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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0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18 04:44
조회
69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99)

DUMMY

-36-


어느 순간,

구대성의 등에서 떨림이 멎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내뱉은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마지막 순간까지 닫히지 못한

한용덕의 두 눈을

살며시 감겨주었다.


그런 후에도 잠시 멍하니

벗의 주검을 바라보던 그가

드디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문 채, 구대성이

자신의 애도인

벽오를 집어 들었다.


적들을 향해 돌아선

그의 얼굴은

뜨거운 분노로 얼룩져 있었고,


칼을 잡은 그의 손엔

차가운 살기가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한발 앞으로 나서며,

구대성이

흑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다려주어서...고맙다.”




그가

무슨 심정과 각오로

그런 말을 내뱉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흑호도

예의를 갖추어 진심으로

자신의 각오를 전했다.


“용덕형님께도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형님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살다보니

어쩌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것이겠지요.


아직도 전,

형님들과의 즐거웠던 날들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저에게

그렇게 잘해주신 분들은

정말 흔치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구대성이 말꼬리를 올려

대답을 종용하듯 말을 자르자,


흑호가 잠시 숨을 고르고

못 다한 자신의 진심을

마저 전했다.


“그 좋았던 형님들과의 인연이

이렇듯 악연으로 바뀌어

저도 괴롭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겠지요.


곧 용덕형님의 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대성형님.”


흑호가

차갑게 말을 마무리하고

비차를 들어 올리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흑호의 양옆에 서있던

이랑과 삼랑도

각자의 무기를 힘주어 잡으며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바쁜 아우님을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구먼...


사양하지 않을 테니,

맘껏 들어와 보시게.”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구대성의 말에

뭔가가 마음에 걸렸는지,

흑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의 계획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습니다.


더 이상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니...


저희 살수들의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가 형님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입니다.


저희 셋이

동시에 덤벼드는 건,


형님의 실력에 대한

예우로 여겨주십시오.”


흑호의 선언에

드디어

구대성의 분노가 튀어나왔다.


“예우? 그런 거 필요 없다.

최선을 다해 들어오너라.


난 절대

한동지처럼 망설이지 않을 것이니...


우리의 악연은,

내가 여기서

내 손으로 마무리 짓겠다.”




차갑게 맞받은

구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사내가

번개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제일 먼저 칼을 날린 건

구대성의 오른쪽으로 파고든

삼랑이었다.


자세를 바짝 낮춘 삼랑이

월참을 휘둘러

구대성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리곤 거의 한 호흡으로

이랑의 일섬이

구대성의 왼쪽 목덜미를 향해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나

구대성의 두 눈은


그의 양쪽을 노리는

이랑과 삼랑이 아니라,


한 박자 늦게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드는

흑호의 비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옆구리와 목덜미에

공격을 받기 직전,


구대성이

정면의 흑호를 향해

벽오를 창처럼 집어던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파격적인 공격에


양쪽의 급소를 노리던

이랑과 삼랑의 칼이

순간 멈칫했고,


정면으로 달려들던 흑호도

화들짝 놀라

뒤로 급히 몸을 재껴야했다.




흑호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벽오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그 찰나의 순간에 몸을 회전시켜

이랑의 찌르기를 흘려낸 구대성이,


왼손의 손가락을 일자로 모아

삼랑을 향해 날카롭게 내질렀다.


구대성의 왼손 관수가

삼랑의 목덜미를

칼처럼 파고들었다.




컥,


삼랑의 입에서

거센 비명이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그의 몸이

그대로 푹 주저앉았다.


삼랑의 목 오른쪽 한가운데에

구대성의 손날이 파고든 자국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강렬한 한방이었다.




주저앉는 삼랑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란 이랑이

조급함에 또 실수를 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흑호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가

둘이 호흡을 맞춰

같이 했어야할 공격이었다.


이랑의 일섬이

자신의 명치를 향해

다시 날아오자,


구대성이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오른손을 빠르게 내질러

이랑의 목젖을 향해

강하게 밀어 쳤다.


찌르기를 뻗은 이랑의 팔이

미처 다 펴지기도 전에,


구대성의 아금손치기가

그의 목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큭,


짧은 비명 소리가

이랑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택견꾼들이 ‘칼잽이’라고 부르는

이 무서운 기술에,


공격하던 자신의 힘과 속도에 맞춰

되받아친 위력까지 더해지자,


두 사람 몫의 타격을 한 방에 받은

이랑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아주 빠르게

둘을 처리한 구대성이

표범처럼 날쌔게 자세를 전환해,


비차를 쥐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흑호와 마주섰다.


흑호가 팔을 휘둘러

비차의 추 부분을

암기처럼 날렸다.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는

비차의 추를

몸을 숙여 피한 구대성이,


곧바로

발끝과 두 무릎에 힘을 모았다가

한 순간에 폭발시켰다.


마치 총통의 화약이 터진 것처럼,


하체의 추진력을 받은

구대성의 몸이

벼락처럼 튀어나가


흑호의 찌르기보다

한 호흡 빠르게

상대의 몸을 들이받았다.




억,


흑호의 입에서

단말마가 튀어나오며


구대성의 왼쪽 어깨에 들이받힌

그의 몸이

한 순간 허공에 붕 떴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구대성의 어깨공격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흑호의 호흡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폐와 심장에

제대로 타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일어나질 못하는 흑호에게

바로 달려들어

마무리를 가하지 않고,


구대성이 천천히 걸어

아까 집어던진

자신의 벽오를 주워들었다.


벽오의 칼날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더니,

구대성이 흑호를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살 그만 떨고 얼른 일어나라.

아우야....


이정도면,


아까 네가

나를 기다려준 것에 대한 빚은

충분히 갚았다고 본다.


이제, 마무리를 짓자.”




구대성도 아까의 자신처럼,

끝을 낼 수 있음에도

끝을 내지 않았다는 걸

흑호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서둘러 호흡을 바로잡으며

흑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랑과 삼랑은

충격이 상당했는지

아직도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후우...


하늘을 향해

마지막 숨고르기를 한 흑호가

비차를 다시 겨누며

구대성에게 말했다.


“네...


형님의 배려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이제 결착을 보시지요.”




흑호의 말이 끝나자,


구대성이

벽오를 하단의 자세로 내리고

정면의 흑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흑호도 바로 움직이지 않고

비차를 쥔 채 앞을 노려보며

구대성의 빈틈을 찾아내려

집중력을 최대치로 높였다.


잠깐 동안

둘의 대치가 이뤄지면서

주변의 공기가 서서히 무거워졌다.




마치

지면 깊숙이

단단한 뿌리를 박은 거목처럼,


태산 같은 강건함을 내비치는

구대성을 보며

흑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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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5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2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8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4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69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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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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