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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59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23 01:47
조회
74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101)

DUMMY

-37-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서산대사는

호랑이 같은 안광을 발하며

흑호를 노려보았다.


그저 노려보기만 하는 것뿐인데도,

흑호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거짓말처럼,

발이 움직이질 않았다.


여기서 삐끗이라도 하면,

바로 잡아먹힐 것 같다는 두려움이

흑호의 온몸을 덮쳐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옆에 좌우로 서있던

이랑과 삼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최강자의 위용을

직접 맞닥뜨린 그들은,


어째서 그가 최고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까불지 마라. 죽는다.

어서 도망쳐라 라고...




잠시 동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셋을 노려보던 서산대사가


갑자기 몸을 휙 돌려

땅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는

구대성에게 다가갔다.


자신들 앞에서 무방비하게

등을 훤히 드러냈는데도,


흑호 일행은

감히 공격을 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흑호가

아주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둘에게 속삭였다.


"너희들은

지금 얼른 이곳을 떠서

금강굴로 가거라.


가서 책사를 구해."


흑호의 은밀한 명령에

이랑과 삼랑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흑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 셋의 몸이 온전하더라도


저 늙은이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는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하나

저리도 높아져있을 줄은....

정말 짐작도 못했다.


하물며...

앞선 둘을 상대하느라

나도, 너희들도

지금 몸이 많이 상했다.


판단을 그르친 내 실수다. "


"......"


이랑과 삼랑이

대답대신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흑호가 말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최소한의 목적을 달성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 셋이 같이 움직이면...

저자는 곧바로 따라붙을 것이다.


그러니 여긴 내가 남아있겠다."


이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만...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조장님."


흑호가 다시 말했다.


"나도 상황을 봐서

몸을 피할 것이다.


이제 시간이 생명이다.


만약 저 늙은이가

금강굴로 들이치게 되면

우리가 책사를 되찾을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마저 사라진다.


그러니 일단,


너희들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가

재우를 구해내라.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겠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가라.


이랑은 왼쪽,

삼랑은 오른쪽으로 뛰어라.


살아서 다시 만나자. 무운을 빈다."


"네. 조장님. 그럼..."


이랑의 짧은 대답과 함께,

흑호의 옆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서

이랑과 삼랑이 숲으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러나 대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구대성을 부축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흑호가 비차를 손에 감으며

용기를 냈다.


그러나,


달빛이

그의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손과 발이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산대사가 음울한 얼굴로

눈 하나와 팔 하나를 잃은

구대성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내가 너무 안이했어.


한두령의 죽음도 모자라

구두령까지

이 지경이 되어버리다니...


내가 큰 잘못을 하고 말았어.


정말 미안하네."


가쁜 숨을 내쉬며

구대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사님...


이미 막기엔 늦었고,

절대 되돌릴 수도 없는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은

저에게 신경 쓰실 때가 아닙니다.


얼른 저놈들을..."


"걱정 말게.

내가 다 마무리함세.


자네는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내 약재가 담겨있는

서랍부터 찾아서

지혈부터하게.


피를 더 이상 흘리면 위험해."


"네...총사님..."


바로 그때,

이랑과 삼랑이 좌우로 갈라져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인기척을 느낀 대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쥐새끼 두 마리가

먼저 움직이는군."


"아마 금강굴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가?

재우가 있는 곳을 알아낸 건가?"


"사연이 좀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더더욱 빨리 처리해야겠구먼.


자네는 얼른 지혈부터하게.

방안 자개장의 세 번째 서랍일세."


"...네..."




구대성이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음을

확인한 대사가


흑호를 향해 몸을 돌려

입을 열었다.


"참으로 오랜만 이다만...


너와 나의 이승에서의 인연도

오늘까지로구나.


이제 바로

임두령 곁으로 보내줄 테니,


저승에 가서

둘이 반갑게 회포나 풀어라."


평상시 대사답지 않은

냉혹한 선전포고였다.


이미 기가 죽은 흑호의 가슴이

마구 요동쳤으나,


그는 두려움을 꾹 누르고

용기를 내어 대꾸했다.


최소한의 목적이라도

오늘 밤에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했기 때문이다.


"그간 잘 지내셨소. 총사님...


안 믿으시겠지만,

정말로 뵙고 싶었다오.


계획이 어긋나

이렇게 재회하게 된 것이

원통하지만...


뭐 어쩌겠소.


이것도 나의 운이지."


흑호가 겁을 억누르며

짐짓 허세를 부려 대답하자,


대사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운?


하하...


설령 임두령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나와의 승부를

자신하지 못할 것인데,


임두령 뒤에 숨어서

한낱 암살이나 하던 네놈이

감히 내 앞에서 운을 논해?"


자신을 비웃는 대사의 도발에

흑호의 두 눈에서

서서히 노기가 올라왔다.


때론 분노가

용기를 주기도 하는 법.


흑호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때...

금강굴에서 당신을 죽였어야했소.


두령께서 말리지만 않으셨다면,


당신은 분명

그날

내 칼에 숨이 끊어졌을 것인데...


두령님의 아량으로

목숨을 건진 줄도 모르고

그따위 소리를 내뱉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흑호의 말에

대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찌 보면

그건 네놈 말이 맞겠구나.


그때는 나나 임두령이나 모두

긴 싸움에 지쳐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을 때이니...


그런데 이놈아,

넌 그 이유를 알기나 하느냐?


왜 그때 임두령이

너를 시켜

나를 죽이지 않았는지 말이다."


"........."


"하긴, 네놈이 알리가 없지.


그걸 알고 있었다면,

이런 미친 짓을

또 다시

벌리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미련하고 불쌍한 놈..."


"대두령의 유지를 이어

그분이 못 다한

대업을 이루려는 것이

왜 미친 짓이오?


당신도 한때,

그 뜻에 공감하고

그 길에 동참하지 않았소이까."


자신을 미친놈이라 칭하며

대사가 쏘아붙이자

흑호가 바로 반박했다.


그러자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대사가 말했다.


"내가 그와 갈라선 것은

바로 그 뜻이 달라져서다.


대의와 명분을 떠나,

임두령이 가려는 길이

더 이상

진정한 의협이 아니었으니까...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난 만약 임두령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그때와 똑같이 할 것이다."


대사의 말을 들은 흑호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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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4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2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1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8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4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89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6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69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8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8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1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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