덕관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얼른 피를 닦았다.


다행히 그의 이상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정말 서둘러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덕관이

미순에게 다가가 말했다.


“임자는 진영이를 업으시오.

난 진용이를 안고 가겠소.


서두릅시다.”


“네. 가요. 여보.”


덕관의 가족이

먼저 굴 밖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덕관의 머릿속에

강한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나,


그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통을 참은 채

진용을 품에 안고

굴 밖으로 나왔다.




“나왔다!”


자신의 예상대로

덕관이 사내아이를 안고

가장 먼저 굴 밖으로 나오자

안현수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총통을 잡고 있던 동원이

급히 입을 열었다.


“두목! 불! 불 붙이세요!”


안현수가

손에 들고 있던

불붙은 나뭇가지를

총통의 심지에 가져다 대었다.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심지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덕관의 품에 안겨있던 진용과

안현수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기분 나쁜 예감이 든 진용이

덕관에게 소리쳤다.


“아빠! 저기!”


진용의 다급한 목소리에

덕관이 진용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앗!”


자신들을 향해 겨눠져있는

총통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본

덕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덕관은 다급히 몸을 돌려

굴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안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총통이 방포되고,


그 안에 장전되어 있던

400여발의 조란환이

덕관의 등을 향해

폭풍처럼 날아갔다.




퍼퍼퍽!


“악!!!!”


무언가가

짓뭉개지는 소리에 이어

덕관의 입에서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백 발의 탄환을 그대로

자신의 등으로 받아낸

덕관의 뼈와 살들이

처참히 뭉개졌다.


품에 진용을 안은 채,

덕관의 무릎이 땅으로 떨어졌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덕관의 몸은,

거의 반쪽이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몸이 방패가 되어준 덕에

진용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참극에

모두가 울며 달려 나와

덕관을 챙겼으나,


이미 덕관의 정신은 반쯤 날아가

삼도천을 향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한 진용의

흐릿한 시야에

정신없이 도망치는

두 사내의 뒷모습이 들어왔으나,


지금 소년에겐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용아...괜찮니?”


덕관이

자신의 앞에서 덜덜 떨며

울고 있는 진용을 향해

힘겹게 말했다.


진용이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덕관이 안간힘을 쓰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두 눈에

미순과 진영의

무사한 모습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의 안전을 확인한

덕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며

천천히 입이 열렸다.


“모두....다친데 없지?

다행이다. 정말...”


그 말을 끝으로

덕관의 거대한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아빠!”

“여보!”


아이들과 미순이

덕관을 부축하며

그의 정신을 깨우려 애썼다.


이젠 숨소리조차 희미해진 덕관이

힘겨운 표정으로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았다.


그의 흐릿해지는 두 눈에

다행히도,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담겼다.


그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울지 마...살았잖아, 모두...

그럼 됐어...”


그 말을 끝으로

덕관의 숨이 끊어졌다.


신기하게도,

그의 마지막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르릉...쾅!


하늘 저 멀리에서 천둥이 쳤다.


방금 전까지

밤하늘을 가득 메웠던 보름달이

어느새 사라지고


두꺼운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더니,


갑자기 우박처럼

거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굴 밖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듯,


천운처럼 거센 소나기가 내려

빠르게 산불을 잡아주었다.




마치 하늘이 슬퍼하는 것처럼,

거센 비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사나운 화마가

하늘의 힘에 의해 사라지자,


죽어버린 나무들이 남긴

눅눅한 회색빛 재들과


미처 도망가지 못한

산짐승들의 불탄 시체,


그리고

위대한 아버지의

서글픈 주검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앞에 놓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1 ys******..
    작성일
    23.08.25 17:59
    No. 1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치밀한 덕관이, 30명이 넘는 살수, 금군, 사냥개 무리들이 가족들과 양민을 모두 죽이려고 했느데...안현수를 그냥 놔두었다? 개연성이 좀 부족해보입니다.
    건필하십시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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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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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89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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