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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11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6.03 20:57
조회
85
추천
1
글자
9쪽

제 4 부 개화(開花) (106)

DUMMY

-40-


안현수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자신의 수하들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하나에게

썰려나가는 것도 모자라,


금군을 이끌던 이두성마저

처참한 죽음을 맞는 것을 보고서는

더 이상 거기에 남아있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체면이고 임무고

동지의 목숨이고 간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서는 오직

본능의 목소리만을 따라야했다.


‘살고 싶으면 빨리 도망쳐라’,

머릿속에 울려 퍼진 그 소리는,


칼잡이로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

몇 번이나 그의 목숨을 구해준

가장 믿을만한 경고음이었다.




“두목!!! 두목!! 같이 가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숲속을 한참동안 내달리던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던 그는

호흡도 가다듬을 겸,

지친 다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불러 세운 사람은

사냥개 부대의 일원 중 하나였다.


갑사조에 속한 그 젊은이는

이름이 동원으로

노비 출신이라 성은 따로 없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동원이 안현수에게 말했다.


“이제 아무도 안 쫓아옵니다.

잠시만 쉬시지요.”


동원의 말에

안현수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실제로 숲속엔 고요만이 감돌뿐,

아무도 그들을 쫓아오지 않았다.


동원이 천천히 다가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나무 통을

안현수에게 내밀었다.


작은 대나무 통 안에는

물이 들어있었다.


“먼저 드세요, 두목.

목마르실 텐데...”


“어, 그래. 고맙다.”


안현수는 통을 받아들고

급히 물을 들이켰다.


갈증이 해갈되며

동시에 머리도 맑아졌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안현수가

물이 담긴 통을

동원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살아남은 애들은 너뿐이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신 동원이 대답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칼에

진태형님을 비롯한

궁수대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갑사조는

기철형님 죽을 때 이미 많이...


그나마

온전히 살아있던 놈은 저하고,


아까 명부전에서 떠나오기 전에

두목님이

무기를 지키라고 딸려 보낸

상우밖에 없을 거여요.”


“.........”




안현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명부전에서

금군의 패잔병들과 합류해

새로 부대를 편성한 것이

육십 명이 조금 넘었다.


고갯길에서 싸울 때

대충 삼십은 넘게

죽은 것이 확실했고,


아까 자신 말고도

도망친 사람들이

언뜻 보아 열 명은 넘어보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그것만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워낙 급하게 도망치느라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아까 금군이 가져온 무기들을

지키라고 내려 보낸 애들 중에

사지가 멀쩡한 놈들이 둘,


그 중에

한 놈은 갑사고

한 놈은 사수...


이두성의 말로는

총통에 화시까지 있다고 했고...


지금 내 앞에 이놈이랑,

나랑 같이 도망치던 열 놈 정도도

살아있다고 가정을 하고...’


안현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동원이 어리숙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계십니까요. 두목.”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 중이다.


살아남은 동료들을

어떻게 모아야하나...”


“네? 설마 또 싸우시게요?”


안현수의 말에 동원이 깜짝 놀라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얼굴엔

‘더 이상은 싸우기 싫다’는 마음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동원의 겁먹은 얼굴은 보자,

안현수의 마음에

갑자기 긴장이 확 풀어지며

뜬금없이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왜? 싸우기 싫으냐?

겁나서? 죽기 싫어서?”


“...당연하지요. 두목...


아까 그놈들 실력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아직도 듭니까요?


전 아직 죽기 싫습니다.


제가 주인집 물건 훔쳐서

장물로 처분하다 잡히는 바람에

원래 노역장으로

끌려갈 몸이었지만...


두목이 전옥서에 와서

지원자 받을 때,

제일 먼저 손든 것도

다 살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요.”


그제야 안현수의 기억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동원이란 젊은이가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사냥개의 일원이 되었는지

명확히 떠올랐다.




‘아, 그래...그랬었지.


워낙 말단이라

얼굴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지만,


그런 경위로

우리의 동료가 된 어린애였어.


스물을 갓 넘었었지, 아마...


하하,

아주 영리하고 솔직한 놈이로구나.


하긴 이런 성격들이

결국엔 끝까지 살아남지.


용감하게 뒈지는 것보다야

어떻게든 살아남는 놈이 강자야.


암 그렇고말고...’


안현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동원을 쳐다보고 있을 때,


동쪽에서 누군가가

숨을 헐떡이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안현수와 동원이 순간 긴장하여

칼을 빼들고

멀리서 뛰어오는 자를 경계하였다.


재빨리 달려오던 사내가

칼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둘을 보자,


얼른 발을 멈추고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기 계신 분,

혹시 안행수 아니시오?


나, 금군 겸사복인 최성호요!”


뛰어오던 사내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자,

안현수가 칼을 거뒀다.


동원도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칼을 내렸다.




최성호라

자신의 이름을 밝힌 사내가

천천히 걸어

그들의 앞에 당도했다.


환한 달빛 덕분에

그 사내의 신원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던 안현수는


그제야

자신의 칼집에 칼을 집어넣고

금군의 패잔병과 인사를 나눴다.


“용케 살아남으셨구려.


금군 무사들은

아까 그 범 같은 놈과 싸울 때

다 죽은 줄 알았소만.”


최성호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쪽 바위근처에

우리 쪽 생존자들이

몇 명 모여 있는데...


채 다섯이 안 되오.”


최성호의 말을 들은 안현수가

내심 놀랐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호오...아까 그 상황에서도

다섯이나 살아남았다고?


과연 금군은 금군이라 이건가?’


안현수가 차분하게 물었다.


“다섯이면 다섯이지,

채 다섯이 안 된다는 건 또 뭐요?”


“그 중에 둘은 곧...잘못될 거 같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아...그렇다는 건,

나머지 셋은 괜찮다는 뜻이오?”


“...나까지 포함해서 셋은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하오.


안행수 쪽은 이렇게 둘이 다요?”


“아까 정신없이 흩어져서

달아나는 바람에

아직까지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

잘 모르겠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방법을 고민 중이오.”


“...그렇구려.


일단 우리 일행이 있는

저쪽으로 갑시다.


이 상황에선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모여 있는 편이

그나마 나을 것 같소.”


“그럽시다.”


안현수가

최성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동원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살아남은 금군의 무사들 다섯 중

부상이 심한 둘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졌다.


동료를 잃은 최성호를 비롯한

금군의 생존자들이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빌어줄 동안,


안현수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인가...


장고를 거듭하던

안현수의 머릿속에

이두성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문득 떠올랐다.


‘명적!!!


그래, 명적을 울리면

무기를 지키던 놈들이

그걸 가지고 합류하기로 했지.


그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여기서 명적을 두어 발 쏘면

살아남은 애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런데...


그걸 듣고

적들이 쫓아오면 어쩌지?


아...이것 참 곤란한 문제로구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여겼으나

바로 다시,


안현수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말았다.


명적을 울려서

살아남은 동료들을

끌어 모으는 건 좋지만,


그로인해

적에게 위치가 노출되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때,


실로 구세주처럼

그의 앞에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거기, 안행수 아니오?”


자신을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에

안현수가 놀란 표정으로

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곳에 흑랑의 살수 둘이,


그것도 그냥 조원도 아닌

부조장 둘이

자신을 쳐다보며 서있었다.


곽재우를 구해내란

흑호의 명을 받고

급히 금강굴 쪽으로 내달리던

이랑과 삼랑이었다.




‘아, 이런 것이 천운이란 것인가!


여기서 저들을 다시 만나다니!

아직 내 운이 다하지 않았구나!’




안현수가

환한 얼굴로 재빨리 달려

그들에게 향했다.


이랑과 삼랑은

미동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당도한 안현수가

그간의 자초지종을 짧게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랑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선

한 명의 손이라도 더 필요하오.


아마 우리 애들 중에

살아남은 애들도


이 숲의 어딘가에서

어떤 신호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바로 명적을 쏘시오. 안행수.”


이랑의 결정에

안현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잠시 후,


한 발의 명적이

밤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밤의 적막을 뚫고

크고 길게 소리를 내며

숲의 저편으로 사라진 화살은,


마치

어떤 불길한 일을 예견하는

징조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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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1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9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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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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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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