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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13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25 02:07
조회
69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102)

DUMMY

"하하하...


당신이야 말로

나를 모르는구려.


내가 왜

이런 일을 다시 벌인 건지

당신은

죽어서도 알지 못할 거요."


흑호가

자신을 앞에 두고

크게 웃는 것도 모자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

자신을 비웃자,


대사의 눈꼬리가

확 치켜 올라가며,


평상시 그답지 않게

입 밖으로

과격한 소리가 튀어나갔다.


"이놈 봐라?

정말 정신이 나간 것이냐?


하찮은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지금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을,

온 힘을 다해

꾹 눌러 참고 있거늘...


제 주제도 모르고

겁도 없이 나를 비웃어?"


대사가 정색하며

거칠게 대응하자,


흑호가

갑자기 웃음기를 싹 빼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협? 대의? 명분?


그딴 어려운 말은 난 모르오.


난 그저

내가 마음을 맡긴 분께

못 다한 충성을

마저 하려는 것뿐이오...


난, 그분의 칼이었소.


칼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소.


주인의 의지에 따라

그저 찌를 뿐...


주인이 안 계신 지금,


홀로 남은 칼은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겨눈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것뿐이오.


그게 다요.


거기에

거창한 뜻이나 의미 같은 것은

담겨있지 않소."


“........”


흑호의 대꾸에

대사는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저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던가.


삶의 시작부터 꼬여버렸고,


인연의 시작부터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했다.


평생을

남의 뜻에 따라

살인만 해오던 아이에게,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갑자기,


네가 살아온 길은

잘못된 것이었다 말한다면,


그 어느 누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대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흑호가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저

변절한 배신자에 위선자일 뿐이오.


어디 그것뿐이오?


우리의 듬직한 동지였던

용덕형님과 대성형님까지 꼬드겨

결국 우리와 척을 지게 만든,


실로 뱀 같은 인간이오."


흑호가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듯

거센 비난을 날렸지만,


방금 전

순간적으로 흥분했던 것을

깊이 반성한 대사가,


마치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 인정하마.


나도 변했고, 그도 변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하자꾸나.


동지의 맹세를 깨고

먼저 변해버린 것은,


그였지 내가 아니다."


"...거짓말 마시오!


대두령은

바위 같은 사람이었소.


배신자는 당신이오!"




너무도 단호한,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흑호의 대답에


대사가

길게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철없고 미련한 놈아...


어찌 너는 아직도

그 옛날의 헛된 미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령처럼 세상을 떠도는 것이냐.


이건 복수도 대업도 아닌

그저 의미 없는 집착일 뿐이다.


왜 그걸

여태껏 깨닫질 못한단 말이냐."


대사의 말을 들은 흑호가

잠시 침묵하다가

회한어린 목소리로

천천히 답했다.


"집착? 집착이라...


하긴

애절한 사랑이나

무한한 존경심도

집착의 한 종류라 볼 수 있겠지요.


마음을 병들게 하고

몸을 갉아먹는...

아주 지독한 집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일 뿐입니다.


사랑에 빠지건

경외와 존경에 빠지건,


그 집착에 빠져있는 사람은


설령 온몸의 피가 끓어

뼈와 살이 타들어가더라도,


그저 행복할 뿐이니까요."




흑호의 대답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의지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사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고

탄식하듯 말했다.


"마음이...완전히 뒤틀렸구나...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망가져버렸어...


정녕 너를 구원할 방법은

죽음 외엔 없을 것 같구나."




대사가 여전히

안타까운 표정을 거두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입에 담자,


드디어

흑호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던 분노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개소리 마시오!


내가! 이 흑호가!


오늘 당신의 목을 따려고

얼마나 절치부심하며

노력하고 준비했는지

알기나 하시오?


운 좋은 줄도 모르는

뻔뻔한 늙은이...


용덕형님이나

대성형님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이미

삼도천을 건넜을 것이오!"


한눈에 봐도,

제대로 싸울만한 몸 상태가

아닌 것이 분명한 흑호가

격정적인 분노를 내비치자


대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선공을 세 번 양보해줄테니

들어와 보거라.


네놈들의 특기인

독수를 써도 된다.


아니다. 다섯 번으로 해줄까?


사양치 말거라.

이 노인네의 배려이니..."


"이....이...여우같은....."


"왜? 자신이 없느냐?


하긴 지금

유심히 네 상태를 관찰해 보니,


예전의 예리함이

다 사라진 것 같구나.


꼭 싸움에 지고 겁을 먹어서

꼬리를 둘둘 만 검둥개 같아."


"닥쳐라! 이 늙은 중아!"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대사의 도발에

이성을 잃은 흑호가

상처 입은 맹수마냥 달려들었다.


첫 공격부터 독수를 빼어들고

간격을 좁힌 흑호는

대사의 급소를 노려 물어뜯고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대사의 움직임은

유려하고 간결하게,


마치 산뜻한 봄바람처럼 변해

흥분한 짐승의 이빨과 발톱을

모두 흘려버렸다.




자신의 목과 눈을 노린

흑호의 독수와 비차가

모두 빗나가자,


대사가 다시 말했다.


"이제 한 번 남았다."


여유로운 대사의 말을 자르듯,


흑호의 비차가

다시 한 번 예리한 칼날을

옆구리의 급소에

사납게 들이밀었으나,


대사는

가벼운 손동작 하나로

쉽게 쳐내버렸다.




당황한 흑호에게

대사가 다시 말했다.


"어째?


지금이라도

다섯 번으로 늘려주랴?"


"...이...이..."


대사의 여전한 도발에

뭐라 대꾸하지도 못할 만큼

화가 난 흑호의 입에서


뿌드득하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그의 복면바깥으로 새어나왔다.


참기 힘든 분노의

격한 표현이었으리라.




그때,


대사가 순식간에

흑호의 품으로 파고들며


검지를 뾰족하게 돌출시킨

오른쪽 정권으로

그의 명치를 매섭게 끊어 쳤다.




컥,


대사의 주먹질 한 번에

아주 짧은 비명 한 마디를 내뱉고


흑호가

저만치 멀리 나가떨어졌다.


숨을 쉴 수가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이

그의 전신을 덮쳐왔다.




가벼워 보이지만

아주 매섭고 효율적인,


호흡과 혈류가

심장으로 가는 길을

일거에 끊어버린

주먹 한 방이었다.


죽이기보다는

제압하는 용도의 공격이기에

고통의 시간은 짧을지 모르나,


그 충격은

어마어마하게 강렬했다.




숨을 들이마시지도

내뱉지도 못하며

흑호는 주마등을 보았다.


온몸이 마비된듯한 느낌 속에서

점차 시야가 흐려지며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대사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흑호의 생사에 관한

고민이었으리라.




‘저 독한 놈이라면

이걸 맞았다고

기절은 안할 것이고...


어쩔까...


숨을 마저 끊어야하는가.


살려두기엔

너무 위험부담이 큰,

상처입은 범 같은 놈인데...


재우처럼 전환의 여지도 없고...’


대사가

흑호의 처분을 결심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때,


저 아래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유정을 선두로

수십 명의 승병들이 숨을 헐떡이며

원적암의 마당에 들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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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5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2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1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9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6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70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70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9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9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2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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