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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02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27 01:22
조회
89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103)

DUMMY

-38-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승병들의 선두에서서

급히 달려온 유정이

대사에게 물었다.


대사는 고개를 살짝 돌려

유정을 쳐다본 후,

다시 흑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유정에게 짧게 물었다.


“우리 쪽의 피해는 어느 정도냐.”


유정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울한 얼굴로 답했다.


“중상자까지 합하면...

오십 명이 넘게 잘못되었습니다.


아까 오다가

검계 동지들과도 잠깐 만났는데,


그쪽 동지들과 처사님들까지

서른 명이 넘게

많이 당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영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유정의 말을 들은

대사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얼굴근육이 씰룩거렸다.


분노로 인한 일그러짐이었다.


겨우 다시 몸을 일으켜

안간힘을 쓰는 흑호를


대사가 성난 범처럼 쏘아보며

유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결정을 늦추고 행동을 망설인

나의 잘못이다.”


“..........”



대사의 자책에

유정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대사가

흑호를 향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겁을 먹은 흑호가 흠칫하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유정이

대사에게 다시 물었다.


“스승님,

이제부터 어찌하면 될까요.”


대사가 흑호를 향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

저 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너희들은 모두 금강굴로 가라.


적의 잔당들이 그쪽으로 갔다.


아,

한 명은 남아서

구두령의 치료를 도와라.”




그제야 유정의 시선이

땅에 쓰러져 있는

구대성을 발견하였다.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은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의 처참한 모습에

유정의 눈이 소처럼 커졌다.


그리고 구대성의 옆에

이미 싸늘하게 식은

한용덕의 주검이 있었다.


“어르신...이게...무슨...


아아...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늦었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유정에게

대사가 다시 말했다.


“한두령의 시신도...

정성껏 수습해드려야 한다...


일단 모든 것을 마무리한 후,

예법에 맞춰 의식을 행하겠다.


그러니 유정아,

너는 얼른 승병대를 이끌고

금강굴로 가거라.


시간이 급하다.”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재빨리 눈물을 훔친 유정이

승병대를 이끌고

급히 금강굴로 떠났다.


원적암의 마당에는

다시금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구대성의 치료를 위해 남은

젊은 승병이

신음하는 그를 부축해

암자 안으로 사라지자,


대사가

한용덕의 시신을

우울한 눈빛으로 한 번 쳐다본 후


흑호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도...

네놈을 살려두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


나의 망설임으로 인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버렸다.


아무리 네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해도,


너보다 훨씬 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도

이 땅엔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한때는 우리 모두가,


심지어

부처님을 섬기는 나까지도,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눈감으며 시작된

너의 업보라 하나,


이제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네놈이 살생을 저지를 기회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막자고 움직였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지난날의 내 과오를

깊이 반성하는 의미에서,


옛 정을 생각해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주마.”


"..........."


대사의 단호한 선언에


하고 싶은 말도,

항변하고 싶은 말도 많았으나,


흑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그저,

오직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야한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자.

집중...집중...집중...'


마음을 다진 흑호가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대사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내뱉는 호흡 한 자락도,

미세한 발끝의 움직임도,

시선의 작은 변화까지도,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기위해,

흑호의 모든 것은

정면의 대사에게 향해있었다.




드디어 대사가

오른손에

천천히 기운을 끌어 모았다.


그 모습을 본 흑호가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찾았다.


필살기의 준비를 끝낸 대사가


한 순간, 땅을 박차고

비호처럼 몸을 날려

흑호의 가슴팍을 향해

장권을 뻗었다.




그때,


흑호가

품안에서 꺼낸 무언가를

대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눈처럼 새하얀 가루가

안개처럼 퍼지며

순식간에 대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공격에 막 들어간 터라

호흡과 간격을

이미 조절할 수 없었던 대사가


자신의 눈과 코로 침입한

흰 가루로 인해

심하게 기침을 시작했다.


봄날 들판에서 나비를 쫓다

꽃가루에 희롱당한 소년처럼,


열 번이 넘게 재채기를 하며

눈물과 콧물을 한참 흘린 대사가

겨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야를 가로막았던

가루가 사라지고

다시 달빛 아래의 풍경이

대사의 두 눈에 들어왔으나,


이미 흑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암수를 써서

잠깐의 시간을 벌고

혼신의 힘을 다해

어디론가 달아난 것이다.




"이...괘씸한..."


대사가 언짢은 표정으로

화를 꾹 눌러 참으며

세심히 땅바닥을 살폈다.


너무 급하게 달아나느라

흑호가 여기저기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

대사의 눈에 금방 들어왔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많이 급하긴 급했구나."


흑호의 흔적을 살피던 대사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강굴 방향이 아니라

비로봉 쪽으로 달아났군.


그 와중에도 잔머리를 굴리다니...


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과의 악연을 끊으리라.”


한용덕의 주검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각오를 다시 다진 대사가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대사가

한용덕의 시신을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짧게 명복을 빌었다.


"한두령...


많이 원통하겠지만,

부디 편안하시길 바라네.


곧 다녀오겠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정성껏 배웅해 드릴 테니,

조금만 참게나."


한용덕의 명복을

짧게나마 빌어준 대사가


흑호가 달아난 방향을 보며

호흡을 한 번 크게 가다듬더니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비로봉으로 가는 숲길을 따라

대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원적암의 마당엔 이제

한용덕의 주검만이 쓸쓸히 남았다.




진정한 무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듯,

처량한 달빛이 조용히 내려와

그의 시신을 포근히 감쌌다.


목숨을 걸고

생사를 겨루던 사내들이

어느덧 모두 사라지고,


암자의 풍경은

다시금 적막을 되찾았다.


고요한 숲을

밤바람이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무심한 슬픔이 모든 것을 지배한,

쓸쓸하고 고요한 밤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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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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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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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8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4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6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69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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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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