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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07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6.01 05:24
조회
74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105)

DUMMY

흑호가 처연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대두령께서 못다 이룬 꿈을,

내가 대신 이루고자 한 것이...

그렇게 의미 없는 일이었소?”


“...........”


“오로지 한 가지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내 삶이...

그리도 부질없고, 헛된 것이었소?”


“...........”


“그것이 틀렸든 맞든 간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죽을 듯이 최선을 다한,


그간의 내 모든 인내와 노력은

정녕 잘못된 것이었소?”


“............”


“그럼 나는,

도대체 나란 사람은!!!


당신들에게 뭐였소?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날 그곳에서 구해낸 거요?


적어도

거기서 사람을 죽일 때는,


그자들이

죽을죄를 지은 놈들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소!


당신들이 나를

그곳에서 빼낼 때

그러지 않았소!!!


넌 우리와 같이

새 세상을 만들어갈,

소중한 동지이자 가족이라고!!!


당신들이 죽이라면 죽였고,

당신들이 살리라면 살렸소!!!


그런데,

그때는 그것이 맞고,

지금은 틀린 거요?”


“...........”


“적어도 대두령께서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날 걱정해주셨소.


너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그런데

나에게 형제라 부르며

그리도 잘해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는 길이 달라졌다고


그냥 남도 아닌

죽여야 할 적으로 몰아세우며

나에게 등을 돌린 당신들이!!!


나에게 죄를 물을 자격이

정말 있소?


어째서 대답을 못하오?

말을 해보시오!!!”


흑호의 입에서 나온

그의 진심이 담긴 말들은,


대사의 가슴을

참 아프게 찔러왔다.


흑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고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회자수의 삶을 살며

사람의 목을 자르던 그를,


거둔 것도 버린 것도

자신들이었다.


대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대사가 흑호에게 물었었다.


회자수로서

굳건히 자리를 잡아

이제야 겨우

안정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그걸 다 버리고 왜 굳이

우리의 동지가 되는 것을

선택했냐고.


대사의 질문에

흑호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었다.


“철들기도 전부터

피로 얼룩진 제 삶에


이유와 목적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전 정말 회자수 일이 싫었거든요.


원래가 백정출신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쳐내는 것과

짐승의 목을 치는 것은

처음엔 아예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똑같아 지더라고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짐승을 죽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짐승을 죽이는 건

먹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도 있고,


제가 뼈와 살을 발라

잘 다뤄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중요한 이유라도 있었지만...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사람의 목을 베는 건...


그저 제가 살아가기 위해

아무 의미 없이

죄를 쌓아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자수의 일도

세상에 꼭 필요한 일 아닌가.


그런 엄한 본보기를 보여야


죄를 짓는 인간들이

벌을 두려워하고,


죄가 줄어들면

그나마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지 않겠나.


물론,

당사자는 너무 힘들었겠지만...”


“네, 총사님 말씀도 맞습니다.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하며

제 마음을 달래보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그때

우연히 뵙게 된 대두령이

저한테 그러셨거든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 칼이 꼭 필요하다고요.


제 인생에서

그런 적이 처음이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그리도 간절히,


네가 꼭 필요하다고

말해준 일이...


동지가 된 이유는 그게 다입니다.”


“..............”


그의 대답에

대사가 애잔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흑호가 한마디를 덧붙였었다.


“아무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이고,


인간백정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구차한 삶을 이어가던 저에게,


정말 한줄기 빛 같은 것이

내려온 느낌이었습니다.


동지가 되었다 해도

가진 재주가 이것뿐이라,


저는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를 죽여야 하겠지만...


제가 살아남기 위해

그저 습관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드는

뜻깊은 일에 동참하여

동지들 대신

제 손을 더럽히는 것이니...


그 일을 긍지 있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피가 이어지진 않았으나

이제부터 우리는 가족일세.”


“네.


저처럼 흠이 많은 놈을

이렇게 식구로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총사님...


배운 것도 없고

생각도 별로 없는

많이 부족한 몸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날의 첫 대화는,

아직도 대사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이십여 년이 지났어도

이리도 명확하게

그가 했던 모든 말이

떠오른다는 건,


그만큼 그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인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삶이란,

어찌 이리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만물의 모습처럼,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도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건만,


어찌하여 저 아이는

그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저리도 우직하고

변함이 없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대사의 얼굴에

일순 씁쓸한 마음이 드러났다.


슬프고도 우울했다.


그 모습을 본 흑호가

다시 다그쳤다.


“약속하시지 않았소.

솔직하게 대답해주기로...


얼른 해주시오.

손에 힘이 점점 빠지는구려.”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대사가,


결국

참고 참았던 한마디를 내보냈다.


“내가...

아니, 우리가...잘못했다.


세상의 모든 대의든 명분이든

그런 모든 거창한 것들을 치우고,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가 너에게 잘못했다.


부디 용서해다오.”


대사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흑호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씩 웃었다.


마치 지난날의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간 듯,

그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총사님...


저도 이제

대두령과 먼저 간 동지들...


그리고

용덕형님 곁으로 가렵니다.


총사님이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주시리라

믿고 있으니,


대성형님께는 꼭,

제가 너무 죄송해했다고

전해주세요.


대성형님...그리고 총사님...

되도록 천천히 오세요.


최대한 늦게 뵙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그 말을 끝으로,


생명줄로 잡고 있던

나뭇가지와 돌 뿌리를

흑호가 스스로 놓아버렸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작별의 말을 전할 틈도 없이,


깊고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사라져버린

그의 최후를,


대사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금강굴로

급히 가야만 한다는 생각도

어느새 잊은 채,


흑호가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며


대사는

아주 오랫동안 슬픈 얼굴로

그곳에 서있었다.




쓸쓸한 바람이

남아있는 자의 등을

마구 할퀴고 지나갔다.


춥고, 아프며, 괴로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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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5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2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9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7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70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8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9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1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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