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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14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6.06 22:42
조회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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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제 4 부 개화(開花) (107)

DUMMY

-41-


근처의 가까운 곳에서

명적이 날아가며 울리는

독특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덕관의 표정이

한순간 굳어버렸다.


덕관이 굴 바깥으로 나가

주변을 유심히 살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서서

밝은 달을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굴 안으로 돌아왔다.




금강굴 안에는

삼십여 명의 부녀자들과


쇠사슬에

팔다리가 묶여있는 곽재우,


그리고

비장한 표정의 김덕관이

머물고 있었다.




아까 큰 굉음이 또 들려온 후

류현진이 지원을 위해 나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은

오롯이 덕관 혼자의 몫이 되었다.


사람들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바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


덕관을

답답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동지들을 믿고

기다리고는 있지만,


아까 떠나오기 전에

잠깐 본 바로는


적의 실력이

실로 만만치 않아 보였기에,

그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그런 아빠의 초조함이

겉으로도 많이 드러났는지,

진용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차분히 말했다.


“아빠, 다 괜찮으실 거여요.


대사님도 계시고,

큰아버님들도 계시고,

스승님들이랑 금강산 삼촌들에,

현진이 삼촌까지 갔는걸요.


그분들이 얼마나 세신지는

아빠가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자신을 격려해주자,

덕관이 씩 웃으며

진용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그렇게 불안해보였나...

신경을 좀 써야겠군.


내가 불안해하면

애들 엄마부터 우리 아이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같이 불안해진다.'


그렇게 생각한 김덕관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진용에게 말했다.


“아빠가 걱정을 끼쳤나 보구나.


미안하다. 진용아...

잠깐 딴 생각을 한 모양이야.”


“아빠는...

제가 본 어떤 사람보다 강해요.


아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저랑 진영이랑 엄마는

하나도 불안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진용의 얼굴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덕관은 얼른 두 팔을 뻗어

진용을 들어올려

자신의 품에 안았다.


진용이 활짝 웃자, 덕관이 말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젠 무거워져서

안아주기도 힘드네. 하하.”


요즘 들어 통

자신을 안아주지 않았던 아빠가,


갑자기 높이 들어 안아주자

진용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 피어났다.


또래에 비해

많이 의젓하다고는 하지만,

고작 여덟 살 아닌가.


부모의 품에서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였다.


진용도

아빠의 굵은 목을

두 팔 벌려 꽉 안았다.




오빠가

불안해하는 아빠에게 가있을 때,


진영은

귀여움 가득한 얼굴로

우울한 표정의 곽재우 앞에 앉아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동굴 안으로 밀어닥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보며

곽재우의 걱정은

한없이 깊어졌다.


자신이 의령에서

이곳으로 납치당하기 전에


혹시라도 몰라

흑호 앞으로 남기고 온

세 가지의 계획에 따라


그들이 오늘밤 이곳을

습격해 온 것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곽재우는

자신의 아내를 구하러가기 전,


자신이 잘못될 것을 대비해

세 가지의 계책을 세워

흑호에게 전했다.


첫째,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는 방법.


둘째,

살아있을 경우

자신을 찾아내는 방법.


셋째,

죽었을 경우

앞으로 조직을 이끌어 갈 방법.




흑호는

곽재우와의 연락이 끊어지자,

그가 보낸 계책에 따라

재빨리 움직였다.


운이 좋게도

곽재우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과

그를 찾아낼 방도가

동시에 해결되었다.


추설의 연락소인

양재주막에 잠입했을 때,


곽재우가 살아있다는 확신과

그가 어디에 잡혀있는 것까지

한 번에 알아냈기 때문이다.


곽재우가

자신이 죽었다고 확인될 때

미래를 이렇게 준비하라는 계책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안현수의 조직과 연계하면,


금군의 힘까지도

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곽재우의 생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곽재우가 서찰과 함께

흑호에게 전달한


서림이 남긴

전략서 세 권의 존재였다.


그 책에는

온갖 정보와 향후의 전략이

다 구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흑호가 그토록

살아만 남으면

후일을 다시 도모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졌던 이유도,


다 서림이 남긴

세 권의 책 때문이었다.


‘임꺽정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준비된 세 권의 책은,


서림의 모든 집착과

회한이 담겨있었다.




‘날짜까지 정확히 맞춰서

이곳을 습격하다니,


역시 흑호 스승님은 대단하시다.

그러나...’


아까 저녁에 헤어질 때

이런 것이 걱정되어,


진용과 진영에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부모님과 함께

이곳으로 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동안 대사의 배려로 인해

이 남매와

워낙 친해진 것도 있었지만,


사실 곽재우의 생각은

갇혀있는 동안

아주 많이 변해있었다.


‘서림이 남긴 계책에 따라

자신이 흑호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었다.


옳은 대의와 바른 명분,

생명의 가치, 삶의 소중함,

진정한 의와 협,

민초들의 고난과 행복 등등


대사가 그토록 비난한

‘철없는 객기와

호승심으로만 가득했던’

자신의 모습이


그제야

똑바로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금강굴 안에서

깊고 넓은 고민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전환의 계기를 만들고 있었고,


매일 하루 세 번씩 만나는

진용남매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가족의 사랑과 배려,

행복과 애민(愛民)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배워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오늘밤의 일은

큰 죄책감을 던져주었다.


수십여 명이 넘는

부녀자들과 노인들까지

흑호의 습격을 피해

금강굴로 들어오자,


일단 너무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리고

피신한 이들 중에서


형제나 가족을

자신의 동료들에게 잃은

사람들의 눈물과 오열이 시작되자,


그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의 아픈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진영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소녀 특유의 귀여운 얼굴로

말을 걸어주고 격려하는 걸 보며,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고 있었다.


“오빠, 너무 걱정하지 마요.


할아버지랑 우리 삼촌들이

나쁜 놈들 다 물리쳐줄 거니까.”


해맑은 진영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끝처럼

곽재우의 마음을 찔렀다.


‘나쁜 놈들...


그렇지,


네 동료들은

지금 이 아이에게

나쁜 놈들이지...


살던 곳을 불태우고

친한 사람들을 죽인...


그래, 나쁜 놈들이 맞다.’


진영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우리 아빠가 다 지켜줄 거니까

아무 걱정 마요.


우리 아빠는

커더란 늑대도

혼자서 때려잡은 적이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가장 강한 사람이에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진영아.”


침묵을 지키던 곽재우가

드디어 입을 열어 대답하자

진영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

그렇게 울지 마요.


오빠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돌아가서

오빠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볼 수 있고,


오빠가 사랑하는 언니도

꼭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그...그래....그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진영아...”


진영의 해맑은 위로에,

곽재우는 결국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어느덧

대사가 정한 선을 넘어,


진영이

그의 앞에 훌쩍 다가와

작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곽재우가

깜짝 놀랐으나,


동시에

그의 가슴 속에

엄청난 울림이 느껴졌다.


진영에겐

앞에 있는 사람의

슬픈 눈물이 중요한 것이지,


그의 속마음에 있는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감정은

아무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슬픔을

그저 달래주고픈,

아이의 순수한 마음.


대사가 절대 넘지 말라던

자신과의 안전거리를

휙 뛰어넘어서까지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소녀의 아름다운 행동.


그는

진심으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곽재우의 진정한 구원은,

어린 소녀의

순수한 위로에서 비롯되었다.


신(神)은 작은 것에 깃든다는

대사의 말에 담긴 의미를,

그는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한편,

금강굴 근처의 숲에서는


첫 번째 명적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방향에서 숲을 뚫고

수십의 사내들이

재빨리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사내들 중에는

흑랑의 생존자들이

열 명으로 가장 많았고,


금군의 생존자가 넷,


사냥개부대의 생존자가

일곱 명이었다.


마지막엔

두 명의 사냥개들이

총통을 비롯한

금군의 무기들을 가지고 합류했다.


안현수를 비롯해

기존에 모여 있던

일곱 명까지 더해


다시

삼십 명의 습격부대가 만들어졌다.




안현수가

다시금 자신감에 가득 차

기쁜 얼굴로 말했다.


“흑랑의 부조장님들이 이끄는

살수대에,

금군무사님들이 일곱,

거기에 우리 애들까지...


이번엔 총통까지 있으니,

금강굴로 가도

절대 밀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안현수의 말에

최성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통은...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신중하게 쓰셔야하오.


아까도 승병들을 상대로

운용을 잘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우리 쪽에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소.”


이랑이 말했다.


“금강굴은 이제 지척이오.


거기에 가면, 우린

우리 책사를 구해내는 것에

최우선의 목적을 둘 것이오.


안행수와

금군 나리들은 어쩌시려오?”


안현수가 대답했다.


“임무로만 보자면,

거기 있는 모든 이들을

다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두 명의 모가지만

도성으로 가져가면 됩니다.”


이랑이 다시 물었다.


“두 명?”


안현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놈은

그 곰 같은 검계의 사내일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어린애요. 남자 아이.”


“..........”


안현수의 말에

그 자리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삼랑이 말했다.


“명적까지 쐈으니,

적들도 이쪽으로 몰려올 것이오.


서두릅시다.”


안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생존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

한 발 더 날리고,


쏘자마자 바로 이동합시다.”


잠시 후,

두 번째 명적을 날리고

삼십 명의 사내들이

서둘러 금강굴로 향했다.




그렇게 진영의 손길에

곽재우가 구원받고 있을 때,


진용을 안고 바깥을 경계하던

덕관의 귀에

또 다시

명적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시차를 두고

근처에서 두 번이나 울린

명적의 소리는,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을

그의 마음에 전해 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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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5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90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70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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