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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1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16 12:10
조회
68
추천
0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98)

DUMMY

-35-


구대성의 굵은 눈물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한용덕의 눈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마치 기적처럼,

한용덕의 두 눈에 힘이 돌아오며

구대성을 바라보았다.


다시 눈을 뜬 한용덕이

너무나 반가워

구대성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한동지! 정신이 좀 드시오?


이제 괜찮소.

내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한용덕이 아무 말도 없이

지그시 구대성의 얼굴을 응시했다.


구대성의 지금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으나

두 눈가엔 물기가 가득하고,


목소리엔 반가움이 넘쳐

활기가 가득했으나


두 손은

벗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용덕이

그런 혼란한 상태의 구대성을

안심시키고 싶었는지,

천천히 손을 뻗어

구대성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한용덕의 온기를 느끼자,

구대성의 기쁨이 배가되어

자신도 모르게 힘을 꽉 주어

한용덕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한용덕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구동지...미안하오...


내 손으로

저 녀석과의 악연을

끝내고 싶었는데...


힘이 모자랐구려...”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시오.


흑호 저 놈은 내가 끝내겠소.


그러니 한동지는 안심하시고,


부디

총사님이 돌아오실 때까지만

버텨보시오.


그럼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 거요.”


“하하...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군요.”




사실 한용덕의 몸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비차에 직격당한 명치는

큰 구멍이 뚫린 상태였고,


그 곳에서 계속 터져나오는

검은 피는

손으로 아무리 강하게 눌러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칼을 맞은 상처 주변으로

피부색이 검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독수에 당한 흔적이었다.


명치 주변은 아예 시커멓게 변해,

그의 급소 주변을

치명적인 독이 이미

완전히 잠식해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구대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는 계속

손바닥으로 상처를 압박하여,

벗의 피가 유실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었다.


그런 벗의 절박함을 보며,

한용덕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격려하듯,

구대성이 입을 열었다.


"괜찮소...괜찮아요...

다 좋아질거요...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한동지."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의 신경이 고통으로 요동을 치는

힘든 와중에도


구대성을 향해 옅은 웃음을 전한

한용덕의 몸을,


갑자기 찾아온

엄청난 기침이 파고들었다.


몸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거센 기침을

예닐곱 차례 내뱉은

한용덕의 몸에서

온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며


드디어 그의 입에서도

검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구대성이 크게 놀라

한용덕의 손을 꽉 잡으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한형! 정신을 놓지 마시오!

조금만 더 버텨 봐요!”


그러나

한용덕의 눈에서는

더 이상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구대성의 얼굴이

절망의 빛으로 물들어 갈 때,

한용덕이 최후의 힘을 내어

벗이자 동지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 놈...


우리가 한때 동생처럼 아꼈던,

저 놈과의 악연을...


결국

구동지에게 남기게 되는구려.


괴로운 싸움을 맡겨서 면목 없지만,


그래도...

나처럼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되오...


꼭 독하게,


나처럼

마지막 순간에 흔들리지 말고...


만약 여의치 않으면

얼른 몸을 피해 후일을 도모하시오.


저 놈뿐만 아니라

만만찮은 수하들도 둘이나 더 있으니,

꼭 그렇게 해야만 하오.”


“알겠소. 알겠소.


꼭 그리 할 테니,

제발 정신을 똑바로 잡으시오!”


구대성의 절박한 말을 자르듯,

한용덕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구동지...

삼십 년 가까이 정말 고마웠소.


나와 벗으로 지내주어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오.”


이별의 말임을 직감한 구대성이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며

크게 소리쳤다.


“한형! 왜 이러시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조금만, 더...”




그때,

다시 한 번

큰 기침이 시작되며

한용덕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검붉은 피가

구대성의 얼굴에 튀었다.


한용덕이 마지막 힘을 내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벗의 얼굴에 묻은

자신의 피를 닦아주면서,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동지이자 벗으로서, 부탁이오.


내가 떠나면,

우리 애들을...잘 보듬어 주시오.


총사님과 같이

우리 식구들을 잘 이끌어주시오.”


“한동지...한...동지...”


한용덕의 유언임을 짐작한

구대성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용덕이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넸다.


“...부디...

오랫동안...건강...하시오.


무거운 짐만...맡기고...

먼저...떠나서,


정말...미안하오...”


“...한형!!!”




그 말을 끝으로,

결국 한용덕의 숨결이 끊어졌다.


그의 두 눈은

그대로 뜨여 있었으나,


그의 코와 입에서는

더 이상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구대성의 뜨거운 눈물이

한용덕의 얼굴로 비 오듯 떨어졌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보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오랜 세월동안

그와 친구이자 동지로 지내며

켜켜이 쌓여왔던 수많은 추억들이

하나하나

구대성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어느 겨울날

눈 내리는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정겹게 주고받던 술잔들,


지리산의 산채에서

흥겹게 잔치를 벌였던

어느 봄날의 풍경,


남도의 바닷가를 말없이 거닐며

평온을 느꼈던 어느 여름의 오후,


낙엽이 날리는 주막의 평상에서

뜨거운 국밥을 먹으며

사람구경을 하던

한양의 어느 가을저녁...


힘들고 위험했던 일들도

물론 아주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

구대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와의 즐겁고 행복했던,

아름다운 기억들뿐이었다.




구대성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벗의 몸을 부둥켜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그의 목에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넓은 등이

슬픔으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크게 소리 내어

오열하지만 않았을 뿐,

그는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선가 소쩍새가 구슬피 울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두 사내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식어버린 벗의 손을

그는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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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1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9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6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70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9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9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2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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