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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597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06 04:57
조회
91
추천
1
글자
9쪽

제 4 부 개화(開花) (94)

DUMMY

-33-


한용덕의 오른발이

땅을 힘껏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진 월도 천참이

흑호의 허리를 향해

세차게 휘둘러졌다.


적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엄청난 기세의 공격이었다.




자신의 비차로는

한용덕의 천참을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흑호는,


뒤로 뛰어 간격을 벌리면서

손잡이에 매달린 추를 잡고

정면을 향해 칼을 날렸다.


마치 채찍처럼

특이한 궤적으로 날아오는

비차의 칼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살짝 몸을 틀어 피하며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 한용덕이,


옆으로 휘둘렀던 천참의 방향을 바꿔

그대로 앞을 향해

창을 찌르듯 내질렀다.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한용덕의 베기와 찌르기에,

흑호가 적잖이 당황하여

재빨리 옆으로 한발 뛰었으나,


급히 뛰느라

발놀림이 다소 어설펐던 탓에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본 한용덕이

다시 한 번 천참을 옆으로 휘둘러

흑호의 목을 노렸다.


이번만큼은 흑호도 피할 수가 없는,

확실한 간격과 호흡이었다.


한 호흡으로

무려 세 번의 연속 공격을 내지른

한용덕의 표정에 자신감이 피어났다.




그러나


천참이

흑호의 목을 파고들기 직전,


어찌된 일인지

월도의 칼날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깜짝 놀란 한용덕이

자신의 월도를 서둘러 살피니

어느 틈엔가 비차의 끈이

천참의 몸통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고,


흑호가 반대방향으로 힘을 주어

자신의 힘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회심의 연속기가 실패하자

한용덕의 두 눈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천참을 칭칭 휘감은

끈 끝부분에 매달린,

비차의 시퍼런 칼날이

마치 뱀의 혀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용덕의 월도를

비차의 끈으로 봉쇄한 흑호가

번개처럼 몸을 돌려 발차기를 날렸다.


흑호의 오른발이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오자,


한용덕이

급히 왼손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뻑,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용덕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겨우 막아내긴 했으나,

크게 한 바퀴 몸을 돌린 회전력이

그대로 실린,


발차기의 위력은

실로 만만치가 않았다.




발차기의 충격으로

한용덕의 움직임이 잠시 봉쇄되자,

흑호의 오른손이

아래에서 위로 날카롭게 솟구쳤다.


한용덕의 사각에서

그의 턱을 노리는 주먹질이었다.


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용덕의 몸이 허공으로 살짝 뜨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치명적인 급소인 턱에

매서운 일격을 당하고

등부터 땅에 떨어진 한용덕은,


엄청난 충격에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으나,

어찌어찌 버티어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무기를 손에서 놓치지 않은

그의 정신력에 감탄하며,


천참에 휘감긴 비차를 풀어

도로 회수한 흑호가 입을 열었다.


“대단하십니다. 어르신...


그 공격을 맞고도

무기를 놓치지 않으시다니...”




자신이 쓰러졌을 때,

바로 짓이기러 들어왔으면

이미 끝났을 싸움이었다.


결정타를 날려야 할 순간에

공격을 멈추고 여유롭게 말을 거는

흑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보는듯한

모욕감을 느낀 한용덕이

이빨을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분노의 불길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용덕이 말했다.


“네놈이...지금 나를 조롱하는 것이냐?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인단 말이지?”




정말로 감탄하여 건넨 말이거늘,

저렇게 받아들이다니...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흑호가

차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조롱이라니요.


어르신의 정신력에

진심으로 감탄한 것입니다.”


그러나

흑호의 진솔한 해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


적의 반발심만 더욱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용덕이 거세게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호흡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서 솟아오른

뜨거운 기운이

그를 비추는 달빛과 합쳐져,


시퍼런 투기(鬪氣)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한용덕이 강렬하게 내뿜는 살기를

피부로 느끼며,

흑호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내 월도의 이름이 왜 천참인지

제대로 알게 해주마.”


짧고 묵직하게

선전포고를 끝낸 한용덕이

천참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상단(上段)의 자세를 잡았다.


달빛을 받은 천참의 칼날에

검푸른 살기가 서서히 쌓여갔다.


저건,

일격필살의 공격자세가 아닌가...


긴장한 흑호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한용덕의 무기인 천참(天斬)은,

길이가 짧은 월도(月刀)였다.


월도는

언월도(偃月刀)라고도 불리는 칼로,

본시 언월(偃月)이라는 말은

‘초승달’이라는 뜻이다.


삼국지의 관운장이 쓰는 무기라 하여

관도(關刀)라고도 불렸는데,

흔히 기병이나 창잡이들이 쓰는

초승달 모양의 날이 달린 큰 칼을

월도라고 했다.


보통 일곱 자가 넘는 길이로

성인남자보다 훨씬 커더란 무기지만,

한용덕의 천참은

칼보다는 길고 창보다는 짧게

그 크기를 개량한 것이었다.


단창(短槍)의 봉에 월도의 칼날을 단

무기라고 보면 맞을 텐데,


이는

‘공방일체’를 무의 정수라 여기는

한용덕의 가치관과

상통하는 형태를 지닌 것이라 하겠다.


베기와 찌르기, 막기와 피하기라는

상반되는 동작들을

동시에 한 호흡으로 할 수 있으며,


어느 순간에 힘을 집중하여

막강한 위력의 결정타를 날리기에도

매우 용이한 무기였다.


지금 한용덕이 잡은 상단자세가

바로 그 '신속의 참격'을 내리치기 위한

준비자세로,


적의 뼈와 살은 물론이고

칼날도 방패도 다 쪼개고 부숴버린다는

필살기 ‘단파(斷破)’의 자세였다.




‘내가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다가 내리칠 것이고,


내가 물러나면

뛰어나와 내리칠 것이다.


공중으로 도약해서 공격하려해도

내 높이보다 훨씬 더

공격의 시작점이 높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것만이 아니라


월도의 장점을 살려

좌우로 벨 수도 있다.’


흑호의

이런 복잡한 고민과는 상관없이,


해일처럼 거대한 투기를

고요한 수면 아래에 가둬놓은 것 같은

한용덕의 상단 자세는,


마치 땅의 기운을

두 발만으로 누르고 서서

적을 노려보고 있는

부동명왕처럼 보였다.


‘칼을 머리 위로 쳐들어

가슴과 배를 훤히 드러냈지만,

전형적인 함정이다.


상대에게 일부러 허점을 보여주고

자신의 간격 안으로 끌어들여

치겠다는 심산이다.


그만큼 힘과 속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언뜻 보기엔

허술해 보이고 단순하지만,

실로 빈틈이 없는 자세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커더란 보름달의 기운을

초승달 모양의 작은 칼날에

모두 모으려는 듯이,


달빛을 받아서인지

평소보다 더욱 예리해 보이는

천참의 칼날이

정면의 적을 향해 겨눠진 채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용덕의 단호한 표정과 다르게,

흑호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공격해 들어가자니

완벽하게 피해내지 못하면

죽거나 병신이 될 것이고,


방어해 버텨보자니

저 위력을 감당할만한 무기나

막아낼 방패가

지금 나에겐 없다.


이것 참 난감하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먼저 공격을 유도한 후에

재빨리 뒤로 물러나

피해내는 것인데...’




흑호가 고민을 끝내지 못하고

간격 밖에서 여전히 망설이고만 있자,


한용덕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 들어오질 못하느냐?

막상 맞서보니 겁이 나느냐?


감히 이 몸을 봐주며 상대하던

아까의 건방진 기세는 다 어디로 가고?


조선 최강의 살수께서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로구나.


네놈은 호랑이가 아니다.


진정한 강자를 만나보지 못한

약삭빠른 여우일 뿐이다.”


한용덕의 비웃음 섞인 도발에도

흑호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려

승리를 거둘만한 기회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상단의 자세는

일격필살을 지향하는 공격법이지만,


그 한 번의 공격이 빗나가면

모두 다 잃는다.


두 번째 수에 대한 방어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니까...


딱 한 번,

첫 공격만 피해내면 내가 이긴다.


무방비나 마찬가지인

온몸의 급소들이

내 간격 안에 들어온다.’




흑호의 침묵이 길어지자,

한용덕이 상단자세를 유지한 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신의 도발에도 적이 움직이지 않자,

자신이 먼저 움직임으로서

상황에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의도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흑호가

아무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나,

아까와 같은 거리를 다시 유지했다.


너무 노골적인 흑호의 태도에

한용덕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고요한 수면과도 같았던 마음에

조그마한 파문이 일었다.


분노로 인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 것을 깨달은

한용덕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금세 평정심을 되찾는

적의 모습을 보며

흑호의 초조함이 더욱 배가되었다.


싸움에 임하는 자신의 첫 번째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고수를 앞에 두고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잃으면

그냥 끝이다.


얼른 고민을 끝내고

나의 답을 찾아내야한다.


뭔가 없을까.


첫 공격을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면

하다못해

위력이라도 반감시킬만한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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